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얀바루 숲속 우후야(百年古家 大家), 폭포 보면서 아구 샤브샤브 먹고 흑당푸딩으로 끝낸 저녁

나고 시내에서 차로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갑자기 도로 옆으로 붉은 기와지붕이 나타난다. 일본 오키나와 나고의 우후야(大家), 100년 넘은 고민가를 옮겨 지어 식당으로 쓰는 집이다. 동남아 쪽을 주로 다니다 오랜만에 일본으로 넘어온 참이었는데, 습기와 나무 냄새, 매미 소리가 뒤섞인 공기가 오히려 방콕 교외 어느 정원 식…

오키나와 · 우후야

나고 시내에서 차로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갑자기 도로 옆으로 붉은 기와지붕이 나타난다. 일본 오키나와 나고의 우후야(大家), 100년 넘은 고민가를 옮겨 지어 식당으로 쓰는 집이다. 동남아 쪽을 주로 다니다 오랜만에 일본으로 넘어온 참이었는데, 습기와 나무 냄새, 매미 소리가 뒤섞인 공기가 오히려 방콕 교외 어느 정원 식당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여기가 훨씬 조용하다는 것.

주차장에서 내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마당이 먼저 나온다. 류큐 기와를 얹은 목조 건물이 여러 채 흩어져 있고, 가운데 하나가 '待合室(대합실)'이다. 이름 그대로 대기실인데, 여기 앞 잔디밭에서 아이가 한참 뛰어다녔다. 웨이팅이 길어도 애 데리고 온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구조라는 게 이 집의 큰 장점이다.

붉은 류큐 기와지붕의 목조 건물 앞 잔디밭에서 어른이 아기 손을 잡고 걸음마를 시키는 모습, 오른쪽에 '待合室 Waiting room' 안내판
대합실 앞 잔디마당. 이름 적힌 뒤 여기서 기다린다.

안에 진짜 폭포가 있다

이 집을 추천하는 이유의 절반은 자리다. 툇마루처럼 트인 좌식 자리에 앉으면 정면으로 정원이 통째로 들어오는데, 바위 사이로 물이 떨어진다. 조경으로 흉내 낸 물줄기가 아니라 위쪽에서 아래 연못까지 두세 단으로 꺾여 내려오는 제대로 된 폭포다. 물소리가 꽤 크다. 옆 테이블 대화가 잘 안 들릴 정도라 아이가 떠들어도 크게 눈치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온통 양치식물과 고사리, 잎이 큰 열대 관엽이다. 붉은 꽃이 달린 나무 가지가 처마 쪽으로 넘어와 있고, 스파티필럼 흰 꽃이 폭포 오른쪽에 무리로 피어 있었다. 앞 테이블 아저씨가 국수를 젓가락으로 높이 들어 올려 식히는 장면까지 그대로 그림이었다.

식당 좌식 자리 너머로 보이는 정원 폭포와 열대 식물, 앞 테이블에서 남자가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리고 있다
폭포 정면 자리. 이 자리 잡으면 그날 저녁은 성공이다.

자리는 좌식이다. 신발 벗고 다다미 위 낮은 상에 앉는 구조라 무릎이 안 좋으면 미리 말하는 게 낫다. 아기 의자는 나무로 된 낮은 등받이 의자를 가져다준다. 상 높이랑 애매하게 안 맞아서 결국 무릎에 앉혀 먹였는데, 이건 좀 아쉬웠다. 대신 다다미방이라 애가 기어다녀도 큰 문제가 없다.

검은 나무 좌식 테이블 옆 다다미 위에 아기가 나무 아기 의자에 앉아 있는 실내 모습
나무 아기 의자를 내주지만 상 높이와는 좀 안 맞았다.

아구 흑돼지 샤브샤브

여기 간판 메뉴는 오키나와 흑돼지, 아구다. 샤브샤브를 시키니 금색 사각 트레이에 삼겹살과 목살이 결 따라 촘촘히 깔려 나왔다. 지방층이 하얗고 두툼한데 비계가 텁텁하지 않다. 한쪽 구석에는 만두가 대여섯 개, 양상추와 파슬리도 같이 담겨 있었다. 옆 접시에 두부와 오키나와식 굵은 면이 따로 나온다.

금색 사각 트레이에 촘촘히 깔린 오키나와 흑돼지 삼겹살과 목살, 오른쪽에 만두와 양상추, 뒤쪽 접시에 두부와 굵은 면
아구 샤브샤브 고기 트레이. 만두와 두부, 면이 함께 나온다.

냄비는 흰 국물이다. 맑은 다시가 아니라 뽀얗게 우러난 육수라 처음엔 좀 무겁겠다 싶었는데, 마셔보니 짜지 않고 담백했다. 여기에 미즈나와 청경채, 시메지 버섯을 산처럼 올려서 숨이 죽기를 기다린다. 고기는 정말 잠깐만 담가야 한다. 세 번 흔들면 색이 돌고, 거기서 더 두면 아까운 아구가 그냥 삶은 돼지가 된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 큰 냄비에서 뽀얀 육수가 끓고 그 위에 미즈나와 청경채, 시메지 버섯이 가득 올려져 있다
뽀얀 육수에 채소부터. 고기는 채소 숨이 죽은 뒤에.

찍어 먹는 것 중에 재미있는 게 하나 나온다. 초록 테두리 도자기 접시에 분홍색 가루가 소복이 담겨 나오는데, 소금이다. 처음 온 사람은 무슨 디저트 파우더인 줄 알고 그냥 두는 경우가 많다. 고기를 건져 여기에 살짝 찍어 먹으면 간장 소스보다 아구 지방의 단맛이 훨씬 선명하게 올라온다. 옆 칸에는 유자 향이 나는 연두색 양념이 같이 담겨 있었다. 소스 두 가지 다 써보고 소금 쪽으로 정착했다.

초록 테두리의 흰 도자기 칸막이 접시에 담긴 분홍색 소금 가루, 옆 칸에는 연두색 양념
이 분홍 가루가 소금이다. 고기는 여기 찍는 게 제일 낫다.

후식이 진짜다 — 흑당푸딩과 슈크림 빵

솔직히 말하면 고기보다 후식이 더 기억에 남았다. 슈크림부터. 겉이 쿠키처럼 거칠게 부서지는 타입이고 위에 슈가파우더가 잔뜩 뿌려져 나온다. 포크로 누르면 껍질이 사각 갈라지면서 안에서 커스터드가 밀려 나온다. 크림이 묽지 않고 달걀 맛이 진하다. 하나로는 부족해서 결국 한 개 더 시켰다.

갈색 도자기 접시 위에 슈가파우더가 뿌려진 동그란 슈크림 빵과 은색 포크
껍질이 바삭한 슈크림. 포크로 누르는 순간 소리부터 다르다.

그리고 흑당푸딩. 검은 굽 달린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오는데 표면을 흑당으로 캐러멜라이즈해서 얼룩덜룩 태운 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숟가락으로 깨면 위는 크렘브륄레처럼 바삭하고 아래는 밀도 높은 커스터드다. 오키나와 흑당 특유의 쌉쌀한 뒷맛이 남아서 마냥 달지 않다. 샤브샤브로 배가 찼는데도 이건 끝까지 다 먹었다. 우후야에 간다면 흑당푸딩과 슈크림 빵은 그냥 처음부터 같이 시켜라. 식사 끝나고 고민하다가 못 먹고 나오는 사람이 제일 아깝다.

검은 도자기 그릇에 담긴 흑당푸딩, 표면이 캐러멜라이즈되어 갈색으로 그을려 있고 숟가락으로 파낸 자국, 뒤쪽에 슈크림 빵
흑당푸딩. 뒤에 보이는 게 아까 그 슈크림.

위치와 예약, 그리고 밤의 마당

나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 쪽에 있어서 렌터카가 사실상 필수다. 오키나와 북부 여행 동선이라면 츄라우미 수족관을 보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저녁으로 붙이기 좋다. 진입로가 좁고 주차장에서 건물까지 흙길과 돌길을 조금 걸어야 하니 유모차보다 아기띠가 편하다. 정확한 좌표는 아래 지도 그대로다.

웨이팅은 각오하는 게 좋다. 우리도 대기 명단에 이름 적고 마당에서 한참 기다렸다. 예약 가능 여부와 영업시간은 시즌마다 바뀌니 가기 전 현장 확인 또는 사전 전화 권장. 폭포가 보이는 자리를 원하면 해가 남아 있는 시간대에 가야 한다. 어두워지면 정원이 거의 안 보인다.

다 먹고 나오니 마당은 완전히 밤이었다. 초가지붕 입구에 불빛이 하나 켜져 있고, 그 앞에 다음 팀 사람들이 모여 서서 이름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쪽 별채 창으로 새는 노란 불빛과 돌길, 매미 소리. 낮에 본 얼굴과 완전히 다른 집이라 이 장면 하나 보려고 저녁 시간에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밤에 조명이 켜진 초가지붕 입구 앞에 사람들이 모여 서 있고 오른쪽 목조 건물 창으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식당 마당
저녁의 입구. 낮보다 이쪽이 더 분위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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