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끌고 들어간 오키나와 류큐무라 — 붉은 기와와 에이사 북소리, 그리고 양산 없이 버틴 두 시간
오키나와 본섬 서해안, 온나손 쪽으로 58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산 아래 붉은 기와 지붕들이 몰려 있는 구역이 나온다. 류큐무라(琉球村)다. 이름만 보면 그냥 민속촌이겠거니 싶은데, 실제로 들어가 보면 성격이 두 개다. 옛 오키나와 민가를 통째로 옮겨와 보존해 둔 야외 박물관이면서, 하루에 몇 번씩 마당에서 전통…
오키나와 · 류큐무라
오키나와 본섬 서해안, 온나손 쪽으로 58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산 아래 붉은 기와 지붕들이 몰려 있는 구역이 나온다. 류큐무라(琉球村)다. 이름만 보면 그냥 민속촌이겠거니 싶은데, 실제로 들어가 보면 성격이 두 개다. 옛 오키나와 민가를 통째로 옮겨와 보존해 둔 야외 박물관이면서, 하루에 몇 번씩 마당에서 전통 행사를 벌이는 테마파크다. 2015년 5월 18일, 돌 지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갔던 날의 기록이다.

매표소 창구 옆에 붙은 요금표를 그대로 옮기면 어른(16세 이상) 1,200엔, 어린이(6~15세) 600엔이었다. 우리 아이는 무료로 들어갔다. 다만 이건 방문 당시 가격이라 지금은 다를 수 있으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표를 끊고 나무 기둥 아래를 지나면 바로 분홍색 키지무나 인형이 손가락을 세운 채 앉아 있고, 옆에 'めんそーれ(ようこそ) WELCOME' 표지판이 왼쪽 화살표와 함께 서 있다. 아이는 이 인형을 보자마자 유모차에서 몸을 앞으로 뺐다.

먼저 알아둘 것 — 여긴 그늘이 별로 없다
강조해서 적어두고 싶은 게 이거다. 양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류큐무라는 마당 중심으로 짜인 곳이라, 행사가 벌어지는 광장도, 민가 사이를 잇는 길도 대부분 흰 모래가 깔린 맨땅이다. 5월 정오의 오키나와 햇빛이 그 모래에 반사돼 아래에서도 올라온다. 우리는 모자만 챙겨 갔다가 삼십 분 만에 후회했고, 아내가 접이식 양산을 하나 들고 있었던 덕에 그나마 아이 얼굴을 가릴 수 있었다. 마당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사진을 다시 보면, 앉아 있는 사람 대부분이 양산이나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 현지 어르신들이 다 알고 왔다는 뜻이다.

위치와 가는 법
나하 공항에서 렌터카로 올라가면 오키나와 자동차도로를 타든 58번 국도를 타든 한 시간 안팎이다. 우리는 온나 지역 숙소에서 출발해 국도로 붙었는데, 바다를 왼쪽에 두고 달리다 산 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구조라 표지판만 놓치지 않으면 헤맬 일이 없다. 주차장은 넓은 편이었고, 주차 후 입촌구까지는 평지로 몇 분 걷는 정도. 유모차를 밀고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안쪽 언덕길과 모래 구간에서는 바퀴가 자주 걸렸다. 아기띠를 함께 챙겨 가면 훨씬 낫다.
하이라이트는 마당에서 벌어지는 도열 행사
류큐무라를 굳이 가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이 행사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안내방송이 나오고, 관객들이 중앙 마당 가장자리로 모인다. 붉은 깃발과 보라색 깃발이 먼저 들어오고, 그 뒤로 붉은 지붕을 씌운 가마가 따라온다. 가마 옆을 지키는 사람은 검은 옷에 붉은 두건을 두른 차림이다.

가마 행렬이 자리를 잡으면 오른쪽에서 에이사 북패가 들어온다. 큰 통북(오다이코)을 어깨에 멘 사람과 손북을 든 사람이 섞여 있고, 붉은 두건과 검은 조끼가 흰 모래 위에서 유난히 선명하다. 북소리가 스피커를 거치지 않고 그냥 마당에 퍼진다. 가까이서 들으면 배에 울릴 정도다.


북패만 있는 게 아니라 부채를 든 여성 무용수들이 반대편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대열을 이룬다. 남색 기모노와 연한 베이지 기모노가 번갈아 서고, 흰 부채를 폈다 접는 동작이 북 장단과 어긋나면서도 맞물린다. 전체를 한눈에 보려면 마당 한쪽 끝, 나무 그늘 근처에 자리를 잡는 게 낫다.



유모차를 끌고 온 입장에서는 자리 잡기가 관건이었다. 관객석 의자는 볕이 정면으로 드는 쪽에 놓여 있어서, 우리는 아예 반대편 나무 그늘에 유모차를 세우고 서서 봤다. 시야는 조금 비스듬해도 아이가 잠들어 있기엔 훨씬 나았다. 실제로 아이는 북소리 한복판에서 그대로 잠들었다.


행사가 끝나면 민속촌 쪽으로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면 그때부터가 박물관 시간이다. 옛 민가들이 언덕을 따라 흩어져 있고, 갈림길마다 나무 표지판이 서 있다. '旧大城家(구 오시로가)', '陶芸工房(도예 공방)', '製糖工場(제당 공장)', 그리고 '出口(출구)'. 표지판 방향만 따라가도 한 바퀴가 돈다.

지붕을 유심히 보면 재미있다. 어떤 집은 붉은 기와, 어떤 집은 억새를 엮은 초가인데, 기와 지붕 용마루에는 시사가 줄줄이 올라앉아 있다. 색도 모양도 다 다르고, 받침에 작은 글씨가 새겨진 것도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세트가 아니라 하나씩 다르게 빚어 올린 것들이다. 이끼가 낀 회반죽과 갓 구운 듯 붉은 기와가 섞여 있어서, 손을 여러 번 본 지붕이라는 게 그대로 드러난다.

민가 안쪽에는 전시 케이스가 놓인 공간도 있다. 유리 안에 놓인 가면들이 꽤 강렬했다. 초록빛 얼굴에 붉은 입술을 벌린 사자탈, 그 옆에 살구빛 얼굴에 이를 드러낸 큰 탈, 아래에는 붉게 칠한 사자머리 두 개. 몸통은 알록달록한 실을 층층이 엮어 만들었다. 아이는 이걸 보고 울지도 웃지도 않고 한참 쳐다보기만 했다.

도예 공방 — 여기가 기념품 사기 제일 좋다
표지판을 따라 도예 공방으로 들어가면 작업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함석 지붕 아래 작업대가 놓여 있고, 물레 앞에 앉은 장인이 조그만 걸 손에 쥐고 다듬고 있었다. 선반 위로 구워 놓은 붉은 시사들이 줄지어 있고, 아래 매대에는 완성품이 가격표와 함께 깔려 있다. 관광지 매장이라기보다 작업장 한쪽을 열어둔 느낌이다.

매대에서 제일 눈길이 갔던 건 라면 뚜껑 누름돌이었다. 시사가 앞발을 들고 엎드린 모양으로 빚은 작은 도자기인데, 손글씨 팻말에 '麺そ〜れ ¥864 / 多幸山窯 오리지널 상품, 여기서만 살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옆에 실제 오키나와 소바 컵라면을 놓고 시연까지 해뒀다. 이름부터 '멘소레(めんそーれ, 어서 오세요)'에 국수 면(麵)을 붙인 말장난이다. 기념품으로 이 정도면 값도 부피도 적당하다고 봤다.

물소와 사탕수수 방앗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물소가 있다. 울타리 너머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뿔이 굵고 옆으로 크게 휘어 있어서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컸다. 코에 초록색 고리가 걸려 있고, 사육사가 옆에서 줄을 잡고 있다. 손을 뻗어 코 위를 만져봤는데 털이 짧고 뻣뻣하고, 생각보다 따뜻했다. 아이는 유모차에 앉은 채로 물소를 올려다봤다.


물소가 여기 있는 이유는 바로 옆 제당 시설 때문이다. 지붕을 얹은 커다란 나무 수레바퀴가 서 있는데, 예전에는 소가 이걸 돌려 사탕수수를 짰다. 바퀴 앞 바닥은 오래된 돌이 그대로 깔려 있고, '미끄러우니 발밑을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일본어와 영어로 붙어 있다. 실제로 물기가 남아 있어 미끄러웠다. 유모차 바퀴가 한 번 헛돌아 아찔했던 지점이다.

나오기 전에 들르는 두 곳
출구 방향으로 가다 보면 바나나잎이 우거진 자리에 키지무나 인형 한 쌍이 서 있다. 붉은 머리에 잎사귀 관을 쓴 남자, 꽃 장식에 잎으로 짠 옷을 입은 여자. 오키나와 전승에 나오는 나무 정령인데, 여기서는 손을 들어 인사하는 자세로 세워 뒀다. 사람 키보다 작아서 아이 눈높이에 딱 맞는다.

마지막은 날짜판이다. '琉球村' 세 글자가 흰 페인트로 붙어 있고 아래에 날짜를 갈아 끼우게 되어 있는데, 우리가 갔던 날은 '2015年 5月 18日'이었다.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져 녹이 올라와 있는 게 오히려 이 물건이 오래 여기 서 있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나중에 사진첩을 넘길 때 이 한 장 덕분에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다시 간다면 이렇게
- 양산이나 챙 넓은 모자는 반드시. 마당에도 길에도 그늘이 부족하다.
- 도착하면 팸플릿부터 확인해 행사 시간을 잡고, 그 시간에 맞춰 동선을 짠다. 행사를 놓치면 절반은 놓친 셈이다.
- 공연은 관객 의자 쪽보다 맞은편 나무 그늘에서 서서 보는 편이 아이 데리고는 낫다.
- 유모차는 들어가긴 하지만 모래길과 언덕에서 고생한다. 아기띠 병행을 권한다.
- 기념품은 입구 매장보다 도예 공방 쪽이 물건이 재미있다.
돌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이곳이 잘 만든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로 손질하며 쓰는 마을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지붕의 이끼, 미끄러운 돌바닥, 작업대 위에 늘어놓은 도구들, 물소 코의 초록 고리. 잘 정돈된 관광지에서는 잘 안 보이는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이가 조금 더 커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한 번 더 가볼 생각이다. 그때는 양산 두 개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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