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뒷골목 카츠동야 즈이초 — 줄 서서 선불 내고 먹은 계란 이불 카츠동

도쿄 시부야에서 점심을 어디서 때울지 정하지 못한 채 스크램블 교차로 쪽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하늘은 1월치고 지나치게 파랬고, 정면으로는 스크램블 스퀘어와 히카리에가 서 있고, 왼쪽으로는 MAGNET 건물 전광판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 골목 안쪽에 있는 카츠동 전문점 즈이초(瑞兆)로 향했다. 결론부터 적어두면, 이…

도쿄 · 카츠동야 즈이초

도쿄 시부야에서 점심을 어디서 때울지 정하지 못한 채 스크램블 교차로 쪽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하늘은 1월치고 지나치게 파랬고, 정면으로는 스크램블 스퀘어와 히카리에가 서 있고, 왼쪽으로는 MAGNET 건물 전광판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 골목 안쪽에 있는 카츠동 전문점 즈이초(瑞兆)로 향했다. 결론부터 적어두면, 이 집은 시부야에서 밥 한 끼로 후회하지 않을 몇 안 되는 선택지였다.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시부야역 하치코 출구로 나와 고개를 들면 이런 풍경이다. 붉은 바탕에 '謹賀新年'이라 크게 붙은 광고면, 그 옆으로 세로로 길게 늘어선 잡거빌딩 간판들, 오른쪽엔 유리로 덮인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사진 왼쪽 아래에 '渋谷駅前'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즈이초로 가려면 이 표지판 방향에서 빌딩 사이 좁은 길로 한 번 더 꺾어야 한다.

파란 하늘 아래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주변 빌딩들 — MAGNET 전광판, 붉은 謹賀新年 광고,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와 히카리에 건물이 보인다
시부야역 앞. 이 큰길에서 빌딩 사이 골목으로 한 번만 꺾으면 소음이 확 줄어든다.

재밌는 건, 큰길에서 겨우 몇십 초 걸어 들어갔을 뿐인데 소리가 뚝 떨어진다는 점이다. 전광판 소리도, 신호등 멜로디도 안 들린다. 시부야를 처음 오는 사람은 이 큰길 주변 체인점에서 밥을 해결하고 마는데, 실제로 오래된 밥집들은 이렇게 한 겹 안쪽에 숨어 있다.

줄은 길고, 계산은 먼저다

도착했을 때 이미 가게 앞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매장이 좁아서 대기 인원은 자연스럽게 골목 벽을 따라 서게 된다. 여기서 처음 온 사람이 당황하는 지점이 있다. 주문과 계산을 자리에 앉기 전에 먼저 한다. 줄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직원이 다가와 뭘 먹을지 묻고, 그 자리에서 돈을 받는다. 카츠동 하나만 먹을 건지, 곱빼기인지, 국물은 어떻게 할 건지를 서 있는 상태로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문을 받으러 나온 직원은 흑인 남성이었다. 일본어로 능숙하게 응대하다가, 내가 잠깐 머뭇거리자 바로 영어로 바꿔서 다시 물어봤다. 도쿄 노포 계열 식당에서 이런 응대를 받는 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쪽이 마음이 편했다.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짚기만 해도 정확히 알아듣고, 대기 순서까지 챙겨준다. 현금을 미리 꺼내 손에 쥐고 있으면 줄이 훨씬 빨리 돈다.

줄 설 때 알아두면 좋은 것

뚜껑을 열면 계란 이불이 통째로 덮여 있다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릇이 나왔다. 흔히 보는 카츠동과 생김새부터 다르다. 계란을 풀어 카츠 위에 흩뿌린 게 아니라, 얇게 부친 계란 지단이 밥과 카츠 전체를 한 장으로 감싸고 있다. 사발 가장자리를 따라 노란 계란이 이불처럼 넘실거리고, 그 위에 튀김옷 결이 살아 있는 카츠가 통째로 얹혀 있다. 소스는 시커멓게 붓지 않고, 튀김옷 표면에 윤기만 남을 정도로 발라져 있었다.

파란 테두리 사발에 담긴 카츠동. 노란 계란 지단이 밥 전체를 감싸고 그 위에 소스를 바른 돈카츠가 통째로 올려져 있다. 옆에는 붉은 칠기 국그릇과 세로줄무늬 찻잔이 놓여 있다
지단이 밥을 통째로 감싼 형태. 옆에 붉은 칠기 국그릇과 줄무늬 찻잔이 함께 나온다.

사진 오른쪽 위에 보이는 붉은 칠기 뚜껑 그릇이 된장국이고, 그 옆 세로줄무늬 찻잔에 따뜻한 차가 담겨 나온다. 나무 카운터에 그릇 세 개가 놓이면 자리가 꽉 찬다. 옆 사람 팔꿈치가 닿을 만큼 좁으니 가방은 발밑 바구니에 넣는 게 낫다.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본 단면

한 조각 집어 들어 봤다. 튀김옷은 겉면만 진한 갈색이고, 안쪽 고기는 옅은 분홍빛이 남아 있었다. 이게 이 집의 핵심이라고 본다. 국물에 오래 자작하게 끓여 눅눅해진 카츠가 아니라, 튀긴 직후의 상태를 최대한 유지한 채로 계란과 소스만 얹은 것에 가깝다. 씹으면 튀김옷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남아 있고, 그 다음에 육즙이 온다. 소스 짠맛도 세지 않아서 밥이랑 같이 먹으면 딱 맞는다.

젓가락으로 카츠동의 돈카츠 한 조각을 들어 올린 모습. 겉은 갈색 튀김옷, 안쪽 고기는 옅은 분홍빛이 남아 있고 아래에는 계란과 흰쌀밥이 보인다
단면. 튀김옷은 바삭하게 남고 안쪽 고기는 분홍빛이 돈다.

아쉬웠던 점도 적어둔다. 계란 지단이 워낙 넓게 덮여 있어서 처음 몇 젓가락은 밥까지 닿기가 애매하다. 지단을 젓가락으로 한 번 갈라서 밑에 깔린 밥과 섞어 먹는 편이 훨씬 낫다. 그리고 소스가 사발 바닥에 고이는 구조라, 마지막쯤 되면 아래쪽 밥이 꽤 축축해진다. 밥알이 또렷한 상태를 좋아한다면 위쪽부터 부지런히 퍼먹는 게 좋다.

가서 먹을 만한가

시부야에서 한 끼를 카츠동에 쓸 생각이라면, 줄 서는 시간까지 감수할 값어치는 한다. 다만 시간에 쫓기는 일정이라면 피하는 게 맞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는 순간부터 대기까지, 밥 한 그릇에 생각보다 시간이 든다. 점심 피크를 살짝 비껴간 오후 시간대가 그나마 줄이 짧았다.

기억해 둘 세 가지 — 골목 안쪽이라 지도 없이는 못 찾는다, 앉기 전에 주문하고 돈부터 낸다, 지단은 갈라서 밥과 섞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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