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고쿄(皇居), 하필 그날 문이 열려 있었다 — 짐 검사 받고 들어간 반나절
도쿄역 마루노우치 쪽으로 나와 신호 하나 건너면 바로 고쿄 가이엔(皇居外苑)이다. 원래는 해자를 따라 한 바퀴 돌고 니주바시 사진이나 찍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카시타몬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사람이 이상하게 많았다. 알고 보니 그 주에 궁내(宮内) 일부 길을 일반에 공개하는 기간이었다. 날짜를 맞춰 온 게 아니라 그…
도쿄 · 고쿄
도쿄역 마루노우치 쪽으로 나와 신호 하나 건너면 바로 고쿄 가이엔(皇居外苑)이다. 원래는 해자를 따라 한 바퀴 돌고 니주바시 사진이나 찍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카시타몬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사람이 이상하게 많았다. 알고 보니 그 주에 궁내(宮内) 일부 길을 일반에 공개하는 기간이었다. 날짜를 맞춰 온 게 아니라 그냥 걸리는 날 걸린 셈이다. 도쿄에 여러 번 왔지만 담장 안쪽으로 들어가 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은행나무가 다 떨어지기 직전, 가이엔의 오전
11월 말 도쿄의 아침 공기는 서울보다 확실히 덜 맵다. 얇은 패딩 하나면 충분한데, 해가 나면 오히려 겉옷을 벗게 된다. 우치보리도리 건너편 은행나무가 딱 정점을 지나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보도블록 위로 노란 잎이 흩어져 있고, 캐리어를 끌고 온 사람이 길 건너 가로수를 한참 보고 서 있었다. 공항에서 곧장 온 모양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몸을 조금 틀면 도로 폭이 얼마나 넓은지 보인다. 왕복 차로에 택시가 줄지어 지나가고, 그 뒤로 노란 가로수가 이어진다. 도쿄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 5분 남짓인데, 그 5분 사이에 오피스 빌딩 숲에서 성벽 앞으로 장면이 통째로 바뀐다.

도쿄역 마루노우치 중앙 출구에서 곧장 서쪽으로 걸어 나오는 길이 가장 직관적이다. 지하철이면 지요다선 니주바시마에역이나 미타선 오테마치역이 가깝고, 어느 쪽으로 나와도 결국 이 널찍한 보도로 합류하게 된다. 사람들이 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니 길을 헤맬 일은 없었다.

가이엔 안으로 들어서면 그 유명한 구로마쓰(흑송) 잔디밭이다. 사진으로 볼 때는 정원 같았는데 직접 서 보니 규모가 다르다. 잔디는 겨울로 접어들어 누렇게 말라 있고, 소나무 수백 그루가 각자 다른 자세로 서 있다. 이걸 사람이 일일이 다듬는다는 게 잘 실감이 안 났다.

더 안쪽 광장은 아예 텅 빈 아스팔트다. 그늘이 하나도 없어서 여름에 오면 꽤 고생할 자리다. 나무 너머로 흰 벽에 검은 기와를 얹은 망루가 보인다. 이 각도에서 보면 성 안에 남아 있는 옛 건물이 생각보다 몇 개 안 된다는 게 눈에 들어온다.

해자를 끼고 걷는 구간이 사실 제일 좋다
고쿄에서 가장 저평가된 게 해자다. 다들 니주바시 앞에서 사진 찍고 돌아가는데, 물가를 따라 걷는 시간이 훨씬 기억에 남았다. 해 뜨는 쪽을 마주 보고 걸으면 물이 은색으로 눌리면서 성벽과 나무가 통째로 검은 실루엣이 된다. 노출을 어떻게 잡아도 예쁘게 나오는 구간이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물이 잔잔해서 마루노우치 빌딩군이 통째로 뒤집혀 찍힌다. 은행나무 줄이 물 위에 노란 띠로 늘어져 있고, 수면에는 낙엽이 떠서 천천히 돌고 있었다. 바로 이 자리가 도쿄에서 옛것과 지금이 한 프레임에 가장 깔끔하게 들어오는 곳이라고 본다.

해자 바깥쪽 보도는 버드나무가 줄줄이 심겨 있어서 여름에도 그늘이 이어진다. 폭이 넉넉해서 조깅하는 사람과 관광객이 부딪히지 않고 지나간다. 실제로 이 길로만 걸어도 한 시간은 훌쩍 간다.


오후 늦게 다시 해자 쪽으로 나왔더니 하늘에 낮달이 떠 있었다. 성벽 돌이 오후 햇빛을 받으면 회색에서 갈색 쪽으로 색이 넘어간다. 같은 자리를 오전과 오후에 두 번 지나가 볼 것을 권한다.

길가 잔디밭에는 「森の調べ」라는 명판이 붙은 청동 여인상이 하나 서 있다. 피리를 부는 자세인데, 발치에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누가 처음 올려놨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따라 하는 분위기다. 안내판이 따로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조형물이다.

해자 안쪽 구간에는 나무로 만든 아치형 다리가 하나 걸려 있다. 난간에 청동 기부가 박힌 옛 형식인데, 바로 뒤에 하얀 고층 아파트가 서 있어서 시대가 뒤섞인 묘한 그림이 된다. 이런 대비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도쿄답다고 생각한다.

니주바시 앞, 사람들이 다 여기까지만 온다
돌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검은 정문은 평소 굳게 닫혀 있다. 앞쪽에 흰 펜스가 쳐져 있어서 다리 중간까지도 못 간다. 문 양옆으로 청동 가로등이 서 있고, 초소 안에 경비가 한 명 서 있는 게 보였다. 딱 여기까지가 평소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최대 거리다.

사진 명소로 알려진 각도는 조금 옆으로 비켜서 잡아야 나온다. 아치형 철교 너머 언덕 위로 후시미야구라 지붕 끝이 살짝 걸리는 구도인데, 실제로는 나무가 많이 자라서 망루가 생각보다 작게 보인다.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가는 편이 낫다.

운 좋게 걸린 일반공개 — 입구 짐 검사는 당연했다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계속 흘러가길래 따라가 봤다. 문 앞에 파란 줄로 동선을 잡아 놓고, 제복 입은 경비가 서서 인원을 나눠 들여보내고 있었다. 도로 위 속도 제한 표지가 그대로 서 있는 걸 보면 평소엔 차가 다니는 길이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지붕이 크게 휘어진 큰 문이 나온다. 문 앞 도로에는 라바콘과 붉은 줄로 차로를 막아 두었고, 경찰이 서서 인파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 근처가 사람이 가장 몰리는 구간이라 걸음이 자주 멈췄다.

줄을 따라가면 녹색 지붕을 얹은 석조 관청 건물 앞에 흰 천막이 여러 동 서 있다. 여기서 가방을 열어 보여 줘야 한다. 남녀 줄이 나뉘어 있고, 배낭은 지퍼를 다 열어 안을 보여 주고 몸도 가볍게 확인한다. 사진 찍고 싶은 마음에 처음엔 좀 귀찮았는데, 어디에 들어가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절차다. 오히려 이만큼만 하고 통과시켜 주는 게 신기했다. 대기부터 통과까지 10분이 채 안 걸렸고, 물병은 그냥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우산이나 삼각대는 제지당하는 사람이 몇 보였으니 짐은 최대한 가볍게 가는 편이 낫다.

검사를 통과하고 나면 바로 넓은 길이 이어진다. 앞뒤로 사람이 계속 들어차 있어서 혼자 뚝 떨어져 걷는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사람 없는 사진을 원한다면 개방 직후 이른 시간을 노려야 한다.

담장 안쪽에서 본 것들
길 갈림목에 흰 표지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宮殿(きゅうでん) / Imperial Palace. 화살표도 설명도 없이 이 단어 하나만 붙어 있는 게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관광지 안내판이 아니라 그냥 업무용 표지 같은 담백함이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면 나무 사이로 낮고 긴 건물의 녹색 지붕이 보인다. 처마가 깊고 기둥이 굵은 현대 건축인데, 앞마당 아스팔트가 놀랄 만큼 깨끗하다. 이쪽 방향으로는 더 들어갈 수 없어서 이 각도가 한계였다.

길 반대편으로는 붉은 단풍 뒤에 흰 벽 망루가 서 있다. 아래쪽에 파란 줄이 쳐져 있어서 이 이상은 못 간다. 단풍과 망루와 뒤편 빌딩이 한 화면에 겹치는 구도는 이 며칠 말고는 볼 기회가 없다.

조금 더 걸으면 넓은 로터리 안쪽에 목조 단층 건물이 나온다. 앞에 「蓮池参集所」라고 적힌 작은 표지가 서 있었다. 정원의 소나무 손질 상태가 남달라서 한참 서서 봤다. 둥글게 다듬은 향나무 덤불과 층층이 잡은 소나무가 건물 앞 계단 좌우로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건물 앞 표지판 옆으로 사람들이 계속 흘러간다. 노랗게 물든 수양버들이 크게 늘어져 있어서 이 구간이 유난히 밝았다. 왼쪽 잔디는 이미 겨울색이라 노랑과 갈색이 뒤섞인다.

길 옆으로 검은 나무 문이 하나 서 있다. 앞에 세운 표지에 局門(つぼねもん)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짝에 박힌 쇠장식과 기와 끝 무늬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열리는 걸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옆에는 「立入禁止」 팻말이 붙어 있다.


문 안쪽으로는 나무 격자가 촘촘히 박힌 긴 건물이 이어진다. 아래는 다듬은 돌, 위는 흙벽에 목재 격자. 그 앞 잔디에는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잎을 거의 다 떨궈서 바닥이 온통 노랬다. 발로 밟으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거대한 석축 위로는 흰 회벽 건물이 길게 얹혀 있다. 총안이 뚫린 구조가 그대로 보인다. 앞에 선 노부부가 한참 올려다보며 뭐라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도 같은 자세로 목이 아플 때까지 봤다.

단풍은 나무마다 색이 제각각이었다. 이 한 그루는 아래쪽은 아직 주황이고 위쪽은 이미 검붉게 넘어가 있었다. 하늘이 워낙 파래서 색이 더 진하게 잡혔다.

길이 꺾이는 지점에서 연못이 나온다. 물가에 갈대가 서 있고 건너편 언덕은 초록·주황·붉은색이 뒤섞인 채로 그대로 물에 비친다. 이 안쪽에서는 도시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차 소리가 없다는 게 도쿄 한복판에서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그제야 실감했다.

나무 사이 틈으로 해자와 석축이 겹쳐 보이는 자리도 있다. 물빛이 오후 햇빛을 받아 탁한 황토색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물이 더러운 게 아니라 바닥 반사 탓이다. 난간 너머로는 못 나가게 되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석축과 흰 담이 만나는 구간이다. 아래쪽 돌은 검고 거칠게, 위쪽 담은 하얗게 마감해서 경계가 칼로 자른 듯 나뉜다. 담 끝에 작은 기와 문이 하나 얹혀 있고, 그 아래 물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 문을 통과할 때가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였다. 문 아치 안쪽으로 노란 은행나무가 액자처럼 잘려 보인다. 다들 그 앞에서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느라 병목이 생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옆에 「手洗所」 화살표가 붙어 있으니 화장실은 이 근처에서 해결하는 게 낫다.


가기 전에 알아 두면 좋은 것
- 안쪽 길 공개는 상시가 아니라 봄·가을 특정 기간에만 열린다. 날짜는 해마다 바뀌니 궁내청 공지에서 현장 확인 권장. 나는 우연히 걸린 경우다.
- 입장료는 없었다. 사전 신청도 하지 않았고, 줄 서서 짐 검사만 받고 들어갔다.
- 짐 검사는 가방을 열어 보여 주는 방식. 큰 배낭·삼각대·우산은 시간이 더 걸린다. 손 가볍게 갈 것.
- 코스가 일방통행이라 되돌아갈 수 없다. 놓친 지점을 다시 보려면 밖으로 나와서 크게 돌아야 한다.
- 도쿄역 마루노우치 중앙 출구에서 도보 10분 안팎. 지하철은 니주바시마에역·사쿠라다몬역이 가깝다.
- 안쪽에는 매점이 없다. 물은 미리 챙기고, 밥은 나와서 마루노우치 지하상가에서 해결하는 게 편하다.
- 화장실은 코스 후반 문 근처에 안내가 붙어 있다. 그 전 구간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담장 밖에서 니주바시만 보고 돌아갔다면 그냥 "성 앞 광장 한 번 봤다"로 끝났을 하루였다. 검사받고 10분 걸어 들어간 것만으로 소리부터 달라졌다. 다음에 도쿄 갈 일이 생기면 이번엔 날짜를 맞춰서 와야겠다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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