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산노미야 뒷골목, 레드락(RedRock) 본점에서 로스트비프동 앞에 앉다
고베에서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산노미야에서 걸어 들어간 좁은 골목, 셔터 내려간 가게들 사이에 빨갛게 켜져 있는 간판 하나. 「RedRock Kobe main store」. 일본 고베의 레드락 본점이다. 간판에는 노른자 하나 얹은 로스트비프 산더미와, 갈색으로 구워진 스테이크동이 실물 크기로 붙어…
고베 · 레드락
고베에서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산노미야에서 걸어 들어간 좁은 골목, 셔터 내려간 가게들 사이에 빨갛게 켜져 있는 간판 하나. 「RedRock Kobe main store」. 일본 고베의 레드락 본점이다. 간판에는 노른자 하나 얹은 로스트비프 산더미와, 갈색으로 구워진 스테이크동이 실물 크기로 붙어 있다. 사진과 실물이 다르지 않은 집은 드문데, 여기는 거의 같았다.

고베에서 소고기 간판을 보면 일단 들어가라
고베는 소고기의 도시다. 고베규라는 이름값이 워낙 커서 다들 비싼 철판구이집만 떠올리는데, 실제로 이 동네를 며칠 걸어보면 알게 된다. 소고기를 재료로 쓰는 밥집, 덮밥집, 함박집, 하다못해 동네 양식당까지 — 웬만하면 다 맛있다. 소를 다루는 손이 도시 전체에 깔려 있는 느낌이랄까. 고기 굽는 정도, 소스 배합, 붉은 살을 얼마나 남길지에 대한 감각이 기본값 자체가 높다. 그래서 고베에서는 소고기 파는 집 간판이 보이면 리뷰 뒤지느라 30분 쓰지 말고 그냥 들어가라고 말한다. 실패 확률이 낮다.
레드락도 그 연장선이다. 미슐랭 붙은 고급집이 아니라, 줄 서서 먹는 대중 덮밥집. 그런데도 고기의 질과 굽기 감각은 어지간한 고깃집을 넘어선다.

이 라이트박스를 보고 잠깐 멈칫했다. 흑모화규 라인은 수량 한정이라 저녁 늦게 가면 없을 수 있다. 우리가 앉았을 땐 아직 남아 있었지만, 옆 테이블에서 "이건 끝났다"는 말을 듣는 소리가 났다. 특정 메뉴를 노리고 간다면 시간대를 당기는 게 낫다.
가게 안 — 온통 빨간 벽과 소 부위 도감
안은 좁다. 정말 좁다. 테이블 간격이 팔꿈치 하나 정도라 옆 사람 대화가 다 들리고, 겉옷은 무릎에 올려두게 된다. 벽은 전부 빨간색이고, 그 위에 「American Beef 아메리칸 비프 주요 부위」 포스터가 붙어 있다. 척 아이 롤부터 행잉 텐더, 아웃사이드 스커트까지 36가지 부위가 번호로 정리돼 있고, 아래쪽엔 USDA 등급표(Prime, Choice, Select)까지 그림으로 붙어 있었다.

이 포스터가 은근히 힌트다. 여기가 '고베규 전문점'인 척하는 집이 아니라, 미국산 비프와 흑모화규를 메뉴에 따라 나눠 쓰는 집이라는 걸 대놓고 밝혀둔 셈이다. 그 정직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값싼 덮밥이 왜 이 가격에 이 양이 나오는지 설명이 되니까.
로스트비프동 — 소스 두 줄기가 핵심
가장 먼저 나온 게 간판 그림 그대로의 로스트비프동이다. 검은 사발에 밥이 안 보일 만큼 로스트비프를 쌓아 올리고, 꼭대기에 생노른자, 옆면에 후추 알갱이가 촘촘히 박힌 흰 소스가 한 줄기 흘러내린다. 반대편으로는 갈색 소스가 고기 사이사이로 스며 있다.

고기 자체는 얇게 저며 나오는데, 로스트비프 특유의 촉촉한 분홍 단면이 끝까지 살아 있다. 퍽퍽한 구석이 없다. 흰 소스는 요구르트처럼 시큼한 게 아니라 마늘 향이 도는 진한 크림 계열이고, 여기에 통후추가 씹힌다. 갈색 소스는 간장에 가까운 짭짤함. 이 둘을 노른자로 한번에 뭉개서 밥까지 끌어올리는 게 정석이다. 처음엔 소스가 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밥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딱 맞았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밥이 사발 아래쪽에 눌려 있어서 위쪽 고기를 반쯤 먹을 때까지 밥이 전혀 안 나온다. 그래서 초반엔 고기만 계속 먹게 되고, 후반엔 소스에 젖은 밥이 몰린다. 처음부터 젓가락으로 위아래를 한 번 크게 섞어놓고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낫다. 이건 두 번째 방문에서야 알았다.
스테이크동과 함박 — 일행이 시킨 것들
같이 간 일행은 스테이크동을 골랐다. 이쪽은 로스트비프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두툼하게 썬 스테이크를 강하게 구워 겉면에 진한 갈색 자국을 내고, 굵은 후추와 무순을 올려 낸다. 사발 가장자리로 밥알이 삐죽 보이는데, 소스가 밥에 스며서 노랗게 변해 있었다. 한 점 뺏어 먹어보니 씹는 맛이 확실히 강하고, 육즙보다는 불맛과 후추가 먼저 온다.

아이 몫으로는 함박스테이크 정식을 시켰다. 흰 접시에 통통한 함박 하나, 밥 위에 후추 뿌린 반숙 프라이, 채썬 양배추와 상추, 감자 샐러드, 그리고 케첩 묻힌 꽈배기 모양 파스타가 한쪽에 놓여 나온다. 일본 경양식집에서 흔히 보는 구성이라 반가웠다. 함박은 겉이 눌어붙을 만큼 확실히 구워져 있고, 갈라보면 안에서 육즙이 나온다.

고기 산더미가 부담스러운 사람, 또는 아이와 같이 갔다면 이 접시가 안전한 선택이다. 매운 것도 날것도 없다.

세 접시를 한 상에 놓고 보니 성격이 확실히 갈린다. 왼쪽 로스트비프동은 부드럽고 소스가 주인공, 오른쪽 스테이크동은 씹는 맛과 불맛, 아래 함박은 안전한 경양식. 둘이 갔다면 로스트비프동과 스테이크동을 하나씩 시켜 나눠 먹는 조합을 추천한다. 같은 걸 두 개 시키면 후반에 물린다.
위치와 실전 팁
본점은 산노미야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골목 안쪽이라 지도 없이는 지나치기 쉽다. 간판이 2층 높이에 달려 있어서 고개를 들어야 보인다. 아래 지도의 좌표가 실제로 서 있던 자리다.
- 줄은 각오하고 가라. 좌석 회전은 빠른 편이지만 매장이 작아서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식사 피크(정오 전후, 저녁 7시대)를 피하는 게 최선이다.
- 흑모화규 메뉴는 수량 한정이라 늦으면 없다. 이걸 노린다면 이른 시간.
- 양은 사진보다 많다. 곱빼기 계열은 정말 신중하게. 남기면 아깝다.
- 노른자를 먼저 터뜨려 위아래로 크게 섞어놓고 먹기 시작할 것.
- 짐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캐리어 끌고 갈 자리는 아니다.
- 가격과 영업시간, 결제 수단은 시즌마다 바뀌니 현장 확인 권장. 간판에 'Ko-Pay'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만 카드 가능 여부는 직접 물어보는 게 확실하다.
가게를 나와 골목을 되돌아 나오는데, 입에 남은 게 고기 기름이 아니라 그 흰 소스의 후추 향이었다. 고베에서 소고기 파는 집은 믿고 들어가도 된다는 말, 이 집에서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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