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텟판 베이비(Teppan Baby)에서 먹은 히로시마식 오꼬노미야끼 — 도쿄에서 만난 철판의 진짜 맛

도쿄 신주쿠 뒷골목, 붉은 철골이 그대로 드러난 천장 아래 철판 카운터가 길게 놓인 집이었다. 간판에 TEPPAN BABY. 오사카식 오꼬노미야끼는 한국에서도 흔하게 먹어봤는데, 여기는 히로시마식이다. 반죽에 재료를 섞어 부치는 게 아니라 얇은 크레페 위에 양배추를 산더미로 쌓고 야끼소바 면과 계란을 층층이 겹쳐 눌러 굽…

도쿄 · 텟판 베이비

도쿄 신주쿠 뒷골목, 붉은 철골이 그대로 드러난 천장 아래 철판 카운터가 길게 놓인 집이었다. 간판에 TEPPAN BABY. 오사카식 오꼬노미야끼는 한국에서도 흔하게 먹어봤는데, 여기는 히로시마식이다. 반죽에 재료를 섞어 부치는 게 아니라 얇은 크레페 위에 양배추를 산더미로 쌓고 야끼소바 면과 계란을 층층이 겹쳐 눌러 굽는 방식. 도쿄 한복판에서 이 방식으로 굽는 집을 만난 게 이날의 수확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만난 큐피 인형

카운터에 앉아 젓가락 봉투를 집는데 그 밑에 작은 큐피 인형이 놓여 있었다. 봉투에는 뒤집개 두 개와 동그란 얼굴을 형상화한 가게 로고, 그리고 아래쪽에 단풍잎 세 장. 히로시마의 상징인 단풍(모미지)을 로고에 박아둔 거다. 도쿄에 있지만 뿌리는 히로시마라고 말없이 알려주는 장치다.

나무 카운터 위에 놓인 작은 큐피 인형과 텟판 베이비 로고가 인쇄된 흰 젓가락 봉투
젓가락 봉투 옆에 세워둔 큐피 인형. 로고 아래 단풍잎 세 장이 히로시마 표식이다.

일행이 인형을 봉투 뒤로 숨겨놓고 얼굴만 빼꼼 내밀게 세워뒀다. 음식 나오기 전 10분이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 이런 소품 하나가 카운터 자리의 어색함을 꽤 덜어준다.

젓가락 봉투 뒤로 얼굴만 내밀고 있는 큐피 인형과 검은 젓가락
봉투 뒤에 숨겨 세워둔 큐피. 주문 기다리는 동안의 장난.

가게 안 풍경과 벽에 붙은 가격표

주방은 통유리도 칸막이도 없다. 손님과 철판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서 기름 튀는 소리와 소스 타는 냄새가 그대로 넘어온다. 붉은 HIROSHIMA Baby 티셔츠를 입은 직원이 철판 앞에서 반죽을 다루고, 검은 티셔츠 직원이 뒤쪽에서 굽는다. 벽 칠판에는 Welcome to TEPPAN BABY, 그 아래 오늘의 추천이 분필로 적혀 있었다.

이 숫자들은 방문 당시 벽에 붙어 있던 가격이라 지금은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는 게 좋다. 저녁 이른 시간이었는데 이미 외국인 손님이 절반 이상이었고, 영어 메뉴판과 "Yokoso Japan" 안내가 벽에 붙어 있어 주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붉은 철골 천장 아래 긴 철판 카운터와 Welcome to TEPPAN BABY 칠판, 붉은 히로시마 베이비 티셔츠를 입은 직원
철판 카운터 정면. 칠판의 오늘의 스페셜은 정어리 튀김 ¥680이었다.

위치는 신주쿠역 동쪽 블록 안이다. 큰길에서 한 겹 들어간 골목이라 지도를 켜고 걷는 편이 빠르다. 카운터석 위주라 3인 이상이면 대기가 생길 수 있고, 혼자나 둘이면 철판 바로 앞자리가 비어 있을 확률이 높다. 굽는 걸 보고 싶다면 철판 정면 자리를 달라고 말하면 된다.

맥주 한 잔 먼저

여름 저녁이라 맥주부터 시켰다. 유리 조끼에도 가게 로고가 검정으로 박혀 있다. 거품이 잔 높이의 3분의 1쯤 올라온 상태로 나왔고, 잔은 서리가 낄 만큼 차가웠다. 철판 앞은 체감상 실내 다른 자리보다 확실히 덥다. 굽는 열기가 그대로 얼굴로 오기 때문에, 음료 없이 앉아 있으면 금방 지친다.

가게 로고가 검게 인쇄된 유리 조끼에 담긴 생맥주와 두꺼운 거품
로고 박힌 조끼에 나온 생맥주. 벽 안내로는 ¥550.

다시마키 계란 — 의외의 선발

오꼬노미야끼가 굽는 데 시간이 걸려서 먼저 계란말이를 시켰다. 검은 각접시에 스푼 하나가 같이 나오는데, 이 스푼이 왜 필요한지는 잘라보면 안다. 속에 육수가 남아 있어 접시 바닥으로 흘러나온다.

검은 직사각 접시에 놓인 통통한 다시마키 계란말이와 은색 스푼
쪽파를 넣어 만 다시마키. 표면이 마르지 않고 번들거린다.

젓가락으로 집으면 층이 여섯 겹쯤 보인다. 단맛은 거의 없고 육수 간이 앞에 온다. 한국에서 흔한 설탕 넣은 계란말이를 기대하면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뒤에 나올 진한 소스 요리를 생각하면 이 순서가 맞다. 뜨거울 때 바로 먹어야 한다. 사진 찍느라 2~3분 두었더니 확실히 처졌다.

검은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다시마키 계란 조각, 층층이 말린 단면과 쪽파가 보인다
잘라 집어 올린 단면. 육수가 배어 촉촉하다.

도쿄에서 즐기는 오꼬노미야끼의 참맛 — 히로시마식 두 판

여기서 굽는 방식이 오사카식과 갈린다. 밀가루 물을 얇게 펴 크레페처럼 굽고, 그 위에 채 썬 양배추를 그릇 하나 분량으로 쌓는다. 숙주와 돼지고기를 얹고 뒤집어 눌러 양배추를 찌듯 익힌 다음, 옆에서 따로 볶던 야끼소바 면 위로 통째로 옮긴다. 마지막에 부친 계란을 깔고 그 위에 다시 뒤집는다. 반죽에 섞지 않고 층으로 쌓는 것, 이게 히로시마식의 핵심이다.

첫 판은 오징어를 얹은 소바 들어간 것으로 시켰다. 소스가 두껍게 발린 위에 아오노리(파래가루)가 뿌려져 있고, 가장자리로 노릇하게 눌린 면발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 눌린 면이 제일 맛있다. 바삭하게 붙어버린 부분을 뒤집개로 긁어 먹는 게 이 음식의 재미다.

검은 슬레이트 접시에 담긴 히로시마식 오꼬노미야끼, 위에 오징어와 아오노리, 옆으로 노릇하게 구워진 야끼소바 면이 보인다
오징어를 올린 소바 오꼬노미야끼. 아래에 깔린 면과 양배추 층이 옆으로 드러난다.

둘째 판은 인상이 완전히 달랐다. 마요네즈를 접시 바깥까지 그물처럼 뿌리고, 가운데에 잘게 썬 쪽파를 한 움큼 쌓은 뒤 정중앙에 생노른자를 통째로 올려 나온다. 노른자를 터뜨려 파와 함께 비벼서 뜨거운 반죽 위로 끌어내리면, 소스의 단맛이 한 단계 눌리고 훨씬 부드러워진다. 파 양이 많아 보여도 아래 층이 워낙 진해서 딱 맞는다.

마요네즈를 그물처럼 뿌린 오꼬노미야끼 위에 쪽파를 산처럼 쌓고 가운데 생노른자를 올린 모습
파 듬뿍에 생노른자를 올린 판. 노른자를 터뜨려 비벼 먹는다.

한 입 집어 올리면 구조가 보인다. 위쪽은 소스와 마요, 가운데는 노릇한 면, 아래는 숨이 죽었지만 아삭함이 남은 양배추. 세 층이 한 번에 입에 들어와야 제맛이라 크게 집는 편이 낫다. 앞접시를 주지만 뒤집개로 잘라 철판에서 바로 먹는 손님도 많았다.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오꼬노미야끼 한 입, 면과 양배추 마요네즈 쪽파가 함께 보이고 뒤로 계란말이 접시가 놓여 있다
한 입 분량. 면·양배추·소스가 한꺼번에 올라온다.

이 사진은 초점이 나간 실패 컷인데 그냥 남겨둔다. 젓가락 든 손으로 급하게 찍다 보니 이런 게 몇 장 나왔다. 접시가 비어가는 속도와 사진 실패 횟수는 대체로 비례한다.

초점이 흐릿하게 나간 사진, 나무 테이블과 검은 슬레이트 접시 모서리, 비어가는 흰 앞접시
초점 나간 실패 컷. 먹느라 급하게 찍은 흔적이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다음에 신주쿠에서 저녁 자리가 생기면 또 갈 것 같다. 이번엔 못 먹은 히로시마 어묵 간스와 정어리 튀김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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