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신궁, 하라주쿠 한복판에서 숲으로 30분 들어간 날 — 도쿄 시부야구 요요기
도쿄 하라주쿠역 앞은 늘 그렇듯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육교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디다스 러너스 도쿄라고 적힌 검은 버스가 갓길에 서 있고, 요요기공원 쪽 광장은 앉아 있는 사람 반 걸어가는 사람 반이었다. 이 소음 바로 옆에 메이지 신궁(明治神宮) 입구가 있다. 걸어서 3분 거리인데, 도리이 하나 지나면…
도쿄 · 메이지 신궁
도쿄 하라주쿠역 앞은 늘 그렇듯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육교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디다스 러너스 도쿄라고 적힌 검은 버스가 갓길에 서 있고, 요요기공원 쪽 광장은 앉아 있는 사람 반 걸어가는 사람 반이었다. 이 소음 바로 옆에 메이지 신궁(明治神宮) 입구가 있다. 걸어서 3분 거리인데, 도리이 하나 지나면 소리가 뚝 끊긴다. 처음 온 사람이 제일 놀라는 지점이 여기다.


첫 번째 도리이를 지나면 소리가 바뀐다
남참도(南参道) 입구의 큰 나무 도리이는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두껍다. 기둥을 손으로 짚어보면 나무결이 세로로 갈라져 있고, 상인방 가운데에는 금색 국화 문장이 세 개 박혀 있다. 오른쪽 나무 팻말에는 '四月十二日 昭憲皇太后祭 午前十時'라고 붓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런 안내가 인쇄물이 아니라 나무판에 손으로 적혀 걸려 있는 게 좋았다.


참배로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굵은 자갈이다. 운동화로 걸으면 자박자박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가 사방에서 겹치면서 오히려 도시 소음을 덮어버린다. 가장자리에 벽돌 보도가 따로 깔려 있어서 유모차나 캐리어를 끄는 사람은 그쪽으로 걷는다. 강아지에게 빨간 옷을 입혀 데리고 나온 가족이 있었고, 다들 천천히 걸었다. 여기서 서두르는 사람은 없었다.

도심에 이런 숲을 남겨두다니
걷다가 목이 아플 때까지 위를 올려다봤다. 하늘이 나뭇가지 사이로 조각조각 보이고, 상록수와 낙엽 진 가지가 한 화면에 섞여 있다. 여기가 시부야구다. 지하철 몇 정거장이면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고, 담장 너머는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다. 그런데 이 안은 숲의 냄새가 난다. 흙 냄새와 젖은 낙엽 냄새. 부럽다는 말이 자꾸 나왔다. 서울에서 이만한 땅이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이 숲은 1920년 신궁을 세울 때 전국에서 기증받은 나무를 심어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는데, 백 년이 지나 이렇게 자연림처럼 보이는 게 더 놀랍다.


참배로 중간의 다리(남지바시) 난간에서 아래를 보면 개울이 흐른다. 폭 2미터쯤 되는 작은 물길인데, 이끼 낀 바위와 단풍나무 어린 가지가 물 위로 늘어져 있고 바닥엔 낙엽이 깔려 있다.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여기서 1분만 서 있으면 물소리가 들린다.

사케통과 와인통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구간
걷다 보면 갑자기 짚으로 감싼 술통이 벽처럼 쌓인 구간이 나온다. 코모다루(菰樽)라고 부르는 봉납 술통이다. 흰 바탕에 붓글씨로 銘柄이 크게 쓰여 있고, 白菊·新政·横笛·眞澄·開運 같은 이름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실제 술이 든 통은 아니지만, 전국 양조장들이 매년 봉납하는 것이라 이름표가 계속 바뀐다고 한다.



길 반대편에는 부르고뉴 와인통이 삼단으로 쌓여 있다. 나무통 정면에 금색 명판이 하나씩 박혀 있어서 사케통과는 완전히 다른 인상이다. 메이지 천황이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맥락에서 프랑스 와이너리들이 봉납한 것인데, 사케통과 와인통을 마주 보게 배치한 구성 자체가 이 신궁의 성격을 설명한다.

위치와 접근 — 하라주쿠역 출구를 잘 고를 것
JR 야마노테선 하라주쿠역 서쪽 출구로 나오면 남참도 입구가 바로다. 도쿄메트로 지요다선·후쿠토신선 메이지진구마에역이면 2번 출구가 가깝다. 다만 도리이에서 본전까지가 도보로 대략 10~15분이고, 자갈길이라 체감은 더 길다. 굽 있는 신발은 피하는 게 낫다. 나는 오다 보니 왕복에 숲 구경까지 두 시간 반 정도 썼다. 개문은 일출, 폐문은 일몰 기준으로 달마다 바뀌니 방문 전 공식 안내 확인을 권한다.
세 번째 도리이를 지나 본전 앞으로
안쪽 도리이는 바깥 것과 색이 다르다. 밝은 살구색에 가까운 새 나무라서 숲 그늘 속에서 유난히 밝게 보인다. 이 도리이를 지나면 참배객 밀도가 갑자기 올라간다. 옆에는 흰 천막이 쳐져 있고 안내 표지가 늘어서 있다.



데미즈야 — 여기서 손을 씻는다
문에 들어가기 전 왼쪽에 데미즈야(手水舎)가 있다. 굵은 대나무 통에서 물이 두 줄기로 떨어지고, 화강암 수조 위에 나무 히샤쿠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사람이 몰리기 전 이른 시간에 찍은 것과, 사람들이 줄지어 손을 씻는 장면 두 가지를 다 담았다. 순서는 오른손으로 떠서 왼손, 왼손으로 바꿔 오른손, 다시 오른손에 받아 입을 헹구고 히샤쿠를 세워 손잡이를 씻는 식이다. 물은 삼월 초순인데도 손이 얼얼할 만큼 찼다.


미나미신몬, 그리고 본전 앞 마당
본전으로 들어가는 문(미나미신몬)은 2층 누문이다. 처마 밑 공포가 층층이 겹쳐 있고, 흰 마구리가 규칙적으로 박혀서 멀리서 보면 무늬처럼 보인다. 문짝 가운데에는 금속 국화 장식이 달려 있다. 문턱이 꽤 높아서 다들 한 번씩 발을 크게 든다.



문을 지나면 밝은 화강암 마당이 넓게 펼쳐진다. 그늘이 없어서 봄볕에도 눈이 부실 정도다. 마당 건너 본전 지붕 위로 흰 첨탑 하나가 튀어나와 있는데, 신주쿠의 NTT 도코모 요요기 빌딩이다. 백 년 된 목조 건물과 통신 기지 첨탑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장면이 이 신궁을 가장 잘 요약한다.


본전 정면은 처마 아래로 금색 장식이 촘촘히 박혀 있어서 햇빛을 받으면 반짝인다. 계단 위 새전함 앞에 사람들이 옆으로 길게 늘어서서 이례이하이(두 번 절, 두 번 박수, 한 번 절)를 한다. 줄이 앞뒤가 아니라 좌우로 퍼지는 구조라 생각보다 회전이 빠르다. 10분쯤 기다리면 차례가 온다.


부부 녹나무 앞 — 사람들이 오래 서 있는 자리
마당 한쪽에 큰 녹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두 나무를 시메나와 한 줄로 이어 묶어놓았고, 흰 종이(시데)와 짚 술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린다. 메오토쿠스(夫婦楠)라 부르는 나무다. 바닥에는 낙엽이 두껍게 깔려 있어서 밟을 때마다 푹신했다. 다들 여기서 한참 사진을 찍는다.

에마와 오마모리 — 가격은 사진에 적힌 대로
나무 아래 에마 걸이대는 글씨로 빽빽했다.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 영어가 뒤섞여 있다. "I pray for a successful career", "학업 진보",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같은 문장들이 날짜와 서명과 함께 적혀 있고, 판마다 붉은 신궁 도장이 찍혀 있다. 남의 소원을 이렇게 대놓고 읽어도 되나 싶으면서도 계속 보게 된다.

수여소 위에는 오마모리 종류와 가격을 한 장에 정리한 큰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에 찍힌 대로 옮기면 心身健全守·学業成就·縁結御守·福守 등이 800엔, 相和守·交通安全御守 일부·旅行安全御守가 1,000엔, 病気平癒守·安産守가 1,500엔, 神符와 家内安全·商売繁昌 계열이 1,000~3,000엔대다. 守札은 300엔·500엔짜리도 있다. 다만 이건 방문 당시 현수막 기준이고 가격은 바뀔 수 있으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참고로 이 현수막 아래쪽에는 촬영 금지 표지가 붙어 있다 — 수여소 안쪽을 향해 찍는 건 삼가는 게 맞다.

우연히 마주친 신도식 결혼식, 그리고 그 검은 레트로 자동차
이날의 진짜 수확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마당 한쪽 회랑 앞에서 흰 시로무쿠에 와타보시를 쓴 신부와 하오리하카마 차림의 신랑, 그리고 노란 기모노를 입은 나이 든 여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관광객 무리 사이에 그냥 섞여 있어서 처음엔 사진 촬영인 줄 알았다. 실제 결혼식이었다.

잠시 뒤 붉은 우산(사시카케가사)을 앞세운 행렬이 문 쪽에서 나왔다. 흰 제복의 신관이 앞장서고, 붉은 하카마에 흰 상의를 입은 무녀가 따라 걸었다. 그 뒤로 정장과 기모노 차림 하객이 길게 줄을 섰고, 옆에는 '御祈願祭'라 쓰인 노란 깃발이 서 있었다. 참배객들이 다들 걸음을 멈추고 지켜봤는데 아무도 앞을 막지 않았다. 그 거리감이 좋았다.

숲 안쪽 자갈 마당에서는 단체 기념촬영이 한창이었다. 붉은 융단이 깔리고 사진사가 손을 들어 시선을 모으는 동안, 하객 수십 명이 삼사 열로 서 있었다. 앞줄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신부가 앉아 있고, 양옆으로 검은 정장과 화려한 기모노가 번갈아 놓였다. 조명 케이스와 이동식 카트까지 바닥에 놓여 있어서 준비 과정이 다 보였다.


가장 눈이 갔던 건 차였다. 촬영이 끝나고 신부가 탄 차가 검은색 런던 택시 스타일의 클래식 세단이었다. 뒷문을 위로 젖혀 열어놓고, 흰 장갑을 낀 기사가 무릎을 꿇은 채 발판을 잡아주고 있었다. 시로무쿠를 입은 신부가 검은 발판 위에 발을 올리고, 옆에서 기모노 차림 여성이 옷자락을 받쳐줬다. 둥근 헤드라이트와 세로로 긴 차체, 은색 휠캡. 도쿄 한복판의 신궁 숲에서 백 년 전 형태의 차에 백 년 전 옷을 입은 신부가 타는 장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은 몰랐다. 셔터를 몇 장 눌렀는데 손이 좀 떨렸다.

기모노 차림 가족들 — 결혼식만 있는 게 아니다
회랑 앞에서 분홍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아이의 하오리를 여며주고 있었다. 아이는 남색 바탕에 학 무늬가 들어간 정장 차림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빨간 기모노를 입은 아주 작은 여자아이가 어른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시치고산 참배로 보였다. 텅 빈 화강암 마당에 이 작은 무리만 남아 있는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시 나오는 길에 적어두는 것들
- 참배로 전체가 자갈이다. 굽 있는 신발과 바퀴 작은 캐리어는 고생한다. 가장자리 벽돌 보도를 쓰면 낫다.
- 본전 앞 마당은 그늘이 전혀 없다. 여름 낮이면 모자나 양산이 필수다.
- 결혼식이나 기원제 행렬을 만나면 길을 비켜주고 뒤에서 보는 게 예의다. 정면에서 플래시 터뜨리는 사람은 못 봤고, 그게 이 공간이 유지되는 이유 같았다.
- 수여소 안쪽과 일부 구역은 촬영 금지 표지가 붙어 있다. 표지를 한 번씩 확인하면 된다.
- 사케통·와인통 구간과 남지바시 개울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왕복 길이 같으니 갈 때 못 본 쪽은 나올 때 보면 된다.
- 개문·폐문 시각이 달마다 바뀌고 제례가 있는 날은 통제 구간이 생긴다. 방문 전 공식 안내 확인 권장.
나올 때 다시 첫 도리이를 지나자마자 하라주쿠의 소리가 통째로 돌아왔다. 신호등 소리, 사람들 웃는 소리, 버스 엔진.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도리이 안쪽은 여전히 숲이었다. 백만 제곱미터 가까운 땅을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남겨둔 결정을, 이 도시는 백 년 동안 번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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