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하바라 주오도리부터 간다강까지, 여러 번 다시 걸어본 도쿄 전자상가 기록
도쿄 아키하바라는 한 번 와서 다 봤다고 말하기 어려운 동네다. 나는 계절을 바꿔가며 여러 번 왔는데, 올 때마다 간판이 갈리고 진열장 가격표가 바뀌어 있었다. JR 아키하바라역 전기가(電気街) 출구로 나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요도바시카메라 멀티미디어 Akiba 쪽 통로다. 처음 왔을 때 이 사인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
도쿄 · 아키하바라
도쿄 아키하바라는 한 번 와서 다 봤다고 말하기 어려운 동네다. 나는 계절을 바꿔가며 여러 번 왔는데, 올 때마다 간판이 갈리고 진열장 가격표가 바뀌어 있었다. JR 아키하바라역 전기가(電気街) 출구로 나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요도바시카메라 멀티미디어 Akiba 쪽 통로다. 처음 왔을 때 이 사인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

주오도리 첫 블록에서 이미 정신이 없다
전기가 출구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주오도리(中央通り)다. 고개를 들면 오노덴 에어컨 특가 현수막, 다카라다 면세점, 게이머즈 아키하바라, 카드킹덤 간판이 한 화면에 겹쳐 들어온다. 건물 한 채가 층마다 다른 업종이라 1층만 보고 지나치면 절반도 못 본 셈이 된다. 게이머즈는 노란 바탕에 캐릭터가 그려진 그 건물, 카드킹덤은 길 건너 유리 빌딩 2층이다.

조금 더 걸으면 노란 간판의 라디오회관(世界のラジオ会館)이 나온다. 지금 건물은 유리 외관이고 위층에 K-BOOKS가 들어가 있다. 아래층에서 트럭이 짐을 내리는 시간대엔 인도가 좁아져서 사람들이 차도 쪽으로 밀린다. 여름 오후에 여기서 30분쯤 서 있었는데, 습기가 그대로 고여 있어서 셔츠가 등에 붙었다. 아키하바라는 그늘이 거의 없는 동네다.

차도 한가운데를 카트가 지나갈 때는 처음엔 좀 놀랐다. 헬멧을 쓴 사람들이 공공도로용 카트를 몰고 신호를 기다리는 광경이 여기선 일상이다. 뒤로 소부선 노란 전철이 고가를 지나가고, 그 아래로 laox와 AKKY II 면세 간판이 늘어선다.

위치 감각: 만세이바시 교차로를 기준점으로 삼으면 편하다
아키하바라에서 길을 잃는 사람은 대개 골목을 헤매서가 아니라 큰길이 다 비슷해 보여서 그렇다. 나는 만세이바시 교차로를 기준으로 삼는다. 쇼와도리(昭和通り)와 우에노 방면 표지판이 서 있고, 소부선 고가가 도로를 가로지르고, 그 아래로 GiGO AKIHABARA와 카라오케 마네키네코의 흰 고양이 간판이 보인다. 여기서 북쪽이 주오도리 상점가, 남쪽이 간다강이다.

지도의 좌표가 내가 사진 대부분을 찍은 지점이다. 역에서 반경 500m 안에 이 글의 거의 모든 장소가 들어간다. 짐이 있으면 역 안 코인로커에 넣고 움직이길 권한다. 성수기 오후엔 큰 사이즈부터 차니까 도착하자마자 처리하는 편이 낫다.
해가 지면 다른 동네가 된다
같은 교차로인데 밤에는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노란 무란(Mulan) 빌딩의 '激安販売 高額買取'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박히고, 그 옆으로 세가 3호관 네온, 고릴라 얼굴이 그려진 고고카레(ゴーゴーカレー) 노란 간판, ZIN, 메이드카지노 조명이 차례로 켜진다. 겨울밤에 여기 서 있으면 손이 시린데도 사람들이 신호가 바뀔 때까지 사진을 찍느라 잘 안 움직인다.

한 블록 옆 교차로에서는 TOKYO MX 대형 스크린이 계속 영상을 튼다. 그 아래 오노덴 입구, 왼쪽엔 laox, 오른쪽으로 SEGA 빨간 간판과 고가철도가 겹친다. 스크린 소리와 파친코 쪽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서 통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여름 낮에 같은 자리를 다시 찍어보면 간판 구성이 그대로인데도 하늘 때문에 인상이 확 다르다. 대낮엔 네온이 죽어서 오히려 건물 형태와 전당포 다이코쿠야(大黒屋), 아메니티드림 5F·6F 같은 층수 표기가 눈에 들어온다.

겨울 주말 오후엔 이 횡단보도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다. 신호 한 번에 못 건너는 경우도 있었다. 가로수 잎이 다 떨어져 있어서 간판이 오히려 더 잘 보인다.

몇 해 전 사진첩에는 SEGA 아키하바라 신관 앞도 남아 있다. 파란 SEGA 로고 위로 콜라보 카페 광고가 크게 걸려 있었고, '여기서 도보 2분'이라는 화살표가 붙어 있었다. 지금 이 건물들은 운영사와 브랜드가 바뀌어 GiGO 간판으로 걸린 곳이 많으니, 예전 정보를 그대로 들고 가면 헛걸음한다. 현장에서 간판을 다시 확인하는 게 확실하다.

중고 피규어 쇼케이스는 층 전체가 유리벽이다
아키하바라에서 시간을 제일 많이 잡아먹는 곳이 중고 피규어 매장이다. 케이스마다 R-198, R-199, R-200 같은 번호가 붙어 있고, 개인이 위탁한 물건이 칸 단위로 들어간다. 원피스 루피와 조로, 드래곤볼 손오공, 히로아카, 피카츄가 한 칸씩 차지하고 있는 식이라 계통 없이 섞여 있다. 통로가 좁아서 배낭은 앞으로 메는 편이 낫다.

가격표는 손글씨인 경우도, 바코드가 찍힌 라벨인 경우도 있다. 카드캡터 사쿠라 날개 피규어에는 손으로 쓴 ¥7,980이 붙어 있었다. 사진으로 보면 크기 감이 잘 안 오는데, 실제로는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다.

다른 매장에서는 바코드 라벨로 통일해 관리한다. B52 코너에서 본 가격대는 이랬다.
- Q posket풍 사쿠라(No.216) ¥3,800
- 긴토키 대형 피규어(No.232) ¥8,800
- 하늘색 머리 캐릭터(No.23x) ¥6,800
- 오른쪽 아래 진열품 ¥3,000

완성 프라모델을 유리장에 넣어 파는 곳도 있다. 가오가이가 계열 기체는 날개까지 펼친 상태로 전시돼 있어서, 유리에 얼굴을 붙이고 관절 도색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늘 한둘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카이요도 코너에서 만난 에반게리온 초호기 대형 조형은 사람 허리보다 높았다. 뒤로 리볼텍과 조형 잡지 포스터가 붙어 있고, 발치에 '만지지 마세요' 표지가 세워져 있다. 이런 대형 전시품은 판매용이 아니라 매장 간판 역할이다.

스타워즈 코너에서 발이 묶였다
대형 가전 양판점 완구 층에는 스타워즈 코너가 따로 있다. 레고 브릭으로 쌓은 실물 크기 R2-D2가 이동식 받침대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돔 곡면을 브릭으로 어떻게 처리했는지 한참 들여다봤다. 옆 진열대엔 스타워즈 박스 상품이 쌓여 있다.

같은 층 한쪽엔 스톰트루퍼 대형 피규어를 계단식으로 쌓아 부대를 만들어놨다. 맨 앞에 다스베이더, 뒤쪽에 카일로 렌이 서 있다. 백 개는 훌쩍 넘어 보였다. 이런 진열은 팔려고 만든 것이라기보다 사람을 세워두려고 만든 것이고, 실제로 나를 포함해 다들 멈춰 섰다.

만다라케 진열장의 가격은 각오하고 봐야 한다
레트로 게임 소프트 쪽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유리 안에 네오지오CD와 PC-FX 타이틀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붙어 있던 가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 메탈슬러그(네오지오CD) ¥71,500
- 메탈슬러그2(네오지오CD) ¥49,500
- 브레이커즈(네오지오CD) ¥88,000
- 팅클스타 스프라이츠(네오지오CD) ¥40,700
- PC-FX 타이틀 ¥46,200 / ¥22,000
- 네오지오포켓 소프트 ¥39,600 / ¥29,700 / ¥38,600

가격표 왼쪽의 ディスク·説明書·帯 항목이 A/A'/B/C로 체크돼 있는 게 이 동네 방식이다. 같은 타이틀이라도 띠지 유무로 가격이 갈린다. 네오지오포켓용 락맨 배틀&파이터즈는 ¥48,400, 옆 칸 월드히어로즈는 ¥16,500이었다. 살 생각이 없어도 상태 표기 읽는 법만 익혀두면 진열장 구경이 훨씬 재밌어진다.

운 좋으면 걸리는 이벤트
어느 봄에는 세가가 메가드라이브 미니 관련 행사를 열고 있었다. 세가새턴 로고를 건 부스 앞에 사람들이 겹겹이 서서 버추어 파이터 대전을 구경했고, 화면 위에는 AKIRA와 TOKIO 이름이 떠 있었다. 줄을 서지 않아도 뒤에서 보는 건 자유였다.

제일 눈에 띈 건 사람 몸통만 한 메가드라이브 컨트롤러 조형물이었다. 실제로 버튼을 눌러 게임을 조작할 수 있게 만들어놔서, 아이가 몸을 던지듯 버튼을 치고 있었다. 화면에는 ROUND 2가 떠 있었다. 이런 이벤트는 공지가 일본어로만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방문 전에 매장 SNS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길거리 티셔츠 가판, 사기 전에 사이즈부터
골목 입구엔 티셔츠 행거를 내놓은 가게가 있다. 【変態】hentai라고 큼직하게 박힌 검정 티셔츠가 제일 앞에 걸려 있었는데, 농담 삼아 사 가는 여행자가 꽤 있다. 붙어 있던 가격은 컬러 티셔츠 S~XL ¥2,500, 2XL ¥2,700, 3XL ¥2,900, 민소매 흰색 ¥1,800이었다. 일본 사이즈는 한국보다 한 치수 작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평소보다 한 단계 올려 고르는 게 안전하다. 가게 앞엔 앉지 말라는 안내와 금연 표시가 함께 붙어 있다.

간판을 벗어나면 물길이 나온다
간판에 지치면 남쪽으로 몇 분만 걸으면 된다. 간다강 수로가 건물 사이를 지나가는데, 흐린 날엔 물빛이 회색으로 가라앉는다. 예인선이 자재를 실은 바지선을 밀고 다리 아래로 들어가는 장면을 다리 위에서 한참 봤다. 몇 걸음 차이로 소음이 확 줄어든다.

맑은 아침에 같은 수로를 보면 인상이 완전히 뒤집힌다. 물이 잔잔해서 건물과 하늘이 그대로 비치고, 아치교 안쪽까지 반사가 이어진다. 아키하바라에 왔다가 이쪽으로 안 내려가는 사람이 많은데, 5분이면 닿는다.

조금 더 서쪽, 오차노미즈 방향으로 걸으면 붉은 벽돌 아치 고가가 나온다. 아치 위로 담쟁이가 덮여 있고, 그 너머로 초록색 철교와 노란 소부선 전철이 지나간다. 다리 난간에 기관차 모양 장식이 붙어 있어서 사진 찍기 좋다. 겨울 아침엔 낙엽이 인도에 깔려 있어 소리가 좋다.

짐과 시간을 다루는 법
아키하바라는 걷는 거리보다 서 있는 시간이 긴 동네다. 진열장 앞에서 계속 멈추기 때문에 다리보다 어깨가 먼저 아프다. 역 안에서 STATION WORK라고 적힌 회색 1인용 부스를 발견하고 반가웠던 적이 있다. 옆에 코인로커가 붙어 있어서, 짐을 넣고 잠깐 앉아 일정을 정리하기에 괜찮다. 이용 요금과 예약 방식은 표시된 약관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다녀본 경험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오전엔 사람이 적어 진열장을 편하게 보고, 오후 늦게 큰길로 나와 간판이 켜지는 시간을 맞추는 순서가 가장 덜 지친다. 면세는 여권이 있어야 하고 매장마다 최소 금액 기준이 다르니 계산 전에 물어보는 게 낫다. 그리고 이 동네는 몇 년 사이 간판이 통째로 바뀌는 곳이라, 오래된 후기에 나온 가게 이름을 그대로 믿지 않는 편이 좋다. 나도 예전 사진 속 간판을 찾다가 이미 바뀐 자리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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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 쿠라스시 아사쿠사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