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게이오 플라자 호텔 3층 '카가리', 뚜껑 덮인 채로 나오는 일본식 조식 한 상

도쿄 신주쿠 서쪽, 게이오 플라자 호텔 도쿄의 일본 요리 레스토랑 카가리(かがり)에서 아침을 먹었다. 전날 밤 늦게 체크인해서 조식권을 받아 들고 "뷔페 말고 일식 정식"을 골랐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맞는 선택이었다. 신주쿠역 서쪽 출구에서 걸어서 5분 남짓, 도쿄도청 바로 옆 블록. 아침 8시쯤 들어갔더니 창밖은 이미…

도쿄 · 게이오 플라자 호텔 도쿄 카가리

도쿄 신주쿠 서쪽, 게이오 플라자 호텔 도쿄의 일본 요리 레스토랑 카가리(かがり)에서 아침을 먹었다. 전날 밤 늦게 체크인해서 조식권을 받아 들고 "뷔페 말고 일식 정식"을 골랐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맞는 선택이었다. 신주쿠역 서쪽 출구에서 걸어서 5분 남짓, 도쿄도청 바로 옆 블록. 아침 8시쯤 들어갔더니 창밖은 이미 출근 인파로 회색빛인데, 안쪽은 짙은 나무결 테이블에 조명을 낮게 깔아놔서 시간대가 헷갈릴 만큼 조용했다.

뚜껑이 덮여 나온다 — 첫 상차림

자리에 앉고 얼마 안 돼 나무 트레이가 통째로 왔다. 처음에는 좀 당황했다. 차완무시 잔에도, 국그릇에도, 밥공기에도 전부 뚜껑이 덮여 있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오른쪽 아래 흰 뚜껑이 밥, 가운데 은색 뚜껑이 된장국, 왼쪽 사기 뚜껑이 계란찜. 죽 그릇만 뚜껑 없이 김을 올리고 있었다. 젓가락 봉투에 KEIO PLAZA HOTEL TOKYO 로고가 찍혀 있고, 김도 '사가현산 야키노리(焼海苔)'라고 적힌 개별 포장으로 따로 나온다. 눅눅해지지 말라고 봉지째 주는 건데, 이게 은근히 좋다. 밥 위에 얹기 직전에 뜯으면 바삭 소리가 난다.

게이오 플라자 호텔 카가리의 일식 조식 트레이. 밥공기·국그릇·차완무시에 뚜껑이 덮여 있고, 개별 포장된 사가현산 구운 김과 다섯 칸 반찬 접시, 은대구 구이와 계란말이가 놓여 있다
뚜껑을 열기 전 상태. 오른쪽 아래가 흰쌀밥, 가운데 은색이 된장국이다.

흰밥과 죽 중에 고르는 게 아니라 둘 다 나온다. 처음 온 사람이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밥·죽·된장국은 리필이 무료다. 메뉴판 오른쪽 위에 작게 "Free refills on rice, porridge and miso soup"라고 적혀 있다. 직원한테 손짓만 해도 알아듣는다.

손그림 메뉴판이 사실상 설명서다

트레이와 함께 접힌 종이 한 장을 준다. 붓글씨와 수채 일러스트로 상 전체를 그려놓고, 접시 하나하나에 선을 그어 이름을 붙여둔 메뉴판이다. 일본어와 영어가 같이 적혀 있어서, 정체 모를 반찬 다섯 칸의 정답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왼쪽부터 じゃこ有馬煮(잔멸치와 산초 조림), 胡桃小女子(호두와 실치), 柚子豆腐(유자 두부), お浸し(시금치 무침), 真たら子のうま煮(대구알 조림). 유자 두부는 생김새가 푸딩 같아서 디저트인 줄 알고 마지막에 먹으려다, 메뉴판 보고 순서를 바꿨다. 실제로 먹어보면 두부라기보다 유자향 나는 젤리에 가깝다.

카가리 조식 메뉴판. 붓글씨와 수채 일러스트로 차완무시, 은대구 사이쿄 유안야키, 반찬 다섯 종, 샐러드, 니쿠도후, 된장국 등이 일본어와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KAGARI Original Japanese Breakfast' 메뉴판. 접시 위치까지 그대로 그려놔서 대조하며 먹기 좋다.

메뉴판을 왼손으로 펼쳐 들고 오른손으로 사진을 찍었더니 손가락이 같이 나왔다. 다시 찍을까 하다가 그냥 뒀다. 종이가 빳빳해서 한 손으로는 잘 안 펴진다.

은대구 사이쿄 유안야키가 중심이다

뚜껑을 다 열고 나면 상이 확 넓어진다. 가운데 흰 각접시에 놓인 게 銀たら西京柚庵焼き, 사이쿄 된장과 유자 간장에 절여 구운 은대구다. 껍질 쪽만 살짝 그을리고 속살은 하얗게 결이 살아 있는데, 젓가락을 대면 저항 없이 갈라진다. 짠맛이 세지 않고 단맛이 먼저 온다. 옆의 계란말이는 국물기가 많은 관서식이라 씹으면 육수가 배어 나온다. 조식에서 이 두 개만 제대로 나와도 값은 한다고 본다.

뚜껑을 모두 연 카가리 조식 상차림. 하얀 죽, 유부와 파를 넣은 된장국, 돼지고기와 두부를 조린 니쿠도후, 노란 차완무시, 은대구 구이와 계란말이가 한눈에 보인다
뚜껑을 열면 이렇게 된다. 오른쪽 아래가 니쿠도후, 가운데 검은 그릇이 유부 된장국.

의외의 물건은 오른쪽 아래 니쿠도후(肉豆腐)였다. 돼지고기와 두부, 실곤약을 간장 국물에 조리고 파를 올린 건데, 아침부터 고기가 나온다는 게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먹어보니 국물이 맑고 기름기가 적어서 오히려 죽이랑 잘 붙는다. 된장국은 유부와 파를 넣은 아카미소 계열이라 색이 짙고 짠맛이 또렷하다. 차완무시는 뜨겁게 나오니 서두르지 말 것. 맨 위층만 떠먹고 아래를 안 저으면 밑에 깔린 건더기를 통째로 놓친다.

아쉬웠던 건 양이다. 겉보기엔 그릇 수가 많아 보이는데 하나하나는 정말 작다. 반찬 다섯 칸은 각각 두 젓가락이면 끝난다. 아침을 든든히 먹는 편이라면 밥이나 죽을 한 번 더 청하는 걸 전제로 계산하는 게 낫다. 나는 죽을 한 그릇 더 받았다.

위치와 실용 정보

호텔은 신주쿠 서쪽 고층빌딩가 안에 있다. 신주쿠역에서 지하도로 이어지긴 하는데 지하 통로가 꽤 복잡해서, 처음이면 지상으로 올라와 도쿄도청 방향 표지판을 따라가는 편이 빠르다. 도청 전망대(무료)가 도보 5분 거리라, 조식 먹고 바로 걸어가서 오전 햇빛에 도쿄 시내를 내려다보는 동선이 잘 맞는다.

도쿄에서 아침을 밖에서 사 먹으면 편의점 오니기리든 체인 정식집이든 결국 비슷한 그림이 된다. 여기는 뚜껑을 하나씩 여는 그 5초가 아침의 속도를 늦춰준다. 그 하나 때문에 다음에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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