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레드우드(Redwood) — 원판 돌려가며 먹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정찬, 락사 한 그릇이 기준점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제대로 된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요리를 찾는다면 결국 이름이 하나로 좁혀진다. 레드우드다. 정확히는 흰 담벼락에 로즈골드 레터로 REDWOOD가 박힌 건물 안에 사계헌(四季軒) Four Seasons Restaurant과 Uncle Chris Kopitiam이 함께 들어가 있는 구조다. 우리는 일행 여덟…
비엔티안 · 레드우드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제대로 된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요리를 찾는다면 결국 이름이 하나로 좁혀진다. 레드우드다. 정확히는 흰 담벼락에 로즈골드 레터로 REDWOOD가 박힌 건물 안에 사계헌(四季軒) Four Seasons Restaurant과 Uncle Chris Kopitiam이 함께 들어가 있는 구조다. 우리는 일행 여덟 명이 룸을 잡고 저녁을 먹었는데, 비엔티안에서 이 정도 격식과 이 정도 맛을 동시에 챙기는 집은 손에 꼽는다.
담벼락 사인부터 격이 다르다 — 입구와 주차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알아볼 수 있다. 도로변 흰 벽에 큼직한 REDWOOD 사인, 그 아래 사계헌 로고와 Uncle Chris Kopitiam 명패가 나란히 붙어 있다. 마당은 그대로 주차장이다. 우리가 갔던 날엔 레인지로버와 벤츠 CLA45 AMG가 입구를 반쯤 막고 서 있었다. 라오스 번호판을 단 차들이었다. 비엔티안에서 이런 차종이 몰려 있는 식당은 대체로 현지 사업가·주재원 회식 장소라는 뜻이고, 실제로 그랬다.

주의할 점 하나. 마당 주차 공간이 넓지 않아서 뒤에 들어온 차가 앞차를 막는 구조가 자주 생긴다. 툭툭이나 록(LOCA) 앱 차량으로 가면 이 스트레스가 없다. 건물은 3층짜리 흰색 신축 건물이고 발코니가 층마다 나 있는데, 식당 공간은 1층 로비를 통해 들어간다.
문 열자마자 재신야(財神爺) — 로비 분위기
입구를 통과하면 정면 원탁 위에 커다란 도자기 재신(財神) 상이 앉아 있다. 금박 입힌 원보를 한가득 담은 항아리를 들고, 다른 손엔 '財神到'라고 쓴 붉은 패를 들었다. 청록·주홍·금색으로 채색된 화려한 물건인데 조명 아래서 유약이 번들거려서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대리석 톤 바닥에 소파 응접 세트, 벽에는 수묵 느낌의 대형 회화. 로비 한쪽에는 QR 결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재신상 하나로 이 집의 정체성이 설명된다. 라오스 로컬 식당의 편안함이 아니라, 싱가포르·말레이시아 화교 정찬 문화를 그대로 옮겨온 자리다. 신발 벗을 일 없고, 반바지에 슬리퍼로 가면 살짝 겉돈다. 남자는 카라 있는 셔츠, 여자는 편한 원피스 정도면 충분하다.
룸이 완비된 원탁 — 가족·회식에 최적
예약할 때 룸을 달라고 했더니 열 명은 앉을 수 있는 원탁 룸으로 안내받았다. 문 닫으면 홀 소음이 거의 안 들어온다. 룸 안에 스피커가 따로 서 있어서 생일이나 회갑 같은 자리를 여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아이 데리고 온 가족 단위 손님이 홀보다 룸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애가 떠들어도 눈치 볼 일이 없다.
세팅이 꼼꼼했다. 자리마다 백자 접시에 토끼 모양으로 접은 냅킨, 젓가락·수저 받침, 포크·나이프, 와인잔과 물잔이 전부 깔려 있었다. 테이블 한가운데는 유리 회전판(라지 수전)이다. 정중앙 목재 판 위에 간장·식초 병과 이쑤시개통, 그리고 안내 카드가 놓여 있다. 이 원판이 이 집 식사의 핵심이다.

중앙 원판을 돌리며 나눠 먹는 방식
주문한 요리는 전부 원판 위에 올라온다. 그다음부터는 각자 조금씩 돌려가며 덜어 먹으면 된다. 개인 접시가 계속 교체되기 때문에 소스가 섞일 걱정도 없다. 여덟 명이 여덟 가지 요리를 시켰는데, 1인 1메뉴로 먹었다면 두세 가지밖에 못 맛봤을 것이다. 원판 덕에 전부 한 입씩 봤다.
그날 원판에 오른 것들을 적어둔다.
- 철판 두부 — 갈색 뚝배기형 철판에 나와서 끝까지 뜨겁다. 계란과 두부가 엉긴 소스가 밥을 부른다.
- 사테 — 대나무 꼬치에 구운 고기, 옆에 양파와 오이를 곁들여 낸다. 땅콩 소스는 종지로 따로.
- 대하 요리 — 큼직한 새우를 붉은 고추와 함께 볶아 접시에 길게 깔아냈다. 껍질 벗기는 손이 바빠진다.
- 공심채 볶음 — 마늘과 고추 넣고 센 불에 볶은 것. 기름이 무겁지 않다.
- 튀긴 만터우(꽃빵) — 접시에 노릇하게 여러 개, 옆에 연유 종지가 따로 나온다. 게살 소스나 커리에 찍어 먹으라는 뜻인데 그냥 연유만 찍어도 맛있다.
- 매운 소스 요리 — 검은 뚝배기에 붉은 소스가 걸쭉하게 담겨 나왔다. 이 집에서 가장 매운 축이었다.
- 고기·야채 볶음 몇 접시.

와인 리스트가 있다는 점도 적어둔다. 우리 테이블은 레드와인을 시켜 마셨다. 라오스에서 밥 먹으면서 비어라오 말고 와인을 고르는 상황 자체가 흔치 않다. 잔이 제대로 된 와인잔이라는 것도 이 집의 성격을 말해준다.
이 집의 기준점, 락사 한 그릇
여러 요리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락사다. 코코넛 밀크와 새우 기름이 섞인 국물이 진한 주황색으로 올라오고, 위에 삶은 계란 반쪽, 어묵(피시케이크) 조각, 새우, 숙주, 그리고 다진 락사잎(다운 케숨)이 수북하게 얹힌다. 이 락사잎이 있느냐 없느냐가 진짜와 흉내를 가른다. 비린 듯 알싸한 향이 국물의 무거움을 잘라준다.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먹어보면 매운맛보다 고소함이 먼저 온다. 옆에 삼발 종지가 따로 나오니 매운 걸 좋아하면 조금씩 풀어가며 조절하면 된다. 나는 절반쯤 먹고 삼발을 반 스푼 넣었는데 그때부터 이마에 땀이 났다. 처음부터 다 넣으면 국물 본래 맛을 못 본다.

아쉬웠던 것도 있다. 면이 조금 무른 편이었다. 싱가포르 카통 쪽에서 먹던 굵은 쌀국수의 탱탱함을 기대하면 살짝 다르다. 국물 온도는 아주 뜨겁지는 않고 적당히 먹기 좋은 정도로 나왔는데, 팔팔 끓는 걸 원하는 사람에겐 미지근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지막에 남은 두 조각
배가 부를 때쯤 접시에 유부주머니 같은 것 두 개가 남았다. 얇은 껍질에 다진 속을 채워 튀긴 뒤 맑은 전분 소스를 끼얹은 요리인데, 위에 붉은 고추 한 조각이 얹혀 있고 주변에 튀긴 마늘·실파·당근이 흩어져 있었다. 꼬치 하나가 꽂힌 채로 남아 있었던 게 사테 꼬치를 여기 옮겨둔 흔적이다.

다 먹고 나면 접시가 이렇게 남는다. 이게 원판 식사의 결말이다. 각자 앞접시에 쌓아두지 않고 계속 덜어 먹으니 음식이 남지 않는다.
위치와 가는 법
위치는 비엔티안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구역이다. 큰길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형태라 구글맵 좌표를 찍고 가는 편이 확실하다. 주변에 파란 유리 외장의 오피스 빌딩이 있어서 그걸 표식 삼으면 된다. 툭툭 기사에게 'Redwood' 또는 'Four Seasons Restaurant'이라고 말하면 대개 알아듣는데, 그래도 좌표를 보여주는 게 빠르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 룸은 미리 예약하라. 네 명 이상이면 룸 요청을 넣는 게 낫다. 홀도 나쁘지 않지만 룸의 조용함이 이 집의 큰 장점이다.
- 원판 식사는 4인 이상일 때 진가가 나온다. 둘이 가면 요리 두세 가지가 한계라 락사 같은 단품 위주로 가는 편이 낫다.
- 비엔티안 로컬 식당 기준으로는 확실히 비싼 편이다. 라오스 물가를 생각하면 놀랄 수 있으니 가격은 현장에서 메뉴판으로 확인하길 권한다. 대신 접객·그릇·룸 관리 수준이 값을 한다.
- 매운 정도를 조절하고 싶으면 삼발을 처음부터 풀지 말 것.
- 튀긴 만터우는 남은 소스를 찍어 먹으라고 나오는 것이니 요리보다 먼저 다 먹어치우지 말 것. 나는 첫 방문 때 이걸 몰라서 빵부터 비웠다.
- 영업시간과 정확한 예약 방식은 현장 확인을 권한다.
비엔티안에 오래 있다 보면 라오스 음식과 태국식 볶음밥의 반복에 물릴 때가 온다. 그때 락사 국물 한 숟갈이 얼마나 반가운지는 겪어봐야 안다. 손님 접대나 가족 식사 자리를 잡아야 한다면, 나는 여기를 먼저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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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 · Le Vendôme Restaur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