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돔시티 라쿠아 잔디밭이 코스프레 광장이 되는 날 — 썬더돌핀 아래에서 반나절
도쿄 분쿄구 도쿄돔시티는 야구 보러 가는 곳이라고만 알고 갔다가 계획이 통째로 어긋난 날이었다. 돔 경기는 저녁이었고, 낮에 시간이 비어 라쿠아(LaQua) 쪽 계단을 내려갔는데 인공잔디 광장이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교복 비슷한 옷, 검은 원피스, 짧은 체크 스커트. 잔디에 앉아…
도쿄 · 도쿄돔시티
도쿄 분쿄구 도쿄돔시티는 야구 보러 가는 곳이라고만 알고 갔다가 계획이 통째로 어긋난 날이었다. 돔 경기는 저녁이었고, 낮에 시간이 비어 라쿠아(LaQua) 쪽 계단을 내려갔는데 인공잔디 광장이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교복 비슷한 옷, 검은 원피스, 짧은 체크 스커트. 잔디에 앉아 화장을 고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바닥에 포토카드를 늘어놓고 교환하고 있었다. 놀이공원에 온 게 아니라 촬영장에 잘못 들어온 기분이었다.
잔디밭은 놀이기구 대기줄이 아니라 촬영 스튜디오다
라쿠아 1층 잔디 광장은 지도상으로는 그냥 쇼핑몰 앞 공터다. 실제로는 다르다. 이날은 잔디 위에 돗자리 대신 얇은 천을 깔고 앉은 무리가 열댓 팀쯤 있었고, 그 사이를 지나가려면 신발 조심해야 할 정도였다.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보면 무슨 모임인지 대충 읽힌다. 분홍색 원형 매트 위에 인형 두 개, 아크릴 스탠드, 케이스에 끼운 카드들. 잔디 가장자리 나무 벤치에는 앉을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정오 무렵의 햇빛이 정직하게 셌다. 5월인데도 잔디 위는 열이 올라와 있었고, 양산을 쓴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았다. 검은 프릴 양산, 흰 레이스 양산. 처음 오는 사람은 이 부분을 놓치기 쉽다. 여기 잔디밭에는 그늘이 거의 없다. 건물 처마가 만드는 그림자 라인이 한 줄 있는데, 그 자리는 오전부터 이미 선점돼 있었다. 나는 그늘을 못 찾아서 20분 서 있다가 목덜미가 벌겋게 익었다.

이 각도가 도쿄돔시티에서 가장 값싸게 얻는 사진이다. 돈 한 푼 안 내고 돔·롤러코스터·관람차를 한 장에 담을 수 있다. 파란 계단 위쪽은 사람들이 계속 오르내리는 통로라 삼각대를 세우면 민폐다. 계단 아래쪽 잔디 끝에서 서서 찍는 편이 낫다.
썬더돌핀은 타지 않아도 무섭다
라쿠아 건물 바깥으로 나와 언덕진 보도를 따라 올라가면 썬더돌핀 레일이 머리 위를 지난다. 이 코스터의 유명한 구간은 빅오 관람차의 가운데 빈 원을 통과하는 부분인데, 밑에서 올려다보면 레일과 관람차 곤돌라가 실제로 겹쳐 보인다. 빨간 곤돌라가 촘촘히 박힌 흰 원형 프레임, 그 사이를 뚫고 나가는 파란 레일.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좁아 보였다.

차량이 지나갈 때 나는 소리가 예상과 달랐다. 비명보다 레일이 울리는 저음이 먼저 온다. 배 쪽에 울리는 그 소리 때문에 아이들이 몇 명 울었다. 아래를 지나던 부모가 급하게 안아 올리는 걸 두 번 봤다.
도쿄돔시티 어트랙션스는 디즈니랜드처럼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구조가 아니다. 부지 자체는 담이 없이 트여 있어서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고, 타는 것마다 개별 요금을 내거나 자유이용권을 산다. 놀이기구를 안 탈 거면 돈을 전혀 안 써도 된다. 이게 도쿄에서 이 동네가 갖는 진짜 장점이다. 요금은 시기마다 바뀌니 현장 매표소나 공식 안내 확인을 권한다.
스플래시 가든 앞, 하늘로 솟은 기둥
어트랙션 구역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스플래시 가든(スプラッシュガーデン)'이라고 쓰인 남색 사인이 붙은 건물이 나온다. 화장실 픽토그램이 같이 붙어 있어서 위치를 기억해두면 편하다. 이 구역은 잔디 광장 쪽보다 확실히 한산했다. 코스프레 인파는 라쿠아 앞에 몰려 있고, 여기까지는 잘 안 넘어온다.

기둥 꼭대기의 붉은 원반이 천천히 올라갔다가, 예고 없이 떨어진다.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서 밑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꽤 있다. 아래에 서 있으면 낙하 순간 그림자가 갑자기 커지는 게 보인다. 이 근처는 앉을 벤치가 몇 개 있고 자판기도 가깝다.
줄 서 있는데 카메라 인간이 브이를 했다
어트랙션 구역의 파란 고무 바닥길, 노란 체인으로 구획을 나눠놓은 대기 구역에서 이날의 가장 예상 밖 장면을 만났다. 머리에 은박을 입힌 사각 상자를 쓴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상자 앞면에 커다란 렌즈 모양 원과 격자 구멍이 뚫려 있고,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브이를 했다. 카메라 머리 캐릭터 코스프레였다. 뒤로는 검은 가발, 주황 가발, 초록 하오리를 걸친 사람들이 지나갔다.

재밌었던 건 아이들 반응이었다. 무서워하지 않고 옆에 딱 붙어서 같이 브이를 했다. 카메라 머리 쪽에서 먼저 몸을 살짝 낮춰줬다. 이 동네 코스프레 인파가 도쿄의 다른 곳과 다른 지점이 여기 있는 것 같다. 사진 찍히는 걸 전제로 나온 사람들이라 거리감이 없다. 물론 무턱대고 렌즈를 들이대는 건 다른 문제다. 나도 이 사진은 아이 보호자와 눈이 마주친 뒤에 찍었고, 아이들 얼굴은 가려서 올린다.
처음 가는 사람이 알아두면 좋은 것
- 가장 가까운 역은 여러 개다. JR 스이도바시역, 도영지하철 스이도바시·가스가역, 도쿄메트로 고라쿠엔역이 전부 도보권이다. 라쿠아 잔디 광장 쪽으로 곧장 가려면 고라쿠엔역 출구가 편하다.
- 부지가 계단과 슬로프로 층이 나뉘어 있다. 지도만 보고 직선으로 가려 하면 한 층 위나 아래에서 헤맨다. 사진 속 파란 계단이 라쿠아 광장과 돔 쪽을 잇는 주요 동선이다.
- 잔디 광장에 그늘이 거의 없다. 낮에 오래 있을 거면 모자나 양산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 놀이기구를 안 타도 부지 안을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 사진만 찍고 나와도 아무도 뭐라 안 한다.
- 코스프레 인파는 이벤트 일정에 따라 있는 날과 없는 날 차이가 크다. 사진 속 풍경을 기대한다면 방문 전에 도쿄돔·라쿠아 이벤트 일정 확인을 권한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사진을 넘겨보니 정작 놀이기구를 하나도 안 탔다. 그런데 아쉽지가 않았다. 이 동네가 재미있는 건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잔디밭에 앉아 두 시간씩 서로를 찍어주는 사람들과 그 위로 30초마다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레일이 같은 화면 안에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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