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역 하치코 광장, 벚꽃 낮과 네온 밤 사이에서 본 도쿄
도쿄 시부야역 하치코 출구를 나오면 3초 안에 사람 벽에 부딪힌다. 개찰구에서 나와 계단 몇 개 내려서면 바로 광장인데, 여기가 도쿄에서 내가 가장 자주 서 있게 되는 자리다. 봄에 한 번, 여름 밤에 한 번 갔고 두 번의 인상이 완전히 달랐다. 낮에는 벚꽃 아래 사람 구경, 밤에는 광고탑 불빛과 횡단보도 신호 대기. 같…
도쿄 · 시부야역
도쿄 시부야역 하치코 출구를 나오면 3초 안에 사람 벽에 부딪힌다. 개찰구에서 나와 계단 몇 개 내려서면 바로 광장인데, 여기가 도쿄에서 내가 가장 자주 서 있게 되는 자리다. 봄에 한 번, 여름 밤에 한 번 갔고 두 번의 인상이 완전히 달랐다. 낮에는 벚꽃 아래 사람 구경, 밤에는 광고탑 불빛과 횡단보도 신호 대기. 같은 100평 남짓한 공간인데 시간대에 따라 딴 동네가 된다.
청동 개 한 마리 주변 반경 5미터
하치코 동상은 생각보다 작다. 사진으로 보고 온 사람들이 실물 앞에서 "어? 이거였어?" 하는 표정을 짓는 걸 여러 번 봤다. 어깨 높이가 성인 허리춤 정도고, 화강암 받침대 위에 앉아 왼쪽 위를 올려다보는 자세다. 등과 앞발 쪽은 사람 손이 하도 닿아서 청동 원래 색보다 밝게 닳아 있다.

동상 뒤에 노란 복권 판매소가 붙어 있는 걸 알아채는 사람은 별로 없다. ドリームジャンボ 5억엔이라고 크게 써 붙였고, "大当たりの名所"—대박 나는 명당이라는 자기 홍보 문구까지 달았다. 충견 옆에서 복권을 파는 조합이 좀 웃겨서 한참 봤다.

동상만 찍고 돌아서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발밑을 한 번 보면 좋다. 광장 바닥 맨홀 뚜껑에도 하치코가 새겨져 있다. 주황색 도장이 벗겨져 얼룩덜룩한 상태인데 개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도안이다. 이걸 발견하고 쭈그려 앉아 찍는 동안 옆에서 두 명이 따라 찍었다.

밤에 다시 갔을 때가 훨씬 좋았다. 나무 조명이 아래에서 위로 쏘아 올려서 청동에 초록빛이 돈다. 낮에는 줄 서서 찍어야 하는데 밤 9시쯤에는 동상 옆에 앉아 폰만 보는 사람이 더 많다. 받침대 정면의 忠犬ハチ公 명판도 밤에 더 또렷하게 읽힌다.

광장에 사는 사람들 — 여기 진짜 볼거리
이 광장의 본체는 동상이 아니라 사람이다. 볼거리도 즐길거리도 결국 사람이고, 특이한 사람이 정말 많다. 봄에 갔을 때 벚나무 아래 금색 전신 타이즈에 흰 가면을 쓴 사람이 캐리어에 걸터앉아 있었다. 손에 든 화이트보드에는 "YouTuber ゲンキTV / チャンネル登録頼む(채널 구독 부탁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 퍼포먼스도 안 하고 그냥 앉아만 있는데 사람들이 계속 흘끔거린다. 옆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대놓고 카메라를 들이대도 미동도 없었다.


광장 전체를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이 정도 밀도다. 벚꽃 가지가 화면 위쪽을 다 덮고, 그 아래로 노란 원피스, 금색 옷, 캐리어, 백팩이 뒤엉켜 있다. 오른쪽 위 JR 渋谷駅 간판 뒤로 야마노테선 초록색 전동차가 지나간다. 이 사진 하나에 시부야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에 간 날에는 벽화 앞에서 또 다른 사람을 봤다. 알록달록 색칠한 탑 같은 걸 머리에 이고, 노란 티셔츠에 꽃무늬 색동 가방을 메고, 한 손에 작은 나무 접시를 든 채 천천히 걸어다녔다. 슬리퍼 차림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본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지나갔다. 시부야에서는 이런 게 배경이 된다.

아무도 안 보는 개 벽화와, 다들 올려다보는 벚꽃
하치코 광장 한쪽 벽에 큰 타일 벽화가 있다. 무지개색 띠 아래로 흰색 부조 개들이 여러 마리 배치돼 있고, 왼쪽 끝에는 금빛 원반이 박혀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등을 돌리고 앉아 폰을 보는 자리라서, 정작 벽화를 올려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까이 가면 개마다 자세가 다르고 부조 두께가 꽤 두툼하다.

대신 봄에는 다들 고개를 든다. 광장 위쪽 벚나무가 만개하면 소비자금융 간판(アコム·レイク·アイフル)과 파란 하늘, 흰 벚꽃이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이 조합이 묘하게 도쿄답다. 벚꽃 명소를 따로 찾아가는 것보다 여기 서서 위를 보는 게 더 기억에 남았다. 개화 시기는 해마다 다르니 출발 전 확인하는 게 낫다.

위치와 동선 — 하치코 출구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시부야역은 JR 야마노테선·사이쿄선, 도쿄메트로 긴자선·한조몬선·후쿠토신선, 도큐선, 게이오 이노카시라선까지 얽혀 있어서 지하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다. 처음 온 사람이 헤매는 건 거의 정해진 수순이라, 나는 그냥 ハチ公口(하치코 출구) 표지만 따라간다. 개찰구를 나오면 바로 광장이고, 광장에서 왼쪽 대각선 방향이 스크램블 교차로다.
일행과 만나기로 했다면 동상 앞은 피하는 게 좋다. 사람이 겹겹이라 서로 3미터 앞에 두고도 못 찾는다. 나는 벽화 끝 모서리나 광장 반대편 관광안내소 쪽을 약속 장소로 쓴다. 여름 저녁에는 습도가 높아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나니, 기다릴 거면 근처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있는 편이 낫다.
스크램블 교차로, 신호 한 번의 밀도
광장에서 몇 걸음이면 스크램블 교차로다. 낮에 올려다본 하늘은 광고판 천지였다. 모닝구무스메 20주년 옥외광고, 대형 LED, 그 아래 건물에는 샤부샤부 뷔페 1,199엔 / 1,599엔이라고 크게 붙어 있었다(내가 갔을 때 표기. 지금은 다를 수 있으니 현장 확인 권장). 그 밑으로 사람 머리가 지평선처럼 깔린다.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장면이 된다. QFRONT 건물 꼭대기 대형 스크린이 켜지고, 건너편 MAGNET과 원통형 광고탑이 동시에 빛난다. 신호가 빨간불일 때 인도에 사람이 차오르는 소리—캐리어 바퀴, 신발, 셔터음—가 한 덩어리로 웅웅거리다가, 파란불로 바뀌는 순간 그게 뚝 끊기고 발소리만 남는다. 이 전환이 몇 번을 봐도 재밌다.



교차로를 등지고 서면 광장 쪽 인파가 또 한 겹이다. 노란 Z세대 광고 배너, 넷플릭스 옥외광고, 공사용 크레인이 한 화면에 다 들어온다. 시부야는 몇 년째 계속 공사 중이고, 갈 때마다 스카이라인이 조금씩 바뀌어 있다.

고개를 더 들면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가 서 있다.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는 건물인데, 나는 아직 안 올라가 봤다. 아래에서 목이 아플 때까지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왼쪽으로는 여전히 크레인이 돌아가는 중이었다.

광고탑 중에서도 원통형 STARTS 건물 광고가 제일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갔을 때는 NIKKE×에반게리온 콜라보 광고가 걸려 있었고, 8월 22일 정식 릴리즈라는 문구까지 통째로 감겨 있었다. 이런 대형 콜라보 광고는 몇 주 단위로 바뀐다. 같은 자리에서 계절마다 다른 사진이 나오는 이유다.

교차로 건너 센터가이, 그리고 스타벅스 2층
교차로를 건너면 바로 渋谷センター街 아치가 나온다. 내가 간 날에는 아치에 커다란 빨간 도미 모양 네부타 등이 매달려 있었고, 건물 벽 전체가 극장판 슬램덩크 그림으로 덮여 있었다. 쇼호쿠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2층 높이로 서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멈춰서 찍었다. 골목 안은 라멘집, 게임센터, 편의점이 붙어 있고 밤 11시가 넘어도 사람이 줄지 않는다.

교차로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으면 QFRONT 2층 스타벅스가 가장 만만하다. 창가 자리는 거의 항상 차 있어서 운이 필요하고, 나는 두 번 시도해서 한 번 앉았다. 위층 SHARE LOUNGE는 별도 요금제라 커피값만 내고 들어가는 곳은 아니니 조건은 현장에서 확인하는 게 좋다. 자리 못 잡았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교차로 한복판을 걸어서 건너는 쪽이 훨씬 몸에 남는다.

시부야역 광장에서 제대로 놀려면 최소 한 시간은 잡아야 한다. 동상 사진 찍고 5분 만에 뜨면 이 동네에서 제일 재밌는 걸 놓친다. 벤치 없는 광장 구석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만 30분 봐도 시간이 간다. 금색 옷 입은 유튜버, 머리에 탑 이고 걷는 사람, 하치코 발을 만지고 가는 할머니, 신호 하나에 수백 명씩 몰려 건너는 무리. 다음에 가면 또 다른 사람이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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