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칼레 석회붕만 보고 내려오지 마라 — 히에라폴리스 고고학 박물관, 로마 목욕탕 안에 통째로 들어앉은 전시장
파묵칼레(Pamukkale)에서 하얀 석회붕을 맨발로 걷고 나면 대부분 그대로 언덕을 내려간다. 나도 첫 방문 때 그랬다. 두 번째로 튀르키예 데니즐리(Denizli) 쪽에 왔을 때, 유적 위쪽 안내판에 계속 눈에 걸리던 히에라폴리스 고고학 박물관(Hierapolis Arkeoloji Müzesi)을 그제서야 들어가 봤고…
파묵칼레 · 히에라폴리스 고고학 박물관
파묵칼레(Pamukkale)에서 하얀 석회붕을 맨발로 걷고 나면 대부분 그대로 언덕을 내려간다. 나도 첫 방문 때 그랬다. 두 번째로 튀르키예 데니즐리(Denizli) 쪽에 왔을 때, 유적 위쪽 안내판에 계속 눈에 걸리던 히에라폴리스 고고학 박물관(Hierapolis Arkeoloji Müzesi)을 그제서야 들어가 봤고, 솔직히 순서를 바꿨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본 유적 잔해들이 무슨 조각의 파편이었는지가 여기 들어와서야 앞뒤가 맞았다.
간판이 이게 전부다. 관광지 입구처럼 요란하지 않아서, 앞을 지나면서도 "여기 뭐지" 하고 못 알아채는 사람이 많다. 내가 갔던 날도 흐렸는데, 대문 옆 철제 가로등과 붉은 기와가 오히려 눈에 띄었다. 입장료와 개관 시간은 시즌마다 바뀌고 유적 통합권 정책도 손을 자주 대는 편이라, 여기 숫자를 적어두는 건 의미가 없다 — 현장 매표소나 당일 안내판에서 확인하는 게 확실하다.
전시장 자체가 유물이다 — 로마 목욕탕 볼트 천장 아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물보다 공간에 먼저 압도된다. 이 박물관은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히에라폴리스의 로마 시대 목욕탕 건물을 그대로 쓴다. 머리 위로 거대한 석조 배럴 볼트가 통째로 남아 있고, 그 아래 조명 레일이 곡선으로 걸려 있다. 돌 표면이 시커멓게 그을린 것도, 노랗게 회칠이 남은 것도 그대로 두었다.
겨울 흐린 날에 갔더니 실내가 확실히 서늘했다. 돌 덩어리가 열을 빨아들여서 밖보다 체감이 낮다. 파묵칼레 온천에서 젖은 옷 그대로 들어오면 꽤 춥다 — 겉옷 하나는 챙기는 게 낫다. 대신 이 두꺼운 석벽 덕분에 여름 한낮에는 반대로 이만한 피난처가 없다. 조명은 유물에 스포트라이트를 쏘는 방식이라 대비가 세다. 휴대폰으로 찍으면 그림자가 뭉개지기 쉬워서, 노출을 한 스텝 내리고 찍는 편이 결과가 낫더라.
석관 홀 — 여기가 이 박물관의 핵심이다
이 박물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석관 박물관"이다. 히에라폴리스는 고대에 온천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중 상당수가 여기서 죽어 도시 바깥에 거대한 네크로폴리스를 남겼다. 그 무덤에서 나온 것들이 이 홀에 모여 있다.
설명판을 읽어보면 이건 히에라폴리스의 프론티누스 거리, 비잔티움 문 근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요람 지붕 형태의 뚜껑, 높은 기단, 사면을 두른 식물 문양 — 도시 행정관 급 인물의 무덤이라는 설명이다. 사진에서도 보이지만 실물 앞에 서면 사람 키를 훌쩍 넘는다. 이걸 무덤으로 세웠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이 석관 앞에서 제일 오래 서 있었다. 뚜껑 위 두 사람은 머리 부분이 깨져 나갔는데, 옷 주름과 팔에 얹은 손, 한 사람이 쥔 포도송이는 또렷하게 남았다. 죽은 사람을 잠든 모습이 아니라 연회에 기대 누운 모습으로 새기는 방식이다. 몸통 부조 속 인물들은 손짓이 제각각이라, 로프 안쪽으로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옆으로 돌아가며 보면 한 명씩 표정이 다르다.
이 묘비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흥미로웠다. 층마다 그리스어 명문이 한 줄씩 끼어 있는데, 한 가족의 이름을 세대별로 적어 내려간 형태로 보인다. 위쪽 기마 인물들만 크게 새기고 아래로 갈수록 인물이 작고 빽빽해진다. 명문 판독은 내 능력 밖이라 여기서 그리스어 내용을 아는 척 옮기지는 않겠다 — 다만 이름을 돌에 남기려던 집착만큼은 글자를 못 읽어도 전해진다.
극장에서 내려온 신들 —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홀 안쪽으로 들어가면 히에라폴리스 극장(Tiyatro) 무대 건물을 장식했던 조각들이 모여 있다. 이 구역은 밖의 유적과 짝을 맞춰 보면 훨씬 재미있다. 언덕 위 극장에 올라가 보면 무대 벽이 뻥 뚫려 있는데, 거기 박혀 있던 것들이 여기 내려와 있는 셈이다.
오른쪽 끝의 말들이 뒤엉켜 달려나가는 부분이 특히 살아 있다. 돌이 깨져서 형체가 반쯤 뭉개졌는데, 오히려 그 깨진 결이 속도처럼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 — 히에라폴리스에는 플루토니움(Ploutonion), 즉 지하 세계 하데스에게 바쳐진 유황 가스 동굴이 실제로 있다. 그 도시가 지하의 신 이야기를 극장 벽에 새겼다는 게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상은 로프로 사방을 둘러쳐 놨고 얼굴은 심하게 상했다. 그런데 무릎에서 흘러내리는 옷 주름은 거의 손상이 없어서, 얼굴이 없는데도 앉은 자세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진다. 오른쪽 받침 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얹혀 있는 것도 놓치지 말 것 — 아래에서 보면 잘 안 보이고, 조금 물러서서 눈높이를 맞춰야 보인다.
머리도 팔도 없는데 복근과 갈비뼈 표현만 남아서, 오히려 근육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두 갈래 꼬리가 좌우로 크게 벌어져 받침대를 꽉 채우는 구도라, 사진을 찍으려면 뒤로 꽤 물러나야 한다. 나는 처음에 가까이서 찍다가 꼬리가 잘려서 다시 찍었다.
이름표가 붙은 사람들 — 여신, 여인, 그리고 보건 담당관
극장 조각 구역을 지나면 벽돌 바닥 통로를 따라 실물 크기 인물상들이 늘어선다. 여기서 나는 이름표를 하나하나 다 읽었는데, 그럴 가치가 있었다.
이름표가 '여인상'이라고만 되어 있는 게 오히려 오래 남았다. 옆의 레토나 아르테미스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 사람은 그냥 여자다. 조각의 질은 전혀 떨어지지 않는데도.
이 조각상이 이 박물관에서 제일 흥미로운 이름표를 달고 있다. 신도 황제도 아니고 도시의 보건 담당 관리다. 온천으로 먹고살던 도시가 그 직책을 가진 사람의 전신상을 세워줬다는 얘기다. 얼굴은 코 부분이 뭉개졌지만 머리에 쓴 관의 곱슬 장식은 알알이 살아 있다. 다만 이 조각은 통로 구석에 서 있고 바로 뒤에 배전반과 콘센트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 전시 배치가 아쉬운 대목이고, 사진 찍을 때도 그게 다 들어온다.
야외 통로와 위치 — 유적 한복판에 있다
박물관은 히에라폴리스 유적 안, 남쪽 로마 목욕탕 구역에 있다. 파묵칼레 마을 쪽 남문(South Gate)으로 들어와 석회붕을 따라 올라오면 자연스럽게 지나치게 되고, 원형극장이나 클레오파트라 온천풀과도 걸어서 이동 가능한 거리다. 개별 건물이 아니라 유적 답사 동선의 한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다. 언덕 지형이라 오르내림이 있으니 슬리퍼보다 운동화가 낫다.
실내만 보고 나오면 이걸 못 본다. 건물 옆 야외 통로에 몇 점이 그냥 놓여 있는데, 이 사자상이 그중 하나다. 갈기 한 올 한 올이 다 살아 있고, 실내 유물들 대부분이 로마 시대인 것과 달리 이건 그보다 앞선 헬레니즘 시대 물건이다. 비바람을 그대로 맞는 자리에 있어서 받침 틈으로 잡초가 올라와 있었고, 표면도 실내 유물보다 확실히 상해 있다. 그 대비가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것들
- 순서를 바꿔라. 석회붕 → 극장 → 박물관 순으로 도는 사람이 많은데, 극장을 보기 전에 박물관을 들르면 무대 벽의 빈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가 눈에 그려진다. 하데스, 트리톤, 페르세포네 부조가 전부 그 극장에서 나온 것이다.
- 체감 온도. 두꺼운 석조 건물이라 겨울엔 밖보다 서늘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온천에서 젖은 채로 들어가면 춥다.
- 소요 시간. 설명판을 하나씩 읽으며 돌면 한 시간 정도. 대충 훑으면 20분이면 끝난다. 그런데 여기는 설명판을 읽는 게 전부인 곳이라, 20분짜리로 만들면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 사진. 스포트라이트 대비가 강해 자동 노출로는 흰 대리석이 날아간다. 노출 보정을 내리고 찍는 편이 낫다.
- 확인할 것. 입장료·개관 시간·유적 통합권 포함 여부는 시즌에 따라 달라진다. 현장 확인 권장.
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다. 동선 안내가 약해서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끝나는지 헷갈리고,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 설명도 짧은 요약 수준이다. 조각 뒤로 배선과 콘센트가 그대로 드러난 자리도 여러 군데였다. 그런데도 다시 오면 또 들어갈 것 같다. 밖에서 본 하얀 언덕이 그냥 예쁜 지형이 아니라 사람들이 병을 고치러 왔다가 묻힌 도시였다는 걸, 이 서늘한 볼트 천장 아래 석관들 사이에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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