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팅기 재래시장에서 보낸 오전 — 초록 망고 산더미와 RM3.50짜리 와플

말레이시아 조호르주 코타팅기(Kota Tinggi). 조호바루에서 동쪽으로 차를 몰아 들어오면 나오는, 관광 안내서에는 폭포 얘기만 나오는 동네다. 나는 이번엔 폭포 대신 시내 시장(파사르)에 붙어 있었다.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지붕만 얹은 철골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훅 끼치는 건 열대 과일 특유의 시큼달…

코타팅기

말레이시아 조호르주 코타팅기(Kota Tinggi). 조호바루에서 동쪽으로 차를 몰아 들어오면 나오는, 관광 안내서에는 폭포 얘기만 나오는 동네다. 나는 이번엔 폭포 대신 시내 시장(파사르)에 붙어 있었다.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지붕만 얹은 철골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훅 끼치는 건 열대 과일 특유의 시큼달큼한 발효 냄새와 사람 땀 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계속 도는 선풍기 바람이었다. 에어컨은 없다. 이 글은 그날 저녁 숙소에서 적어둔 메모를 옮긴 것이다.

초록 망고가 산처럼 쌓인 매대

가장 먼저 발을 붙잡은 건 망고 매대였다. 한국 마트에서 보는 노란 애플망고가 아니라, 껍질이 새파란 초록 망고가 좌판 하나를 통째로 덮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면 크기가 가늠이 안 되는데, 실제로는 어른 주먹보다 큰 것들이 어른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다. 상인이 손님에게 보여주려고 몇 개를 쪼개 얹어놨는데, 그 단면이 놀랍도록 진한 주황빛이었다. 껍질만 보고 "덜 익었네" 하고 지나칠 뻔했던 내 판단이 그 단면 하나로 뒤집혔다.

시장 좌판에 산더미처럼 쌓인 초록 망고와 그 위 천장에 매달린 노란 바나나 다발들, 뒤편에 수박과 오렌지 매대가 보이는 실내 시장 전경
초록 망고 좌판. 중간중간 쪼개서 얹어둔 단면이 주황빛이라 익은 정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처음 온 사람이 놓치는 게 하나 있다. 초록 망고는 두 갈래로 팔린다. 그대로 아삭하게 썰어 소금·고추가루 찍어 먹는 용도(말레이시아에서는 이걸 흔히 그렇게 먹는다)와, 며칠 두면 노랗게 익는 용도. 겉이 똑같아 보여도 상인은 구분해서 집어준다. 나는 처음에 그냥 "망고 주세요" 했다가 아삭한 쪽을 받았고, 숙소에서 깎아 먹고는 "왜 이렇게 시지" 하며 당황했다. 익혀 먹을 거면 손짓으로라도 "며칠 뒤에 먹는다"는 표시를 하는 게 좋다.

바나나가 이렇게 종류가 많을 일인가

이 시장의 진짜 주인공은 사실 바나나다. 천장에 노끈으로 매달린 다발이 통로 전체를 덮고 있어서, 키 큰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 한다. 초록색, 노란색, 반쯤 익어 얼룩덜룩한 것까지 뒤섞여 있는데 품종이 제각각이다. 짧고 통통한 피상 마스(pisang mas) 계열, 길쭉한 대형종, 그리고 튀겨 먹는 용도로 파는 단단한 초록 바나나까지.

천장 노끈에 매달린 여러 종류의 노란 바나나 다발들과 그 아래 초록 망고 더미, 오른쪽에 '2KG RM10'이라고 붉게 손으로 쓴 가격표가 놓인 모습
망고 더미 위에 놓인 손글씨 가격표 — 2kg에 RM10. 이런 판자 가격표가 시장 물가의 유일한 기준이다.

사진 오른쪽에 붉은 글씨로 「2 KG RM10」이라고 손으로 쓴 판자가 보인다. 그날 그 매대의 망고 값이다. 한국 돈으로 대충 3천 원대. 이 시장에서 가격은 이런 손글씨 판자로만 걸려 있고, 판자가 없는 매대는 물어봐야 한다. 나중에 계산할 때 보니 다른 매대는 같은 크기 망고가 더 비쌌다. 한 바퀴 돌고 사는 게 정답인데, 나는 첫 매대에서 덥석 사버렸다.

바닥에 아예 방수포를 깔고 산더미로 쌓아둔 초록 바나나 무더기도 있었다. 이건 낱개로 파는 게 아니라 송이째, 그것도 도매에 가까운 단위로 나간다. 실제로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 손에는 관광객 장바구니가 아니라 커다란 비닐자루가 들려 있었다. 뒤쪽 기둥에 붙은 아이스크림 광고 포스터에 "RM ONLY 1"이라고 적혀 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시장 바닥에 깔린 파란 방수포 위로 산처럼 쌓인 초록 바나나 송이들과 그 주변을 오가는 손님들의 다리, 뒤편에 빨간 아이스크림 광고 배너가 보이는 모습
바닥에 방수포째 쌓아둔 초록 바나나. 낱개 손님보다 자루째 사가는 현지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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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과일 매대는 물가 감각을 잡는 기준점

시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분위기가 바뀐다. 형광등 아래 오렌지, 사과, 그물망에 싼 배 같은 수입 과일이 정리된 매대가 나온다. 여기 가격표가 재미있는데, 「5 BIJI RM10」「6 BIJI RM10」「7 BIJI RM10」이 나란히 걸려 있다. biji는 말레이어로 '개(낱개)'라는 뜻이다. 즉 10링깃에 5개냐 6개냐 7개냐가 곧 품질·크기 등급이다. 이 표기법을 알고 나면 시장 전체 가격이 갑자기 읽히기 시작한다.

철골 지붕 아래 형광등이 켜진 시장 통로, 천장에 매달린 바나나 다발 아래로 오렌지와 사과가 진열된 매대와 '5 BIJI RM10' 등 손글씨 가격표가 걸린 모습
'5 BIJI RM10 / 6 BIJI RM10 / 7 BIJI RM10' — 10링깃에 몇 개인지가 등급이다.

참고로 여기 사과·오렌지는 대부분 수입품이라 굳이 살 이유가 없다. 로컬 과일 매대와 값을 비교해보라고 권하는 이유는, 이 대비를 봐야 망고·바나나가 얼마나 싼지 체감되기 때문이다.

위치와 접근성

시장은 코타팅기 시내 한복판에 있고, 내가 사진을 찍은 지점 좌표는 아래 지도에 찍어뒀다. 조호바루 쪽에서 오면 차로 한 시간 안팎.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는 있지만 배차가 촘촘하지 않아서, 나는 그랩(Grab)을 불러 움직였다. 시장 건물 자체는 지붕만 있는 반개방형이라 정오가 가까워지면 안이 상당히 덥고 습해진다. 오전 이른 시간이 훨씬 쾌적하고, 물건도 그때가 제일 좋다. 오후 늦게 갔을 때는 좌판 절반이 이미 비어 있었다.

바닥이 물기로 젖어 있는 구간이 있으니 샌들보다는 밑창 있는 신발이 낫다. 그리고 현금. 소액 지폐(RM1, RM5)를 미리 챙겨가면 훨씬 편하다. 큰 지폐를 내면 거스름돈 때문에 상인이 옆 가게로 뛰어간다.

과일만 있는 게 아니다 — 바훌루 & 스낵 코너

시장 한쪽 구석, 슬리퍼 걸이와 바틱 옷가게 사이에 「Bahulu & Snack Corner」라는 노란 간판의 K-05 매대가 있다. 바훌루는 달걀·설탕·밀가루로 구운 말레이 전통 과자다. 유리장 안에 잔뜩 쌓여 있는데, 나는 여기서 와플을 시켰다.

노란색 'Bahulu & Snack Corner' 간판이 걸린 시장 안 과자 매대, 앞쪽에 와플 기계와 카야볼 철판이 놓이고 붉은 두건을 쓴 남성이 조리 중인 모습
K-05 바훌루 & 스낵 코너. 와플 RM3.50, 카야볼 10개 RM3.00이라고 손글씨 안내가 붙어 있다.

가격표가 아주 명확하게 붙어 있어서 좋았다. 크리스피 와플 RM3.50, 카야볼(kaya ball) 10개 RM3.00, 아이스크림 와퍼 RM5, 생수 RM1. 와플 맛은 초콜릿·블루베리·땅콩(kacang)·카야·버터(mentega)·카푸치노 등으로 고를 수 있게 적혀 있었다. 나는 카야를 골랐는데, 코코넛잼 특유의 진한 단맛이 갓 구운 반죽에 스며들어 나온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바삭함이 오래 안 간다. 시장 습기 때문인지 5분만 들고 다녀도 눅눅해진다.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먹는 게 맞다. 앞쪽 철판에서는 동글동글한 카야볼이 계속 구워지고 있었는데, 이건 식어도 괜찮은 편이었다.

로티 차나이 굽는 자리 — 여기가 하이라이트였다

과일 구역을 지나 식품·건어물 쪽으로 넘어가면 철판을 놓고 반죽을 치는 자리가 나온다. 여기서 로티 차나이(roti canai)를 굽는다. 두 사람이 붙어서 일하는데, 한 명은 반죽을 손바닥으로 얇게 펴 늘리고, 다른 한 명은 기름 두른 철판에서 네모나게 접은 걸 뒤집는다. 손놀림이 워낙 빨라서 반죽이 종잇장처럼 늘어나는 순간을 눈으로 따라가기 어렵다.

시장 안 철판 앞에서 두건을 쓴 여성이 주걱으로 네모나게 구워진 로티를 뒤집고, 파란 앞치마를 두른 남성이 옆에서 반죽을 손으로 얇게 펴는 모습
철판 위 로티. 오른쪽 남성이 반죽을 펴고, 왼쪽에서 굽고 뒤집는 분업이다.

사진 속 네모난 건 속을 넣어 접은 것 — 무르타박(murtabak) 계열이다. 오른쪽 통에 노란 카레 소가 담겨 있는 게 보인다. 갓 구운 걸 잘라 달라고 해서 카레 국물에 찍어 먹었는데, 기름이 살짝 배어 겉은 바삭하고 안쪽 층은 촉촉했다. 아침에 먹기엔 꽤 묵직하다. 옆에 튀김(쿠이 계열)도 쌓여 있었다.

가격은 그날 물어보지 않고 그냥 손가락으로 하나 가리켜 샀는데, 잔돈을 받고 보니 아주 저렴했다. 정확한 금액을 기억 못 해서 여기 적지 않는다. 메뉴판 없이 파는 자리가 많으니 값은 현장 확인을 권한다.

다시 간다면 이렇게

코타팅기는 하루 종일 붙잡고 있을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이 시장 한 곳만으로도 두 시간은 충분히 재미있다. 다시 간다면 나는 아침 여덟 시쯤 도착해서, 로티부터 먹고 → 과일 매대를 한 바퀴 돌며 가격 비교하고 → 마지막에 망고를 사서 숙소로 돌아올 것이다.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망고 2kg을 먼저 사면 남은 시간 내내 무거운 걸 들고 시장을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내가 그랬다.

한 가지 더. 이 시장은 사진 찍기 좋은 곳이지만 사람 얼굴이 프레임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상인들은 대체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지만, 조리하는 자리 코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다르다. 나는 로티 굽는 분들에게 눈을 맞추고 카메라를 살짝 들어 보인 뒤에 찍었다. 그 정도 예의는 지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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