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Nazim, 에어컨 밑에서 망고라씨 한 주전자 비우고 온 저녁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사흘째. 낮에 메콩강변을 걷다가 셔츠가 등에 완전히 달라붙어서, 오늘은 무조건 실내에 앉겠다고 마음먹고 인도 음식점 Nazim으로 들어갔다. 동남아 어느 도시를 가도 인도 식당은 하나씩 있는데, 여기 비엔티안 지점은 문을 열자마자 냉기가 훅 나오는 게 첫인상이었다. 벽걸이 에어컨이 창가 쪽에 붙어 돌아…

비엔티안 · Nazim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사흘째. 낮에 메콩강변을 걷다가 셔츠가 등에 완전히 달라붙어서, 오늘은 무조건 실내에 앉겠다고 마음먹고 인도 음식점 Nazim으로 들어갔다. 동남아 어느 도시를 가도 인도 식당은 하나씩 있는데, 여기 비엔티안 지점은 문을 열자마자 냉기가 훅 나오는 게 첫인상이었다. 벽걸이 에어컨이 창가 쪽에 붙어 돌아가고 있었고, 자리에 앉아 5분쯤 지나니 팔에 소름이 돋았다. 라오스에서 이 정도로 시원한 식당은 흔치 않다.

일단 시원하다 — 실내와 자리

인테리어는 화려하지도 낡지도 않은, 검은 다마스크 무늬 의자에 체크 테이블보를 씌운 흔한 남아시아 식당 스타일이다. 통유리 창 너머로 바깥 도로가 그대로 보여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가 유리 한 겹 뒤로 멀게 들린다. 손님은 인도·중동계와 서양 배낭객이 섞여 있었고 옆 테이블에서는 계속 영어와 힌디가 오갔다. 혼자 가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테이블 위에 놓인 비어라오 프리미엄 갈색 병 두 개, 뒤로 벽걸이 에어컨과 통유리 창이 보이는 식당 실내
병 뒤로 벽걸이 에어컨이 보인다. 비어라오 프리미엄, 커리랑 같이 마시면 목이 씻긴다.

비어라오는 라오스 어디서나 마시지만 매운 커리랑 붙여놓으면 확실히 다르다. 탄산이 강하지 않고 밍밍한 편이라 향신료 뒤에 남는 기름기를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는 병으로 나왔고 잔은 작은 유리컵을 준다. 얼음은 따로 안 줬다.

망고라씨는 컵이 아니라 주전자로 나온다

이 집에서 딱 하나만 시키라면 망고라씨다. 그런데 예상한 물건이 아니었다. 유리 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손잡이 달린 진짜 피처에 분홍 빨대가 꽂혀 있고, 안에는 걸쭉한 노란 요거트가 가득 차 있다. 표면 아래로 망고 과육 조각이 몇 개 떠다니는 게 유리 너머로 보인다.

유리 주전자에 가득 담긴 노란 망고라씨와 분홍색 빨대, 뒤로 식당 안 손님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망고라씨. 컵이 아니라 주전자다. 둘이서 나눠 마셔도 남는다.

한 모금 빨아올리면 빨대가 뻑뻑할 정도로 되다. 단맛은 세게 치고 들어오는데 요거트 산미가 뒤를 잡아줘서 끝이 물리지 않는다. 라오스 낮 더위에 이만한 게 없다. 다만 양이 많아서 혼자 다 마시면 배가 차버린다. 커리를 제대로 먹을 생각이면 음식 나온 뒤에 시키거나, 일행과 나눠 마시길 권한다. 나는 순서를 잘못 잡아서 라씨를 반쯤 비운 상태로 밥이 나왔고, 결국 비리야니를 남겼다.

디지털 입국신고서 (LDIF) 신청하기

바나나 로띠 — 후식인데 본편을 이긴다

바나나 로띠는 검은 접시에 종이 깔고 격자로 잘라서 내준다. 겉은 기름에 지져 갈색 반점이 촘촘하고, 위에는 연유가 흘러내려 반들거린다. 한 조각 집으면 가장자리가 바스러지듯 부서지는데, 그 안쪽은 계란 노른자 색과 으깬 바나나가 섞여 눅진하다. 겉 바삭 속 촉촉이라는 말이 이렇게 정직하게 맞는 음식도 드물다.

검은 접시 위 종이에 올려 격자로 자른 바나나 로띠, 표면에 연유가 흘러 반들거린다
바나나 로띠. 격자로 잘라 나와서 손으로 집어 먹기 좋다.

뜨거울 때 먹어야 한다. 식으면 연유가 굳으면서 눅눅해지고, 바삭한 맛이 절반은 사라진다. 나오자마자 손 데어가며 먹는 게 맞다. 손가락에 연유가 묻으니 물티슈를 미리 꺼내두면 편하다.

커리, 탄두리, 비리야니 — 기본기

메인은 넷이서 여러 개를 시켜 가운데 놓고 나눠 먹었다. 붉은 커리에 토마토가 통째로 들어간 머튼 계열 하나, 탄두리 향이 강하게 도는 붉은 치킨 한 그릇, 그리고 시금치가 곱게 갈린 초록 팔락 하나. 옆에는 새우가 박힌 주황색 비리야니가 오이 세 조각과 라임 한 쪽을 얹고 나왔다. 난은 바구니에 따로 담겨 나오는데, 부풀어 오른 자리가 살짝 눌은 게 화덕에서 바로 나온 티가 났다.

식탁 가득 차려진 붉은 머튼 커리, 탄두리 치킨, 초록 팔락, 새우 비리야니와 바구니에 담긴 난, 로띠, 비어라오 잔
한 상 차림. 왼쪽 아래가 토마토 들어간 붉은 커리, 가운데 주황색이 새우 비리야니, 오른쪽 초록은 팔락.

토마토 커리는 국물이 걸쭉하기보다 묽은 쪽이고, 고기는 젓가락 없이 숟가락으로 갈라질 만큼 물렀다. 매운맛은 한국 사람 기준으로 중간. 청양고추처럼 찌르는 매움이 아니라 향신료가 뒤늦게 올라오는 매움이라, 처음 몇 술은 순한데 그릇 바닥이 보일 때쯤 이마에 땀이 맺힌다. 팔락은 짜지 않고 부드러워서 매운 커리 사이에 끼워 먹으면 입이 쉰다. 비리야니는 향이 강하지 않은 편이라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은 일행도 잘 먹었다.

위치와 가는 법

비엔티안 시내에서 이 근처는 걸어다니기 애매한 위치라, 시내 중심에서 온다면 툭툭이나 오토바이 호출 앱을 쓰는 편이 낫다. 낮에 걸어가면 그늘이 거의 없어서 도착할 때쯤엔 이미 지쳐 있다. 아래 지도 좌표는 내가 사진을 찍은 그 자리다.

가격은 영수증을 챙겨두지 않아 정확히 옮기지 못한다. 다만 라오스 물가 기준으로 현지 국수집보다는 확실히 비싸고, 여럿이 나눠 먹으면 부담이 크지 않은 선이었다. 메뉴판 가격과 영업시간은 방문 전 현장 확인을 권한다. 비엔티안은 식당마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 문을 닫아두는 곳이 있다.

다음에 가면 이렇게 할 생각

나올 때 유리문을 밀자마자 바깥 열기가 얼굴에 붙었다. 한 시간 반쯤 시원한 데 앉아 배를 채우고 나온 것만으로 그날 오후가 통째로 살아났다.

이어서 볼 글

  • 비엔티안 탓루앙, 흐린 날 오후 다섯 시에 걸어본 황금탑

    라오스 비엔티안 시내에서 툭툭으로 15분쯤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도로가 갑자기 넓어지고, 담장 너머로 금색 덩어리가 불쑥 솟는다. 탓루앙(Pha That Luang). 라오스 지폐와 국가 문장에도 들어가 있는 그 탑이다. 나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매번 오후 늦게 왔다. 낮 한 시쯤 오면 광장 바닥이 프라이팬이 되어서…

    비엔티안 · 탓루앙
  • 비엔티안 한복판에서 만난 교토식 물방울떡 — KYO Cafe & Meal 기록

    비엔티안은 오후 두 시가 제일 사납다. 그늘도 소용없고, 등에 셔츠가 붙어 있는 게 느껴지는 시간. 그날도 시내를 걷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에어컨 있는 건물로 피신했는데, 거기서 KYO Cafe & Meal 간판을 봤다. 라오스에서 일본 찻집을 만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천장이 뚫린 노출 콘크리트 구조에 흰 곡선 간판…

    비엔티안 · KYO Cafe & Meal
  • 비엔티안 Le Vendôme, 라오스에서 먹는 프랑스식 저녁 — 피자·카르보나라·샐러드 세 접시 기록

    메콩강 쪽 바람이 도로까지 넘어오던 저녁, 왓 인펭(Wat Inpeng) 골목 안쪽에 있는 Le Vendôme Restaurant에 들어갔다. 비엔티안에서 프랑스 요리 이야기가 나오면 이름이 꼭 한 번은 나오는 집이다. 라오스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흔적은 아침 바게트 노점에서 제일 흔하게 보이지만, 저녁에 제대로 접시에 담…

    비엔티안 · Le Vendôme Restaur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