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가와 가마쿠라, 좁은 골목 안 '가마쿠라 식당'에서 시라스 대신 카츠카레를 먹은 날

가마쿠라역에서 걸어 들어간 뒷골목은 관광지 특유의 넓은 참배길과는 온도가 달랐다. 낡은 목조 처마와 새로 칠한 흰 벽이 한 뼘 간격으로 붙어 있고, 자전거 한 대가 벽에 기대 세워져 있었다. 가나가와현 가마쿠라, 해가 기울면서 골목 안쪽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하던 시간이었다. 그 골목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식당이 아…

가나가와 · 라쿠엔

가마쿠라역에서 걸어 들어간 뒷골목은 관광지 특유의 넓은 참배길과는 온도가 달랐다. 낡은 목조 처마와 새로 칠한 흰 벽이 한 뼘 간격으로 붙어 있고, 자전거 한 대가 벽에 기대 세워져 있었다. 가나가와현 가마쿠라, 해가 기울면서 골목 안쪽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하던 시간이었다. 그 골목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식당이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이었다.

골목 초입, 초록 차양의 스테인드글라스 공방 DANSHAKU

삼각 박공지붕에 이끼가 낀 것처럼 색이 바랜 초록 차양. 거기에 'STAINED GLASS DANSHAKU'라고 손으로 쓴 듯한 간판이 걸려 있었다. 벽에 팔각형 창틀 네 개가 박혀 있고, 그 안에 고양이 얼굴, 해바라기 램프, 사슴이 있는 풍경 같은 스테인드글라스가 하나씩 들어가 있다. 문이 반쯤 열려 있어서 안을 들여다보니 티파니풍 램프가 층층이 켜져 있었다. 밖은 이미 푸르스름한데 유리 너머만 주황색으로 따뜻했다.

문 앞 작은 철제 테이블 위에도 촛불처럼 생긴 램프가 두 개 켜져 있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는데, 실제로 서 있으면 이 골목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지점이라 발이 저절로 멈춘다. 오른쪽 벽에는 '이 앞으로 가면 계단이 있습니다' 같은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가마쿠라 골목은 이렇게 갑자기 계단으로 이어지는 곳이 많다.

박공지붕에 초록 차양이 걸린 스테인드글라스 공방 DANSHAKU 외관, 팔각 창틀 안에 고양이와 해바라기 무늬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이고 실내에는 티파니풍 램프가 켜져 있다
골목 초입의 스테인드글라스 공방. 해 질 무렵엔 여기만 불이 켜져 있다.

영문 메뉴 입간판이 붙은 '가마쿠라 쇼쿠도(鎌倉食堂)'

공방에서 몇 걸음 더 들어가니 흰 벽에 검은 글씨로 Kamakura Shokudo, 그 아래 빨간 글씨로 鎌倉食堂이라 붙은 좁은 입구가 나왔다. 문 하나 폭이 전부인 가게라 그냥 지나치기 쉽다. 유리문에 '5% 환원' 캐시리스 결제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OPEN 팻말이 걸려 있었다.

결정적인 건 밖에 세워둔 입간판이다. 노란 바탕에 生しらす丼, 釜揚げしらす丼 사진이 큼직하게 붙어 있고, 옆 판에는 사진이 들어간 영문 메뉴가 통째로 붙어 있다. "English menu available"이라는 문구까지. 일본어 메뉴만 있는 가게 앞에서 망설여본 사람이라면 이 입간판이 얼마나 반가운지 안다. 옆집 주황색 간판은 '湘南豚(쇼난 돼지)' 집이었다.

흰 벽에 Kamakura Shokudo와 鎌倉食堂 간판이 붙은 좁은 입구, 옆에 사진이 실린 노란 입간판과 영문 메뉴판이 세워져 있다
문 하나 폭의 입구. 밖의 입간판이 사실상 간판 역할을 한다.

메뉴판 가격을 그대로 옮겨보면

자리에 앉아 받은 코팅 메뉴판 첫 장이 '가마쿠라·쇼난의 명물' 코너였다. 가격은 그날 메뉴판에 적힌 그대로다.

메뉴판 아래쪽에 표시 가격은 전부 세금 별도라고 적혀 있다. 이 페이지 메뉴는 +¥300이면 드링크 세트로 바꿀 수 있고, 음료는 무알코올 중에서 고르는 방식. 세금 붙인 뒤 1엔 단위 올림분은 TABLE FOR TWO에 기부한다는 문구도 작게 있었다. 내가 간 날 기준이니 지금 가격은 현장 확인을 권한다.

가마쿠라 식당의 코팅된 식사 메뉴판, 시라스동 각종과 해산물 덮밥, 천푸라 차소바, 카레 가격이 사진과 함께 적혀 있다
메뉴판 첫 장. 가마아게시라스동 ¥910이 이 집에서 가장 싼 명물 메뉴다.

생시라스는 잡히는 날에만 나온다. 금어기이거나 그날 조업을 못 하면 메뉴에 있어도 "오늘은 없습니다"라는 말이 돌아온다. 나도 이 집에서 생시라스를 못 먹었다. 가마쿠라까지 와서 시라스를 목표로 잡았다면 그 점을 감안하고 대안 메뉴를 미리 하나 정해두는 게 낫다.

위치와 접근성

촬영 지점 좌표는 아래 지도에 찍어뒀다. 가마쿠라 일대 골목은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가는 폭이라 렌터카보다 전철이 훨씬 편하다. JR 가마쿠라역이나 에노덴을 이용하고, 골목은 걸어서 훑는 편이 낫다. 앞서 말한 계단 안내판처럼 갑자기 지형이 바뀌는 구간이 있어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 고생한다.

결국 시킨 것 — 국산 돼지 카츠카레 ¥1,390

나온 접시를 보고 먼저 든 생각은 '카레가 진짜 많다'였다. 타원 접시 왼쪽 절반을 갈색 카레가 다 덮고, 오른쪽에 밥, 가운데에 두툼하게 썬 돈카츠가 얹혀 나온다. 밥 위에는 파슬리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위에 따로 나온 작은 두 칸짜리 종지에는 포테이토 샐러드와 후쿠진즈케(붉은 절임)가 담겨 있었다.

나무 테이블 위 타원 접시에 담긴 카츠카레와 밥, 위쪽에 포테이토 샐러드와 붉은 후쿠진즈케가 담긴 두 칸 종지
카츠카레 한 상. 포테이토 샐러드와 후쿠진즈케가 따로 나온다.

카레는 걸쭉하지 않고 흐르는 쪽이다. 색은 진한데 맛은 매운맛보다 단맛과 양파의 감칠맛이 앞선다. 자잘하게 남은 양파 조각이 국물에 섞여 있어서, 밥에 끼얹으면 알갱이가 씹힌다. 일본 식당 카레가 대체로 그렇듯 자극은 약하다. 매운 걸 기대하고 가면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

흰 접시 위 두툼한 돈카츠에 갈색 카레가 끼얹어져 있고 오른쪽에 파슬리를 뿌린 흰밥이 담긴 카츠카레 클로즈업
카레가 튀김옷에 스미기 전, 아직 바삭한 상태.

튀김옷은 굵은 빵가루다. 젓가락으로 한 조각 집어 올렸을 때 단면이 하얗게 익어 있으면서도 퍽퍽하지 않았다. 튀긴 지 얼마 안 된 게 씹는 소리로 티가 났다. 다만 카레를 접시에 넉넉히 부어주는 구성이라, 미적거리면 아래쪽 튀김옷부터 눅눅해진다. 나는 처음 몇 조각을 카레에 덜 적신 채로 먼저 먹었는데 그게 맞는 순서였다. 남은 절반은 카레에 완전히 잠겨서 다른 음식이 됐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바삭한 쪽이 확실히 좋았다.

검은 젓가락으로 카츠카레의 돈카츠 한 조각을 집어 올려 하얗게 익은 고기 단면이 보이는 모습
단면. 두께에 비해 속이 부드럽게 익었다.

벽에 붙은 종이를 꼭 봐라

메뉴판만 보고 주문하면 놓치는 게 있다. 벽에 A4 종이 두 장이 붙어 있었다.

왼쪽은 디저트. 하야마의 지란 '幸せのあおい卵(행복의 파란 달걀)' 노른자만 써서 만든 반숙 프렌치토스트, ¥2,190에 커피 또는 홍차가 딸려 나온다. 작은 글씨로 15시 이후에만 주문 가능한 한정 메뉴라고 적혀 있었다. 점심시간에 들어간 사람은 시키고 싶어도 못 시킨다는 뜻이다.

오른쪽 종이가 더 실용적이다. 흰밥이 딸려 나오는 메뉴 — 텐동, 아지후라이, 카키후라이, 돈카츠, 함박 — 는 밥을 가마아게시라스밥이나 나마시라스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안내였다. 사진에는 추가 금액 부분이 가려져 안 보이니 주문할 때 물어보는 게 정확하다. 시라스동을 따로 시키기엔 부담스럽고 시라스는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조합이 답이다. 나는 카츠카레를 먼저 주문해버린 뒤에 이 종이를 발견했다. 다음에 간다면 아지후라이 정식에 시라스밥으로 바꿔 먹을 생각이다.

식당 벽에 붙은 두 장의 안내문, 왼쪽은 2190엔 반숙 프렌치토스트 사진과 설명, 오른쪽은 흰밥을 시라스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안내
벽에 붙은 종이 두 장. 왼쪽 프렌치토스트는 15시 이후 한정, 오른쪽은 밥 → 시라스밥 변경 안내.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

가마쿠라에서 시라스를 못 먹은 날의 저녁 기록이 카츠카레가 됐다. 밥을 다 먹고 나와보니 골목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아까 그 스테인드글라스 램프만 여전히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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