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몬키아라 Seng Kee Chicken Rice(成記雞飯) — 기름밥까지 시켜야 완성되는 주말 점심
몬키아라 솔라리스 쪽에 볼일이 있는 주말이면 거의 자동으로 발길이 향하는 집이 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치킨라이스 간판이야 골목마다 걸려 있지만, 나는 이 집 成記(성기, Seng Kee)를 몇 년째 반복해서 간다. 건물 외벽에 붙은 커다란 간판에 'SINCE 1991', 그 아래 '新山老字号'라고 적혀 있다. 신산(新山)…
쿠알라룸푸르 · Seng Kee Chicken Rice
몬키아라 솔라리스 쪽에 볼일이 있는 주말이면 거의 자동으로 발길이 향하는 집이 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치킨라이스 간판이야 골목마다 걸려 있지만, 나는 이 집 成記(성기, Seng Kee)를 몇 년째 반복해서 간다. 건물 외벽에 붙은 커다란 간판에 'SINCE 1991', 그 아래 '新山老字号'라고 적혀 있다. 신산(新山)은 조호바루의 중국식 지명이다. 조호바루에서 시작한 노포가 KL로 올라온 셈인데, 말레이시아를 여행한다면 치킨라이스(Chicken Rice)와 완탄미(Wantan Mee) 이 두 가지는 어디서든 한 번은 먹어봐야 하고, 나라면 이 집을 권한다.

가게 앞부터 줄이 보인다
정오 조금 넘어 도착하면 처마 밑 테이블이 거의 다 찬다. 실내 에어컨 자리도 있지만 나는 바깥 자리를 좋아한다. 천장 선풍기 다섯 대가 돌고 벽걸이 선풍기가 따로 붙어 있어서, 낮 기온이 33도쯤 되는 날도 그늘에 앉으면 견딜 만하다. 계산대 앞에 포장 봉지가 산처럼 쌓여 있는 날이 많은데, 이 동네 사람들이 점심때 몰아서 사 가는 시간대다.

입구 기둥에 'TAKEAWAY ONLY'와 'DINE-IN PAYMENT' 안내가 나란히 붙어 있다. 처음 온 사람이 헷갈리기 쉬운 부분인데, 매장에서 먹든 포장하든 계산은 이 카운터에서 먼저 한다. 자리부터 잡고 앉아서 직원을 기다리면 한참 멍하니 있게 된다.

계산대 바로 옆 유리 진열장에 그날 쓸 고기가 걸려 있다. 껍질이 뽀얗게 반질거리는 삶은 닭 한 마리, 그 왼쪽에 시뻘겋게 구워진 차슈 덩어리와 소시지. 이 장면을 한 번 보고 나면 주문할 때 마음이 달라진다.

주문 화면을 보면 가격이 다 보인다
계산할 때 직원이 POS 화면을 이쪽으로 돌려서 확인시켜 준다. 화면 상단에 'Welcome to Seng Kee Chicken Rice (Solaris)'라고 뜬다. 그날 둘이 먹은 구성은 이랬다. Char Siu Wonton Noodle (Dry) RM 12.80, Steamed Chicken Rice에 Signature Oil Rice(Small) RM 11.80, 여기에 셰프컷·치킨간·간장조림 계란 같은 추가를 RM 2~3씩 얹었다. 소계 RM 29.60에 세금과 서비스차지 RM 4.74가 붙어 최종 RM 34.35. 성인 둘이 배부르게 먹고 만 원 남짓이라는 뜻이다.

닭은 왜 이 식감이 나오나
치킨라이스 접시가 먼저 나온다. 닭다리 살은 껍질째 두툼하게 썰려 나오고, 그 옆에 간장에 조린 계란 반쪽과 닭간 몇 점이 얹힌다. 고수 한 줌, 바닥에 깔린 묽은 간장. 한국의 닭백숙을 생각하고 오면 첫입에서 어긋난다. 살이 흐물흐물 풀리지 않고 탱탱하게 씹힌다.
이유는 삶는 방식에 있다. 푹 고아내는 백숙과 달리 중화권 백참계(白斬雞)는 끓는 물에 적당히만 익힌 뒤 곧바로 얼음물에 담근다. 급격히 식으면서 껍질과 살 사이 젤라틴층이 굳고, 그래서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만들어진다. 껍질 아래 투명하게 굳은 젤리 같은 층이 보이면 제대로 한 집이다. 닭간은 퍽퍽하지 않고 파테처럼 부드러워서 나는 매번 따로 추가한다.

기름밥(Oil Rice)은 선택이 아니다
여기서 처음 오는 사람이 가장 많이 놓치는 것. 치킨라이스를 시킬 때 밥을 그냥 흰밥으로 두면 절반만 먹고 가는 셈이다. 반드시 기름밥, 메뉴판에는 Signature Oil Rice로 적힌 그것을 같이 주문해야 한다. 닭을 삶고 나온 육수와 거기 뜬 닭기름으로 밥을 짓기 때문에 밥알 하나하나에 닭 풍미가 배어 있다. 사진처럼 반구 모양으로 눌러 담아 나오는데, 숟가락으로 무너뜨리면 김과 함께 기름 냄새가 확 올라온다. 반찬 없이 이것만 먹어도 한 그릇이 사라진다.
같이 나오는 종지 두 개도 그냥 두지 마시길. 붉은 칠리소스는 마늘과 라임이 들어가 새콤하고, 초록색 절인 고추(피클드 그린 칠리)는 시큼하면서 알싸하다. 기름밥은 느끼함이 쌓이는 음식이라 이 절임고추 한두 조각이 입안을 계속 리셋해 준다.

완탄미는 국물 말고 '드라이'로
치킨라이스만 먹고 일어나면 아까운 집이다. 완탄미(Wantan Mee)를 드라이로 하나 추가한다. 가는 면을 간장 소스에 비벼 내고 그 위에 차슈 세 점, 데친 청경채가 올라간다. 면은 삶은 뒤 물기를 털어내서 붙지 않고 탱글하게 끊긴다. 차슈는 가장자리가 캐러멜처럼 검게 그을렸고 비계 쪽이 달다. 처음 세 젓가락은 소스만으로 먹고, 그다음부터 절임고추를 얹어 먹으면 질리지 않는다.

드라이로 시키면 완탄이 국물에 따로 담겨 나온다. 이 국물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맑고 기름기가 거의 없고 파만 동동 떠 있다. 첫 모금은 심심한데, 면을 몇 젓가락 먹고 다시 마시면 간이 딱 맞다.

숟가락으로 건져 올린 완탄은 만두피 자락이 꼬리처럼 흐늘거리고, 속은 새우와 다진 돼지고기가 뭉쳐 통통하다. 피가 두껍지 않아 국물에 오래 두면 풀어지니 나오자마자 먼저 건져 먹는 편이 낫다.

테이블 위 스테인리스 통 사용법
자리마다 스테인리스 쟁반이 놓여 있다. 뚜껑 달린 주전자에 든 것이 간장이고, 노란 뚜껑의 초록색 병은 매운 그린칠리 소스, 유리컵에는 절인 고추가 담겨 있다. 작은 종지들은 각자 덜어 쓰라고 쌓아둔 것이다. 처음 온 사람들이 이걸 그냥 장식으로 알고 손도 안 대는 경우를 자주 봤는데, 간장 주전자를 기름밥 위에 한 바퀴 두르는 게 이 동네 방식이다. 짜지 않은 옅은 간장이라 반 숟갈 정도는 부담 없다.

위치와 가는 법
몬키아라 솔라리스 상가 1층 라인에 있다. KL 시내에서 그랩으로 20~30분, 도로 사정에 따라 편차가 크다. 주차는 가게 앞 노상 주차가 가능한데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거의 없고, 주말 낮에는 한 바퀴 돌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근처 솔라리스 건물 주차장에 대고 걸어오는 쪽을 택한다. 도보 3~4분이면 닿는다.
안쪽 에어컨 홀 유리창으로 바깥 상가 라인이 그대로 보인다. 치과, 미용실, 일식 마켓이 줄줄이 붙어 있는 전형적인 몬키아라 숍롯 풍경이다. 아쉬운 점을 하나 적자면, 이 유리창 쪽 자리는 오후 햇빛이 정면으로 들어와서 한두 시쯤엔 눈이 부시다. 그리고 점심 피크에는 합석 요청이 들어오는 날도 있으니 조용히 먹고 싶다면 오후 2시 넘어 가는 편이 낫다.

둘이서 치킨라이스에 기름밥, 드라이 완탄미, 닭간과 계란 추가까지 붙여도 RM 34.35였다. 이 가격에 이 정도 닭을 내는 집은 KL에서도 흔치 않다. 몬키아라 근처에 숙소를 잡았거나 이 동네를 지나갈 일이 있다면, 점심 한 끼를 여기에 쓰는 게 아깝지 않다. 다만 기름밥은 꼭 같이 시키시라. 그것 하나 빼먹으면 이 집의 절반만 먹고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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