믈라카 'Mahkota Ais Kacang / Cendol' — 에어컨 없는 가게에서 첸돌 한 그릇, 그게 정답이었다
말레이시아 믈라카(Melaka) 구시가 쪽으로 차를 몰다가 신호에 걸렸는데, 바로 옆 코너 숍하우스에 빨간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RESTORAN MAHKOTA AIS KACANG / CENDOL, SINCE 1995. 원래는 다른 데를 가려던 참이었는데, 현수막에 인쇄된 빙수 사진 세 그릇이 너무 대놓고 유혹적이라 그냥…
믈라카
말레이시아 믈라카(Melaka) 구시가 쪽으로 차를 몰다가 신호에 걸렸는데, 바로 옆 코너 숍하우스에 빨간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RESTORAN MAHKOTA AIS KACANG / CENDOL, SINCE 1995. 원래는 다른 데를 가려던 참이었는데, 현수막에 인쇄된 빙수 사진 세 그릇이 너무 대놓고 유혹적이라 그냥 근처에 차를 댔다. 결과부터 말하면, 그날 믈라카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차 안에서 본 첫인상 — 코너 숍하우스, 낡은 나무 덧창
사진은 조수석에서 창문 너머로 찍은 거라 앞 유리 프레임이 같이 나왔다. 2층 페라나칸 숍하우스인데, 짙은 갈색 나무 덧창이 그대로 남아 있고 벽 회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관리가 안 된 게 아니라 그냥 오래된 건물이 그렇게 늙어가는 모습이다. 처마 아래엔 빨간 등롱이 줄줄이 걸려 있고, 바로 옆집은 'RESTORAN JJ…'라는 회색 건물이다. 가게 안쪽으로 흰 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빨간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게 보였는데, 관광객보다는 근처에서 일하다 나온 현지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게 보통 좋은 신호다.
위치는 아래 지도 핀 근처다. 믈라카 강가와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 권역에서 차로 몇 분, 걸어서도 못 갈 거리는 아니다. 다만 이 동네는 일방통행이 많고 코너에 신호등이 붙어 있어서, 차로 왔다면 가게 앞에 바로 세울 생각은 접는 게 낫다. 나도 한 블록 지나쳐서 옆 골목에 댔다. 주차 요금이나 정확한 영업시간은 그날 확인을 못 했으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에어컨이 없다 — 이건 미리 알고 들어가야 한다
먼저 각오할 것. 이 집은 에어컨이 없다. 천장 선풍기와 벽 선풍기가 도는 게 전부고, 문은 길 쪽으로 활짝 열려 있어서 바깥 열기가 그대로 들어온다. 믈라카 낮은 습도가 높아서, 앉아 있기만 해도 등에 셔츠가 붙는다. 나는 오후 2시쯤 들어갔는데 자리에 앉은 지 3분 만에 목덜미에 땀이 흘렀다.
그런데 이게 묘하게 이 집을 완성시킨다. 더운 상태에서 얼음 한 숟갈을 입에 넣는 순간의 낙차가,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서 먹는 빙수와는 아예 다른 물건이 된다. 대신 빨리 먹어야 한다. 이 온도에서는 얼음이 정말 빠르게 무너진다. 나는 사진 몇 장 찍는다고 1~2분 지체했는데 그새 아래쪽이 이미 국물이 되어 있었다. 사진은 한 장만 찍고 바로 숟가락을 드는 게 맞다. 그리고 등에 땀 흡수 잘 되는 옷, 물티슈 하나. 이 두 개면 충분하다.
첸돌(Cendol) — 여기 와서 이걸 안 먹으면 안 된다
메뉴에 아이스 카창(ais kacang)도 있고 다른 빙수도 있지만, 이 집에서는 첸돌을 시켜라. 현수막에도 상호 옆에 'CENDOL'을 따로 박아뒀다. 괜히 그런 게 아니다.
나온 그릇을 보고 좀 웃었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얼음이 산처럼 올라와 있고, 그 위에 판단 잎으로 물들인 초록색 젤리 국수가 수북하게 덮여 있다. 굵기는 통통한 편이고, 끊어지는 느낌이 아니라 살짝 미끄덩하게 넘어간다. 그 아래로 굴라 말라카(gula melaka) — 야자당 시럽이 갈색으로 얼음을 파고들어 있고, 대접 바닥에는 코코넛 밀크가 깔려 있다. 얼음 사이사이 하얗게 뭉친 덩어리 안에 무른 콩과 건더기가 섞여 있는 게 숟가락에 잡힌다.
맛은 생각보다 훨씬 진하다. 굴라 말라카가 그냥 단 게 아니라 살짝 탄 듯한, 흑설탕과 캐러멜 중간쯤의 훈연 향이 난다. 여기에 코코넛 밀크의 짭짤한 기름기가 붙으면서 단맛을 눌러준다. 한국 팥빙수처럼 위에서 아래로 퍼먹으면 초록 국수만 잔뜩 먹게 되니, 숟가락을 바닥까지 찔러 넣어 시럽과 코코넛을 위로 끌어올려 한 번 크게 섞고 시작하는 게 낫다. 나는 처음에 그걸 안 해서 앞의 세 숟갈은 그냥 밍밍한 얼음이었다.
아쉬웠던 점도 적어둔다. 나한테는 단맛이 꽤 셌다. 뒤로 갈수록 얼음이 녹아 시럽 농도가 올라가서, 마지막 3분의 1은 거의 달달한 코코넛 수프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단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그릇을 둘이 나눠 먹는 편을 권한다. 실제로 우리도 두 그릇을 시켰다가 한 그릇은 절반쯤 남겼다. 그리고 대접이 스테인리스라 손에 물방울이 잔뜩 맺히고, 시럽이 접시로 흘러내리니 티슈는 미리 챙겨두는 게 좋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 에어컨 없음. 선풍기와 열린 문이 전부다. 한낮에 오래 앉아 쉴 생각이라면 다른 곳을 권한다. 대신 그 더위 덕에 얼음이 두 배로 맛있다.
- 얼음이 빨리 녹는다. 사진은 한 장, 그다음엔 바로 먹기. 바닥까지 한 번 크게 섞고 시작할 것.
- 첸돌 우선. 상호에 아이스 카창이 먼저 붙어 있지만 현수막에 CENDOL을 따로 박아둔 이유가 있다.
- 차보다 걸어서. 코너에 신호등이 있는 일방통행 구간이라 가게 앞 정차가 어렵다. 존커 스트리트 쪽에 차를 두고 걸어오는 편이 마음 편하다.
- 가격과 영업시간은 내가 갔던 날 기준으로 확실히 기록해두지 못했다. 지어내느니 비워둔다 — 현장에서 확인하시길.
믈라카에서 첸돌 파는 집은 셀 수 없이 많고, 존커 스트리트 안쪽에는 줄이 길게 늘어선 유명한 집도 있다. 이 집은 그런 곳은 아니다. 신호 대기하다 발견해서 들어간, 1995년부터 같은 코너에 있던 낡은 숍하우스다. 그래도 땀 흘리면서 먹은 그 한 그릇이 그날 하루 중에 제일 또렷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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