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1919 식당 — 고층 아파트 숲 아래 남은 단층 노란 건물에서, 셋이 6만 원어치를 먹었다

KL에 올 때마다 밥값 계산이 헷갈린다. 부킷빈탕 쪽 관광객 동선에 있는 식당은 요리 하나에 40~50링깃이 예사고, 그러다 코피티암 골목으로 한 블록만 들어가면 갑자기 한 접시 12링깃이 된다. 이 1919 식당(Restoran 1919)은 그 두 세계 사이에 어정쩡하게, 그러나 아주 정확한 위치에 서 있다. 사방이 3…

쿠알라룸푸르 · 1919 식당

KL에 올 때마다 밥값 계산이 헷갈린다. 부킷빈탕 쪽 관광객 동선에 있는 식당은 요리 하나에 40~50링깃이 예사고, 그러다 코피티암 골목으로 한 블록만 들어가면 갑자기 한 접시 12링깃이 된다. 이 1919 식당(Restoran 1919)은 그 두 세계 사이에 어정쩡하게, 그러나 아주 정확한 위치에 서 있다. 사방이 30층짜리 콘도로 둘러싸인 자리에 단층 노란 건물 하나만 살아남아 있는 곳. 저녁 6시쯤 도착해 셋이 앉았고, 배가 터지게 먹고 나온 계산서가 원화로 6만 원 언저리였다.

주변이 다 아파트인데 여기만 납작하다

택시에서 내려 고개를 드니 이 그림이었다. 왼쪽·가운데는 발코니가 다닥다닥 붙은 주거용 콘도, 오른쪽은 마름모 격자 외벽을 두른 신축 타워. 그 밑동에 빨간 지붕과 노란 벽의 낮은 건물이 붙어 있고 담벼락에 1919 숫자가 박혀 있다. 이 대비가 이 식당의 정체를 다 설명한다 — 개발이 밀려온 동네에서 옛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이라는 것. 사진 오른쪽 아래로는 아직 공사 가림막과 컨테이너가 보였다. 주변 공사 소음은 저녁에는 거의 잦아든다.

고층 콘도 세 동과 마름모 격자 외벽 타워 아래, 빨간 지붕과 노란 벽에 '1919'가 적힌 단층 건물이 있는 전경
사방이 콘도인데 이 집만 납작하다. 담벼락의 1919 숫자가 표식.

정문 간판은 붉은 대나무 엮음 무늬 바탕에 금색으로 RESTORAN 1919 Restaurant, 그 아래 Southeast Asian Cuisine과 한자 東南亞美食餐廳이 나란히 적혀 있다. 이름만 보고 1919년 개업한 노포인가 싶었는데, 간판 옆 벽면은 Old Coffee Malaysia · 100% Arabica 원두 그림으로 도배돼 있고, 입구 옆에는 짚을 두른 초가 지붕 좌판에 코코넛 냉장고가 서 있다. 두리안 그림도 붙어 있다. 개업 연도는 확인하지 못했으니 그대로 옮겨만 둔다. 마당에는 버섯 모양 석등과 토끼 석상 같은 자잘한 소품이 놓여 있어, 실내로 들어가기 전부터 "관광객용으로 반듯하게 꾸민 집은 아니구나" 하는 감이 온다.

붉은 바탕에 금색으로 '1919 Restaurant', 아래에 Southeast Asian Cuisine과 한자 東南亞美食餐廳이 적힌 간판, 옆에 짚 지붕 코코넛 좌판과 냉장고가 있는 식당 정문
간판에 영어·중국어가 같이 붙어 있다. 오른쪽 짚 지붕 좌판은 코코넛 파는 자리.

가지튀김과 두부 — 이 집은 이 둘 때문에 다시 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지 요리와 두부 요리가 압도적이었다. 고기 요리는 무난하고, 이 두 접시가 이 집의 실력이다.

가지는 국수처럼 가늘게 채 썰어 얇은 튀김옷을 입혀 튀긴 뒤 달착지근하고 살짝 매운 칠리 소스에 버무려 나온다. 접시 위로 한 뼘 가까이 쌓아 올려서 나오는데, 젓가락으로 집으면 튀김 껍질은 바스락거리고 안쪽 가지 살은 물러서 훅 사라진다. 감자튀김 같은 겉모습에 속아 한입 넣으면 가지 특유의 부드러움이 나와서, 같이 간 일행이 "이거 감자 아니었어?" 하고 되물었다. 다만 바로 먹어야 한다. 사진 찍고 이야기하다 10분쯤 지나니 아래쪽 가닥들이 소스를 먹어서 눅눅해졌다. 나오자마자 위에서부터 집어 먹는 게 정답이다. 접시 바닥에 고인 붉은 소스는 밥에 비벼 먹으면 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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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게 채 썰어 튀긴 가지를 붉은 칠리 소스에 버무려 접시 위로 높이 쌓아 올린 요리, 쪽파가 뿌려져 있고 뒤편에 볶음밥 접시가 보인다
이 집의 간판. 가늘게 썬 가지튀김에 칠리 소스. 눅눅해지기 전에 위에서부터 공략.

두부는 완전히 다른 결이다. 두툼한 원반 모양 두부를 겉만 노릇하게 튀겨 갈색 껍질을 만들고, 위쪽을 갈라 열어 그 안에 재료를 채운 뒤 맑고 옅은 갈색 간장 육수에 담아낸다. 접시 둘레로 팽이버섯,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청경채, 당근이 둘러져 있어 보기에도 정갈했다. 숟가락으로 잘라 육수를 끼얹어 먹으면 겉은 쫄깃하고 속은 순두부처럼 흐물거린다. 간이 아주 옅어서, 가지튀김처럼 자극적인 접시 사이에 두면 입을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셋이서 순식간에 육수까지 떠먹었다.

겉을 노릇하게 튀긴 두툼한 원형 두부를 갈색 육수에 담고 팽이버섯,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청경채, 당근을 둘러 담은 요리
겉은 튀기고 속은 순두부. 육수가 옅어서 매운 요리와 짝이 잘 맞는다.

세 번째는 튀긴 고기에 오이를 굵게 썰어 넣고 새콤달콤한 갈색 소스로 볶아낸 접시. 소스가 진하고 후추가 꽤 세게 들어가 밥반찬으로는 훌륭한데, 오이가 열기에 살짝 숨이 죽어 아삭함이 반쯤 사라진 게 아쉬웠다. 앞의 두 접시를 먹고 나면 이건 "그냥 맛있는 요리" 정도다. 셋이서 시킨다면 나는 이 자리에 가지를 하나 더 시키겠다.

튀긴 고기와 굵게 썬 오이를 새콤달콤한 갈색 소스에 볶아 흰 접시에 담은 요리, 옆에 콜라 잔이 놓여 있다
오이를 넣은 새콤달콤 볶음. 무난하지만 앞의 두 접시에 밀린다.

탄수화물 담당은 볶음밥이었다. 달걀을 굵게 풀어 넣고 쪽파를 썰어 넣은 기본형에, 튀긴 마늘 같은 바삭한 고명을 얹고 오이 두 쪽과 라임 한 조각을 올려 낸다. 화력이 좋아 밥알이 서로 붙지 않고 흩어지고, 기름기는 생각보다 적다. 라임을 짜 넣으면 확 산뜻해지니 그냥 먹다가 반쯤에서 짜 넣는 걸 권한다. 밥 자체는 튀는 맛은 아니지만, 가지의 칠리 소스와 두부 육수를 받아내는 그릇으로 제 역할을 했다.

달걀과 쪽파를 넣은 볶음밥에 바삭한 튀긴 마늘 고명과 오이 두 쪽, 라임 한 조각을 올려 흰 접시에 담은 모습
기본에 충실한 볶음밥. 라임은 반쯤 먹다가 짜 넣는 게 좋다.

셋이 배 터지게 먹고 6만 원

가장 하고 싶은 얘기가 이거다. 성인 셋이 요리 세 접시 + 볶음밥 + 음료까지 시켜서 남길 정도로 먹었는데 계산서가 한화 6만 원 정도였다. 1인당 2만 원 꼴. KLCC나 부킷빈탕의 몰 안 레스토랑에서 같은 구성으로 먹으면 두 배는 나온다. 요리 접시 크기도 인색하지 않아서, 가지튀김 하나만으로도 셋이 나눠 먹기에 충분했다.

메뉴판 개별 가격은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 정확히 옮기지 못한다. 요리 하나에 20링깃대 후반~30링깃대 초반 구간으로 기억하는데, 링깃 환율과 메뉴 가격은 자주 바뀌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다만 총액 감각은 확실하다. 셋이 갔다면 요리 2~3개 + 밥 하나면 충분히 배부르다. 욕심내서 더 시키면 남긴다.

위치와 접근 — 콘도 사이 골목이라 지도를 켜고 가라

사진에서 보이듯 이 집은 큰길 상가에 있는 게 아니라 고층 콘도 단지 사이에 끼어 있다. 이런 자리는 구글 지도가 건물 이름으로 안내하다가 콘도 정문 쪽에서 끊기기 쉬우니, 좌표를 찍고 가는 편이 빠르다. Grab을 부를 때도 목적지를 이 좌표로 지정하는 게 기사와 실랑이가 없다. 걸어서 접근한다면 마지막 구간은 인도가 좁고 공사 가림막 옆을 지나야 하니 밤에는 조명이 어둡다는 점을 감안하시길.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들

KL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몰 안의 에어컨 잘 나오는 식당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콘도 숲 밑에 남아 있는 이런 납작한 건물로 들어가 보는 게 좋다. 가지 한 접시 앞에 놓고 "이게 얼마라고?" 하는 대화가 오가는 저녁이라면, 그날 밥값은 잘 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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