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도톤보리, 강 위에서 본 글리코 간판 — 크루즈 타고 먹고 걸은 하루

난바역에서 나와 5분쯤 걸으면 갑자기 도시가 시끄러워진다. 오사카 도톤보리는 그런 곳이다. 사람 소리, 튀김 기름 소리, 호객하는 마이크 소리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낮에 한 번, 밤에 배를 타고 한 번, 하루에 두 번 이 강가를 걸었다. 같은 장소인데 해가 지고 나면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된다.

오사카 · 도톤보리

난바역에서 나와 5분쯤 걸으면 갑자기 도시가 시끄러워진다. 오사카 도톤보리는 그런 곳이다. 사람 소리, 튀김 기름 소리, 호객하는 마이크 소리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낮에 한 번, 밤에 배를 타고 한 번, 하루에 두 번 이 강가를 걸었다. 같은 장소인데 해가 지고 나면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된다.

맑은 낮 도톤보리강 양옆으로 즈보라야 복어 간판과 쿠이다오레 인형, 돈키호테 관람차가 늘어선 전경과 정박한 노란 크루즈 배
에비스바시 위에서 서쪽을 본 낮 풍경. 오른쪽 아래 노란 배가 밤에 탈 도톤보리 크루즈다.

강폭은 생각보다 좁다. 사진으로 보면 대운하 같지만 실제로는 20m 남짓, 양쪽 산책로를 다 합쳐도 걸어서 10분이면 끝난다. 그런데 그 짧은 구간에 간판이 미친 듯이 붙어 있다. 왼쪽엔 복어 간판 즈보라야, 오른쪽엔 돈키호테 건물의 노란 철골과 관람차. 처음 온 사람은 여기서 목이 아프도록 위만 보게 된다.

파란 하늘 아래 글리코 러너 간판과 옆에 붙은 6P치즈, 유키지루시 메그밀크, 롯데리아 간판이 보이는 낮 풍경
낮에 본 글리코 러너. 조명이 꺼져 있어서 오히려 옆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글리코 간판은 낮에 보면 좀 심심하다. 다들 밤 사진만 올리는 이유가 있다. 그래도 낮에 와야 옆에 붙은 6P치즈 간판이나 롯데리아 같은 것까지 보인다. 간판 아래 계단은 늘 사람으로 꽉 차 있는데, 낮 시간대엔 그나마 자리가 난다.

강가 100m 안에서 오사카 명물이 다 해결된다

도톤보리의 먹거리는 종류가 많다기보다 밀도가 높다. 타코야키, 오코노미야키, 쿠시카츠, 라멘, 호루몬. 이 다섯 개가 반경 100m 안에 다 몰려 있다.

타코야키 쿠쿠루의 대형 붉은 문어 조형물과 옆 건물 앗치치혼포 간판, 그 앞에 줄 선 사람들
쿠쿠루의 문어가 벽을 뚫고 나온다. 오른쪽은 앗치치혼포, 낮에도 줄이 길다.

타코야키집이 열 걸음마다 하나씩 있는데 맛 차이는 솔직히 크지 않다. 차이는 굽는 사람과 기다리는 시간에서 난다. 노점 철판 앞에 서서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걸 보고 있으면 그 자체로 재미가 있다.

길가 노점의 긴 타코야키 철판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타코야키 수십 개와 뒤편 주방, 가스통
한 판에 수십 개가 동시에 돌아간다. 뒤쪽 가스통이 그대로 노출된 게 노점다웠다.

갓 나온 타코야키는 진심으로 뜨겁다. 겉만 식은 줄 알고 통째로 입에 넣었다가 입천장을 데었다. 가게 이름이 아예 '앗치치(뜨거뜨거)'인 데는 이유가 있다. 반은 식혀 먹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밤 앗치치혼포 가게 앞, 주황빛 문어 모양 등불 아래에서 아이 둘과 어른이 브이 포즈로 서 있는 모습
앗치치혼포 앞 문어 등불. 밤에 불이 들어오면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 포토존이었다.

쿠시카츠는 다루마 본점이 제일 눈에 띈다. 건물 전체에 화난 아저씨 얼굴이 붙어 있어서 못 찾을 수가 없다. 여기서 꼭 기억할 것 하나. 소스 두 번 찍기 금지. 위생 때문에 공용 소스통을 쓰기 때문인데, 모르고 두 번 담그면 옆 테이블 아저씨가 웃으면서 손을 젓는다. 양배추는 무료라 그걸로 소스를 떠 먹으면 된다.

쿠시카츠 다루마 본점 입구의 거대한 화난 아저씨 얼굴 조형물과 그 아래 줄을 선 손님들
창업 쇼와 4년을 내건 쿠시카츠 다루마. 얼굴이 워낙 커서 길 건너에서도 보인다.
쇼와 다이슈 호루몬 간판, 국산 호루몬 390엔·전 190석이라고 적힌 광고판과 검은 소 조형물
호루몬 간판에 국산 호루몬 390엔, 전 190석. 매일 17~19시 생맥주 반값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호루몬집 간판이 개인적으로 제일 오사카스러웠다. 가격을 대문짝만하게 박아놓고, 소 조형물을 건물 밖으로 튀어나오게 매달아 놨다. 17시부터 19시까지 생맥주 반값이라는 문구도 간판에 그대로 있다. 실제 메뉴와 가격은 바뀔 수 있으니 들어가기 전에 입구 메뉴판을 한 번 보는 게 안전하다.

센니치마에 아케이드 입구 옆 킨류라멘 건물 지붕에 올라앉은 커다란 초록색 용 조형물
센니치마에 아케이드 초입의 킨류라멘. 용이 웃는 얼굴이라 무섭진 않다.

킨류라멘은 앉을 자리가 다다미 평상이다. 신발 벗고 올라가서 후루룩 먹고 나오는 구조. 김치와 부추가 통에 담겨 무제한으로 놓여 있어서 한국 사람 입맛에는 편하다. 자리가 좁아 짐이 많으면 좀 곤란하다.

철판 앞에 앉는 저녁

가게 철판 위에서 새우와 양배추를 넣고 볶아낸 굵은 면의 야키소바
면이 굵어서 소스가 잘 붙는다. 새우가 통으로 들어간 야키소바.

철판 바로 앞자리에 앉으면 뜨겁다. 겨울에도 겉옷을 벗게 된다. 대신 지글거리는 소리와 소스 타는 냄새를 정면에서 맞는데, 이게 도톤보리 밥집의 절반이다. 야키소바 면은 한국 짜장면 면보다 굵고 쫄깃했다.

철판 위에 나란히 놓인 오코노미야키 두 장, 소스와 마요네즈가 뿌려지고 가쓰오부시가 수북이 올라간 모습
가쓰오부시가 열기에 살아 움직이듯 흔들린다. 두 장 시켜서 넷이 나눠 먹었다.

오코노미야키는 두 장이면 성인 둘에 아이 둘이 배부르다. 욕심내서 야키소바까지 시켰더니 결국 남겼다. 도톤보리에서 여러 집을 돌 계획이라면 한 집에서 다 먹지 말고 한두 개씩 나눠 시키는 편이 낫다. 이건 첫날 실패하고 둘째 날에야 지킨 원칙이다.

밤의 호젠지 요코초 돌바닥 골목, 양옆으로 붉은 등과 오코노미야키·복어 요리 간판이 걸린 좁은 길
큰길에서 한 블록 들어온 호젠지 요코초. 소음이 갑자기 사라진다.

도톤보리 큰길이 지겨워지면 남쪽으로 한 블록만 들어가면 된다. 돌바닥이 깔린 좁은 골목이 나오고, 여기서부터는 사람 소리가 뚝 끊긴다. 폭이 2m가 될까 말까 한 길인데 양쪽으로 오코노미야키집, 복어집이 붙어 있다. 이끼 낀 물 뿌리는 지장보살상도 이 골목 끝에 있다. 큰길의 화려함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여기가 훨씬 편하다.

위치와 가는 법

지하철 미도스지선 난바역에서 걸어서 5분, 오사카메트로 닛폰바시역에서도 비슷하다. 신사이바시에서 아케이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와도 10분이 안 걸린다. 짐이 있으면 난바역 코인로커에 넣고 오는 편이 낫다. 사람이 많은 시간대(19~21시)에는 캐리어를 끌고 다리를 건너기가 실제로 어렵다.

도톤보리 크루즈 — 20분에 이 동네가 정리된다

도톤보리에 왔으면 크루즈는 타보길 권한다. 걸어서 보는 것과 물 위에서 보는 게 시선 높이가 완전히 달라서, 간판들이 한꺼번에 머리 위로 쏟아지는 느낌이 든다. 타는 곳은 돈키호테 앞 선착장. 티켓 부스가 강가에 그대로 나와 있다.

밤 크루즈 배 앞머리에서 마이크를 들고 안내하는 가이드와 좌우로 늘어선 네온 간판, 왼쪽에 Cruise Tickets 부스
출발 직후. 왼쪽 강가에 'Cruise Tickets' 부스가 보인다.
배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손을 뻗어 간판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가이드, 옆 조타실에 최대 승선 인원 50명·여객 48명 표기
조타실에 '최대 탑재 인원 50인(여객 48인)'. 만석이면 꽤 빽빽하다.

가이드가 일본어로 쉬지 않고 떠든다.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만 따라가면 되고, 관객 반응을 유도하는 부분에서는 다들 웃으니까 같이 웃으면 된다. 배는 지붕이 없는 개방형이라 겨울에는 정말 춥다. 우리가 탔을 때가 한겨울이었는데 아이들 패딩 모자를 끝까지 씌워놨다. 담요는 따로 없었다. 계절에 따라 운영이 다를 수 있으니 요금과 배차는 선착장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배 위에서 올려다본 에비스바시 다리와 그 너머 아사히 슈퍼드라이 대형 캔 간판, H&M 건물
에비스바시(えびす橋) 아래를 지나기 직전. 다리 밑 통과할 때 천장이 확 낮아진다.

다리 아래를 지날 때가 가장 재미있다. 천장이 코앞까지 내려오고, 다리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 답하면 거의 다 되받아준다. 이 구간에서만 다리를 예닐곱 개쯤 지난다.

크루즈 배 위에서 올려다본 밤의 글리코 간판과 오리진 세로 간판, 승객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모습
글리코 앞에서는 배가 잠깐 속도를 줄인다. 다들 휴대폰을 든다.

글리코 간판 앞에 오면 배가 확실히 느려진다. 다리 위에서 찍는 사진과 각도가 완전히 달라서, 간판이 비스듬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에 비친 네온이 같이 찍히는 건 배 위에서만 가능하다.

밤 크루즈 위에서 글리코 간판을 배경으로 파란 패딩을 입은 아이 둘이 브이 포즈를 한 모습
글리코 배경 인증샷. 배가 흔들려서 몇 장은 다 흔들렸다.
에비스바시와 아사히 슈퍼드라이 간판을 배경으로 크루즈 좌석에 앉아 사진을 찍은 가족
에비스바시 앞에서. 뒤로 슈퍼드라이 캔 간판이 통째로 들어온다.
크루즈에서 본 강 건너편 건물들, 쿠시카츠 다루마와 와나카 간판, 낚시터 츠리보리 간판이 보이는 야경
강 건너 낮은 건물들. 노란 '츠리보리(낚시터)' 간판이 이 동네에 있는 게 좀 의외였다.
노란 난간에 감긴 전구 조명과 강물, 건너편 돈카츠 간판 앞에서 브이를 하는 파란 패딩 차림의 아이
배 난간에 감아 놓은 전구. 이게 물에 비쳐서 사진이 살아난다.
강변 일루미네이션을 배경으로 파란 패딩 모자를 뒤집어쓴 아이가 브이 포즈를 한 밤 사진
바람이 정면으로 들어와서 모자를 벗지 못했다.

서쪽 끝 — 관광객이 잘 모르는 구간

배는 글리코를 지나 서쪽으로 더 간다. 여기부터가 오히려 조용하다. 간판이 줄고 조명 장식이 늘어난다.

강변 산책로에 설치된 흰색과 노란색 전구 일루미네이션 조형물과 그 뒤 호텔 SEN 간판, 물에 비친 반사광
강변에 설치된 일루미네이션. 물에 비친 쪽이 더 예뻤다.
장미 넝쿨 무늬로 뒤덮인 흰 건물 외벽과 붉은 네온 'Rose Lips' 간판이 걸린 밤의 호텔
강 서쪽 구간의 러브호텔 건물. 외벽 장미 무늬가 워낙 커서 배 안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 구간에 러브호텔이 몰려 있다. 아이들과 탔다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데, 건물이 워낙 화려해서 아이들이 먼저 "저건 뭐야" 하고 묻는다. 우리는 그냥 "호텔"이라고 답했다.

구름 낀 밤하늘 아래 조명이 켜진 고층 아파트와 타츠미 영화당 간판이 있는 낮은 건물들
회항 지점 근처. 간판이 사라지고 그냥 사는 동네가 나온다.

배가 돌아 나오는 지점쯤 되면 네온이 완전히 끊기고 평범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도톤보리 반경 300m를 벗어나면 여기도 그냥 사람 사는 동네라는 걸 이 장면에서 알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구간이 20분 코스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다.

밤에 조명이 켜진 아사히 슈퍼드라이 대형 맥주캔 모양 간판 건물과 그 아래 에비스바시 계단
배에서 내려 다시 다리 위로. 슈퍼드라이 캔은 밤에 봐야 한다.
밤에 조명이 들어온 글리코 러너 간판 정면, 아래 계단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
불이 들어온 글리코. 낮에 본 그 간판이 맞나 싶다.
에비스바시 계단 옆에서 올려다본 아사히 슈퍼드라이 캔 간판과 6P치즈 간판이 나란히 보이는 야경
각도를 조금만 바꿔도 간판 조합이 달라진다. 여기서 제일 오래 서 있었다.

배에서 내리면 다시 다리 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방금 물 위에서 본 간판들을 이번엔 위에서 본다. 같은 것을 두 번 보는 셈인데 지루하지 않다. 20분짜리 크루즈 한 번으로 이 동네 지리가 머리에 들어와서, 내린 다음의 걸음이 훨씬 편해졌다.

다녀와서 정리한 것들

도톤보리는 "여기가 진짜 맛집이다" 같은 걸 찾으러 오는 곳이 아니다. 간판이 사람보다 큰 거리를, 배 위에서 목을 젖히고 한 바퀴 도는 경험 자체가 목적지다. 오사카 일정이 짧다면 저녁 시간 두어 시간을 여기에 통째로 쓰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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