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부타다이가쿠(豚大学) — 700g '대학원'을 시켜놓고 후회한 저녁

도쿄 신주쿠 뒷골목에서 부타동 하나로 버티는 집이 있다. 가게 이름이 부타다이가쿠, 한자로 豚大学. 돼지대학이다. 지점을 '校舎(교사)'라고 부르고, 사이즈 이름도 학부 학년처럼 붙여놨다. 처음엔 유치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문 앞에 서서 메뉴판을 보는 순간 이 집이 왜 이렇게 이름을 붙였는지 알게 됐다. 밥 위에 고…

도쿄 · 부타다이가쿠(豚大学) 신주쿠점

도쿄 신주쿠 뒷골목에서 부타동 하나로 버티는 집이 있다. 가게 이름이 부타다이가쿠, 한자로 豚大学. 돼지대학이다. 지점을 '校舎(교사)'라고 부르고, 사이즈 이름도 학부 학년처럼 붙여놨다. 처음엔 유치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문 앞에 서서 메뉴판을 보는 순간 이 집이 왜 이렇게 이름을 붙였는지 알게 됐다. 밥 위에 고기를 얼마나 쌓느냐로 학년이 올라가는 구조다.

빨간 문, 그리고 500엔짜리 벤또

가게는 1층 통유리에 빨간 새시를 두른 좁은 입구다. 유리 하단에 검은 대접 가득 고기가 덮인 사진이 실물 크기로 붙어 있고 그 옆에 '中 600円'이라고 적혀 있다. 신주쿠 한복판에서 600엔. 이 숫자 하나만으로 왜 점심시간에 줄이 서는지 설명이 된다. 문 안쪽으로 카운터에 앉은 손님들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유리에 '豚焼肉弁当 500円 ランチ限定'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 평일 11시 30분부터 파는 도시락이다. 급하면 이걸 사서 나가는 사람도 꽤 보였다.

빨간 새시로 둘러싼 부타다이가쿠 신주쿠점 입구. 유리에 돼지고기 덮밥 사진과 '中 600円', '豚焼肉弁当 500円' 안내가 붙어 있고 안쪽 카운터석에 손님들이 앉아 있다
통유리에 붙은 실물 크기 부타동 사진. 안쪽 카운터가 그대로 보인다.

입구 옆 전광 간판에는 '全国丼グランプリ 2連続金賞受賞 ~豚丼部門~'이라고 적혀 있다. 전국 덮밥 그랑프리 돈부리 부문 2연속 금상. 그 아래에 '大学院 1120円'. 이게 이 집 최상위 사이즈다. 간판 하단에 영업시간도 박아뒀는데, 평일 11:00~22:00, 토·일·공휴일은 11:00~15:00 그리고 16:30~20:15로 나뉘어 있었다. 주말에 저녁 늦게 갈 생각이라면 이 브레이크 타임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갔을 때 기준이니 지금도 같은지는 현장 확인을 권한다.

가게 앞 전광 간판. '全国丼グランプリ 2連続金賞受賞 豚丼部門'과 고기가 수북한 부타동 사진, '大学院 1120円', 평일·주말 영업시간이 적혀 있다
간판 하단 영업시간. 주말은 15:00~16:30 사이가 비어 있다.

왼쪽 스탠드 메뉴판을 자세히 보면 사이즈 체계가 나온다. 並(보통) 300g 500엔, 中 500g 680엔, 大 大盛 870엔, 그리고 大学院 1000g에 1120엔. 그램 수가 밥 포함인지 고기만인지는 표기가 애매한데, 실물을 보면 밥까지 합친 무게로 짐작된다. 어느 쪽이든 500엔에 300g짜리 한 그릇이 나오는 건 이 동네 물가에서 흔치 않다.

칠판이 메뉴판이자 공지판인 가게 안

안으로 들어가면 ㄷ자 카운터가 주방을 둘러싸고 있고, 벽 한 면을 초록 칠판이 통째로 차지한다. 분필로 '豚大学 新宿校舎'라고 쓰고 그 옆에 안경 쓴 돼지를 크게 그려놨다. 날짜도 손으로 매일 새로 쓰는지 '1月 10日 (金)'과 '日直'(일직) 칸까지 있었다. 진짜 교실 흉내를 낸 것이다.

칠판 오른쪽 흰 종이에는 '豚大学 五か条'가 붙어 있다. 제1조부터 제5조까지, 남기지 말라·긁어 넣어라·다 먹어라 같은 문구가 세로쓰기 붓글씨로 적혀 있다. 마지막 조항이 "元気になって帰るべー" 비슷한 말이었는데, 힘내서 돌아가라는 뜻이다. 이런 걸 벽에 붙여둔 집이 밥을 못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게 내부 초록 칠판에 '豚大学 新宿校舎'와 안경 쓴 돼지 그림, Free Wi-Fi 아이디와 트위터 계정이 분필로 적혀 있고 카운터에 손님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평일 저녁 카운터. 자리가 거의 다 찼고, 대부분 혼자 온 손님이다.

칠판에는 실속 있는 정보도 섞여 있다. 와이파이 ID가 butadaigaku, 비밀번호는 가게 전화번호. '트위터 팔로우하면 토핑 1품 서비스'라는 문구도 큼직하게 써 있었다. 매달 29일은 '29(니쿠)의 날'이라고 따로 표시해뒀다. 고기 니쿠와 발음이 같아서 일본 고깃집들이 흔히 쓰는 이벤트인데, 날짜 맞춰 가면 뭔가 있는 모양이다.

카운터 옆 벽에는 토핑 가격표가 그림으로 붙어 있다. 미소시루 50엔, 반숙란 120엔, 갈릭 70엔, 김치 120엔, 츠케모노 120엔, 아오네기 120엔. 페트병 음료는 코카콜라 500ml 200엔, 아야타카 녹차 200엔대. 중국어로 된 안내문도 한 장 붙어 있는데, 리뷰를 쓰면 온천계란이나 미소시루를 하나 준다는 내용이다. 사진 3장 이상 또는 영상, GPS 켜고 작성, 다 쓰면 점원에게 보여줄 것 — 조건이 꽤 구체적이다.

벽에 붙은 안내물들. 중국어 리뷰 이벤트 포스터, Free Wi-Fi SSID butadaigaku 안내판, 미소시루 50엔·반숙란 120엔·갈릭 70엔 등이 그려진 토핑 가격표, 페트병 음료 가격표
토핑은 50~120엔대. 갈릭 70엔은 넣을 만하다.

중(中) 한 그릇, 그리고 국물 없이 넘기는 매운맛

주문하고 5분쯤 지나 검은 대접이 나왔다. 中 사이즈다. 밥이 거의 안 보인다. 손바닥만 한 삼겹 슬라이스가 대접 지름을 꽉 채우고 서로 겹쳐 누워 있고, 한가운데 데친 채소 한 줌이 올라가 있다. 국물 없이 고기와 밥, 그리고 초록 하나. 구성이 단순해서 오히려 고기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검은 대접에 담긴 부타동. 그을린 자국이 있는 두툼한 돼지고기 슬라이스가 밥을 완전히 덮고 있고 가운데 데친 초록 채소가 올려져 있다
中 사이즈. 밥알이 가장자리에 겨우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고기 가장자리가 새까맣게 탄 부분이 군데군데 있다.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센 불에 붙인 자국이다. 이 검은 데서 나는 쓴맛이 단짠 양념을 잡아준다. 표면에 기름과 소스가 섞여 번들거리고, 코앞에서 숯 냄새가 확 올라온다. 젓가락으로 들면 고기가 축 처지지 않고 어느 정도 탄력이 남아 있다.

부타동 클로즈업. 불에 그을려 검게 탄 가장자리와 기름이 번들거리는 돼지고기 표면, 가운데 초록 채소가 선명하게 보인다
탄 자국이 이 집 맛의 핵심이다. 이게 없으면 그냥 단 고기가 된다.

양념이 생각보다 맵다. 한 점 먹었을 때는 달다고 느꼈는데, 서너 점 넘어가니 혀 안쪽부터 얼얼하게 올라온다. 후추가 꽤 들어간 매운맛에 소스의 단맛이 겹쳐서, 밥을 안 뜨고 고기만 계속 먹으면 금세 목이 탄다. 그런데 이 매운 기운 덕에 삼겹 기름이 물리지 않는다. 한국식 매운맛처럼 고춧가루로 때리는 게 아니라, 짠맛·단맛·후추가 층층이 쌓여서 뒷맛이 길게 남는 종류다. 밥을 크게 한 술 떠서 고기와 같이 밀어 넣으면 그제야 균형이 잡힌다. 中 500g을 다 비우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 양이 진짜 푸짐하다.

검은 젓가락으로 두툼한 구운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 든 모습. 아래 대접에는 밥과 남은 고기, 빨간 플라스틱 숟가락이 보이고 맞은편에도 같은 대접이 놓여 있다
한 점이 젓가락에 걸쳐 처지지 않을 만큼 두껍다. 빨간 숟가락은 밥 긁어먹으라고 주는 것.

빨간 플라스틱 숟가락이 젓가락과 같이 나오는데, 이게 은근히 중요하다. 밥 밑에 고인 소스와 남은 밥알을 긁어 담으라는 용도다. 젓가락만으로 먹으면 마지막에 소스에 절은 밥을 그냥 남기게 된다. 벽에 붙은 五か条에 "긁어 넣어라"는 조항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가는 법과 실전 팁

신주쿠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큰길가가 아니라 사무실 건물이 늘어선 골목 안쪽 1층이라 지도 없이 찾기는 어렵다. 촬영 지점 좌표를 그대로 찍어두니 지도로 확인하고 움직이는 편이 빠르다.

실제로 겪어보고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둔다.

화려한 곳은 아니다. 칠판에 분필로 날짜 쓰고, 벽에 종이 붙이고, 대접에 고기 쌓아 내주는 게 전부다. 그런데 신주쿠에서 600엔으로 이만큼 배를 채우고 나오는 경험은 흔치 않다. 다음에 가면 미소시루부터 시키고 並로 주문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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