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만좌모(万座毛), 코끼리 바위 앞에서 양산 없이 30분 서 있어 본 기록
오키나와 온나손(恩納村) 서해안 절벽 위, 만좌모에 도착한 건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나하 공항에서 렌터카로 국도 58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 올라오면 나오는 곳인데,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든 생각은 "그늘이 없다"였다. 만좌모는 류큐 석회암이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해안 절벽이고, 그 위는 잔디밭에 가깝…
오키나와 · 만좌모
오키나와 온나손(恩納村) 서해안 절벽 위, 만좌모에 도착한 건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나하 공항에서 렌터카로 국도 58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 올라오면 나오는 곳인데,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든 생각은 "그늘이 없다"였다. 만좌모는 류큐 석회암이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해안 절벽이고, 그 위는 잔디밭에 가깝다. 나무 그늘이 있는 구간이 거의 없다. 이날 챙긴 게 모자 하나뿐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판단 착오였다.
양산은 선택이 아니라 준비물이다
산책로는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크게 한 바퀴 도는 구조다. 천천히 걸으면 20~30분, 사진 찍느라 멈추면 40분도 걸린다. 그 시간 내내 햇볕이 정수리로 그대로 떨어진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제법 세서 체감 온도는 견딜 만한데, 문제는 자외선이다. 바람 때문에 덥다는 감각이 무뎌지니까 오래 서 있게 되고, 저녁에 숙소에서 거울을 보니 목뒤와 팔뚝이 벌겋게 익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현지 관광객이든 대만·홍콩에서 온 단체든 손에 양산 하나씩은 들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여름에 양산 쓰는 게 유난이 아니라 여기서는 그냥 생존 장비다. 다만 바람이 강한 날엔 우산형 양산이 뒤집히니, 살대가 튼튼한 걸 쓰는 편이 낫다. 양산이 없으면 챙 넓은 모자에 선크림, 최소한 이 조합은 갖추고 올라가라.

난간 안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색이 층으로 나뉘어 있다. 발밑 가까운 쪽은 산호와 바위가 비쳐서 청록색이고, 조금만 나가면 짙은 남색으로 뚝 떨어진다. 그 경계선이 눈으로 보일 만큼 선명하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절벽 위까지 올라오는데, 높이 때문인지 소리가 한 박자 늦게 도착하는 느낌이 든다.
코끼리 바위 — 각도를 못 잡으면 그냥 바위다
만좌모의 간판은 단연 코끼리 바위다. 코끼리가 코를 물에 담근 옆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처음 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여기서 나온다. 산책로를 시계 방향으로 돌면 초반에는 바위 뒤통수만 보인다. "이게 코끼리라고?" 싶은 각도가 한동안 이어진다. 코끼리 형태가 제대로 잡히는 지점은 반대편, 잔디 언덕 쪽에서 바위를 옆으로 바라보는 위치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실물이 크다. 코 아래로 아치처럼 뚫린 구멍 사이로 바다가 비치는데, 그 구멍 크기가 사람 여럿이 들어갈 정도다. 바위 표면은 매끈한 게 아니라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석회암 특유의 질감이고, 절벽 윗면에는 잔디와 관목이 얇게 덮여 있다. 바위 색이 회색이라 흐린 날에는 하늘과 붙어서 밋밋하게 나온다. 오전 늦게에서 정오 사이, 해가 바다 쪽에 있을 때 형태가 가장 또렷하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코끼리 바위 정면 포토스팟에 줄이 생긴다. 관광버스가 한 대 들어오면 20~30명이 한꺼번에 그 자리를 차지하니, 버스가 빠질 때까지 5분쯤 반대편을 돌다 오는 게 낫다. 굳이 비집고 들어가서 어깨 너머로 찍을 필요가 없다.

절벽 산책로에서 보이는 것들
코끼리 바위만 보고 5분 만에 돌아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그러면 절반을 놓친다. 산책로를 반대 방향으로 더 걸어가면 온나손 해안선이 통째로 펼쳐지는 구간이 나온다. 흰 모래 해변과 리조트, 그 뒤로 얀바루 쪽 낮은 산줄기까지 한 화면에 들어온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파란 삼각형들은 해상 액티비티용 에어바운스다. 보트가 오가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여기까지 들린다. 절벽 위는 조용한데 아래 만은 분주하다. 같은 바다인데 온도가 다른 셈이다.

사진 가운데 붉은 기둥은 배가 들어오는 수로를 표시하는 항로 표지다. 그 기둥을 기준으로 안쪽은 무릎 깊이의 산호 지대, 바깥쪽은 급격히 깊어진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선이 정확히 그 경계다. 스노클링 포인트가 왜 그 안쪽에만 몰려 있는지 위에서 보면 한눈에 이해된다.

산책로 끝쪽은 관목이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다. 키가 작은 아이와 함께 왔다면 이 구간에서는 시야가 막히니, 아이를 안아 올려주거나 트인 자리로 이동하는 게 낫다. 억지로 난간에 올려 세우는 사람들을 봤는데, 절벽 아래가 20미터 넘게 떨어지는 곳이라 권하고 싶지 않다.
위치와 가는 법
만좌모는 온나손 한복판, 나하와 츄라우미 수족관을 잇는 국도 58호선 중간에 있다. 북부로 올라가는 날 아침이나 내려오는 오후에 끼워 넣기 딱 좋은 위치다. 렌터카가 기본이고, 나하 시내에서는 오키나와 자동차도 기나완(喜舎場) 나들목이나 야카(屋嘉) 나들목으로 빠지는 경로를 많이 쓴다.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정류장에서 걸어 올라오는 시간과 배차 간격을 감안하면 렌터카 쪽이 훨씬 편하다.
주차장에서 절벽 산책로까지는 상업시설 건물을 통과해 걸어 올라가는 구조다. 도보로 5분이 안 걸린다. 입장료와 주차료, 운영 시간은 시설이 새로 지어진 뒤로 여러 번 바뀌었으니 방문 직전에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내가 갔을 때 기준으로 적어봐야 그대로일 거라는 보장이 없다.
가기 전에 챙길 것
- 양산 또는 챙 넓은 모자 — 산책로 전 구간에 그늘이 거의 없다
-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 모자끈, 또는 손에 쥘 각오
- 선크림은 출발 전에 한 번, 산책 중에 한 번 더
- 물 한 병 — 산책로 중간에는 자판기가 없다
- 슬리퍼보다 운동화 — 노면이 고르지 않고 잔디와 돌이 섞여 있다
코끼리 바위 하나 보고 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시시할 수 있다. 실제로 사진만 찍고 10분 만에 내려가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절벽 끝에 서서 아래 산호 지대의 물색이 바뀌는 걸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왜 옛날 류큐 왕이 "일만 명이 앉을 수 있는 들판"이라고 불렀는지 몸으로 알게 된다. 그 시간을 버티려면 결국 양산이 있어야 한다. 나는 없이 버텼고, 그날 저녁 내내 목뒤가 따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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