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부쿠로 서쪽 골목 '야키니쿠 호르몬 본즈' 본관 — 멜론소다 한 잔으로 끝난 저녁

도쿄 이케부쿠로역에서 나와 사람 물결을 한 번 건너면 야키니쿠 호르몬 본즈(焼肉・ホルモン ぼんず) 이케부쿠로 본관이 나온다. 도쿄에 올 때마다 신주쿠나 우에노 쪽 고깃집을 기웃거렸는데, 이번엔 숙소가 이케부쿠로라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들어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기보다 멜론소다 얘기를 더 많이 하게 됐다. 그…

도쿄 · 야키니쿠 호르몬 본즈 이케부쿠로 본관

도쿄 이케부쿠로역에서 나와 사람 물결을 한 번 건너면 야키니쿠 호르몬 본즈(焼肉・ホルモン ぼんず) 이케부쿠로 본관이 나온다. 도쿄에 올 때마다 신주쿠나 우에노 쪽 고깃집을 기웃거렸는데, 이번엔 숙소가 이케부쿠로라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들어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기보다 멜론소다 얘기를 더 많이 하게 됐다. 그 얘기는 조금 뒤에.

역 앞 풍경부터 — 여기가 어디쯤인가

이케부쿠로역 서쪽 출구 광장. 도부백화점 건물에 스미레약국·도예교실 간판이 층층이 붙어 있고, 그 아래로 타이토 스테이션 게임센터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픽셀 캐릭터가 크게 걸려 있다. 오른쪽으로는 빅카메라(ビックカメラ)의 빨간 원통 사인. 이 두 랜드마크만 눈에 넣어두면 이 동네에서 길 잃을 일은 거의 없다. 내가 갔던 날은 하늘이 잔뜩 흐렸는데도 광장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택시 승강장 앞에 검은 택시가 줄지어 서 있고, 주황 조끼 입은 안내 요원이 인파를 정리하고 있었다.

흐린 하늘 아래 이케부쿠로역 광장, 도부백화점과 타이토 스테이션 게임센터 간판, 오른쪽에 빅카메라 빨간 사인과 택시 승강장이 보이는 거리 전경
이케부쿠로역 앞. 빅카메라 빨간 원통과 타이토 스테이션 픽셀 간판이 이 동네의 기준점이다.

가게는 이 광장에서 도보로 닿는 거리다. 큰길에서 한 겹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니 지도 없이 감으로 찾기는 좀 애매하다. 아래 지도의 좌표를 찍고 걸으면 헤맬 일이 없다.

멜론소다, 이건 진짜 물건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킨 게 멜론소다였다. 나오는 걸 보고 웃었다. 아사히 슈퍼드라이 로고가 박힌 맥주잔에, 형광 초록색 소다가 얼음까지 꽉 차서 왔다. 잔 뒤로 보이는 초록 안내판에는 가게 캐릭터 두 명이 그려진 '焼肉・ホルモン ぼんず' 로고와 LINE QR코드가 붙어 있었다. 술 못 마시는 일행이 있으면 이거 하나로 해결된다.

맛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인공적인 단맛이 확 오는 게 아니라, 탄산이 날카롭게 먼저 치고 들어오고 뒤에 멜론 향이 남는다. 무엇보다 기름진 고기를 한 점 삼킨 직후에 이걸 빨대로 쭉 빨아들이면 입안이 싹 리셋된다. 맥주는 배가 부르고 우롱차는 심심한데, 멜론소다는 그 사이를 정확히 채운다. 고기랑 같이 먹으면 이만한 조합이 없다. 나는 저녁 내내 두 잔을 비웠고, 다음에 와도 무조건 이걸 시킬 생각이다.

아사히 슈퍼드라이 로고가 박힌 잔에 담긴 형광 초록색 멜론소다, 뒤로 '焼肉・ホルモン ぼんず' 로고와 LINE QR코드가 붙은 초록 안내판
슈퍼드라이 잔에 담겨 나온 멜론소다. 얼음까지 꽉 차 있다.

불판 위 — 붉은 살코기부터

테이블마다 스테인리스 로스터가 박혀 있고, 그 위에 세로로 긴 쇠살 그릴이 얹힌 구조다. 파란 불꽃이 살 사이로 올라오는 게 보일 정도로 화력이 셌다. 처음 올린 건 붉은 살코기 몇 점. 두툼하지 않고 넓적하게 저민 형태라 올려두면 금방 가장자리부터 색이 돈다. 여기서 초보들이 실수하는 게, 이걸 소고기 스테이크처럼 오래 굽는 거다. 그러면 질겨진다.

스테인리스 로스터의 쇠살 그릴 위에 올려진 마블링 있는 붉은 소고기 네 점, 뒤편에 소스가 담긴 은색 종지들
막 올린 붉은 살코기. 그릴 아래로 파란 불꽃이 올라온다.

한 면이 갈색으로 변하고 표면에 육즙이 반짝 올라오면 뒤집고, 곧바로 집어 올린다. 뒤집어 보면 단면은 아직 분홍빛이 살아 있다. 이 상태가 제일 부드럽다. 씹으면 결이 부드럽게 끊기고 기름이 뒤늦게 퍼진다. 이때 멜론소다 한 모금. 이 순서가 이날 저녁의 리듬이었다.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겉면은 갈색으로 익고 속은 분홍빛이 남은 구운 소고기 한 점, 뒤로 우롱차 잔과 앞치마를 두른 일행
겉만 익히고 속은 분홍빛일 때 건져 올린다.

가게 이름값 하는 호르몬

상호에 '호르몬'이 들어간 집인 만큼 곱창류를 안 시키면 온 의미가 없다. 붉은 양념이 발린 통통한 호르몬을 그릴에 올리자 소리부터 달랐다. 살코기가 '치익' 하고 짧게 끝난다면 호르몬은 기름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계속 튄다. 냄새도 훨씬 진하다. 마늘과 고추장 계열의 단짠한 양념이 타면서 나는 냄새가 옷에 확실히 밴다.

붉은 양념을 바른 통통한 호르몬 여러 점이 그릴 위에서 익어가고, 집게로 한 점을 집어 올리는 모습, 뒤로 소스가 담긴 은색 종지들
양념 호르몬. 기름이 떨어지면서 계속 튀는 소리가 난다.

호르몬은 살코기와 정반대로 구워야 한다. 충분히 시간을 줘서 겉이 검게 눌을 만큼 바짝 익혀야 안쪽 기름이 녹고 껍질이 쫄깃해진다. 덜 익히면 미끈거리고 고무 같다. 집게로 뒤집어 가며 양념이 살짝 그을릴 때까지 두는 게 맞다. 나는 성질 급하게 하나를 일찍 먹었다가 실패했고, 그 다음부터는 옆에서 일행이 "아직"이라고 말릴 때까지 기다렸다.

집게로 뒤집는 중인 겉면이 검게 그을린 양념 호르몬, 그릴 위에 여러 점이 익고 있고 뒤로 소스 종지가 놓인 모습
양념이 이 정도로 그을릴 때까지 기다려야 껍질이 쫄깃해진다.

마무리는 냉면

고기를 어느 정도 먹고 나서 냉면을 시켰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오는데, 국물 위에 살얼음 덩어리가 큼직하게 서너 개 떠 있다. 가운데 배추김치 한 덩이와 송송 썬 파. 화려한 구성은 아니다. 계란 반쪽이나 편육 같은 게 올라가지 않는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냉면, 국물 위에 큼직한 살얼음 덩어리와 가운데 배추김치, 송송 썬 파가 올려진 모습
살얼음이 큼직하게 떠 있는 냉면. 고명은 김치와 파뿐이다.

면을 들어 올려 보니 굵기가 제법 있고 투명한 편이다. 감자·전분 계열 특유의 미끈하고 쫄깃한 식감. 국물은 짜지 않고 새콤한 쪽으로 잡혀 있어서, 기름 잔뜩 먹은 입을 씻어내기에 딱 맞았다. 한국식 평양냉면 같은 깊은 육수 맛을 기대하면 어긋난다. 이건 야키니쿠집의 마무리 국수라는 성격이 뚜렷하다. 그 목적에서는 제 역할을 완벽히 한다.

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굵고 투명한 냉면 면발, 아래 그릇에는 김치와 국물이 담겨 있고 뒤로 스테인리스 로스터가 보이는 모습
굵고 투명한 면발. 미끈하고 쫄깃한 전분면 계열이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

도쿄에서 야키니쿠는 어디를 가도 어느 정도는 한다. 이 집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건 특별한 부위나 인테리어가 아니라, 바짝 그을린 호르몬 한 점 뒤에 마시던 그 초록색 소다의 온도였다. 다음에 이케부쿠로에서 자면 또 여기로 걸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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