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 은각사까지, 다리 건너 500m가 이 코스의 절반이다 — 교토 긴카쿠지 겨울 방문기

교토 시내 버스가 긴카쿠지미치(銀閣寺道) 정류장에 서면 절이 바로 보일 거라 기대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아직 아무것도 안 보인다. 내려서 지도를 보니 목적지까지 도보로 5~7분. 이 짧은 구간이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았다. 히가시야마 산자락 아래 수로를 따라 걷는 이 길, 그러니까 철학의 길(사색의 길) 북쪽 끝에…

교토 · 긴카쿠지

교토 시내 버스가 긴카쿠지미치(銀閣寺道) 정류장에 서면 절이 바로 보일 거라 기대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아직 아무것도 안 보인다. 내려서 지도를 보니 목적지까지 도보로 5~7분. 이 짧은 구간이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았다. 히가시야마 산자락 아래 수로를 따라 걷는 이 길, 그러니까 철학의 길(사색의 길) 북쪽 끝에서 은각사 정문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이 그렇다.

정류장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는 순간부터

버스에서 내리면 곧바로 수로를 가로지르는 작은 돌다리가 나온다. 난간에 銀閣寺西橋(긴카쿠지니시바시)라고 새겨져 있어서 이름을 확인하고 갔다. 2월 말이라 수로 양쪽 벚나무는 완전히 앙상했다. 잎도 꽃도 없는 가지가 하늘을 가르고, 수로 물은 얕게 흐르고, 뒤로는 히가시야마 능선이 잿빛으로 앉아 있다. 벚꽃철 사진만 보고 온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계절의 철학의 길이 더 좋았다. 사람이 적어서 다리 위에서 사진 찍는 데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다.

銀閣寺西橋라고 새겨진 돌난간 앞에 파란 패딩을 입은 아이가 서 있고, 뒤로 잎이 다 진 벚나무와 수로가 이어지는 겨울 풍경
난간에 새겨진 '銀閣寺西橋'. 여기서 절까지는 아직 오르막이 남았다.

다리를 건너면 길이 좁아지면서 상점가로 바뀐다. 아스팔트 경사가 완만하게 계속 올라가고, 왼쪽으론 오래된 목조 주택, 오른쪽으론 가게가 붙어 있다. 우리가 지나갈 때는 京漬物 小松(교토 절임 가게 고마쓰)이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나무통에 담긴 쓰케모노에 ¥500, ¥600 가격표가 붙어 있었고, 실제로 손님 한 명이 통 앞에 몸을 숙이고 고르는 중이었다. 그 옆으론 '生八ッ橋'(나마야쓰하시) 깃발, 'おにぎり' 깃발, 그리고 뜬금없이 파란 BOSS 커피 자판기와 빨간 코카콜라 자판기.

긴카쿠지로 올라가는 좁은 참배로. 오른쪽에 교토 절임 가게 고마쓰의 나무통과 나마야쓰하시 깃발, 자판기가 늘어서 있고 아이 둘과 어른이 손을 잡고 오르막을 걷는 뒷모습
긴카쿠지 참배로. 절임 통에 붙은 ¥500, ¥600 가격표가 보인다.

이 오르막이 생각보다 숨차다. 완만해 보여도 계속 올라간다. 유모차나 무릎이 안 좋은 분과 함께라면 여기서 한 번 쉬어가는 걸 추천한다. 시식용 절임을 내놓는 가게가 몇 군데 있어서 서서 하나 집어먹고 물 한 모금 마시기 좋다.

총문 앞, 慈照寺라 적힌 돌기둥

상점가가 끝나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왼쪽에 커다란 돌기둥이 서 있는데 史蹟 慈照寺(銀閣寺) 舊境内이라고 세로로 새겨져 있다. 은각사의 정식 이름이 지쇼지(慈照寺)라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 그 뒤로 자갈 박은 참배로가 총문까지 곧게 뻗고, 양옆은 대나무 울타리와 이끼 낀 돌담.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뒤로 총문 기와지붕이 딱 들어와서, 다들 걸음을 멈춘다.

史蹟 慈照寺 銀閣寺 舊境内이라 새겨진 돌기둥 옆, 자갈 박힌 참배로에서 아이 둘과 어른이 손을 뻗고 포즈를 취한 모습. 뒤로 기와지붕 총문이 보인다
총문 앞 참배로. 왼쪽 돌기둥이 '慈照寺 舊境内'.

총문을 지나면 그 유명한 긴카쿠지가키(銀閣寺垣). 사람 키보다 높은 생울타리와 대나무 담이 좁은 통로를 만들어서 하늘만 겨우 보인다. 이 구간을 지나야 표를 산다. 좁은 길을 걸어 나오는 순간 시야가 확 트이도록 설계해둔 게 노골적으로 느껴지는데, 알고 봐도 효과가 있다.

은사탄과 향월대 — 관음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

입장하고 나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 건물이 아니라 모래다. 하얀 모래를 파도 무늬로 갈퀴질해 깔아둔 은사탄(銀沙灘), 그 옆에 원뿔대로 쌓아올린 향월대(向月台). 사진으로 볼 땐 작아 보였는데 실물은 성인 가슴 높이쯤 된다. 표면이 콘크리트처럼 매끈하게 다져져 있어서, 저걸 어떻게 저 형태로 유지하나 싶었다. 비 오는 날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갈퀴로 줄무늬를 낸 흰 모래밭 은사탄과 원뿔대 모양 향월대, 그 너머로 이층 목조 건물 관음전이 보이는 겨울 흐린 날 풍경
은사탄의 줄무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관람 동선이 흐른다.

모래밭 옆을 따라 걸으면 관음전,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은각'이 나온다. 이름은 은각인데 은색이 아니다. 검게 그을린 나무 그대로다. 애초에 은박을 입힌 적이 없다는 설명은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코앞에서 보면 그 나뭇결의 낡음이 오히려 이 건물의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이층 처마 위 청동 봉황이 하늘을 보고 서 있고, 이층 창은 흰 종이가 발린 아치형. 마감이 화려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검게 그을린 목조 이층 건물 관음전을 정면 가까이서 본 모습. 지붕 위 청동 봉황과 아치형 흰 창이 보이고 앞에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가까이서 본 관음전. 은색은 어디에도 없다.

동선을 따라 돌면 연못 건너편에서 전체를 잡는 자리가 나온다. 여기가 사람이 제일 몰린다. 소나무 가지가 프레임을 만들고, 킨쿄치(錦鏡池) 수면에 건물이 뒤집혀 비친다. 잎이 다 진 계절이라 오히려 건물이 나뭇가지에 덜 가렸다.

연못 건너편에서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바라본 관음전 전경. 수면에 건물이 비치고 물가에는 이끼와 바위가 배치되어 있다
연못 반대편에서. 이 앵글이 제일 많이 알려진 그림이다.

같은 건물이라도 조금 물러나 소나무 사이로 보면 인상이 또 달라진다. 이끼 낀 지반, 물에 반쯤 잠긴 바위, 그 뒤 흰 향월대까지 한 화면에 들어오는 자리가 있다. 정원 전체가 하나의 장치라는 게 이때 확실히 보인다.

굵은 소나무 줄기 사이로 보이는 관음전과 흰 향월대, 이끼 낀 정원과 연못이 함께 담긴 넓은 구도
소나무 사이로 본 정원 전체. 이끼 색이 겨울에도 살아 있다.

대나무 다리와 뒷산 오르막 — 여기서 돌아가면 손해다

연못을 지나면 대나무를 엮어 난간을 만든 낮은 다리가 나온다. 이끼가 두껍게 덮인 언덕 아래로 물이 흐르고, 다리 상판 폭은 두 사람이 겨우 비켜 갈 정도. 아이들이 여기 올라가 사진을 찍겠다고 버텨서 한참 서 있었다.

대나무 난간이 달린 낮은 다리 위에 파란 패딩을 입은 아이 둘이 서 있고, 뒤로 이끼가 뒤덮인 언덕과 관람객들이 보인다
대나무 난간 다리. 폭이 좁아 서로 비켜주며 지난다.

다리를 지나면 오차노이(お茶の井)라 부르는 샘물터가 나온다. 바위 사이 작은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고 바닥엔 낙엽이 가라앉아 있다.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차 끓일 물을 여기서 떴다고 전해지는 자리다. 안내판 없이 지나가면 그냥 물웅덩이로 보이니, 표지판을 한 번 확인하고 보길 권한다. 주변 바위 위 이끼 색이 진해서 사진으로는 계절이 헷갈릴 정도였다.

이끼 낀 바위 사이에 고인 작은 샘물 웅덩이. 바닥에 낙엽이 가라앉아 있고 주변에 자갈이 깔려 있다
오차노이 샘물터. 안내판을 안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여기서부터 뒷산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시작된다. 이 구간이 이 절의 숨은 본편이다. 자연석을 박아 만든 계단이라 발 디딤 폭이 제각각이고, 습기 때문에 표면이 미끄럽다. 앞사람 속도에 맞춰 줄지어 올라가야 해서 중간에 멈추기도 어렵다. 굽 있는 신발은 확실히 피하는 게 좋다. 우리는 아이들이 앞장서서 뛰다시피 올라갔는데, 나는 뒤에서 난간을 잡고 따라갔다.

자연석을 박아 만든 좁은 돌계단을 여러 사람이 줄지어 오르는 모습. 양옆은 이끼로 덮여 있고 오른쪽에 금속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뒷산 오르막. 돌이 젖어 있어 미끄럽다.

오르는 중간에 한 번 고개를 들었다. 왼쪽은 대숲, 가운데 삼나무 한 그루가 곧게 서 있고, 아래로 이끼밭이 노랗게 깔려 있다. 아래쪽 돌기둥에도 '史蹟 慈照寺'가 새겨져 있다. 절 마당의 정돈된 정원과 달리 여기는 산이 그냥 산이다. 이 대비 때문에 힘들어도 올라갈 만하다.

대숲과 삼나무가 서 있는 뒷산 비탈을 올려다본 모습. 아래쪽에 史蹟 慈照寺라 새겨진 돌기둥과 대나무 울타리, 노란 이끼밭이 보인다
오르막 중턱. 왼쪽 대숲과 삼나무, 아래로 이끼밭.

정상 전망대에서는 관음전 지붕과 은사탄, 그리고 교토 시내 서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는 길은 반대편으로 돌아 다시 정원 쪽으로 이어진다. 전체 관람 동선이 일방통행이라 되돌아갈 수 없으니, 놓친 게 있으면 그때그때 봐야 한다.

가는 법과 실제로 도움이 된 것들

절 안에서 보낸 시간은 한 시간이 안 됐다. 그런데 지금 사진을 넘겨보니 제일 오래 눈이 머무는 건 잎 없는 벚나무 아래 수로와 절임 통이 놓인 오르막이다. 버스에서 내려 걷는 그 5분을 택시로 건너뛰지 않은 게 이번 방문에서 제일 잘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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