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신나가타 철인28호 앞에서 반나절: 공원, 아케이드 상가, 그리고 중고 카메라 진열장
고베에서 산노미야만 보고 돌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번엔 지하철을 타고 서쪽 신나가타(新長田)까지 내려갔다. 목적은 하나, 철인28호 실물 크기 모뉴먼트. 큰애가 로봇 얘기만 나오면 눈이 돌아가는 나이라 아침부터 채근을 당했다. 전철 맨 앞칸 운전실 뒤 유리에 딱 붙어서 선로를 찍는 걸 보니, 사실 애한테는 로봇보다…
고베
고베에서 산노미야만 보고 돌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번엔 지하철을 타고 서쪽 신나가타(新長田)까지 내려갔다. 목적은 하나, 철인28호 실물 크기 모뉴먼트. 큰애가 로봇 얘기만 나오면 눈이 돌아가는 나이라 아침부터 채근을 당했다. 전철 맨 앞칸 운전실 뒤 유리에 딱 붙어서 선로를 찍는 걸 보니, 사실 애한테는 로봇보다 이 구간이 더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다.

광장에 내려서면 일단 목이 꺾인다
역에서 나와 광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야를 다 차지한다. 높이가 18m라고 하는데, 숫자보다 체감이 크다. 오른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다리를 벌린 자세라 위압감이 상당하다. 아들은 광장 한복판에 서서 한참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사진 찍기 좋은 위치는 정면보다 살짝 오른쪽 대각선, 바닥 격자 라인을 따라 뒤로 20~30보쯤 물러난 지점이다. 겨울 오전이라 역광이 덜하고 하늘이 파랗게 나왔다. 뒤쪽으로 보이는 산 능선까지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광장 한쪽에 동네 안내판이 서 있어서 지도를 한 장 찍어뒀다. 여기가 와카마츠 공원(若松公園) 안이고, 모뉴먼트 자리는 '철인 광장(鉄人広場)'으로 표기된다. 지도 오른쪽 위에는 근처 '코테(주걱) 모뉴먼트' 설명도 붙어 있는데, 신나가타를 대표하는 음식 문화인 철판 요리의 상징으로 세운 높이 3.4m짜리라고 적혀 있었다. 지하철 세이신·야마테선과 카이간선 신나가타역이 모두 걸어서 닿는 거리에 있고, 주차장 표시도 두 군데 보인다.

아이 데리고 갔다면 여기서 시간을 비워둬라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이유의 절반이 이 대목이다. 모뉴먼트는 사진 열 장 찍으면 5분이면 끝난다. 그런데 그 뒤로 공원이 상당히 넓게 펼쳐져 있고, 놀이터가 따로 갖춰져 있다. 흙바닥 광장이 축구장만 하게 열려 있고, 한쪽 끝에 노란 미끄럼틀과 빨간 기둥의 복합 놀이기구, 그네, 정글짐이 모여 있다. 벤치에 앉은 부모들, 유모차, 자전거가 계속 드나든다. 관광지가 아니라 그냥 동네 공원의 일상이 돌아가는 곳이다.
우리 아들 둘은 여기서 한 시간 넘게 뛰었다. 재미있었던 건,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일본 아이 하나가 어느새 끼어들어 같이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것. 서로 무슨 규칙인지도 모르는 술래잡기 비슷한 걸 하면서 깔깔대는데, 옆에서 보는 어른만 어색했다. 아이들 친화력은 진짜 대단하다. 언어가 필요 없더라. 나는 벤치에서 캔커피 하나 사서 마시며 구경만 했다.

겨울에 갈 거면 흙바닥이라 신발 먼지가 꽤 앉는다. 반대로 여름엔 그늘이 놀이터 주변 나무 밑 정도라 오래 버티기 어려울 듯하다. 화장실과 자판기는 광장 주변에서 찾았다.
역 앞 풍경과 상가 아케이드
공원에서 나와 역 방향으로 걸으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고층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붙어 있고, 도로 위로 보행 데크가 가로지른다. '피프레(ピフレ)' 간판이 붙은 건물과 유리로 둥글게 마감한 건물이 마주 보고 서 있다. 1995년 지진 이후 새로 지은 동네라는 게 건물 나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데크 아래쪽 화단에 벽돌 아치를 세우고 종 두 개를 매단 조형물이 있었다. 명판이 붙어 있는데 멀리서 읽히지는 않았고, 앞을 지나는 사람 대부분이 그냥 지나쳤다. 이런 걸 하나씩 들여다보는 재미로 걷는 동네다.

철인 광장 주변으로는 상가가 제대로 형성돼 있다. 유리 천장을 얹은 아케이드 상점가가 길게 이어지는데, 가로등마다 주먹을 치켜든 철인 그림과 'TETSUJIN MONUMENT / SHIN-NAGATA 1st AVENUE'라고 적힌 붉은 배너가 걸려 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매월 28일은 신나가타 1번가의 날'이라는 현수막이 가로로 걸려 있었다. 날짜를 맞춰 가면 뭔가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식당이 꽤 많다. 신나가타는 철판 요리로 유명한 동네고, 안내판에도 그 얘기가 적혀 있을 정도다. 아케이드를 걷다 보면 소바메시나 오코노미야키를 내는 작은 가게들이 줄줄이 나온다. 우리는 아이들이 지쳐서 아무 데나 들어갔는데, 가격표는 가게마다 달라 미리 확인하는 게 낫다.
중고 카메라 가게에서 발이 묶였다
아케이드를 걷다가 예상 못 한 데서 오래 멈췄다. 규모가 상당한 중고 카메라 샵이 하나 있는데, 진열장이 통유리로 길게 서 있고 그 안에 필름 카메라와 렌즈가 층층이 빼곡하다. 니콘 레인지파인더, 이안 리플렉스, 대형 뷰카메라 바디까지 섞여 있고, 아래 칸은 렌즈만 수십 개가 가격표를 달고 누워 있다. 계산대 쪽에는 '표시는 전부 세금 포함 가격'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진열장 안 초록색 손글씨 POP이 인상적이었다. 니콘 쌍안경 10배 신품을 상태별로 나눠 A 3,300엔 / B 2,200엔 / C 1,100엔, 고무 그립 벗겨진 정도에 따라 값을 다르게 매겼다. 이런 식으로 상태를 솔직하게 등급 나눠 파는 걸 보면 가게 성격이 짐작된다. 카메라에 관심 있으면 여기서 30분은 그냥 간다. 나는 렌즈 하나를 만지작거리다 아들이 잡아끄는 바람에 못 샀다. 그게 지금도 좀 아쉽다.

같은 상가 안에 다이소도 크게 들어와 있다. 셀프 계산대와 쇼핑 카트까지 갖춘 넓은 매장이라, 아이들 뛰어놀다 뭐가 필요해지면 바로 해결된다. 여행 중 잃어버린 소모품 채우기에 딱이다.

가는 법과 실제로 쓸모 있었던 몇 가지
- 지하철 신나가타역에서 내려 걸어서 몇 분. 역 앞 보행 데크를 이용하면 신호 대기 없이 공원 쪽으로 넘어간다.
- 모뉴먼트만 보면 10분, 공원 놀이터까지 쓰면 2~3시간. 아이 동반이면 후자로 계산하고 일정을 짜는 게 맞다.
- 정면 사진은 오전 쪽이 하늘이 잘 나온다. 광장 바닥 격자를 가이드 삼아 뒤로 물러나면 전신이 프레임에 들어간다.
- 상가 영업시간은 가게마다 제각각이라 현장 확인을 권한다. 아케이드 안쪽 개인 상점은 이른 시간에 닫혀 있는 곳도 있었다.
- 매월 28일 '신나가타 1번가의 날' 현수막을 봤다. 내용은 확인 못 했으니 날짜가 맞으면 가서 직접 볼 것.
고베 관광 코스에서 늘 빠지는 동네지만, 아이 데리고 반나절 비워 갈 곳으로는 산노미야보다 낫다고 본다. 로봇 하나 보러 갔다가 공원에서 이름도 모르는 아이랑 친구가 되어 돌아오는 식의 하루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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