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Pizza da Roby(PDR 피자) — 이탈리아 주인장이 굽는 도우, 그리고 식후에 나오는 한 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피자를 굳이 먹어야 하나 싶었다. 동남아를 수십 번 돌면서 배운 게 있다면, 현지 음식이 훌륭한 도시일수록 서양 음식은 대충 만든다는 것. 그런데 비엔티안은 예외다. 프랑스령이었던 도시라 빵과 커피, 유럽 음식의 저변이 다른 라오스 도시들과 확실히 다르다.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이 줄여서 "PDR 피자"라…
비엔티안 · Pizza da Roby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피자를 굳이 먹어야 하나 싶었다. 동남아를 수십 번 돌면서 배운 게 있다면, 현지 음식이 훌륭한 도시일수록 서양 음식은 대충 만든다는 것. 그런데 비엔티안은 예외다. 프랑스령이었던 도시라 빵과 커피, 유럽 음식의 저변이 다른 라오스 도시들과 확실히 다르다.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이 줄여서 "PDR 피자"라고 부르는 Pizza da Roby는 여행자 커뮤니티에서 이름값이 꽤 굳어진 집이다. 며칠 묵는 동안 여기만 두 번 갔고, 세 번째는 문이 안 열려서 못 갔다.
메콩강 쪽에서 걸어가는 길
가게는 비엔티안 시내에서 서쪽, 메콩강을 낀 도로 안쪽 골목에 있다. 왕궁이나 파탓루앙 같은 관광 동선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어서, 툭툭이나 오토바이를 잡아타는 게 편하다. 나는 저녁 먹으러 걸어갔는데, 도로 사정이 이렇다. 인도가 중간중간 끊기고 차선 구분도 느슨해서 차가 알아서 흘러간다.
전신주에 걸린 배너에 큼직하게 '40km/h'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 차들이 그 정도로 느긋하게 다닌다. 방콕이나 호치민의 그 살벌한 교통을 겪고 온 사람이라면 비엔티안 길 건너기는 한결 수월하게 느껴질 것이다. 다만 해가 지면 가로등이 촘촘하지 않아 어둡다. 걸어갈 거면 저녁 6시 전에 출발하는 게 낫고, 돌아올 때는 그랩 대신 로컬 툭툭을 잡아야 할 수도 있다. 미리 요금을 물어보고 타자.
도우가 다르다 — 새우 화이트 피자
자리에 앉아 처음 나온 게 이 피자였다. 나무 도마 위에 통째로 얹혀 나오는데, 사진으로는 크기 감이 잘 안 산다. 실제로는 성인 두 명이 하나 시켜서 다른 메뉴랑 나눠 먹으면 딱 맞는 크기다.
토마토 소스를 안 쓴 화이트 피자다. 새우가 인색하지 않게 들어가고, 얇게 저민 주키니 호박과 감자, 옥수수가 같이 올라간다. 감자와 옥수수 조합은 한국 피자에서 익숙한 맛인데 여기 건 결이 다르다. 감자는 으깬 게 아니라 덩어리째 구워져 포슬포슬하고, 치즈가 그 사이를 메우면서 짭조름한 감칠맛이 난다. 새우는 프리팬에 미리 익히지 않고 생으로 올려 화덕에서 같이 익힌 듯 탱탱했다.
정작 감탄한 건 토핑이 아니라 테두리였다. 가장자리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 부풀어 올라 군데군데 검게 그을렸는데, 뜯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공기주머니가 살아 있다. 씹으면 쫄깃하게 저항한다. 반죽을 하루 이상 저온 숙성시키지 않으면 이 식감이 안 나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인이자 주방장이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그럴 만했다.
마르게리타 한 조각과 튀김
화이트 피자만 먹으면 물릴까 싶어 토마토 소스 피자도 한 판 시켜 나눠 먹었다. 접시에 덜어놓고 보니 치즈가 축 늘어지지 않고 도우 위에 얌전히 얹혀 있다. 소스를 아끼지 않아 접시 바닥에 붉게 번진다. 짜지 않았다. 동남아 서양 음식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소금과 설탕을 과하게 쓰는 건데, 여기는 그 선을 안 넘는다.
옆에 놓인 튀김은 겉이 단단하게 튀겨져 속은 부드러웠다. 피자 사이에 하나씩 집어 먹기 좋다. 메뉴판에 사이드 항목이 몇 개 있으니 피자만 시키지 말고 하나쯤 곁들여보길 권한다.
식사 끝에 나오는 한 잔
직원들이 친절하다. 영어가 유창한 편은 아니어도 메뉴를 설명하려 애쓰고, 물잔이 비면 알아서 채워준다. 그런데 진짜는 계산 직전에 나온다.
주방장이 직접 담근 술을 작은 샷잔에 하나씩 돌린다. 뽀얀 우윳빛인데, 아마 크림 리큐어 계열인 듯했다. 향을 맡으면 달콤하고 한 모금 넘기면 목이 타지 않는다. 독하지 않다. 도수가 낮고 부드러워서 술 약한 사람도 무리 없이 비운다. 기름진 피자를 먹고 난 입안이 이 한 잔으로 정리된다.
테이블에 놓인 초록병은 라오 맥주(Beerlao). 라오스에서 굳이 수입 맥주를 시킬 이유가 없다. 어디서나 싸고 어디서나 시원하다. 피자와도 잘 붙는다.
가기 전에 알아둘 것
- 영업시간이 들쑥날쑥하다. 이 집의 가장 큰 함정이다. 구글 지도에 뜬 시간을 믿고 갔다가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있다. 나도 비엔티안을 떠나기 전날 한 번 더 가려다 시간이 안 맞아 결국 못 갔다. 페이스북 페이지나 전화로 당일 확인하고 움직이길 권한다.
-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가게라 주방 회전이 빠르지 않다. 화덕에서 한 판씩 굽는다. 저녁 시간에 사람이 몰리면 20~30분은 기다릴 각오를 하자.
- 테이블은 야외 목재 테이블 위주다. 건기 저녁엔 쾌적하지만 우기에는 자리 상황을 확인하는 게 낫다.
- 가격은 현지 물가 기준으로 저렴하진 않다. 라오스 로컬 국수 한 그릇보다는 확실히 비싸다. 다만 한국이나 방콕의 비슷한 수준 피자집과 비교하면 납득할 만한 선이다. 정확한 금액은 시기마다 바뀌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비엔티안 일정이 사나흘 이상이라면 카오삐약과 라오식 바게트 샌드위치 사이 어딘가에 이 집을 한 번 끼워 넣을 만하다. 관광지 근처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는 어정쩡한 서양 음식과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 나온다. 다만 문 여는 시간만은 반드시 확인하고 가라. 못 먹고 떠나는 아쉬움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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