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남푸 분수(Nam Phou Park), 해 지고 나서야 진짜 얼굴이 나오는 광장
비엔티안에 도착한 날은 대개 짐만 던져놓고 남푸 분수 쪽으로 걸어 나온다. 라오스 수도의 여행자거리 초입, 로터리처럼 생긴 이 원형 광장이 시내에서 방향을 잡는 기준점이라서다. 몇 년 전만 해도 분수 주변은 낡은 콘크리트 턱에 잡초가 끼어 있었는데, 지금은 'NAM PHOU PARK'라는 이름을 달고 잔디밭과 산책로가 깔…
비엔티안 · 남푸 분수
비엔티안에 도착한 날은 대개 짐만 던져놓고 남푸 분수 쪽으로 걸어 나온다. 라오스 수도의 여행자거리 초입, 로터리처럼 생긴 이 원형 광장이 시내에서 방향을 잡는 기준점이라서다. 몇 년 전만 해도 분수 주변은 낡은 콘크리트 턱에 잡초가 끼어 있었는데, 지금은 'NAM PHOU PARK'라는 이름을 달고 잔디밭과 산책로가 깔린 공원으로 정리됐다. 낮에 지나가면 솔직히 심심하다. 이 광장은 해가 넘어가고 조명이 들어와야 제 몫을 한다.
낮의 남푸는 흰 시계탑과 공사장
오후 네다섯 시쯤 들렀을 때 광장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분수가 아니라 하얀 시계탑이었다. 3층 높이에 파란 아치 창틀, 로마숫자 시계판을 얹은 유럽풍 건물인데 라오스 하늘색과는 묘하게 잘 붙는다. 탑 뒤로는 철근이 그대로 튀어나온 미완성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어서, 관광 사진처럼 깔끔하게 찍으려면 앵글을 꽤 골라야 한다. 이런 게 지금 비엔티안 시내의 실제 모습이다 — 정비된 공원과 짓다 만 건물이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사진 오른쪽 끝을 보면 알겠지만, 낮에는 분수 물이 아예 안 나온다. 접시 모양 조형물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서 "이게 그 유명한 분수인가?" 싶어진다. 낮에 와서 실망하고 돌아간 사람 여럿 봤다. 시계탑 아래 잔디에는 배낭 내려놓고 앉아 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늘이 거의 없어서 건기 오후엔 5분도 앉아 있기 힘들다.
공원 이름표와 페트병 물고기
공원 입구 쪽 벽에는 라오어와 영어를 나란히 붙인 'NAM PHOU PARK' 조명 간판이 있다. 그 아래 철사로 만든 커다란 물고기 모양 수거함이 놓여 있는데, 안에 페트병이 반쯤 차 있었다. 분리수거 캠페인 조형물이다. 비 온 직후라 바닥이 젖어서 간판 불빛이 아스팔트에 번져 보였다. 벤치는 한두 개뿐이라 자리 잡으려면 눈치가 좀 필요하다.

여행자거리 초입 — 24시간 카페와 클럽이 한 블록 안에
남푸를 굳이 숙소 기준점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분수 바로 옆 벽돌 아치 건물이 카페 아마존(Café Amazon)이다. 태국계 체인이라 라오스 어디서나 보이지만, 남푸 지점은 위치가 압도적이다. 밤에 노란 조명이 아치를 타고 흘러나오면 광장 쪽에서 봤을 때 이 건물만 따뜻해 보인다. 이 근처엔 24시간 문 여는 카페도 있어서 새벽 버스를 기다리거나 시차로 잠 못 자는 밤에 갈 데가 있다. 같은 골목에 클럽도 섞여 있어서, 밤 열 시가 넘으면 커피 마시는 사람과 술 마시고 나오는 사람이 같은 인도를 쓴다. 조용한 도시라는 비엔티안의 이미지와 다른 구간이 딱 이 한 블록이다.

광장 주변 도로는 생각보다 차가 많다. 픽업트럭과 SUV가 인도 턱까지 바짝 대놓고, 그 위로 전선이 뭉텅이로 얽혀 지나간다. 노을 질 때 이 전선 뭉치가 오히려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데, 동남아를 좀 다녀본 사람이면 이 풍경이 익숙할 거다. 여기서 도보 몇 분이면 메콩강 산책로와 야시장으로 이어지고, 반대쪽으로 걸으면 왓 시사켓 방향이다. 오토바이 렌트나 툭툭 흥정도 이 광장 언저리에서 붙는다 — 가격은 부르는 사람마다 달라서 현장에서 확인하는 게 맞다.

해 질 녘, 물이 올라오는 순간
분수는 저녁 무렵부터 돌기 시작한다. 정확한 가동 시각은 날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으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내가 본 날은 하늘이 아직 주황빛일 때 물줄기가 먼저 솟았고, 조명이 파랑에서 초록, 분홍으로 넘어가면서 접시 모양 본체 전체가 색을 갈아입었다. 이 시간대가 사진으로는 제일 좋다. 완전히 캄캄해지기 전, 노을과 조명이 같이 잡히는 20분 남짓.

이 사진 한 장에 남푸의 성격이 다 들어 있다. 분수 턱에 아이들이 매달려 있고, 옆에는 스케이트보드가 굴러다니고, 저쪽엔 아예 바닥에 드러누운 청년이 있다. 관광지라기보다 동네 광장이다. 관광객은 사진 찍고 5분 있다 가지만, 현지 사람들은 여기서 저녁 시간을 통째로 보낸다. 맥주 캔 하나 들고 턱에 걸터앉은 젊은 무리도 흔하다 — 정식 테라스석 요금 없이 분수 보며 마시는 자리라, 밤이 깊을수록 사람이 는다.
완전히 어두워진 뒤가 본편
하늘이 새까매지면 분수만 남는다. 낮에 봤던 그 흰 시계탑이 이때는 조명을 받아 광장의 두 번째 랜드마크가 된다. 시계탑 아래 벽 조명과 저쪽 분홍색 물줄기가 동시에 잡히는 각도가 있는데, 주차선 근처에서 서면 대충 이 구도가 나온다.

가까이 가서 보면 물줄기가 생각보다 세다. 중앙 한 줄기가 접시 위로 훌쩍 솟고, 가장자리에서 열 개 넘는 물줄기가 안쪽으로 기울어 떨어진다. 조명은 물줄기 하나하나에 따로 들어가서 같은 순간에 빨강·초록·파랑이 섞인다. 바람이 광장 쪽으로 불면 물보라가 그대로 날아와 얼굴에 튀는데, 30도 넘는 밤에는 그게 오히려 반갑다. 카메라 렌즈는 좀 조심하는 게 좋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 시간대 — 낮에는 물이 안 나온다. 해 지기 30분 전에 도착해서 노을과 점등을 같이 보는 게 가장 이득이다.
- 앉을 자리 — 벤치는 몇 개 없다. 대부분 분수 턱이나 잔디에 앉는다. 비 온 뒤엔 턱이 젖어 있으니 확인하고 앉을 것.
- 주변 — 카페 아마존, 24시간 카페, 클럽이 광장에서 도보 1~2분 안에 몰려 있다. 늦게까지 놀 계획이면 이 근처 숙소가 편하다.
- 아쉬운 점 — 광장을 둘러싼 도로에 차가 많고 인도 폭이 좁다. 아이 데리고 온다면 분수 쪽 안쪽으로 붙어 다니는 게 낫다. 미완성 건물이 배경에 걸려서 '엽서 사진'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 물가 — 카페·식당 가격은 시기마다 바뀌니 메뉴판을 직접 보고 정하는 게 정확하다.
비엔티안은 하루면 주요 사원을 다 도는 도시라 지루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저녁마다 이 광장에 나와 앉아 있으면 도시가 다르게 보인다. 관광 일정에 넣을 곳이라기보다, 하루 일정이 끝난 뒤 돌아오는 곳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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