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빠뚜사이, 계단 끝까지 올라가서 본 란쌍대로 — 오후 3시의 기록

비엔티안에 오면 결국 한 번은 빠뚜사이(Patuxai) 앞을 지나가게 된다. 시내 중심에서 란쌍대로(Lane Xang Avenue)를 따라 북동쪽으로 쭉 걸으면 도로 한가운데 이 회색 덩어리가 서 있다. 라오스에서는 '승리의 문'이라 부르고, 여행자들끼리는 그냥 "라오스 개선문"이라고 한다. 이번에 다시 온 건 아래에서…

비엔티안 · 빠뚜사이

비엔티안에 오면 결국 한 번은 빠뚜사이(Patuxai) 앞을 지나가게 된다. 시내 중심에서 란쌍대로(Lane Xang Avenue)를 따라 북동쪽으로 쭉 걸으면 도로 한가운데 이 회색 덩어리가 서 있다. 라오스에서는 '승리의 문'이라 부르고, 여행자들끼리는 그냥 "라오스 개선문"이라고 한다. 이번에 다시 온 건 아래에서 사진만 찍고 지나쳤던 지난번이 아쉬워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건물은 밑에서 보는 것보다 올라가야 값을 하는 곳이다.

파란 하늘 아래 정면에서 올려다본 빠뚜사이 개선문 전경, 아치 아래 사람들이 서 있고 오른쪽에 강한 햇빛이 들어온 모습
오후 3시경 정면. 해가 오른쪽 위에 걸려서 역광이 심했다. 정면 컷을 예쁘게 찍고 싶으면 이 시간대는 피하는 게 낫다.

실물을 처음 보면 살짝 당황스러울 수 있다. 사진에서 보던 파리 개선문 같은 매끈한 느낌이 아니라,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벽면에는 물 자국과 곰팡이 얼룩이 세로로 길게 내려와 있다. 그런데 이게 이 건물의 정체성이다. 완공된 상태로 도색까지 끝난 기념물이 아니라, 어딘가 미완성인 채로 서 있는 덩어리. 라오스 사람들도 이걸 굳이 감추지 않는다.

아치 아래 천장 — 여기서 고개를 안 들면 절반을 놓친다

정면 계단으로 올라가 아치 밑에 서면 반드시 고개를 뒤로 젖혀야 한다. 바깥의 무뚝뚝한 회색 콘크리트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위에 있다. 청록색 바탕에 금박을 입힌 천장화, 그 중앙에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코끼리(에라완)를 탄 신상이 있고, 사방으로 압사라 같은 천인들이 날아다닌다. 아치 안쪽 회랑 천장은 격자로 나뉘어 각 칸마다 부조가 박혀 있는데, 자세히 보면 칸마다 도상이 다르다.

빠뚜사이 아치 아래에서 올려다본 천장. 청록색 바탕에 금색 문양과 세 머리 코끼리를 탄 신상 그림, 주변 격자 천장에는 부조가 칸마다 박혀 있고 아래로 아치 너머 바깥 풍경과 오토바이가 보인다
아치 아래 천장. 회색 외벽과 이 천장의 온도차가 이 건물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이다.

여기는 그늘이라 시원할 것 같지만 실제론 아니다. 콘크리트가 하루 종일 달궈져서 아치 아래도 후끈하다. 다만 바람은 통한다. 사진 오른쪽 아래로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는 게 보이는데, 이 아래 공간은 관광지라기보다 그냥 동네 사람들이 그늘 삼아 지나다니는 통로에 가깝다.

위층 전시실 — 기대치를 낮추고 들어가면 나쁘지 않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계단으로 층층이 올라가게 되는데, 중간층들이 전시 공간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부분이 이 건물의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넓은 홀에 회색 카펫이 깔려 있고, 벽면에 라오어와 영어 병기 패널이 몇 장 붙어 있는 정도다. 유물이나 실물 전시는 거의 없다.

빠뚜사이 내부 전시층. 흰 벽과 흰 기둥, 회색 카펫 바닥에 베이지색 안내 패널 두 장이 붙어 있고 바닥에는 노란 유도선이 그려져 있다
패널 하나에 'Laos received the 2008 World Peace Gong', 옆에는 라오스 빠뚜사이와 파리 개선문의 차이를 비교하는 내용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

그래도 읽을 만한 건 있었다. 라오스 빠뚜사이와 프랑스 개선문의 차이를 대놓고 비교해놓은 패널이 그렇다. 형태는 개선문에서 가져왔지만 장식은 전부 라오스 불교·힌두 도상으로 채웠다는 것, 그게 이 건물의 논리다. 위층 천장의 그 청록색 코끼리를 보고 온 직후에 이 패널을 읽으면 납득이 된다. 바닥에 노란 테이프로 유도선이 그어져 있는데, 관람 동선이라기보다 그냥 벽 앞 접근을 막는 선에 가깝다.

디지털 입국신고서 (LDIF) 신청하기

빠뚜사이 내부의 넓은 전시 홀. 흰 회벽 장식이 있는 천장과 굵은 기둥, 벽면에 사진 패널이 줄지어 붙어 있고 검은 옷에 모자를 쓴 관람객 한 명이 걸어가고 있다
다른 층 전시 홀. 벽걸이 TV는 꺼져 있었고, 사람은 나 포함 서너 명뿐이었다. 왼쪽 계단으로 들어오는 빛이 강해서 눈이 잠깐 적응을 못 한다.

층마다 천장 회벽 장식은 꽤 정성 들여 만들어져 있다. 조명은 어둡고 카펫은 낡았지만, 기둥머리와 천장 몰딩의 라오스식 연꽃·덩굴 문양은 대충 한 게 아니다. 전시 내용보다 건물 자체를 관찰하는 재미로 보는 층이라고 생각하면 실망이 덜하다. 참고로 층과 층 사이 계단은 좁고 가파르고, 난간이 낮다. 슬리퍼보다는 발이 감싸지는 신발이 낫다.

옥상 아래 테라스, 그리고 정상

중간에 한 번 바깥 테라스로 나오게 되는데, 여기서 건물의 상층부를 정면으로 올려다볼 수 있다. 처마 아래로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몰딩이 빙 둘러 있고, 그 위 난간마다 합장한 인물 부조가 하나씩 박혀 있다. 문 위 박공에는 앉아 있는 불상이 조각돼 있다. 아래 광장에서는 절대 안 보이는 디테일이다.

빠뚜사이 중간 테라스에서 올려다본 상층부. 연꽃 봉오리 몰딩과 합장한 인물 부조가 늘어선 난간, 박공에 불상이 조각된 출입구와 은색 난간이 달린 계단
테라스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이 계단을 지나면 마지막 전망층이다. 그늘이 거의 없어서 이 구간이 제일 덥다.

정상에 올라오면 사방이 뚫린 옥상이다. 성벽처럼 톱니 모양 난간이 둘러 있고, 그 사이로 도시가 보인다. 난간 높이가 가슴 정도라 아이를 데리고 왔다면 손을 놓지 않는 게 좋다.

빠뚜사이 옥상의 톱니 모양 낡은 콘크리트 난간 너머로 보이는 비엔티안 시내와 넓은 파란 하늘, 왼쪽에 주황 지붕의 사원 건물과 통신탑
옥상 난간. 이끼와 물때가 그대로다. 하늘이 워낙 넓게 열려서 오히려 이 낡은 질감이 그림이 된다.

이 자리에 오르는 진짜 이유 — 란쌍대로가 일직선으로 꽂힌다

옥상 남서쪽으로 몸을 돌리면 이번 방문의 답이 나온다. 빠뚜사이 발치에서 시작된 란쌍대로가 자로 그은 듯 일직선으로 도심까지 뻗어 있고, 그 끝이 메콩강 방향으로 사라진다. 중앙분리대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차가 흐르고, 왼쪽엔 금색 박공을 얹은 주황 지붕 건물, 오른쪽엔 유리 외벽의 신축 오피스와 붉은 간판 건물이 서 있다. 도로 폭은 넓은데 차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게 비엔티안의 속도다.

빠뚜사이 옥상에서 내려다본 란쌍대로. 일직선으로 뻗은 넓은 도로에 차와 초록색 미니밴이 달리고, 아래쪽에는 잔디밭과 콘크리트 보행로가 부채꼴로 펼쳐져 있다
옥상에서 본 란쌍대로. 아래쪽 초록 미니밴이 시내버스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 너머가 메콩강 쪽이다.

반대편, 그러니까 북동쪽으로 돌면 빠뚜사이 공원(짜오아누웡 쪽이 아니라 문 바로 앞 광장)이 통째로 내려다보인다. 하늘색 원형 분수, 부채꼴로 갈라진 잔디밭, 그 사이를 가르는 보도. 대칭이 정확해서 위에서 봐야 설계 의도가 읽힌다. 아래에서 걸을 땐 그냥 넓은 광장일 뿐이다.

빠뚜사이 옥상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는 관광객들과,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색 원형 분수와 부채꼴 잔디밭이 있는 광장, 멀리 비엔티안 시내 전경
난간에 붙어 아래를 보는 사람들. 이 각도의 원형 분수는 지상에서는 절대 안 나온다. 광장 오른쪽 가장자리에 노점 파라솔이 줄지어 있다.

위치와 접근

빠뚜사이는 비엔티안 시내 한복판의 로터리 안에 있다. 남푸 분수 근처 숙소에 묵는다면 란쌍대로를 따라 도보로 갈 만한 거리지만, 그늘이 거의 없는 직선 대로다. 낮 12시~오후 2시에 걸어가면 도착하기도 전에 지친다. 나는 툭툭 대신 그랩 오토바이를 불러 갔고, 시내에서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툭툭을 잡을 경우 반드시 타기 전에 금액을 확정해라 — 이 근처는 관광지 가격이 붙는다.

주의할 점 하나. 빠뚜사이는 도로 한가운데 섬처럼 있어서, 광장으로 건너가려면 로터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신호가 있긴 한데 오토바이가 잘 안 선다. 현지인이 건널 때 같이 붙어서 건너는 게 제일 안전하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다 보고 내려오니 옷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도 다음에 비엔티안에 또 오면 아마 한 번 더 올라갈 것 같다.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에 이해시켜 주는 자리가 이 도시엔 흔치 않고, 빠뚜사이 옥상은 그중 가장 저렴한 선택지다. 회색 콘크리트 얼룩까지 포함해서, 이 건물은 지금 라오스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꽤 정직하게 보여준다.

이어서 볼 글

  • 비엔티안 탓루앙, 흐린 날 오후 다섯 시에 걸어본 황금탑

    라오스 비엔티안 시내에서 툭툭으로 15분쯤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도로가 갑자기 넓어지고, 담장 너머로 금색 덩어리가 불쑥 솟는다. 탓루앙(Pha That Luang). 라오스 지폐와 국가 문장에도 들어가 있는 그 탑이다. 나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매번 오후 늦게 왔다. 낮 한 시쯤 오면 광장 바닥이 프라이팬이 되어서…

    비엔티안 · 탓루앙
  • 비엔티안 한복판에서 만난 교토식 물방울떡 — KYO Cafe & Meal 기록

    비엔티안은 오후 두 시가 제일 사납다. 그늘도 소용없고, 등에 셔츠가 붙어 있는 게 느껴지는 시간. 그날도 시내를 걷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에어컨 있는 건물로 피신했는데, 거기서 KYO Cafe & Meal 간판을 봤다. 라오스에서 일본 찻집을 만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천장이 뚫린 노출 콘크리트 구조에 흰 곡선 간판…

    비엔티안 · KYO Cafe & Meal
  • 비엔티안 Le Vendôme, 라오스에서 먹는 프랑스식 저녁 — 피자·카르보나라·샐러드 세 접시 기록

    메콩강 쪽 바람이 도로까지 넘어오던 저녁, 왓 인펭(Wat Inpeng) 골목 안쪽에 있는 Le Vendôme Restaurant에 들어갔다. 비엔티안에서 프랑스 요리 이야기가 나오면 이름이 꼭 한 번은 나오는 집이다. 라오스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흔적은 아침 바게트 노점에서 제일 흔하게 보이지만, 저녁에 제대로 접시에 담…

    비엔티안 · Le Vendôme Restaur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