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도톤보리 이치란 라멘 — 칸막이 자리에서 라멘 취향을 직접 적어 넣는 밤
오사카 난바에서 도톤보리 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아케이드 골목 안쪽에서 초록 테두리의 붉은 원형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치란(一蘭) 도톤보리 별관. 밤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계단 앞에 사람이 스무 명쯤 서 있었다. 나는 이 집을 태국이나 베트남 여행 사이에 낀 짧은 일본 경유 때 두어 번 들렀는데, 매번 줄은…
오사카 · 이치란 라멘
오사카 난바에서 도톤보리 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아케이드 골목 안쪽에서 초록 테두리의 붉은 원형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치란(一蘭) 도톤보리 별관. 밤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계단 앞에 사람이 스무 명쯤 서 있었다. 나는 이 집을 태국이나 베트남 여행 사이에 낀 짧은 일본 경유 때 두어 번 들렀는데, 매번 줄은 있었고 매번 생각보다 빨리 빠졌다. 자리 회전이 빠른 구조라서 그렇다.

줄 서는 방식부터 알고 가면 덜 헤맨다
계단 아래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식권기 앞에 선다. 여기서 라멘을 계산하고 나온 표를 들고 자리로 간다. 처음 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당황하는 지점이 이거다. 주문을 받으러 오는 직원을 기다리다가 뒤에서 밀리는 경우를 실제로 봤다. 기계에 한국어 표시가 있으니 천천히 눌러도 된다.
줄 서는 동안 벽에 붙은 안내판을 읽는 재미가 있다. 붉은 판에 이 집이 왜 돈코츠 한 종류만 파는지, 비법 다레를 아는 사람이 사내에 네 명뿐이라는 이야기, 그 네 명이 다른 직원과 마주치지 않게 별도 관리된 방에서 일한다는 설명까지 빽빽하게 적혀 있다. 진위를 검증할 방법은 없지만, 한 그릇에 이 정도로 서사를 붙여둔 집은 흔치 않다. 그 아래에는 아르바이트 모집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기본 시급 1,200엔부터라고 되어 있었다. 라멘 한 그릇 값과 비교해보면 이 동네 물가 감각이 대충 잡힌다.

독서실 칸막이 자리, 그리고 주문표에 취향을 적는 시간
이 집이 유명한 진짜 이유는 자리다. 좌우가 나무 칸막이로 막히고 앞은 발이 내려온 1인석. 사람들이 흔히 '독서실 라면'이라고 부르는 그 구조다. 앞의 발이 걷히면 손만 쓱 들어와 그릇을 놓고 다시 내려간다.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다. 혼자 밥 먹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구조가 없고, 반대로 일행과 떠들면서 먹고 싶은 사람에게는 좀 심심하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데도 여기서는 오히려 국물에 집중하게 돼서 나쁘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면 종이 주문표를 준다. 여기가 이 집의 핵심이다. 국물 농도, 기름의 양, 마늘, 파(흰파·청파), 차슈 유무, 비법 빨간 소스의 매운 정도, 면 익힘 정도까지 전부 내가 골라서 표시한다. 한국어 주문표를 달라고 하면 그냥 준다.
- 맛의 농도 — 담백 / 보통 / 진함
- 기름진 정도 — 없음부터 아주 진하게까지
- 마늘 — 없음 / 조금 / 보통 / 많이
- 파 — 흰파 또는 청파 선택
- 차슈 — 있음 / 없음
- 비법 소스 — 없음부터 배수 단위로 조절
- 면 익힘 — 아주 딱딱하게부터 부드럽게까지
처음이면 전부 '보통'에 체크하고 빨간 소스만 기본으로 두는 걸 권한다. 나는 첫 방문 때 마늘을 '많이', 소스를 배로 올렸다가 국물 자체의 결을 다 덮어버려서 후회했다. 이번에는 국물 진함, 기름 보통, 마늘 조금, 면은 딱딱하게로 갔다. 면 익힘을 딱딱하게 두면 다 먹을 때까지 면이 퍼지지 않아서 좋다.
나온 한 그릇 — 국물부터 한 숟갈
그릇이 내려오는 데 5분이 안 걸렸다. 뽀얀 돈코츠 국물 위에 얇은 면이 깔리고, 가운데 빨간 비법 소스가 얹혀 있고, 왼쪽에 청파가 수북하다. 여기서 바로 젓지 말고 국물부터 한 숟갈 뜨는 걸 권한다. 소스를 풀어버리면 원래 국물 맛을 확인할 기회가 사라진다. 돼지 뼈 특유의 냄새는 거의 없고, 짠맛보다 고소한 쪽이 먼저 온다. 그다음 빨간 소스를 조금씩 풀면서 매운 정도를 맞춰가면 된다.

면은 하카타식으로 아주 얇다. 양이 적게 느껴진다면 자리에서 카에다마(면 추가)를 시키면 된다. 안내지에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초록 표를 호출 버튼 위 접시에 올려두면 직원이 알아서 가져간다. 말을 한마디도 안 해도 면이 한 덩이 더 온다.
라멘과 생맥주, 그리고 차슈 접시
여기서 꼭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이 집은 라멘만 먹고 나오면 절반만 먹은 거다. 나는 라멘이 나오기 전에 생맥주부터 한 잔 시켰다.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 잔이 하얗게 서릴 정도로 차갑게 나오는데, 뜨겁고 기름진 돈코츠 국물 사이에 이 찬 맥주가 한 모금 들어가면 입안이 리셋된다. 국물 → 맥주 → 면 → 맥주 순으로 돌리다 보면 그릇이 금방 비워진다. 칸막이 안에서 혼자 맥주 잔 들고 앉아 있는 게 처음엔 좀 이상했는데, 두 번째부터는 이게 이 집을 즐기는 정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맥주를 시켰다면 차슈를 따로 한 접시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라멘에 들어 있는 차슈는 한두 점이라 감질나는데, 접시로 시키면 얇게 저민 고기가 여섯 장쯤 깔려 나온다. 결이 아주 곱고 지방이 적은 부위라 라멘 위에 얹은 것보다 고기 자체 맛이 잘 느껴진다. 다만 접시 채로는 간이 세지 않아서, 라멘 국물에 한 번 담갔다 먹거나 남은 빨간 소스를 살짝 찍는 편이 낫다. 그냥 먹으면 조금 심심하다.

위치와 가는 법
도톤보리 강 남쪽 아케이드 안에 있어서, 지하철 난바역이나 닛폰바시역에서 걸어가는 게 편하다. 글리코 간판 앞에서 사람 물결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걷다가 아케이드로 꺾어 들어가면 된다. 도톤보리 일대에는 이치란 매장이 하나가 아니라서, 지도 앱에서 목적지를 찍을 때 '별관'인지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계단을 올라가는 구조라 유모차나 큰 캐리어를 끌고 오면 불편하다. 캐리어는 난바역 코인로커에 넣고 오는 편이 낫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들
- 연중무휴에 심야까지 여는 매장이다. 밤 열한 시 넘어 가면 줄이 확 짧아진다. 저녁 일곱 시~아홉 시가 제일 붐빈다.
- 물은 자리에 있는 급수기에서 직접 받는다. 컵은 직원이 자리로 가져다주니 컵 함에서 임의로 꺼내지 않는다.
- 주문표는 라멘이 나오기 전에 다 쓰고 앞쪽 발 아래로 내밀어야 한다. 고민이 길어지면 그만큼 늦게 나온다.
- 면 추가와 디저트는 안내지 그림대로 해당 표를 호출 버튼 위에 올려두면 된다. 말 한마디 필요 없다.
- 맥주는 라멘보다 먼저 시켜서 국물이 오기 전에 한 모금 마셔두면 순서가 딱 맞는다.
- 가격은 시기와 매장에 따라 달라지니 식권기 화면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돌아 나오면서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는데, 아까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또 다른 줄이 생겨 있었다. 밤늦게 이 골목을 지나다가 국물 냄새가 나면 그냥 올라가 보시길. 혼자여도, 술 한잔 하고 싶은 밤이어도 이 집은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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