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팅 하이랜드 친스위 동굴 사원(Chin Swee Caves Temple) — 9층 탑, 지옥 길, 그리고 산허리의 거대 불상
말레이시아 겐팅 하이랜드는 보통 케이블카와 카지노, 실내 테마파크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런데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길 중턱, 구름이 걸리는 높이에 이 산 전체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가장 인상 깊은 공간이 하나 있다. 친스위 동굴 사원(清水岩廟, Chin Swee Caves Temple)이다. 나는 오전에 올라갔다가 결국 두…
겐팅 하이랜드 · 친스위 동굴 사원
말레이시아 겐팅 하이랜드는 보통 케이블카와 카지노, 실내 테마파크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런데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길 중턱, 구름이 걸리는 높이에 이 산 전체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가장 인상 깊은 공간이 하나 있다. 친스위 동굴 사원(清水岩廟, Chin Swee Caves Temple)이다. 나는 오전에 올라갔다가 결국 두 시간 넘게 머물렀고, 나올 때는 겐팅에서 이날 본 것 중 여기가 제일 좋았다고 생각했다.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시야를 잡아채는 건 9층 탑이다. 붉은 기둥에 주황 기와, 꼭대기는 금빛 첨탑. 주차장 바로 옆에 서 있어서 처음엔 크기가 실감이 안 나는데, 층마다 난간에 사람이 서 있는 걸 보면 그제야 규모가 잡힌다.

거대한 탑 — 층마다 올라갈 수 있다
이 탑은 밖에서 보고 마는 조형물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계단으로 올라가는 구조다. 나선형 좁은 계단을 한 층씩 오르면 층마다 난간이 있는 발코니로 나갈 수 있고, 벽면에는 봉안된 작은 불상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계단 폭이 좁아서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엇갈릴 때마다 서로 몸을 붙여 비켜야 한다. 주말 오후라면 여기서 정체가 생긴다. 무릎이 안 좋거나 폐소공포가 있으면 아래층 몇 개만 보고 내려오는 게 낫다.

탑을 다 보고 위쪽 테라스로 올라가면 시야가 완전히 달라진다. 탑을 눈높이보다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는데, 이때가 사진이 제일 잘 나온다. 사원의 주황 기와 지붕들이 계단식으로 겹치고 그 너머로 겐팅의 산등성이가 이어진다.

더 위로 올라가면 탑이 아예 계곡 건너편처럼 멀어지고, 송전탑과 전선이 함께 프레임에 들어온다. 이 사진이 이곳의 현실적인 모습에 가깝다. 열대우림 한가운데에 사원이 있고, 그 옆으로 송전선이 지나가고, 능선 너머로는 개발 중인 붉은 흙 절개지와 새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사람이 죽은 뒤 지옥으로 가는 길 — 이 사원의 진짜 특징
여기까지는 "산속 중국식 사원" 정도다. 친스위가 다른 곳과 결정적으로 다른 건 죽은 뒤 저승에서 심판받고 지옥으로 끌려가는 과정을 실물 크기 조형물로 죽 늘어놓은 통로가 있다는 점이다. 바위와 바위 사이 좁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동굴처럼 파인 공간마다 장면이 하나씩 배치돼 있다.
초입은 심판 장면이다. 관모를 쓴 판관이 두루마리를 펼쳐 읽고, 양옆의 관리들이 서류함에서 문서를 꺼낸다. 벽면 서랍마다 '原籍', '檔案' 같은 글자가 붙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생전 기록을 서류로 관리하는 관공서처럼 묘사해놓은 것이다.

다음 칸에는 현판에 '善惡分明(선악분명)'이라 크게 써 있고, 좌우 기둥에는 '善有善', '惡有惡'이 붙어 있다. 초록 얼굴의 옥졸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고, 그 앞에 죄인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노골적으로 교훈적인데, 그래서 오히려 오래 서서 보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여기서 아이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장면을 몇 번 봤다.

솔직히 말하면 조형물 상태는 좋지 않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얼룩이 있고, 야외라 이끼가 낀 곳도 있다. 잘 만든 테마파크를 기대하면 실망한다. 다만 이 낡음이 묘하게 효과적이다. 반들반들한 새 조형물이었으면 이만큼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지옥 길의 끝 무렵, 바위 아래 감실에 지장보살상이 앉아 있다. '南無地藏王菩薩' 현판 아래 양쪽 기둥에는 지옥이 비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뜻의 서원이 세로로 적혀 있다. 앞의 지옥 장면들을 다 보고 나서 이 문장을 읽으면 배치의 의도가 분명해진다. 겁주는 걸로 끝내지 않고 구제 쪽으로 마무리하는 구조다.

길 중간에는 인공 폭포도 하나 있다. 붉은 글씨가 새겨진 바위 아래로 물이 두 갈래로 떨어지고, 그 앞에 창을 든 금색 조각상과 바위 위 원숭이 조각들이 놓여 있다. 지옥 장면과는 결이 다른, 서유기 계열의 장식으로 보였다. 물소리 덕분에 이 구간만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진다.

거대한 불상 — 여기가 하이라이트
내려오는 길에 광장이 확 열리면서 거대한 석조 좌불이 나타난다. 이 사원에서 사진을 제일 많이 찍게 되는 곳이다. 연화좌 위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설법인을 짓고 있고,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뒤는 통째로 열대우림이고, 그 위로 겐팅 정상의 콘도 타워가 구름을 뚫고 서 있다. 불상 · 정글 · 초고층 건물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조합은 다른 데서 본 적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면 크기가 제대로 온다. 옆에 선 사람 키가 연화좌 꽃잎 하나 높이 정도밖에 안 된다. 표정은 정면에서 볼 때보다 살짝 왼쪽으로 비켜서 볼 때가 더 좋았다. 석재 표면에 빗물 자국이 검게 흘러내린 부분이 있는데, 그게 오히려 야외에 오래 앉아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불상 바로 앞에는 흰 연꽃 모양의 대형 수반이 있다. 안내판에 'Crystal Green Lotus'라는 영문 표기가 붙어 있었고, 꽃잎이 반투명해서 햇빛을 받으면 안쪽이 비친다. 불상만 찍지 말고 이 연꽃을 앞에 깔고 한 컷 찍으면 구도가 훨씬 산다.

관음상과 광장 — 위층으로 이어지는 동선
사원은 산비탈을 계단식으로 깎아 만들어서, 광장 한쪽 옹벽 위로 또 다른 층이 있다. 그 위에 흰 관음 입상이 서 있고, 녹색 격자 난간이 가장자리를 두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관음상이 사원 처마와 나란히 걸린다.

같은 관음상을 광장 쪽에서 조금 물러나 보면 노란 석재 옹벽의 크기가 드러난다. 이 광장은 그늘이 거의 없다. 오전 11시쯤 지나면 주황 타일이 열을 그대로 반사해서 꽤 덥다. 모자나 양산을 챙기는 게 좋고, 실제로 양산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광장 끝의 본전은 붉은 기둥에 자주색 목문이 줄지어 있고, 문짝마다 '清水巖廟'와 탑 문양이 금박으로 찍혀 있다. 처마 밑 단청의 색이 진해서, 흐린 하늘 아래서도 사진이 잘 나온다.

본전 앞 넓은 마당은 반대편에서 보면 이렇게 열린다. 정면 건물 앞에 돌사자 한 쌍이 있고, 왼쪽으로는 사원 갤러리(清水巖歷史館) 입구가 붙어 있다.

광장 반대편 끝에는 'HUA HALL'이라 적힌 정자가 있고, 그 옆으로 홍등을 매단 긴 회랑이 이어진다. 회랑에 벤치가 있어서 사람들이 여기 앉아 쉰다. 광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여기가 유일하게 편하게 앉아 그늘을 얻을 수 있는 구간이었다.

가는 법과 실제로 도움 되는 것들
친스위 사원은 겐팅 정상이 아니라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길 중턱에 있다. 그래서 정상까지 케이블카로 직행하면 이곳을 통째로 지나치게 된다. 아왕 케이블카(Awana SkyWay)를 탈 경우 중간에 친스위 사원 정류장에서 한 번 내렸다가 다시 타는 방식이라, 표를 살 때 이 정거장 하차가 되는 노선인지 확인해두는 게 안전하다. 차로 올라간다면 사원 앞에 주차장이 있다.
올라오는 산길 자체도 볼 만하다. 창밖으로 계속 이런 밀림이 이어지고, 도로가 헤어핀으로 꺾일 때마다 계곡 건너편 산이 통째로 보인다. 차멀미가 있는 사람은 각오하는 게 좋다. 커브가 정말 많다.

가면서 알아두면 좋은 것들을 정리해둔다.
- 옷차림: 해발이 높아 KL 시내보다 확실히 시원하다. 구름이 들어오면 갑자기 서늘해지므로 얇은 겉옷 하나. 반면 광장은 햇볕이 강해 덥다. 겹쳐 입고 벗는 게 정답.
- 신발: 지옥 길 구간은 좁고 젖은 돌계단이 있다. 슬리퍼보다 운동화.
- 동선: 탑 → 지옥 길 → 지장보살 → 대불 광장 → 관음상·본전 순으로 내려오면 계단을 덜 오르내린다.
- 소요 시간: 대충 돌면 40분, 조형물을 하나씩 읽으면 2시간도 짧다.
- 비용·운영시간: 내가 갔을 때 별도 입장료를 낸 기억은 없지만, 요금·개방 시간은 바뀔 수 있으니 현장 안내판이나 케이블카 매표소에서 확인하는 걸 권한다.
아쉬웠던 점도 적어둔다. 첫째, 조형물 설명이 대부분 중국어라 배경 지식 없이는 장면의 맥락을 놓치기 쉽다. 둘째, 관리 상태가 고르지 않아 어떤 조형물은 팔이 깨져 있거나 페인트가 크게 벗겨져 있다. 셋째, 단체 관광버스가 몰리는 시간대에는 탑 계단과 지옥 길이 동시에 막혀 흐름이 끊긴다. 그럼에도 겐팅에서 하루를 쓴다면 나는 실내 테마파크 한 시간을 줄여서라도 여기에 시간을 더 배분하겠다. 카지노와 쇼핑몰 사이에서 이 산이 원래 어떤 곳이었는지를 유일하게 붙들고 있는 장소가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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