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롯폰기 '우동 쿠로사와(饂飩くろさわ)' — 흑돼지 카레남반 우동과 350엔짜리 멘치카츠를 먹은 날
롯폰기 교차점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 유리와 콘크리트 빌딩 사이에 나무 기둥으로 된 이층집 하나가 박혀 있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우동집 쿠로사와(くろさわ) 롯폰기점이다. 하얀 노렌에 붓으로 'くろさわ' 네 글자만 써 놓았고, 그 옆에 営業中(영업중) 나무 팻말이 걸려 있다. 처음 지나가면 요릿집인가 싶어 지나칠 수 있…
도쿄 · 쿠로사와(くろさわ) 롯폰기점
롯폰기 교차점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 유리와 콘크리트 빌딩 사이에 나무 기둥으로 된 이층집 하나가 박혀 있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우동집 쿠로사와(くろさわ) 롯폰기점이다. 하얀 노렌에 붓으로 'くろさわ' 네 글자만 써 놓았고, 그 옆에 営業中(영업중) 나무 팻말이 걸려 있다. 처음 지나가면 요릿집인가 싶어 지나칠 수 있는데, 문 옆 손글씨 메뉴판에 우동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는 걸 보고서야 아, 우동집이구나 한다.

낮 시간에 들어갔는데도 신발 벗는 자리에 이미 사람이 서 있었다. 좁은 입구를 지나면 굵은 대들보가 그대로 드러난 홀이 나온다. 카운터 안쪽에서는 구리 냄비가 불 위에 올라가 있었고, 등에 '黒澤'가 큼직하게 박힌 티셔츠를 입은 직원이 자리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벽 한쪽엔 둥근 창이 뚫려 있고 옷걸이가 못에 걸려 있다. 롯폰기 한복판인데 소리는 의외로 낮다. 접시 부딪히는 소리, 국물 붓는 소리 정도.

메뉴판 — 가격은 세금 별도라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자리에 앉으면 A4 크기 아크릴 메뉴판을 준다. 일본어와 영어가 나란히 적혀 있어서 읽기 편했다. 간판 메뉴는 흑돼지 카레남반 우동(黒豚カレー南蛮うどん) 1,200엔. 삶은 흑돼지 갈비를 올린 매콤한 카레 국물 우동이고, 메뉴판에도 반숙 계란 추가(+200엔)를 권한다고 써 있다. 새우 카레남반 우동은 1,000엔, 야채 카레 우동 1,100엔인데 야채 쪽엔 "채식 메뉴가 아님"이라고 못을 박아 뒀다. 계절 메뉴로 프루츠토마토 히야카케 우동 1,300엔. 오늘의 추천 일본주는 180cc에 1,200엔.

젓가락 봉투에도 가게 이름이 붓글씨로 들어가 있다. 종이는 얇은데 먹 번짐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런 자잘한 데까지 손을 댄 집이구나 싶었다.

350엔 흑돼지 멘치카츠 — 단품으로만 주문하면 거절당한다
벽에 붙은 손글씨 안내문을 못 봤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数量限定(수량 한정)이라는 붉은 글씨 아래 黒豚メンチカツ 350엔(세금 별도), 가고시마현산 흑돼지 100% 사용이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두 줄이 더 있다. 매장에서 멘치카츠만 단품으로 주문하는 건 사양한다는 것, 그리고 붐빌 때는 합석에 협조해 달라는 것. 메뉴판에도 같은 문구가 밑줄까지 그어져 있다. 우동 한 그릇은 반드시 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주문하면 검은 각접시에 양배추채, 방울토마토, 그리고 새빨간 '黒' 자가 찍힌 종이 한 장이 먼저 깔려 나온다. 그 종이 위에 튀김이 올라오는 구조다. 잠깐 보고 이게 끝인가 했는데 뒤이어 갓 튀긴 게 도착했다.


같이 나온 양배추채엔 참깨 드레싱이 살짝만 뿌려져 있다. 카레 국물을 먹다가 입안이 얼얼해질 때 이걸 한 젓가락 집어 먹으면 확실히 리셋이 된다. 방울토마토는 차가웠다.

반으로 갈랐더니 속이 하얗다. 소고기를 섞지 않고 돼지만 쓴 멘치카츠라 단면 색이 이렇게 나온다. 다진 고기 입자가 굵게 살아 있어서 씹는 맛이 있고, 육즙이 흘러넘치는 종류는 아니었다. 대신 기름이 무겁지 않다. 소스 없이 그냥 먹어도 간이 맞았다. 350엔에 이 정도면 도쿄 물가에서 손해 본 기분은 안 든다. 다만 한 장은 둘이 나눠 먹기엔 아쉬운 크기다. 다시 간다면 처음부터 두 장 시킬 것 같다.

새우 카레남반 우동 1,000엔
흑돼지 쪽이 간판이지만 이날은 새우로 갔다. 흰 사발 가득 짙은 갈색 국물이 담겨 나오는데, 표면에 잔거품이 촘촘하게 올라와 있다. 다시 국물에 카레를 푼 방식이라 가루 카레의 텁텁함이 없고, 가다랑어 향이 먼저 온다. 새우는 통으로 네 마리쯤. 양파를 결대로 썰어 넣어서 국물에 단맛이 배어 있다.


면은 굵고 모서리가 각져 있다. 카레 국물이 걸쭉해서 면에 착 붙어 올라오는데, 씹으면 겉은 부드럽고 안쪽이 단단하게 버틴다. 사누키식으로 끝까지 딱딱한 면은 아니고, 국물을 머금는 쪽에 가깝다. 국물이 옷에 튀기 쉬우니 흰옷은 피하는 게 낫다. 앞치마를 따로 주지는 않았다.

찾아가는 길과 실제로 도움이 된 것들
롯폰기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큰길가가 아니라 한 블록 안쪽 골목에 있어서, 지도를 켜고 목적지 근처에 도착한 뒤에는 간판 대신 하얀 노렌을 찾는 게 빠르다. 건물 자체가 낮고 목조라 주변 빌딩과 확연히 다르다.
- 멘치카츠는 수량 한정이다. 늦게 가면 없을 수 있으니 자리 잡자마자 물어보는 편이 낫다.
- 멘치카츠 단품 주문은 받지 않는다. 우동을 같이 시켜야 한다.
- 메뉴판 가격은 전부 세금 별도. 1,200엔 우동은 계산할 때 1,300엔대가 된다고 보면 된다.
- 붐빌 때 합석을 요청한다는 안내가 벽에 붙어 있다. 혼자 가면 카운터 쪽이 편하다.
- 영업시간과 휴무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방문 전 현장 확인을 권한다.
카레 우동 한 그릇에 멘치카츠 한 장, 세금까지 붙어도 1,500엔 안쪽에서 끝났다. 롯폰기에서 이 가격에 이만큼 손이 간 음식을 먹기는 쉽지 않다. 다음에 오면 흑돼지 갈비 쪽을 시키고 반숙 계란 200엔을 더할 생각이다. 국물이 진해서 계란 노른자가 들어가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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