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Desa ParkCity, 해질 무렵 호숫가 산책로에서 개 스무 마리를 세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빠져나오면 Desa ParkCity라는 동네가 나온다. KL 시내가 아니라 케포옹(Kepong) 쪽에 붙어 있는 계획 주거단지인데, 그 한가운데 Central Park라 불리는 호수 공원이 있다. 이번에도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이 시간대를 고른 건 이유가 있다 — 낮…

쿠알라룸푸르 · Desa Parkcity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빠져나오면 Desa ParkCity라는 동네가 나온다. KL 시내가 아니라 케포옹(Kepong) 쪽에 붙어 있는 계획 주거단지인데, 그 한가운데 Central Park라 불리는 호수 공원이 있다. 이번에도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이 시간대를 고른 건 이유가 있다 — 낮 두세 시에 여기 오면 그늘이 얇아서 10분도 못 걷는다. 적도 근처 KL의 오후 햇볕은 나무 사이로도 그대로 내리꽂힌다.

이 산책로에는 개가 사람만큼 많다

Desa ParkCity를 다른 KL 공원과 갈라놓는 건 딱 하나다. 개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권이라 공공장소에서 개를 보기가 쉽지 않고, KLCC 공원이나 Perdana 식물원 같은 데는 반려견 출입이 안 된다. 그런데 여기는 사설 개발사가 관리하는 공원이라 규칙이 다르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호숫가 길이 개 반, 사람 반이 된다.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장면이 이거였다. 앞서 걷는 남자는 리드줄을 길게 늘여 잡고, 주황색 옷을 입힌 포메라니안이 잔디 경계에서 냄새를 맡느라 멈춰 서 있었다. 그 옆으로는 러닝 복장의 커플이 형광 신발을 신고 성큼성큼 지나가고, 유모차와 시추 한 마리가 같은 폭의 길을 나눠 쓰고 있었다. 이 길은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면 딱 맞는 폭인데, 개까지 끼면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리듬이 생긴다. 아무도 짜증 내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호숫가 콘크리트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과 주황색 옷을 입은 포메라니안, 앞쪽에 리드줄을 잡은 남성과 뒤로 유모차·러너들이 보인다
오후 6시대 호숫가 길. 왼쪽 잔디에 주황 옷 입은 포메라니안, 길 가운데엔 시추 한 마리. 물가에는 빨간 구명튜브가 걸려 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흰 티셔츠에 크로스백을 멘 남자가 셰퍼드 믹스로 보이는 중형견을 데리고 반대편에서 걸어왔다. 슬리퍼 차림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이 공원을 어떻게 쓰는지가 그 슬리퍼에 다 들어 있다 — 여행 온 게 아니라 저녁 먹기 전에 개 데리고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길 왼쪽으로 늘어선 흰 돌기둥(볼라드)이 호수와 보행로를 나누는데, 개가 물 쪽으로 못 가게 막는 역할도 겸한다.

흰색 볼라드가 줄지어 선 산책로에서 크로스백을 멘 남성이 갈색 중형견을 데리고 걸어오는 모습, 뒤로 유모차와 다른 산책객들
슬리퍼에 반바지, 크로스백. 관광객이 아니라 동네 주민의 저녁 루틴이다.

물 냄새와 억센 수생식물, 그리고 콘도 스카이라인

솔직히 말하면 이 호수는 물이 맑지 않다. 사진에 찍힌 수면 색이 실제로도 그렇다 — 탁한 초록빛에, 바람이 잦아든 시간에는 물비린내가 살짝 올라온다. 냄새가 심한 정도는 아니고, 한국의 도심 저수지 근처에서 나는 딱 그 정도다. 대신 물가를 따라 억센 잎의 수생식물을 빽빽하게 심어놔서 시각적으로는 정돈돼 보인다. 이 식재가 사람 허리 높이까지 올라와서, 걷다 보면 오른쪽은 잎사귀 벽이고 왼쪽 너머로 물이 비치는 구조가 된다.

그리고 이 공원의 성격을 결정짓는 게 배경의 고층 콘도다. 호수 건너편으로 아이보리색 초고층 한 동이 통째로 서 있는데, 저녁 햇빛을 받으면 건물 서쪽 면이 살구색으로 물든다. 자연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보다는, 잘 만들어진 도시 공원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정확하다. 그걸 기대하지 않고 오면 실망할 수 있다.

호수 건너편에 solitary하게 솟은 아이보리색 초고층 콘도와, 앞쪽에 억센 잎의 수생식물과 흰 볼라드가 늘어선 산책로
해질녘 빛을 받은 콘도 한 동. 앞쪽 억센 잎 식재가 물가와 길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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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와 가는 법 — 여기가 은근히 관문이다

Desa ParkCity는 KL 시내에서 차로 20~30분 거리인데, 대중교통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MRT/LRT 역이 단지 안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Grab을 부르는 게 현실적인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시내 쪽에서 Grab으로 들어왔고, 문제는 돌아갈 때였다 — 저녁 7시 넘어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시간대에는 배차가 잘 안 잡히고 요금도 올라간다. 이 시간에 여길 온다면 나갈 때 여유를 잡아두는 게 낫다. 정확한 요금은 시간대·수요에 따라 크게 달라지니 앱에서 직접 확인하길 권한다.

공원 자체는 입장료가 없고, 게이트도 따로 없다. 상가 쪽(The Waterfront) 지하 주차장에 대고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해 떨어지면 상가 쪽 불이 켜진다

호수를 반 바퀴쯤 돌면 건너편 상가 라인이 보인다. 어스름해질 무렵 그쪽에 하나씩 불이 들어오는데, 파란 네온의 the SOCIAL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고, 그 왼쪽으로 PARIS BAGUETTE 매장이 통유리 안쪽에서 노랗게 빛난다. 한국 브랜드가 KL 외곽 주거단지 호숫가에 앉아 있는 게 좀 낯설면서도, 이 동네가 어떤 층을 겨냥한 곳인지 단번에 알려준다.

이 시간대 길에는 흰 비숑, 작은 말티즈, 아이 손을 잡은 부모가 뒤섞여 걷는다. 하늘이 살구색에서 회보라로 넘어가는 20~30분이 여기서 가장 좋은 구간이고, 사진도 이때가 제일 잘 나온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면 가로등만 남는데, 조명이 은은한 편이라 어두운 구간이 꽤 생긴다.

해질녘 산책로를 걸어오는 사람들과 흰 비숑, 호수 건너편에 the SOCIAL 파란 네온 간판과 PARIS BAGUETTE 매장 불빛, 뒤로 고층 콘도 실루엣
건너편 상가에 불이 들어오는 시각. 파란 네온이 the SOCIAL, 그 왼쪽 노란 불빛이 PARIS BAGUETTE.

호수는 하나가 아니다 — 잔디 언덕에서 본 풍경

산책로만 따라 돌면 놓치는 게 있다. 길에서 벗어나 잔디 언덕으로 올라가면 수면이 훨씬 넓게 열린다. 여기서 보면 물길이 중간중간 작은 섬과 수초 무더기로 나뉘어 있고, 아까 걸었던 볼라드 산책로가 건너편에 하얀 점선처럼 보인다. 왼쪽 언덕 위로는 주차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뒤로 초록색 OCP 로고가 붙은 콘도 두 동이 솟아 있다.

잔디 언덕에서 내려다본 호수 전경, 수초 섬과 건너편 흰 볼라드 산책로, 언덕 위 주차된 차량들과 초록색 OCP 로고가 붙은 콘도 두 동
언덕에서 본 호수. 건너편 하얀 점선이 방금 걸어온 볼라드 산책로다. 위쪽 콘도에 OCP 로고가 보인다.

더 안쪽으로 돌아 나오면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열리는 자리가 있다. 여기서는 콘도 대여섯 동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고, 바람이 멎으면 수면에 통째로 반사된다. 이날은 반사가 거의 거울 수준이었다. 물가 잔디에는 한 커플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고, 그 옆 표지판에는 수영·낚시 금지 픽토그램이 붙어 있었다 — 호수에 들어갈 생각은 접는 게 좋다. 건너편 산책로에는 이미 노란 조명이 줄줄이 켜져 물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해질녘 호수에 여러 동의 고층 콘도가 거울처럼 반사된 풍경, 잔디밭 바위에 앉은 커플과 수영·낚시 금지 표지판, 건너편에 켜진 노란 조명
바람이 멎은 순간의 반사. 오른쪽 표지판은 수영·낚시 금지 안내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 — 이 동네의 정체

산책을 마치고 상가 쪽으로 걸어 나오면서 고개를 들었다. 발코니가 층층이 튀어나온 고층 콘도 두 동이 바로 머리 위에 서 있었다. 격자 패턴이 반복되는 파사드에 옥상 구조물까지, 완공된 지 얼마 안 된 티가 났다.

이걸 보고 나면 이 공원의 성격이 이해된다. 여기는 관광지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콘도 입주민을 위해 설계된 마당이다. 그래서 화장실이 깨끗하고 길에 쓰레기가 없고 개를 데려와도 눈치를 안 준다. 반대로 말하면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 — 기념품, 안내소, 관광객용 카페 — 은 없다. 그게 아쉬운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두 동의 고층 콘도, 층층이 튀어나온 발코니와 격자 패턴 파사드, 맑은 파란 하늘
공원을 둘러싼 콘도를 올려다본 모습. 이 공원은 이 사람들의 마당이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들

KL을 짧게 들르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올 이유는 솔직히 크지 않다. 하지만 KL에 며칠 이상 머무는 사람, 특히 도심의 매연과 클락션 소리에 지친 사람이라면 저녁 한 번은 값어치를 한다. 그리고 만약 개를 데리고 KL에 살고 있다면 — 여기가 답이다.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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