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 칼레이치 요트 항구 — 성벽 아래 항구를 세 번 각도 바꿔 내려다본 하루

튀르키예 안탈리아의 구시가 칼레이치(Kaleiçi)는 성벽이 절벽 위에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절벽 아래가 통째로 요트 항구다. 지도로 볼 땐 '항구 하나' 같지만 실제로 가보면 위(성벽 산책로) / 중간(경사로) / 아래(부두) 세 개 층으로 나뉜다. 이날 나는 이 세 층을 다 걸었고, 사진도 층별로 남았다. 3월 초의…

안탈리아 · 칼레이치 요트 항구

튀르키예 안탈리아의 구시가 칼레이치(Kaleiçi)는 성벽이 절벽 위에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절벽 아래가 통째로 요트 항구다. 지도로 볼 땐 '항구 하나' 같지만 실제로 가보면 위(성벽 산책로) / 중간(경사로) / 아래(부두) 세 개 층으로 나뉜다. 이날 나는 이 세 층을 다 걸었고, 사진도 층별로 남았다. 3월 초의 안탈리아는 낮에 햇볕은 따갑지만 바닷바람은 아직 겨울 끝자락이라, 반팔로 나갔다가 항구 방파제에서 팔짱을 끼게 됐다.

위층 — 성벽 난간에서 다리 뻗고 앉는 자리

항구를 가장 잘 보는 자리는 부두가 아니라 절벽 위 산책로다. 카페 테라스마다 인조잔디를 깔아놨고, 돌난간이 딱 다리 올려놓기 좋은 높이라 나도 결국 신발째 올려놓고 한참 앉아 있었다. 아래로는 만(灣) 안쪽에 배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고, 물색이 항구 안쪽만 유독 연한 옥색이다.

절벽 위 카페 난간에 흰 운동화를 신은 다리를 올린 1인칭 시점, 아래로 옥색 물의 칼레이치 요트 항구가 흐릿하게 보인다
난간에 다리 올리고 한 시간. 이 자세가 이 항구의 정답이다.

같은 자리에서 몸만 일으켜 찍으면 이런 그림이 된다. 왼쪽 절벽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 그 위에 붙은 주황 기와 구시가 집들, 그리고 만 안쪽의 목선들. 오른쪽 트인 바다는 지중해로 바로 열려 있어서 오후엔 역광으로 은박지처럼 반짝인다.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계단식 광장과 노란 택시들이 서 있는 곳이 항구로 내려가는 길 초입이다.

칼레이치 성벽과 구시가 기와집들, 그 아래 옥색 만에 정박한 목선들이 보이는 요트 항구 전경
성벽·구시가·항구가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각도. 오전이 순광이다.

조금 더 내려간 전망대에서는 배들이 이렇게 가깝게 보인다. 관광용 목선(투어 보트)들이 부두 안쪽에 이물부터 나란히 붙어 있고, 바깥쪽 잔교엔 흰 모터요트가 몇 대. 언덕 위로 붉은 기와 오스만식 저택들과, 오른쪽 멀리 안탈리아의 상징인 이블리 미나레(Yivli Minare, 홈이 파인 첨탑)가 삐죽 올라와 있다. 이 첨탑이 프레임에 들어오면 "아 여기가 안탈리아구나" 싶어진다.

요트 항구에 정박한 흰색 투어 보트들과 목선, 뒤로 성벽과 오스만식 저택, 멀리 이블리 미나레 첨탑이 보이는 풍경
오른쪽 끝 붉은 첨탑이 이블리 미나레. 배 지붕에 선 마네킹 선장이 은근 눈에 띈다.

위치·접근성 — 걸어 내려가면 5분, 올라오면 15분

항구는 칼레이치 구시가 서쪽 끝, 하드리아누스 문에서 골목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걸으면 나온다. 핵심은 고도차다. 지도상 거리는 짧은데 절벽 한 층을 통째로 내려가는 구조라, 내려갈 땐 5분이면 되지만 올라올 땐 계단과 경사로가 이어져 체감이 세 배다. 무릎이 안 좋거나 유모차가 있다면 항구 옆 언덕에 놓인 무료 엘리베이터/경사 엘리베이터를 찾는 게 낫다(운행 여부는 현장 확인 권장). 나는 내려갈 때 걸어가고 올라올 때 택시를 잡을까 하다가, 광장에 서 있던 노란 택시가 짧은 거리엔 잘 안 서길래 결국 걸어 올라왔다. 3월인데도 등에 땀이 났다.

아래층 — 방파제 끝 등대까지 걸어보기

부두로 내려오면 풍경의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위에서 볼 땐 장난감 같던 방파제가, 내려오면 폭이 꽤 넓은 산책로다. 야자수를 심은 넓은 프롬나드가 이어지고 그 끝에 초록 줄무늬 작은 등대가 서 있다. 등대까지 왕복하면 20분 남짓. 오른쪽으로 보이는 붉은 석회암 절벽과 그 위 흰 아파트 단지가 안탈리아 신시가 방향이고, 왼쪽 멀리 흐리게 보이는 건 토로스 산맥 자락이다. 겨울 끝에는 저 산에 눈이 남아 있어서, 바다와 설산이 한 프레임에 잡힌다.

야자수가 늘어선 항구 산책로와 방파제, 끝에 서 있는 작은 등대, 오른쪽으로 붉은 절벽과 흰 건물들이 이어지는 해안
방파제 끝 등대까지 왕복 20분. 벤치에 앉아 시간 보내는 사람이 많다.

부두 가장자리에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이렇다. 석축이 갈라진 틈 사이로 파도가 들어오는데, 난간이 따로 없다. 나도 사진 찍겠다고 끝까지 나갔다가 젖은 돌에 밑창이 미끄러져 한 번 아찔했다. 오른쪽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바위 위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닥이 고르지 않고 파도가 순간적으로 올라오니 슬리퍼나 샌들은 비추천이다.

항구 석축 끝에 선 1인칭 발밑 시점, 갈라진 돌 틈 아래로 짙푸른 바닷물이 부딪히고 오른쪽에 사람이 바위 위에 서 있다
난간 없는 석축 끝. 젖은 돌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대신 그 위험을 감수할 만한 이유가 물색이다. 방파제 바깥쪽 얕은 구간은 바닥의 바위가 그대로 비칠 만큼 맑다. 물이끼 낀 갈색 바위, 그 위를 덮은 연둣빛 층, 조금 깊어지면서 청록으로 넘어가는 그라데이션이 눈으로도 보인다. 3월 물이라 손만 담가봤는데 시릴 정도는 아니고 딱 "아직은 아니다" 싶은 온도였다. 오른쪽 위 성벽 모서리에 혼자 앉아 낚시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한 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한 마리도 못 올렸다.

바닥 바위가 훤히 비치는 맑은 청록색 얕은 바다와, 오른쪽 위 석축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
방파제 바깥쪽. 바닥 바위가 그대로 보인다.

항구 옆 절벽과 해변 — 성수기 전의 민낯

항구 남쪽 절벽 아래로 돌아가면 작은 자갈 해변과 비치클럽들이 붙어 있다. 3월에 간 덕에 오히려 재밌는 걸 봤는데, 선베드는 흰 천으로 싸여 있고 부잔교는 아직 물 위에 반쯤 걸쳐진 채 조립 중이었다. 절벽 위 유리 난간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그 사람들이 절벽 끝에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 여름의 완성된 리조트 풍경보다 이 어수선한 준비 상태가 개인적으로는 더 기억에 남았다.

역광의 절벽 아래 작은 해변과 아직 설치 중인 부잔교, 천으로 덮인 선베드, 절벽 위 유리 전망대에 선 사람들
시즌 준비 중인 절벽 아래 해변. 부잔교가 아직 반만 놓여 있었다.

그 절벽 라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원통형 석탑 흐드를록 탑(Hıdırlık Kulesi)이 나온다. 로마 시대 것으로 알려진 탑인데, 바로 옆에 유리 바닥 데크가 새로 깔려 있어서 고대 석재와 강화유리가 나란히 붙어 있는 묘한 조합이 된다. 유리 위에 물자국이 잔뜩 남아 있어 아래가 잘 안 보이는 게 좀 아쉬웠다. 여기서 서쪽을 보면 콘얄트(Konyaaltı) 방향 붉은 절벽과 그 위 흰 아파트 띠가 끝없이 이어진다. 일몰 명당으로 유명해서 해질 무렵엔 자리 잡기 경쟁이 있다.

원통형 석조 흐드를록 탑과 그 앞에 새로 설치된 유리 바닥 전망 데크, 멀리 붉은 절벽 위로 흰 아파트가 늘어선 해안선
흐드를록 탑과 유리 데크. 유리에 물자국이 많아 발밑 감상은 반쯤 실패.

광장에서 마주친 두 가지

항구 위 광장 한복판에는 석재 두 장을 갈라 세우고 그 사이 금속판에 붉은 글씨를 새긴 기념비가 서 있다. 갈라진 틈 안쪽에 창살 뒤 인물의 부조가 들어가 있고, 바닥까지 이어진 금속판에도 시구가 빼곡하다. 옆에는 펼친 책 모양 조형물도 놓여 있다. 튀르키예어 안내만 있어서 내용은 정확히 못 읽었다 — 시인의 시비(詩碑)로 보였지만 단정하진 않겠다. 현장에서 튀르키예어 안내판을 번역 앱으로 찍어보는 걸 권한다. 다만 이 구조물 자체가, 붉은 글씨와 갈라진 틈만으로도 꽤 강한 인상을 준다.

광장에 선 흰 석재 기념비, 갈라진 틈 사이 금속판에 붉은 튀르키예어 글씨와 창살 뒤 인물 부조가 새겨져 있다
항구 위 광장의 기념비. 튀르키예어 안내만 있어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날의 마지막. 광장 옆 노점에서 카흐라만마라시 돈두르마(Kahramanmaraş Dondurması)를 파는 청년에게 걸렸다. 긴 쇠막대에 늘어붙는 아이스크림을 들어 올려 보이는 그 유명한 퍼포먼스인데, 뒤 간판에 사데(플레인)·초콜라타·프스특(피스타치오)·카이스으(살구) 맛이 그림으로 붙어 있다. 살라프(salep)와 유향(mastic)이 들어가 쫀득한 그 식감이라, 한국 아이스크림 생각하고 베어 물면 이가 안 들어간다. 나는 피스타치오로 골랐고 진하고 짭짤한 뒷맛이 좋았다. 옆에 라이스·도리토스 봉지 진열대와 "SOSİSLİ" 간판이 같이 붙어 있는 게 이 동네 노점의 실제 모습이다. 다만 가격은 미리 물어보고 시작하라. 관광지 노점은 표시가 없는 경우가 있어서 퍼포먼스가 끝난 뒤 값을 듣는 상황이 생긴다.

항구 근처 노점에서 긴 쇠막대에 늘어붙은 카흐라만마라시 돈두르마를 들어 올리는 점원, 옆에 과자 진열대와 아이스크림 쇼케이스가 있다
카흐라만마라시 돈두르마 노점. 퍼포먼스 시작 전에 가격부터 묻는 게 좋다.

다음에 간다면 이렇게

안탈리아를 '리조트 도시'로만 알고 오면 이 항구가 의외일 수 있다. 요트가 아니라 성벽이, 해변이 아니라 고도차가 이 장소의 정체다. 다리 올려놓고 앉을 난간 하나만 찾으면 반나절이 그냥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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