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 마루노우치 붉은 벽돌 역사와 교코도리 은행나무: 11월 말 늦은 오후의 기록
신칸센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데만 십 분 가까이 걸렸다. 도쿄역은 지하와 지상이 층층이 겹쳐 있어서, 표지판을 잘못 따라가면 야에스 쪽으로 나가 붉은 벽돌 역사는 구경도 못 하고 지나친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마루노우치 쪽이었다. 초록색 JR 사인이 붙은 마루노우치 북쪽 출구(丸の内北口)로 나오자마자 고개가 저절…
도쿄 · 도쿄역
신칸센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데만 십 분 가까이 걸렸다. 도쿄역은 지하와 지상이 층층이 겹쳐 있어서, 표지판을 잘못 따라가면 야에스 쪽으로 나가 붉은 벽돌 역사는 구경도 못 하고 지나친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마루노우치 쪽이었다. 초록색 JR 사인이 붙은 마루노우치 북쪽 출구(丸の内北口)로 나오자마자 고개가 저절로 젖혀졌다.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에 검은 돔이 얹혀 있고, 돔 아래 둥근 창들이 오후 햇빛을 받아 구릿빛으로 번들거렸다. 캐리어를 끌던 사람들도 여기서 한 번씩 멈춰 선다.

가까이 붙어서 봐야 보이는 벽돌
정면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사람이 많은데, 건물 옆구리를 따라 걸어보면 인상이 달라진다. 붉은 벽돌 사이사이에 흰 화강암 띠를 수평으로 끼워 넣었고, 창문마다 위쪽에 작은 삼각 장식이 붙어 있다. 1층 아치문은 셔터가 내려가 있었지만 아치를 두른 흰 돌의 쐐기 모양이 하나하나 다르게 다듬어져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부부도 나처럼 목을 꺾고 지붕 꼭대기 풍향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광장으로 나오면 건물이 좌우로 얼마나 긴지 실감난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한 프레임에 안 들어온다. 벽돌 건물 뒤로는 유리 고층빌딩이 그대로 겹쳐 서 있어서, 100년 전 건물과 최근 건물이 한 장에 같이 찍힌다. 이 대비를 노리는 사람들이 광장 한가운데 쪼그려 앉아 카메라를 낮춘다.

정면 전경을 제대로 담으려면 광장 끝, 도로 쪽까지 물러나야 한다. 가운데 현관 앞에 국기 두 개가 걸려 있고 그 앞으로 소나무가 낮게 다듬어져 있다. 해가 기울면서 벽돌 색이 진해지는 시간대가 제일 좋았다. 대신 이 시간엔 사람도 제일 많다. 캐리어 끌고 온 사람, 유모차, 셀카봉이 뒤엉켜서 빈 광장 사진은 사실상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하다.

어디로 나와야 하는가 — 출구와 주변
도쿄역에서 헤매는 이유는 대부분 출구 선택 때문이다. 붉은 벽돌 역사는 마루노우치 쪽이고, 반대편 야에스 쪽으로 나오면 유리와 콘크리트 건물만 보인다. 지하도로 이동할 수 있지만 표지판 글씨가 작고 갈림길이 많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지하에서 한 번 반대로 갔다가 되돌아왔다.
역사 앞 도로에는 버스 정류장이 붙어 있고, 초록색 도영버스가 수시로 선다. 이 각도에서 보면 벽돌 지붕 위로 BVLGARI 로고가 붙은 유리 타워가 솟아 있어서, 도쿄역 주변이 어떤 동네인지 한 장으로 설명된다. 시계탑이 달린 돔이 왼쪽 끝, 유리 타워가 가운데, 그 아래로 택시가 줄지어 서 있는 풍경.

택시는 광장 남쪽 도로변에서 잡았다. 검은 차체에 S.RIDE 라고 크게 붙은 앱 택시가 계속 지나다닌다. 일본 택시는 기본요금부터 한국보다 확실히 비싸니, 두 정거장 거리면 그냥 걷는 편이 낫다. 이쪽 각도에서는 남쪽 돔이 정면으로 보이는데, 북쪽 돔보다 앞쪽 나무에 조금 가린다.

11월 말, 역 앞에 들어선 크리스마스 마켓
운이 좋았다. 역 정면에서 황궁 쪽으로 뻗은 교코도리(行幸通り) 한복판에 나무 오두막 부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로 부스 지붕과 붉은 바닥이 길게 이어지는 게 보였다. 은행 단풍과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 화면에 있는 조합은 서울에서는 잘 안 나온다.

부스 하나에 다가가 보니 카운터 위에 큰 스테인리스 냄비가 올라가 있었다. 뱅쇼를 데우는 냄비다. 계피와 오렌지 냄새가 김을 타고 훅 올라와서, 그때 처음 손이 시리다는 걸 알았다. 앞사람이 결제하는 동안 옆 안내판을 읽어보니 슈톨렌을 판다고 적혀 있었다. 부스 가장자리에는 산타 인형과 별 모양 전구가 촘촘히 매달려 있고, 지붕 위로는 아직 잎이 안 떨어진 은행나무가 노랗게 덮여 있었다. 사람이 몰려서 나는 결국 줄만 보다가 물러났다.

붉은 바닥재를 깔고 그 위에 접이식 벤치 테이블을 늘어놓아, 사 온 걸 앉아서 먹는 구조다. 오후 네 시쯤인데 자리는 거의 꽉 찼다. 패딩 입은 사람, 캐리어 끌고 잠깐 앉은 사람, 회사에서 나온 듯한 정장 차림이 섞여 있었다. 오른쪽 뒤로는 공사 크레인이 붉게 서 있어서 여기가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업무지구라는 게 그대로 드러난다. 사진 욕심이 있다면 해 지기 직전보다 좀 더 일찍 오는 걸 권한다. 다섯 시 넘어가면 사람 밀도가 확 올라간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 역사 전경은 마루노우치 중앙/북쪽 출구로 나올 것. 야에스 쪽으로 나오면 다시 지하를 가로질러 와야 한다.
- 은행나무 단풍과 마켓이 겹치는 시기는 짧다. 내가 간 11월 말은 잎이 절정이었지만, 며칠 차이로 다 떨어진다.
- 마켓 운영 기간·시간과 부스 가격은 해마다 달라진다. 현장 안내판이나 공식 공지로 확인하는 게 안전하다.
- 광장 바닥은 돌 타일이라 캐리어 바퀴 소리가 요란하다. 짐이 있으면 역내 코인로커에 맡기고 나오는 게 훨씬 편하다.
교코도리를 끝까지 걸어보면
마켓 구간을 지나 계속 직진하면 넓은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나온다. 차도와 분리된 보행로 폭이 넉넉해서 사람이 많아도 답답하지 않다.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이 노란 띠처럼 깔려 있고, 길 끝 저 멀리 황궁 쪽 숲의 실루엣이 낮게 보인다. 걷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지는 구간이다. 도쿄역에서 여기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십 분이 안 걸린다.

길 끝에서 해자를 건너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돌로 쌓은 성벽 위로 소나무가 구불구불 자라 있고, 흰 벽에 기와지붕을 얹은 문과 작은 경비 초소가 서 있다. 파란색 원뿔 콘과 줄로 동선을 나눠놓아서, 관람객은 안내된 쪽으로만 들어간다. 오 분 전까지 크리스마스 캐럴과 사람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발소리가 들린다. 도쿄역 앞 풍경 중에 이 낙차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개방 구역과 요일별 휴관은 바뀌니 출발 전에 확인하는 게 낫다.

도쿄역은 그냥 갈아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반나절을 여기서 다 썼다. 벽돌 건물 한 채와 그 앞으로 뻗은 길 하나, 그리고 계절에 맞춰 잠깐 들어선 부스들. 다음에 온다면 아침 이른 시간에 광장에 서 볼 생각이다. 사람이 빠진 벽돌 건물은 또 다른 얼굴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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