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탓루앙, 흐린 날 오후 다섯 시에 걸어본 황금탑
라오스 비엔티안 시내에서 툭툭으로 15분쯤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도로가 갑자기 넓어지고, 담장 너머로 금색 덩어리가 불쑥 솟는다. 탓루앙(Pha That Luang). 라오스 지폐와 국가 문장에도 들어가 있는 그 탑이다. 나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매번 오후 늦게 왔다. 낮 한 시쯤 오면 광장 바닥이 프라이팬이 되어서…
비엔티안 · 탓루앙
라오스 비엔티안 시내에서 툭툭으로 15분쯤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도로가 갑자기 넓어지고, 담장 너머로 금색 덩어리가 불쑥 솟는다. 탓루앙(Pha That Luang). 라오스 지폐와 국가 문장에도 들어가 있는 그 탑이다. 나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매번 오후 늦게 왔다. 낮 한 시쯤 오면 광장 바닥이 프라이팬이 되어서 서 있기가 힘들다. 이날은 우기 특유의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덮어서 그늘 없이도 걸을 만했다.

먼저 알아둘 것 — 여긴 탑 하나가 아니라 '단지'다
처음 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탑 사진 몇 장 찍고 20분 만에 돌아가는 것이다. 탓루앙은 황금 스투파를 가운데 두고 회랑형 담장이 사각으로 둘러싸고, 그 바깥으로 광장과 두 개의 큰 사원 건물, 그리고 길게 뻗은 산책로까지 딸린 하나의 단지다. 담장 안 스투파 구역은 입장료를 받고, 바깥 광장과 주변 사원은 무료로 드나든다. 금액은 매년 조정되니 매표소 게시판을 직접 확인하는 게 낫다.
담장을 왼쪽에 끼고 한 바퀴 돌아보길 권한다. 정면에서만 보면 탑이 뾰족한 삼각형처럼 보이는데, 옆으로 돌아가면 아래쪽 연꽃잎 형태의 기단과 서른 개 남짓한 작은 첨탑이 층층이 겹쳐 보인다. 이 각도가 훨씬 재미있다.

담장 정문 쪽으로 가면 흰 벽에 금색 띠를 두른 회랑과 작은 문루가 나온다. 그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 입장 관련 안내가 라오어와 영어로 붙어 있다. 이 문 앞에 앉아 물이나 음료를 파는 상인이 한둘 있는데, 광장 안쪽에는 그늘이 거의 없으니 여기서 물 한 병 사서 들어가는 편이 낫다.

탑 말고 사원 두 채 — 여기를 안 들어가면 절반만 보고 가는 것
스투파 서쪽에 붉은 지붕과 금색 박공을 얹은 큰 법당이 하나 있다. 앞마당에 인조 잔디가 깔려 있고 노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라오어로 불기 2569년 행사 안내였다. 그러니까 이 건물은 관광용 전시장이 아니라 지금도 행사가 돌아가는 살아 있는 사원이다. 계단 앞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

안에 들어가면 공기가 확 서늘해진다. 대리석 바닥에 맨발이 닿는 감촉이 시원해서, 밖에서 땀 흘리다 들어온 사람들이 다들 잠깐 멈춰 선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붉은 바탕에 법륜 문양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그 아래 벽면 전체가 보리수 그림이다. 나무 밑 계단에는 짙은 색 고승 좌상 여섯 구가 나란히 앉아 있다. 각 상 앞에 작은 명패가 붙어 있는데 라오어라 나는 읽지 못했다. 절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이 절의 역대 스님들이라는 취지의 답을 손짓 섞어 해줬다. 정확한 명단은 확인하지 못했다.

같은 법당 오른편 구석에는 금색 누각 안에 노스님의 영정 사진과 액자에 담긴 문서가 모셔져 있었다. 그 옆으로 작은 금빛 좌상과 부채, 유리 안에 든 사리탑 모양 장식이 층층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노란 방석과 절할 때 쓰는 깔개가 깔려 있었다. 관광객은 거의 그냥 지나치는데, 나는 이런 구석이 오히려 그 절이 뭘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진 찍기 전에 주변에 참배하는 사람이 있는지 한 번 보는 예의는 지키자.

법당 문간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순간이 이날 제일 좋았다. 나무 조각으로 장식한 아치 두 개가 액자처럼 풍경을 잘라내고, 그 사이로 붉은 참배길이 공원 끝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다. 계단 앞에 벗어놓은 신발들이 흩어져 있고 사람들이 맨발로 내려간다. 삼각대 없이 손으로 찍어도 구도가 저절로 잡히는 자리다.

단지 반대편에는 또 다른 법당이 있다. 금색 박공 전체에 부처의 생애 장면이 조각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고, 양옆에 서 있는 부처상 두 구가 손을 들어 보인다. 계단 난간에는 각국 불교 깃발과 라오스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앞마당이 텅 비어 있어서 정면 사진 찍기가 가장 편한 곳이 여기다.

광장과 산책로 — 사람 없는 시간대의 맛
탓루앙에서 의외로 좋은 건 탑 자체보다 그 앞에 펼쳐진 붉은 육각 블록 광장이다. 축구장 몇 개는 들어갈 넓이인데, 오후 늦게는 정말 텅 빈다. 한가운데 야자수 한 그루가 화단 위에 홀로 서 있고, 그 주변으로 몇 사람이 흩어져 걷는다. 소리가 거의 없다. 멀리서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새소리 정도.

광장에서 이어지는 산책로는 붉은 화단과 잘 다듬은 관목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해가 살짝 기운 시간에 여기를 걸으면 관목의 주황빛 잎이 유난히 진해진다. 벤치가 드문드문 있어서 다리 쉬기에도 좋다. 흐린 날엔 여기가 오히려 사진이 잘 나온다 — 잎 색이 하늘 회색과 대비되면서 뜬다.

산책로 안쪽 구간에는 큰 나무 그늘이 제대로 드리운다. 여기서는 현지 사람들이 더 많다. 검은 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걷는 어르신, 양산 대신 손으로 해를 가리며 걷는 사람들. 관광지라기보다 동네 공원 분위기다. 이 길 끝에서 뒤를 돌아보면 나무 사이로 탑 금색이 슬쩍 보인다.

위치와 가는 법
비엔티안 시내 중심(남푸 분수, 메콩강 야시장 일대)에서 대략 4km 정도 떨어져 있다. 툭툭을 잡으면 흥정이 붙는데, 시내에서 여기까지 부르는 첫 값과 실제 타협가는 차이가 크다. 앱 호출(Loca 같은 현지 배차 앱)을 쓰면 흥정 없이 타는 게 가능하고, 대개 툭툭 흥정가보다 싸다. 돌아갈 때가 문제인데, 탓루앙 앞에 대기하는 툭툭은 관광객 상대 가격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앱으로 부르고 광장 입구에서 기다렸다. 오토바이를 빌려 왔다면 담장 바깥 붉은 광장 가장자리에 세우면 된다. 별도 주차 요금을 받지는 않았다.
바로 옆에 파탓루앙 광장과 무명용사 기념탑이 붙어 있어서, 걸어서 다 묶어 볼 수 있다. 시간이 남으면 파투사이(개선문)까지 툭툭으로 5분 거리라 세트로 도는 사람이 많다.
다녀와서 남는 메모
- 복장: 담장 안 스투파 구역과 법당 모두 어깨와 무릎을 가려야 한다. 얇은 스카프 하나 챙기면 해결된다. 입구에서 빌려주는 곳도 있지만 항상 있는 건 아니다.
- 시간대: 오전 이른 시간이나 오후 4시 이후. 정오 전후엔 광장 반사열이 심하다.
- 소요 시간: 탑만 보면 30분, 법당 두 곳과 산책로까지 돌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
- 우기(대략 5~10월)엔 오후에 소나기가 쏟아진다. 이날도 구름이 이렇게 낮게 깔렸는데, 나는 법당 안에서 20분쯤 비를 피했다. 처마 밑에 서 있으면 되니 크게 문제는 없다.
- 담장 안팎 어디에도 매점다운 매점이 없다. 물은 미리 사서 들어가는 편이 좋다.
아쉬웠던 건 하나. 흐린 날엔 탑 금색이 사진에서 죽는다. 금이 빛을 튕겨야 예쁜데, 구름 아래선 그냥 누런 덩어리로 찍힌다. 맑은 날 해질 무렵에 다시 오면 완전히 다른 사진이 나올 거다. 대신 흐린 날은 광장을 걷기가 훨씬 편했고, 사람도 적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는 각자 계산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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