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SENGLAO 카페 — 정원에 처박힌 폭스바겐 비틀과 라오스 첫 서구식 펍 이야기
비엔티안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빠져나온 동네, 담벼락에 하얀 시멘트 꽃무늬 블록이 박힌 라오스 특유의 주택가 골목에 SENGLAO(แสงลาว) 카페가 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 말로는 라오스에 처음 생긴 서구식 펍이라고 한다. 진위는 내가 문서로 확인한 게 아니니 그대로 옮겨두지만, 적어도 비엔티안에서 이 규모와…
비엔티안 · SENGLAO
비엔티안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빠져나온 동네, 담벼락에 하얀 시멘트 꽃무늬 블록이 박힌 라오스 특유의 주택가 골목에 SENGLAO(แสงลาว) 카페가 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 말로는 라오스에 처음 생긴 서구식 펍이라고 한다. 진위는 내가 문서로 확인한 게 아니니 그대로 옮겨두지만, 적어도 비엔티안에서 이 규모와 이 밀도의 인테리어를 갖춘 곳은 여기 말고 본 기억이 없다. 라오맥주 한 병에 1만 킵 안팎이면 마시는 도시에서, 굳이 이런 데를 짓고 채워 넣은 사람의 고집이 문 앞부터 보인다.
길에서 이미 시작된다. 도로변 화단에 빨간 밴 한 대가 바퀴가 잠기도록 처박혀 있고, 옆구리에 SENGLAO CAFÉ 로고가 큼직하게 붙어 있다. 간판이랄 것도 없이 이 차가 간판이다. 처음 가는 사람은 구글맵을 보다가도 이 빨간 덩어리를 먼저 발견하게 된다.

정원의 폭스바겐 비틀, 그리고 아까운 상태
대문을 들어서면 자갈과 잔디가 섞인 넓은 앞마당이 나오고, 그 한복판에 흰색 폭스바겐 비틀이 세워져 있다. 주인이 실제로 타고 다녔던 차라고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보면 감상이 좀 복잡해진다. 지금 상태는 솔직히 거의 폐차 수준이다. 지붕은 도장이 다 벗겨져 녹이 올라왔고, 앞 펜더 아래쪽은 부식이 구멍 직전까지 갔다. 휠 캡의 VW 로고만 멀쩡히 남아 있다. 라오스의 습기와 스콜을 몇 번 계절째 그대로 맞았을 것이다. 야외 오브제로 세워둘 거면 방청 처리라도 해줬으면 싶었다.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마당에는 비틀만 있는 게 아니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포드 픽업트럭 한 대가 플루메리아 나무 그늘에 코를 박고 서 있다. 보닛의 포드 엠블럼과 별 모양 그릴 장식이 남아 있고, 노란 라오스 번호판이 앞범퍼에 그대로 달려 있다. 이쪽은 비틀보다 더 심하게 삭았다. 흰 도장 위로 녹이 물감 번지듯 퍼져서, 오히려 그 얼룩이 사진에서는 예쁘게 나온다.

입구 — 마릴린 먼로와 전구 간판
건물 처마 아래에 전구를 촘촘히 박은 SENGLAO 입체 간판이 달려 있고, 그 아래 지하철 환풍구 위 포즈의 마릴린 먼로 실물 크기 조형물이 서 있다. 옆에는 촬영용 스포트라이트를 흉내 낸 철제 조명 소품. 안쪽으로는 케이크 쇼케이스가 보이고, 조명이 노랗게 떨어진다.
입구 왼쪽 칠판에 영업시간이 적혀 있다. MONDAY – SUNDAY 11:00 – 22:00, 라오어로도 같은 시간이 병기돼 있다. 다만 이런 건 언제든 바뀌니 현장 확인 권장. 참고로 간판은 pub이 아니라 Café로 붙어 있는데, 실제로는 낮엔 카페, 저녁엔 맥주와 피자를 내는 쪽으로 굴러간다.

위치와 가는 법
메콩강변 나이트마켓이나 파탓루앙 쪽에서 오면 툭툭이나 로카(LOCA) 앱 차량이 편하다. 시내 중심에서 차로 10~15분 거리이고, 골목 안쪽이라 걸어서 찾아가는 곳은 아니다. 좌표를 찍고 가면 확실하다.
내가 갔던 날은 해 질 무렵에 들어가서 어두워진 뒤에 나왔는데, 이 집은 밤이 훨씬 낫다. 마당 위로 걸어둔 전구 줄에 불이 들어오면 낮에 그저 낡아 보이던 비틀이 갑자기 세트장 소품처럼 살아난다. 실내에서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이 각도가 개인적으로 이날 제일 마음에 들었다.


실내는 영화·음악 굿즈 창고에 가깝다
부지가 넓어서 실내도 여러 구획으로 나뉜다. 벽 한 면은 통째로 붉은 벽돌이고, 그 앞에 낡은 내셔널(NATIONAL) 목재 캐비닛 TV, 붉은 인조가죽 안락의자, 하드케이스 여행가방 네 개, 함석 쓰레기통과 양동이가 줄지어 놓여 있다. 소품숍 진열이 아니라 진짜 오래 쓴 물건들을 모아둔 티가 난다.

다른 쪽 코너에는 붉은 네온으로 SENGLAO On Wheels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 낡은 체스터필드 가죽 소파와 액자 사진 아홉 점이 벽에 걸려 있다. 사진들은 라오스 사람들이 이 빨간 밴 앞에 모여 있는 장면, 시장 풍경 같은 것들이라 가게가 걸어온 시간을 대충 짐작하게 한다. 소파 가죽은 여기저기 벗겨졌는데, 이 공간에서는 그게 흠으로 안 보인다. 조명이 붉어서 인물 사진은 색이 확 물든다 — 셀카를 찍을 거면 화이트밸런스를 한 번 만져야 한다.

화장실 가는 복도가 사실 이 집 인테리어의 하이라이트다. 벽 전체가 오래된 영화·음악 포스터로 도배돼 있다 — 레드 제플린과 조 월시 오클랜드 스타디움 공연 포스터, RUSH 내한 포스터, 워홀풍 마릴린 먼로, 데이비드 보위, 제국의 역습, 레이더스, 그리고 일본판 용쟁호투(Enter the Dragon)까지. 그 앞에 검은 가죽 재킷 차림의 엘비스 조형물이 마이크를 잡고 서 있고, 화장실 문에는 'ACTRESSES RESTROOM'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남자 쪽은 'ACTORS'다.)

그리고 화장실 안. 타일 위쪽에 일본어 표기가 그대로 남은 용쟁호투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그 아래 하얀 타일에 도마뱀붙이 한 마리가 딱 붙어 있었다. 라오스에서는 어디서나 보는 손님이라 놀랄 일은 아니지만, 브루스 리 포스터 밑에 도마뱀이 붙어 있는 구도는 꽤 웃겼다. 벌레가 싫은 사람은 참고하시라 — 야외 자리라면 해 진 뒤 모기도 있다.

실내 안쪽 연못가에는 빨갛게 도색한 BMW 싱글 실린더 클래식 바이크가 한 대 놓여 있다. 바깥 자동차들과 달리 이건 관리 상태가 좋다. 탱크의 BMW 로고와 크롬 머플러가 반짝반짝하다. 유리창 너머로 잉어 연못이 보이고, 물소리가 낮게 깔린다.

생맥주와 음식 — 여기가 진짜 본론이다
인테리어만 보고 나오면 절반만 본 거다. 자리 잡고 앉아 생맥주부터 시켰는데, 잔이 냉동고에서 방금 꺼낸 듯 서리가 하얗게 낀 채로 나왔다. 30도가 넘는 저녁에 이 잔을 손에 쥐는 감각이 반칙이다. 거품층이 손가락 두 마디는 되게 올라와 있고, 첫 모금이 딱 라오맥주 특유의 가볍고 시원한 라거 맛. 함께 나온 얼음물 피처도 계속 채워준다.

피자는 살라미 피자를 시켰다. 도우가 얇고 테두리만 크게 부풀어 오른 나폴리 스타일에 가깝고, 가장자리에 불맛 나는 갈색 반점이 제대로 앉아 있다. 재미있는 건 토핑인데, 살라미와 모차렐라 위에 생 홍고추와 쪽파를 그대로 뿌려서 낸다. 이탈리아 사람이 보면 뭐라 할 조합이지만 동남아에서 먹으면 이게 또 맞다. 고추 씨까지 살아 있어서 매운 걸 못 먹는 일행은 한 조각 먹고 고추를 골라냈다. 시켜서 후회는 없고, 맥주랑은 확실히 붙는다.

파스타는 관자 크림 페투치네. 큼직한 관자 세 알이 겉만 노릇하게 시어링돼서 올라오는데, 가운데는 제대로 반투명하게 살아 있었다. 크림소스에 후추와 허브를 갈아 넣었고 파르미지아노를 채 썰어 얹어준다. 라오스에서 이 정도 관자 굽기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였다. 다만 소스가 꽤 진해서 둘이 나눠 먹기에 딱 좋고, 혼자 한 접시는 후반에 물린다.

피시 앤 칩스도 하나 추가했다. 빵가루가 굵게 서는 일본식 튀김옷이라 영국식의 두툼한 배터 튀김을 기대하면 다른 물건이 나온다. 감자는 웨지로 큼직하게 썰어 튀겼고, 타르타르 소스와 레몬 한 조각이 함께 나온다. 나쁘지 않은데 세 접시 중에서는 가장 평범했다. 다시 간다면 이건 빼고 피자를 하나 더 시킬 것 같다. 접시에 붙은 라오어 로고(แสงลาว)가 예뻐서 그건 따로 찍어뒀다.

참고로 아래 사진은 위와 같은 맥주잔을 찍은 컷이 한 장 더 남은 것이다. 새로 시킨 두 번째 잔이 아니라 같은 순간의 중복 프레임이라 사실대로 적어둔다 — 그만큼 이 잔에 카메라를 여러 번 들이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들
- 시간대: 인테리어와 사진이 목적이면 해 지기 30분 전 도착이 좋다. 낮 사진과 밤 사진을 한 번에 건질 수 있고, 전구 켜지는 순간을 볼 수 있다.
- 가격: 라오스 로컬 식당보다는 확실히 비싼 편이다. 다만 내가 갔을 때의 금액을 기억에 의존해 적으면 틀릴 수 있어서 쓰지 않는다. 메뉴판이 입구 칠판과 테이블에 있으니 현장 확인 권장.
- 자리 선택: 붉은 네온 코너는 사진 색이 강하게 물든다. 음식 사진을 예쁘게 찍고 싶으면 창가 나무 테이블 쪽이 낫다.
- 매운 것: 피자 위 생고추는 장식이 아니라 진짜 매운 고추다. 주문할 때 빼달라고 말할 수 있다.
- 아쉬웠던 점: 마당의 비틀과 포드 픽업이 방치에 가깝게 삭고 있다. 주인의 추억이 담긴 차라고 들어서 더 그랬다. 몇 년 뒤에도 이 사진이 찍힐지는 모르겠다.
비엔티안은 하루면 주요 사원을 다 도는 도시라 저녁에 뭘 할지가 늘 애매하다. 나이트마켓만 두 번 가느니 이 집에 한 번 앉아보는 쪽을 권한다. 라오스 첫 서구식 펍이라는 타이틀보다, 마당에서 조용히 삭아가는 흰 비틀 앞에 서리 낀 맥주잔을 놓고 앉았던 그 한 시간이 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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