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축 뷜뷜산 중턱, 성모 마리아의 집(Meryem Ana Evi)에서 보낸 두 시간

튀르키예 셀축에서 에페소 유적만 보고 내려오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그날 오후를 통째로 산으로 썼다. 에페소 남쪽 뷜뷜산(Bülbül Dağı) 중턱, 구불구불한 길 끝에 성모 마리아의 집이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3월 초, 아래 셀축 시내에서는 얇은 재킷이면 충분했는데 여기서는 바람이 목덜…

셀축

튀르키예 셀축에서 에페소 유적만 보고 내려오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그날 오후를 통째로 산으로 썼다. 에페소 남쪽 뷜뷜산(Bülbül Dağı) 중턱, 구불구불한 길 끝에 성모 마리아의 집이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3월 초, 아래 셀축 시내에서는 얇은 재킷이면 충분했는데 여기서는 바람이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돌바닥은 젖어 있었고 소나무 냄새가 났다.

순례 코스 맨 끝에 있는 돌집은 생각보다 작았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소박하다. 돌과 붉은 벽돌을 섞어 쌓은 벽에 아치가 세 개, 가운데 아치가 그대로 입구가 된다. 문 옆에는 '정숙 / NO PHOTOS' 표지가 붙어 있고, 왼쪽에는 속이 다 비어버린 거대한 고목 그루터기가 화단처럼 다듬어져 있다.

돌과 붉은 벽돌로 쌓은 아치 세 개짜리 작은 건물, 가운데 아치가 입구이고 왼쪽에 속이 빈 고목 그루터기가 있는 성모 마리아의 집 외관
성모 마리아의 집 정면. 입구 문에 '정숙·촬영 금지' 표지가 붙어 있다.

'생가터'인 줄 알고 갔다가 안내판 앞에서 멈춰 섰다

솔직히 나도 여기를 '성모 마리아 생가터'로 알고 올라갔다. 한국 여행 정보에 그렇게 적힌 걸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구 쪽에 세워진 한국어 안내판 첫 줄이 이렇게 시작한다. "이곳은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 생애의 마지막 해를 보내셨던 곳이다." 태어난 곳이 아니라 마지막을 보낸 곳이라는 것이다. 이 한 줄 때문에 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안내판에는 근거도 함께 적혀 있다.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서 예수가 요한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맡겼고, 그래서 요한이 마리아와 함께 에페소로 왔다는 것. 1878년 독일 수녀 캐더린 에메리히가 꿈에서 본 내용을 『성모 마리아의 생애』로 펴냈는데, 1891년 나자렛 신부가 조직한 탐사반이 그 책의 묘사와 정확히 일치하는 집터를 찾아냈다는 이야기. 그리고 1951년 교황 요한 23세가 이곳을 성지로 공식 선포했다는 것까지. 한국어로 이만큼 자세히 적어둔 안내판을 튀르키예에서 만난 건 처음이라 사진으로 남겨 왔다.

'성모 마리아의 집' 이라는 제목의 한국어 안내판이 나무들 사이에 세워져 있고 뒤로 관람객들이 지나가는 모습
한국어 안내판. 요한복음 19:26-27, 1878년 에메리히 수녀, 1891년 탐사, 1951년 교황 선포까지 적혀 있다.

올리브나무 아래 청동 성모상 — 여기가 진짜 시작점

매표소에서 집까지는 완만한 오르막 산책로다. 그 길 중간, 은빛 잎이 성글게 달린 늙은 올리브나무 아래 두 팔을 벌린 청동 성모상이 서 있다. 사람 키보다 크고, 오래 비를 맞아 표면이 검붉게 익었다. 받침 명판의 프랑스어는 많이 닳았는데 1867이라는 숫자만은 또렷하게 읽힌다. 집이 발견된 1891년보다 앞선 연도라 잠깐 갸웃했다가, 상을 옮겨온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 이 부분은 현장 설명이 따로 없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

단체 관광객은 대부분 이 상 앞에서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데, 나는 여기가 이 성지에서 가장 조용한 자리였다고 적어둔다. 올리브밭 쪽으로 몇 걸음만 비켜서면 사람 소리가 뚝 끊긴다.

은빛 잎의 늙은 올리브나무 아래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검붉은 청동 성모상, 받침 명판에 1867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받침 명판에 1867. 오후 흐린 빛에 청동이 자줏빛으로 보였다.

집 안은 촬영 금지, 대신 밖에서 본 유리 안의 구유

돌집 내부는 촬영 금지다. 안은 어둡고, 향과 촛농 냄새가 섞여 있다. 앞방을 지나 안쪽 제단까지 좁은 통로 하나로 이어지는데, 사람이 한 줄로만 지나갈 수 있어서 뒤에서 밀린다. 실제로 머무는 시간은 1~2분이 전부다. 이 짧음에 실망하는 사람을 여럿 봤는데, 나는 오히려 여기가 이 성지에서 제일 정직한 부분이라고 느꼈다. 남길 게 별로 없는 작은 돌방이다.

대신 밖에 유리로 막아둔 실물 크기 구유 장면이 있다. 무릎 꿇은 마리아, 조개 모양 받침 위에 누운 아기 예수, 등불을 든 요셉. 유리에 반사가 심해서 제대로 찍기 어렵다. 그런데 눈길이 간 건 인물이 아니라 바닥이었다. 짚 위로 리라 지폐와 동전이 수북이 뿌려져 있고, 그 사이에 미국 달러도 섞여 있다. 관리하는 사람이 매일 걷어낼 텐데도 저 정도라는 게, 여기 다녀가는 사람 수를 짐작하게 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실물 크기 구유 장면, 무릎 꿇은 마리아와 조개 받침 위 아기 예수, 등불을 든 요셉, 바닥 짚 위에 리라 지폐와 동전이 흩어져 있다
유리 반사 때문에 흐리게 나왔다. 짚 위에 리라 지폐와 동전, 달러가 섞여 있다.

마셔도 되는 샘물 — 세 개의 아치, 세 줄의 대기

집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돌벽에 파인 아치 세 개짜리 샘이 나온다. 대리석 표지판에 튀르키예어로 "MERYEMANA KAYNAK SUYU / İÇİLİR", 옆 판에는 Spring – Fuente – Source – Quelle 라고 4개 국어로 적혀 있다. 'İÇİLİR'은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아치 안으로 허리를 굽혀 물을 받는다.

내가 갔을 때 왼쪽 첫 번째 아치는 물이 나오지 않았고, 가운데와 오른쪽 두 곳만 졸졸 흐르고 있었다. 손을 대보니 손가락이 아릴 만큼 찼다. 한 모금 마셨는데 특별한 맛은 없다 — 미네랄 느낌 없이 그냥 아주 차가운 산속 물맛이다. 빈 물병을 가져가면 채워갈 수 있는데, 여기엔 아무런 안내도 없으니 위생이 걱정되면 무리하지 않는 게 낫다. 물 받는 줄이 짧게라도 늘 서 있으니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

돌벽에 파인 아치 세 개짜리 샘터에서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물을 받고 있고, MERYEMANA KAYNAK SUYU İÇİLİR 라고 적힌 대리석 표지판이 걸려 있다
가운데·오른쪽 아치에서만 물이 나왔다. 오른쪽 판에 Spring–Fuente–Source–Quelle.

소원의 벽 — 사진으로 본 것과 실제가 가장 달랐던 곳

샘 옆으로 이어진 통로 전체가 소원의 벽이다. 사진에서 하얀 리본이 예쁘게 묶인 모습만 봐서 그런 걸 기대했는데, 실제로 서 보면 인상이 전혀 다르다. 벽을 덮은 건 리본이라기보다 휴지, 물티슈, 영수증, 찢은 노트, 종이 냅킨이다. 사람들이 손에 잡히는 아무 종이에나 소원을 적어 철망에 매듭지어 놓은 것이다. 몇 년치가 겹겹이 쌓여 회색빛으로 변했고, 곰팡이가 핀 것도 있다. 냄새는 없었지만 손으로 만지고 싶지는 않았다.

검은 소매 옷을 입은 사람이 손가락으로 소원의 벽에 빼곡히 묶인 하얀 종이 매듭들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
가까이 대보면 손보다 매듭 하나가 더 작다. 벽 전체가 이걸로 덮여 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여기가 왜 흥미로운지 알게 된다. 매듭 사이에 노란 리본, 빨강·흰색 꼰 실, 파란 유리 나자르 본주우(악마의 눈 부적), 묵주, 심지어 초록색 잎사귀 한 장까지 끼어 있다. 성지인데 튀르키예 민속 부적이 아무렇지 않게 함께 묶여 있는 게 이 벽의 실제 모습이다.

소원의 벽 클로즈업, 하얀 휴지와 종이 매듭들 사이에 노란 리본, 빨강흰색 꼰 실, 파란 나자르 본주우 부적, 초록 잎사귀가 섞여 있다
종이·휴지·리본·나자르 본주우가 뒤섞여 있다. 오래된 것은 회색으로 삭았다.

벽이 끝나는 지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녹슨 철제 파이프가 돌담 속으로 사라지는데, 매듭이 그 마지막 몇 센티미터까지 꽉 차 있다. 더 이상 묶을 자리가 없으니 사람들이 파이프 끝의 콘크리트까지 종이를 끼워 넣었다. 그 옆에 하늘색 리본 하나가 유난히 새것이라 눈에 띄었고, 지퍼백에 넣어 매달아 둔 사진 한 장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 정도로 오래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소원의 벽이 끝나는 지점, 녹슨 철제 파이프와 초록색 철제 틀에 종이 매듭이 빼곡하고 새 하늘색 리본과 지퍼백에 넣은 사진이 매달려 있다
벽의 끝. 파이프 끝까지 매듭이 차 있고, 지퍼백에 넣은 사진도 보인다.

나도 종이를 하나 썼다. 매표소 근처에서 파는 소원 종이를 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가방에 있던 A5 종이를 반으로 접어 볼펜으로 적었다. 가족 모두의 건강과 안녕, 아버지의 간암이 빨리 치유되어 예전의 건강했던 모습을 되찾으시길, 그리고 아내와 나린이와 다시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길. 마지막에 '아멘'을 쓰고 나니 손이 떨렸다. 바람 부는 돌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사진 한 장만 찍은 다음 벽에 묶었다. 이 사진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들여다보게 된 한 장이다.

거친 돌 위에 올려둔 흰 종이에 파란 볼펜으로 쓴 한국어 기도문, 가족의 건강과 아버지의 치유를 비는 내용이 적혀 있고 손가락 두 개가 종이를 누르고 있다
묶기 직전에 찍은 내 기도 종이. 바람이 세서 손으로 눌러야 했다.

야외 미사터와, 붉은 옷을 입은 순례단

집 아래쪽에는 흰 벤치가 스무 줄쯤 놓인 야외 미사 공간이 있다. 지붕만 얹은 개방형 제단이고, 내가 갔을 때는 제대와 기둥이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 미사 없는 시간대였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벤치는 절반 넘게 차 있었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순례객들이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 지나가는 소리와 누군가 묵주 굴리는 소리만 들렸다.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지붕만 얹은 야외 제단과 흰 천으로 덮인 제대, 그 앞 흰 벤치에 앉아 있는 순례객들
야외 미사터. 제대는 흰 천으로 덮여 있었지만 벤치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무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진홍색 벨벳 코트에 모피를 덧댄 전통 복장, 깃털을 꽂은 모피 모자, 굽 있는 긴 부츠 차림의 남녀 대여섯 명. 동유럽 어느 나라의 전통 예복 같았는데 직접 물어보지 않아서 어디 사람들인지는 모른다. 그들도 그냥 벤치에 앉아 쉬고, 기념품 종이가방을 든 채 서서 일행을 기다렸다. 옆 난간에는 빨간 SİGARA İÇİLMEZ(금연) 표지가 붙어 있다. 성지에서 전통 예복과 금연 표지와 스마트폰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게 지금의 이곳이다.

돌바닥 광장에서 진홍색 벨벳에 모피를 덧댄 전통 예복과 깃털 모자 차림의 사람들이 서 있거나 벤치에 앉아 있고, 옆 난간에 빨간 SIGARA ICILMEZ 금연 표지가 붙어 있다
전통 예복 차림의 순례단. 오른쪽 난간에 'SİGARA İÇİLMEZ'(금연).

쿠란 속 마리아 구절이 걸려 있다는 것

이 성지에서 처음 온 사람이 가장 놓치기 쉬운 게 이거다. 통로 한쪽에 검은 철제 아치를 얹은 유리 진열대가 있고, 그 아치 꼭대기에 손바닥만 한 청동 성모상이 하나 올려져 있다.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나도 처음엔 장식인 줄 알았다.

검은 철제 아치 아래, 화강암 받침 위에 놓인 손바닥만 한 청동 성모상 클로즈업, 배경은 흐린 하늘과 나뭇가지
아치 위의 작은 청동 성모상. 진짜 볼거리는 이 아래에 있다.

아래 진열대를 들여다보면 집 내부 제단 사진 액자가 있고, 그 밑에 황동판이 붙어 있다. 제목이 "Hz. MERYEM HAKKINDA KURAN'DAN AYETLER / EXTRACTS FROM THE KORAN ON THE VIRGIN MARY" — 쿠란에 나오는 마리아 관련 구절을, 튀르키예어·프랑스어·영어·독일어 네 언어로 나란히 새겨 놓았다. 바카라 2장 87·253절, 알 이므란 3장 42·43·45절, 엠비야 21장 91절. 가톨릭 성지 한복판에 쿠란 구절판이 서 있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도 마리아(메르옘)를 성인으로 존경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성지 운영 안에서 이렇게 명시적으로 표시되는 건 여기서 처음 봤다. 이 판 하나 읽는 데 5분이면 되는데, 이 5분이 이날 방문에서 가장 남는 부분이었다.

검은 아치 아래 진열대에 걸린 액자, 위쪽에 촛불이 켜진 제단 사진, 아래쪽 황동판에 쿠란 속 마리아 구절이 튀르키예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네 언어로 새겨져 있다
쿠란 속 마리아 구절판. 4개 언어가 세로로 나란히 새겨져 있다.

위치·동선, 그리고 내가 미리 알았으면 했던 것들

위치는 셀축 시내에서 남서쪽 산길로 올라가는 뷜뷜산 중턱이다. 에페소 유적 남문(위쪽 문)에서 이어지는 산길로 차가 올라가는데,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셀축 오토가르(버스터미널) 주변에서 택시나 반나절 투어를 잡는 게 현실적이다. 나는 에페소 유적을 위쪽 문으로 들어가 아래로 내려오는 코스를 짜면서, 유적 전에 여기부터 들렀다. 이 순서를 추천한다 — 유적에서 몇 시간 걷고 나면 여기 올라올 체력이 남지 않는다. 대중교통으로 직접 닿는 노선은 확인하지 못했으니 현지에서 다시 확인하시길.

내려오는 길에는 아치 네 개가 뚫린 낮은 돌벽과, 그 앞에 발굴해 놓은 웅덩이 모양 유구가 있다. 안내판이 작게 하나 서 있는데 멀어서 읽지 못했고, 사람들이 거의 들르지 않아 나 혼자 서 있었다. 뒤로는 은빛 올리브밭이 산비탈을 덮고 있다. 성지 구역에서 유일하게 '유적'처럼 보이는 자리라 사진 한 장은 남길 만하다.

아치 네 개가 뚫린 낮은 돌벽 앞에 발굴된 웅덩이 모양 석조 유구가 드러나 있고, 뒤편 비탈은 은빛 올리브나무로 덮여 있다
내려오는 길의 아치 벽과 발굴 유구. 안내판은 있으나 멀어서 읽지 못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산을 내려오면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여기가 정말 그분이 마지막을 보낸 집인지 아닌지는 나로선 알 방법이 없다. 다만 벽에 매달린 수천 장의 종이는 진짜다. 그 안에 아버지 이름을 적은 내 종이 한 장이 지금도 어딘가에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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