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 줌후리예트 광장에서 칼레이치로 내려가는 30분 — 아타튀르크 기마상, 이을르 미나레, 그리고 바다
튀르키예 안탈리아에 도착한 다음 날 오전, 숙소에서 걸어서 줌후리예트 광장(Cumhuriyet Meydanı)까지 갔다. 안탈리아 구시가 칼레이치(Kaleiçi)의 입구이자, 시내버스와 트램이 모여드는 교통의 매듭이다. 광장이라고 해서 어떤 정돈된 유럽식 사각형을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절벽 위의…
안탈리아 · 줌후리예트 광장
튀르키예 안탈리아에 도착한 다음 날 오전, 숙소에서 걸어서 줌후리예트 광장(Cumhuriyet Meydanı)까지 갔다. 안탈리아 구시가 칼레이치(Kaleiçi)의 입구이자, 시내버스와 트램이 모여드는 교통의 매듭이다. 광장이라고 해서 어떤 정돈된 유럽식 사각형을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절벽 위의 넓은 테라스에 가까웠다. 난간 너머가 바로 지중해다. 2월 중순 오전 10시쯤, 햇살은 쨍한데 바람이 제법 차서 얇은 패딩을 벗었다 입었다 했다.
기마상 앞에서 — 사람들이 가장 오래 서 있는 자리
광장의 중심은 청동 기마상이다. 말이 앞발을 들어올리고, 그 앞으로 인물들이 팔을 뻗은 역동적인 군상. 받침대 석재에 KASIM 1922, 그리고 아래쪽에 28 ŞUBAT 1926이라는 날짜가 새겨져 있는 걸 가까이 가서야 읽었다. 안탈리아 해방과 관련된 기념비인데, 현장에 한국어는커녕 영어 설명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궁금하면 미리 찾아보고 오는 편이 낫다.
재미있는 건 이 동상의 뒤쪽 각도다. 앞에서만 찍고 지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거대한 튀르키예 국기 게양대와 함께 프레임에 들어온다. 뒤로는 에어컨 실외기가 다닥다닥 붙은 8~9층짜리 아파트, HUKUK BÜROSU(법률사무소) 간판이 그대로 걸린 평범한 도심 건물이 배경이 된다. 관광 엽서에는 절대 안 나오는 조합인데, 나는 이쪽이 이 도시의 실제 얼굴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바람이 있는 날 오후에 가면 깃발이 제대로 펴진다.
광장 바닥에서 미나레가 보이는 각도
광장 바닥은 넓은 회색 대리석 타일이라 오전 햇빛에 반사가 심하다.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계속 쓰고 다녔는데, 대신 사진은 잘 나온다. 사람들이 흩어져 서 있고 그 너머 오른쪽으로 붉은 벽돌 탑 하나가 삐죽 올라와 있다 — 이을르 미나레(Yivli Minare), 안탈리아의 상징이다. 광장에서 곧장 보인다는 걸 여기 서서야 알았다. 유리 난간 쪽은 절벽 아래로 트여 있어서, 광장 자체가 전망대 역할을 한다.
광장은 트램 안탈리아(Antray) 및 노스탤지어 트램이 지나는 구간과 맞닿아 있고, 칼레이치 골목 입구까지는 광장 끝에서 도보로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다만 광장 진입로가 몇 갈래로 갈라져 있어 처음 오면 방향을 잃기 쉽다. 나는 기마상을 기준으로 바다를 등지고 왼쪽으로 내려갔더니 바로 구시가 골목이었다. 아래 지도의 핀이 내가 사진을 찍은 지점이다.
난간 너머로 보이는 붉은 지붕과 지중해
광장에서 가장 오래 서 있었던 곳은 동상도 국기도 아니고 절벽 난간이었다. 아래로 칼레이치의 붉은 기와지붕이 층층이 겹쳐 내려가고, 그 끝에 흰 회벽에 검은 창틀을 두른 오스만식 목조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그 너머는 그냥 지중해다. 수평선과 하늘이 거의 같은 색이라 경계가 흐릿했다.
사진 아래쪽에 자갈을 박아 무늬를 낸 마당과 선베드가 보이는데, 저건 칼레이치 안에 흩어져 있는 부티크 호텔들의 테라스다. 2월이라 이끼가 끼고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여름 성수기에 저 자리가 어떤 풍경일지는 상상이 갔지만, 나는 이 비어 있는 겨울 쪽이 좋았다. 대신 겨울 안탈리아는 비가 자주 온다. 내가 간 날도 전날 밤에 비가 와서 골목 돌바닥이 미끄러웠다.
골목으로 내려가면 — 이을르 미나레 주변
광장에서 구시가 쪽으로 몇 걸음 내려가면 분위기가 급격히 바뀐다. 대리석 광장이 끝나고 돌을 깐 좁은 길이 시작되는데, 오른쪽은 거친 석회암 벽에 쇠창살 창이 박힌 오래된 건물, 왼쪽은 유리와 검은 금속으로 새로 지은 카페 테라스다. 수백 년 된 벽과 어제 지은 것 같은 유리 난간이 1.5m 간격으로 마주 보고 있다. 그 사이로 스쿠터 한 대가 세워져 있고, 벽 아래엔 화분과 잘려나간 석재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여기가 안탈리아 구시가의 실제 질감이다 — 정비된 관광지가 아니라, 계속 손보는 중인 동네.
조금 더 들어가면 다른 모스크의 미나레가 나온다. 이을르 미나레의 붉은 벽돌과 달리 이쪽은 석회암 원통에 회색 원뿔 지붕이고, 발코니 아래를 벌집처럼 깎은 무카르나스 장식이 햇빛을 받아 그림자를 만든다. 그 앞에 무화과나무처럼 보이는 나무 두 그루가 잎을 막 내고 있었다. 아래쪽에 학생 무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관광객이 아니라 그냥 이 동네 사람들의 통행로다.
이을르 미나레 · 시계탑 · 돔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지점
광장에서 칼레이치 방향으로 내려가다 뒤를 돌아보면, 딱 한 지점에서 세 개의 랜드마크가 겹쳐 보인다. 오른쪽에 붉은 벽돌의 이을르 미나레(세로 홈이 파여 있어서 '홈이 있는 미나레'라는 뜻), 가운데에 회색 돔과 가느다란 흰 미나레, 왼쪽 멀리 돔 지붕을 얹은 안탈리아 시계탑(Saat Kulesi). 시계 문자판까지 육안으로 보였다. 앞쪽에는 목조 카페의 처마와 사이프러스 한 그루가 걸린다.
이 각도는 광장 정중앙에서는 안 나온다. 난간을 따라 구시가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다 보면 겹쳐지는 순간이 있다. 오후 늦게 가면 미나레가 역광으로 실루엣이 되니, 벽돌 색을 살리고 싶으면 오전이 낫다.
실제로 가보고 느낀 것
- 여기는 목적지가 아니라 관문이다. 광장 자체에 30분 이상 머물 거리는 없다. 동상 보고, 난간에서 바다 보고, 칼레이치로 내려가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 바닥 반사가 심하다. 대리석 광장이라 맑은 날 정오엔 눈이 아플 정도다. 선글라스를 챙기는 편이 낫다.
- 겨울(1~2월)에도 갈 만하다. 사람이 적고 사진에 인파가 안 걸린다. 대신 비가 잦고 나무가 앙상하다. 나는 이게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시야가 트여 좋았다.
- 설명판이 거의 없다. 기마상도, 주변 모스크도 현장에서 배경 정보를 얻기 어렵다. 궁금한 건 미리 찾아두자.
- 가격·영업시간은 적지 않겠다. 광장 주변 카페 물가는 계절과 환율에 따라 널을 뛰고, 내가 본 값이 지금도 맞다고 장담할 수 없다. 현장 확인을 권한다.
아쉬웠던 점을 하나 꼽자면, 광장에 그늘이 거의 없다는 것. 겨울엔 상관없었지만 여름 한낮이라면 여기 서서 사진 찍을 엄두가 안 날 것 같다. 안탈리아를 여름에 온다면 이 광장은 해 지기 한 시간 전쯤, 바다 쪽 난간에 서서 노을을 기다리는 용도로 쓰는 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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