파묵칼레 석회붕, 맨발로 내려온 오후 — 흐린 하늘에 물빛만 남았다
튀르키예 데니즐리에서 미니버스로 올라와 파묵칼레 석회붕(Pamukkale Travertenleri) 남쪽 입구를 지나자마자 신발을 벗었다. 이곳은 신발을 신고 석회붕 위를 걷는 게 금지라, 벗는 게 선택이 아니라 규칙이다. 이날은 사진에서 보이듯 하늘이 완전히 뿌옜다. 엽서에 나오는 새파란 하늘·순백의 계단식 온천은 없었…
파묵칼레 · 파묵칼레 석회붕
튀르키예 데니즐리에서 미니버스로 올라와 파묵칼레 석회붕(Pamukkale Travertenleri) 남쪽 입구를 지나자마자 신발을 벗었다. 이곳은 신발을 신고 석회붕 위를 걷는 게 금지라, 벗는 게 선택이 아니라 규칙이다. 이날은 사진에서 보이듯 하늘이 완전히 뿌옜다. 엽서에 나오는 새파란 하늘·순백의 계단식 온천은 없었고, 대신 회색 구름이 낮게 깔린 채 아래 파묵칼레 마을만 흐릿하게 보였다. 솔직히 도착 직후엔 "날 잘못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물 위에 서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맨발로 밟는 석회붕 — 상상보다 훨씬 거칠다
가장 먼저 놀란 건 바닥의 질감이었다. 사진으로 볼 때는 매끈한 대리석 같지만, 실제로 발을 대면 굳은 소금 결정 위를 걷는 느낌에 가깝다. 오돌토돌한 돌기가 발바닥을 찌르고, 어떤 구간은 아예 사포처럼 까끌하다. 발가락 사이에 하얀 석회 알갱이가 끼어서, 내려온 뒤에도 한참 털어내야 했다.

물 온도는 부위마다 달랐다. 위쪽에서 온천수가 새로 흘러드는 자리는 미지근하게 따뜻했지만, 아래쪽 고인 물은 3월 초 바람에 식어서 발이 시렸다. 온천이라고 해서 뜨끈한 목욕을 기대하면 실망한다. 따뜻한 자리를 찾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요령이다. 그리고 미끄럽다. 젖은 석회면은 비누칠한 타일 같아서, 나도 한 번 크게 휘청했다. 경사 구간에서는 발바닥 전체를 붙이고 종종걸음으로 가는 편이 안전하다.
흐린 날의 물빛이 오히려 진했다
맑은 날 사진에서 보던 하늘색 반사는 없었지만, 대신 물 자체의 색이 살아났다. 하늘이 회색이라 반사광이 죽으니 석회 바닥이 만든 불투명한 민트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래로는 파묵칼레 마을의 주황색 지붕들과 인공 호수의 초록빛 수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후 늦게는 구름이 더 무겁게 내려앉으면서 하늘이 거의 납빛이 됐다. 그때 찍은 사진은 색이 완전히 다르다. 물웅덩이가 유리처럼 잔잔해지고, 사람 실루엣만 검게 남는다. 하루에 두 번 다른 장소에 온 것 같았다.

위치·접근성 — 어느 문으로 들어가느냐가 전부다
파묵칼레 석회붕은 언덕 위 히에라폴리스 고대도시와 한 덩어리다. 입구가 여러 개인데, 어디로 들어가느냐가 하루 동선을 완전히 바꾼다. 마을 쪽 남문에서 들어가면 석회붕을 맨발로 올라가야 하고, 위쪽 북문·남문 주차장까지 차로 올라가면 히에라폴리스를 먼저 보고 석회붕을 걸어 내려오게 된다. 나는 후자였고, 무릎에는 이쪽이 훨씬 낫다. 마을에서 언덕 아래까지는 도보로 붙어 있는 거리라 숙소를 마을에 잡으면 걸어서 접근이 가능하다.
석회붕 위에는 곳곳에 튀르키예어·영어·러시아어가 함께 적힌 경고판이 서 있다. "체인을 넘는 것은 위험하며 금지됨(The chains pass dangerous and prohibited)" 같은 문구다. 실제로 체인 너머 구간은 물이 마르고 표면이 부서져 있어서, 밟으면 석회층이 그대로 깨진다. 아래 사진 오른쪽에 그 표지판이 보인다.

물이 흐르지 않는 구간이 생각보다 많다
처음 온 사람이 가장 크게 실망하는 지점이 이거다. 석회붕 전체에 물이 차 있지 않다. 물은 정해진 구역에만 순환시키고, 나머지는 하얗게 말라 있다. 사진의 넓은 흰 벽면도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구간이다. 눈밭처럼 보이지만 만져보면 바싹 마른 돌이고, 밟으면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그래도 이 마른 구간이 오히려 사진은 잘 나온다. 사람이 적고, 흰 면이 넓게 펼쳐져서 실루엣이 살아난다. 아래 사진은 위쪽 능선에서 마을 쪽을 마주 보고 선 자리인데, 발밑에서 왼쪽 아래 호수까지가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3월 초에 반바지 차림으로 맨발이면 발은 시리다. 위쪽 능선은 바람이 세서 상의는 후드 하나쯤 걸치는 게 맞다.

가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 수건은 필수, 슬리퍼는 무용지물. 신발은 손에 들고 다녀야 하니 끈 달린 백팩이 편하다. 발 닦을 수건이 없으면 젖은 발에 석회가 굳어서 그대로 신발 속으로 들어간다.
- 물에 들어갈 생각이면 반바지. 긴바지를 걷어 올려도 물이 튄다. 다만 수영복 차림으로 몸을 담글 만큼 깊은 곳은 없다. 깊어야 발목~종아리다.
- 발바닥이 예민하면 각오할 것. 표면이 거칠어서 30분쯤 걷고 나면 발바닥이 얼얼하다.
- 흐린 날을 피하려고 일정을 미룰 필요는 없다. 다만 SNS에서 본 새파란 물색을 기대했다면 그건 맑은 날 하늘이 반사된 결과라는 걸 알고 가야 실망이 없다.
- 입장료·운영시간은 시즌마다 바뀐다. 나도 이날 낸 금액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적지 않는다. 매표소 현장 확인을 권한다.
가장 좋았던 순간은 풍경이 아니라 감각 쪽이었다. 위쪽에서 갓 흘러나온 미지근한 물이 발등을 지나가고, 발밑에서 석회 결정이 서걱거리고, 저 아래 마을에서 올라온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던 몇 분. 하늘이 흐려서 사람도 적었고, 덕분에 그 조용함이 통째로 내 것이었다. 다음엔 이른 아침에 다시 올라가 볼 생각이다.
이어서 볼 글
- 2월 괴레메, 제미 호텔(Zemi Hotel Cappadocia) 앞 언덕에서 신라면 블랙 끓여 먹은 이야기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의 괴레메(Göreme)에는 여름이 성수기다. 나는 2월에 갔다.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계곡 능선에 서리인지 눈인지 모를 흰 가루가 얇게 깔려 있는 시기. 결론부터 말하면 비수기를 택한 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사람이 적으니 언덕 전망대를 통째로 혼자 썼고, 호텔 테라스에도 나…
괴레메 - 안탈리아 칼레이치 절벽 위, Yuvam Shisha Nargile Kafe에서 항구를 내려다보며 보낸 오후
튀르키예 안탈리아의 구시가 칼레이치(Kaleiçi)는 성벽 안쪽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처음 오면 바다가 어디 붙어 있는지 감이 안 온다. 그러다 절벽 끝 산책로에 올라서는 순간 시야가 확 열린다. Yuvam Shisha Nargile Kafe는 그 절벽 라인 위, 요트 항구(Kaleiçi Yat Limanı)를…
안탈리아 · Yuvam Shisha Nargile Kafe - 안탈리아 칼레이치 요트 항구 — 성벽 아래 항구를 세 번 각도 바꿔 내려다본 하루
튀르키예 안탈리아의 구시가 칼레이치(Kaleiçi)는 성벽이 절벽 위에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절벽 아래가 통째로 요트 항구다. 지도로 볼 땐 '항구 하나' 같지만 실제로 가보면 위(성벽 산책로) / 중간(경사로) / 아래(부두) 세 개 층으로 나뉜다. 이날 나는 이 세 층을 다 걸었고, 사진도 층별로 남았다. 3월 초의…
안탈리아 · 칼레이치 요트 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