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텐진호르몬, 30분 줄 서서 철판 앞에 앉은 날 — 대창 한 점에 기다림이 사라졌다
후쿠오카 텐진 지하상가 쪽에서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한참 돌다가, 사람이 길게 늘어선 가게 앞에서 멈췄다. 검은 간판에 붉은 글씨로 鉄板焼 天神ホルモン. 텐진호르몬이다. 일본에서 '호르몬'은 곱창·대창 같은 내장 부위를 말한다. 한국식 대창구이를 떠올리고 갔는데, 여기는 철판에 구워 정식(定食)처럼 밥·국과 함께 내주는…
후쿠오카 · 텐진호르몬
후쿠오카 텐진 지하상가 쪽에서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한참 돌다가, 사람이 길게 늘어선 가게 앞에서 멈췄다. 검은 간판에 붉은 글씨로 鉄板焼 天神ホルモン. 텐진호르몬이다. 일본에서 '호르몬'은 곱창·대창 같은 내장 부위를 말한다. 한국식 대창구이를 떠올리고 갔는데, 여기는 철판에 구워 정식(定食)처럼 밥·국과 함께 내주는 방식이었다. 관광객보다 퇴근한 회사원과 근처 직장인이 훨씬 많았다.
줄부터 이야기하자 — 기다림은 진짜 지루하다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열 명 넘게 서 있었다. 앉을 의자도 없고, 지하상가 통로라 딱히 볼거리도 없다. 대기 명부에 이름 적고 그냥 서 있는 구조라 휴대폰만 들여다보게 된다. 카운터 좌석 중심의 작은 가게라 회전은 빠른 편인데, 그래도 내 차례가 오기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앞에 선 사람들이 유리창 너머 철판을 계속 쳐다보고 있길래 나도 따라 봤다. 그게 그나마 시간을 죽이는 방법이었다.

입구 왼쪽 벽에 메뉴 사진이 붙어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뭘 시킬지 정해두면 좋다. 내가 갔을 때 붙어 있던 종이에는 호르몬 정식과 니쿠마루 정식이 각각 1280엔. 후쿠오카 시내 정식집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격인데, 나오는 걸 보면 이게 왜 가성비 소리를 듣는지 알게 된다. 가격은 시기마다 바뀌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결제 스티커에 UnionPay, JCB, Diners가 붙어 있었다.
철판 바로 앞자리, 굽는 걸 눈앞에서 본다
안내받아 들어가면 넓은 철판을 ㄷ자로 둘러싼 카운터에 앉는다. 자리에 앉는 순간 얼굴로 훅 들어오는 열기와 기름 냄새가 있다. 옷에 냄새 밴다. 좋은 옷 입고 갈 자리는 아니다.
직원이 내 앞 철판에 생고기를 툭 올려놓고 굽기 시작한다. 붉은 소고기 슬라이스와 하얀 지방이 도톰하게 붙은 대창이 나란히 올라갔다. 뒤집개로 몇 번 눌러 편 다음, 옆에 있던 쇠 뚜껑을 덮어 잠깐 쪄내듯 익힌다. 이 뚜껑 덮는 과정이 핵심인 것 같았다. 대창 지방이 안에서 녹으면서 기름이 철판 위로 퍼지고, 그 기름에 숙주와 부추가 볶인다.

대창 한 점 — 여기서 기다린 게 정리됐다
다 구워지면 철판 위에 깔아둔 은박지째로 내 앞에 밀어준다. 접시가 아니라 은박지다. 밑에서 계속 열이 올라오니까 마지막 한 점까지 식지 않는다. 이게 생각보다 크다. 한국에서 대창 먹다 보면 나중에 굳어서 텁텁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여기선 그게 없었다.
왼쪽은 소고기, 오른쪽이 대창, 가운데는 숙주와 부추, 당근이다. 대창부터 집었다. 겉은 간장 양념이 캐러멜처럼 눌어붙어 진한 갈색인데 씹으면 안에서 기름이 확 터진다. 누린내가 없다. 이게 제일 놀라웠다. 내장 특유의 냄새를 잡으려고 양념을 세게 쓰는 집이 많은데, 여기는 양념이 오히려 담백한 편이고 대창 자체가 깨끗했다. 밥 한 숟갈 뜨고 대창 한 점 올리니까 30분 서 있던 게 그냥 없던 일이 됐다. 옆자리 아저씨가 밥 추가하는 걸 보고 나도 따라 시킬 뻔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양이 많지는 않다. 사진에 보이는 게 거의 전부라, 술 곁들여 오래 앉아 있을 생각으로 가면 부족하다. 소고기는 대창에 비하면 평범했다. 부드럽긴 한데 인상에 남는 맛은 아니었고, 여기 진짜배기는 대창 쪽이다. 다음에 간다면 소고기 비중이 적고 호르몬 위주인 메뉴를 고르겠다.
위치와 실전 팁
텐진 일대 지하상가·상업시설 안에 자리한 매장이라 지상에서 헤매기 쉽다. 나도 간판을 두 번 지나쳤다. 지하도 통로를 따라가다 사람이 몰려 서 있는 지점을 찾으면 그게 입구다. 지도로 좌표를 미리 찍어두고 가는 편이 빠르다.
-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하고 라스트오더는 밤 10시(입구 안내판 기준, 변동 가능).
- 점심 12시~1시, 저녁 7시 전후는 줄이 가장 길다. 오후 3~4시쯤이 제일 한산했다.
- 카운터석 위주라 2인까지는 회전이 빠르다. 4인 이상이면 대기가 훨씬 길어진다.
- 냄새가 옷에 확실히 밴다. 쇼핑 전보다 일정 마지막에 넣는 게 낫다.
- 혼밥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옆자리 절반이 혼자 온 직장인이었다.
줄 서는 집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기는 다시 서겠다. 다음 후쿠오카행에는 도착 첫날 저녁으로 잡아둘 생각이다.
이어서 볼 글
- 아키하바라 주오도리부터 간다강까지, 여러 번 다시 걸어본 도쿄 전자상가 기록
도쿄 아키하바라는 한 번 와서 다 봤다고 말하기 어려운 동네다. 나는 계절을 바꿔가며 여러 번 왔는데, 올 때마다 간판이 갈리고 진열장 가격표가 바뀌어 있었다. JR 아키하바라역 전기가(電気街) 출구로 나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요도바시카메라 멀티미디어 Akiba 쪽 통로다. 처음 왔을 때 이 사인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
도쿄 · 아키하바라 - 도쿄 니시긴자 찬스센터에서 연말 점보 복권 300엔짜리 한 장 사보기
도쿄 신바시역 히비야 출구에서 나와 고가도로 쪽으로 3분쯤 걸으면, 뜬금없이 사람 줄이 인도를 따라 늘어서 있는 구간이 나온다. 니시긴자 찬스센터(西銀座チャンスセンター)다. 긴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신바시와 유라쿠초 사이, 도쿄 고속도로 아래 상가 1층 모퉁이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복권 판매소다. 나는 이…
도쿄 · 니시긴자 찬스센터 - 우에노 아메요코, 해 지고 나서가 진짜다 — 오카치마치 게이트에서 우에노역까지 걸어본 저녁
도쿄에 올 때마다 우에노 아메요코(アメ横)는 일정에 넣지 않아도 결국 발이 향한다. 이번엔 오카치마치 쪽에서 들어가 우에노역 쪽으로 훑고 나왔다. 낮에 왔다가 "생각보다 별거 없네" 하고 돌아간 사람이 주변에 꽤 있는데, 이 동네는 오후 5시 넘어 간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부터 표정이 바뀐다. JR 선로 밑 아치와…
도쿄 · 아메요코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