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푸 가마솥 지옥(かまど地獄) 반나절 — 1정목부터 6정목까지, 온천 달걀과 라무네로 마무리한 날
비가 오다 말다 하는 오후에 오이타현 벳푸 간나와(鉄輪) 지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동네 전체가 김을 뿜고 있었다. 지붕 사이, 도랑 사이, 하수구 뚜껑 틈에서까지 수증기가 올라온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 가마솥 지옥이다. 이름 그대로 솥이 상징인데, 매표소 앞에 실제로 커다란 쇠솥을 세워…
벳푸 · 가마솥 지옥
비가 오다 말다 하는 오후에 오이타현 벳푸 간나와(鉄輪) 지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동네 전체가 김을 뿜고 있었다. 지붕 사이, 도랑 사이, 하수구 뚜껑 틈에서까지 수증기가 올라온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 가마솥 지옥이다. 이름 그대로 솥이 상징인데, 매표소 앞에 실제로 커다란 쇠솥을 세워두고 금줄까지 둘러놨다. 그 위로 소나무가 자라 있어서 처음엔 무슨 신사 입구인가 싶었다.

매표소 유리창에 요금표가 붙어 있는데 단체·개인·지옥순례 공통권이 따로 있다. 나는 여러 지옥을 도는 공통권을 샀지만 금액은 시기마다 바뀌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표를 끊고 들어서면 바로 붉은 도깨비가 솥 위에 올라앉아 있다. 사진 찍는 줄이 길어서 사람 없는 컷은 포기했다.

1정목부터 6정목까지, 못마다 색이 다르다
여기가 다른 지옥과 다른 점은 하나의 큰 연못을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좁은 부지 안에 성질이 다른 온천 못이 번호를 달고 줄줄이 이어진다. 一丁目, 二丁目 하는 식으로 팻말이 붙어 있어서 순서대로 따라가면 된다. 실제로 걸어보면 20~30분이면 한 바퀴가 돌아가는데, 색이 바뀔 때마다 발이 멈춰서 나는 한 시간 가까이 있었다.

이 4정목 하늘색 못이 가장 인기가 많다. 재미있는 건 바람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진이 나온다는 점이다. 내가 서 있는 동안 갑자기 수증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못이 통째로 사라졌다. 직원이 담배 연기를 불어넣으면 김이 확 불어나는 시연을 하는데, 그 직후였던 것 같다. 몇 초 뒤엔 다시 물빛이 보였다.

조금 더 걸으면 흙탕물 같은 주황색 못이 나온다. 파이프 하나가 삐죽 꽂혀 있고 표면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냄새는 여기서부터 확실히 세진다. 황 냄새라기보다 젖은 흙을 뜨겁게 데운 냄새에 가깝다.


진흙 구역은 성격이 또 다르다. 물이 아니라 죽처럼 걸쭉한 진흙이 동그랗게 부풀었다 꺼진다. 가장자리가 굳어서 접시 테두리처럼 솟아 있는데, 그 무늬가 매년 조금씩 달라진다고 한다. 부글거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낮고 둔탁했다.


마지막 구역의 큰 못은 우윳빛이 도는 연둣빛이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라 난간 자리를 잡으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 단체 관광객이 한 번 빠지면 갑자기 조용해지니 그 틈을 노리면 된다.


위치와 가는 법
가마솥 지옥은 간나와 버스정류장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다. JR 벳푸역 서쪽 출구 버스터미널에서 간나와행 노선버스를 타면 되고, 바다 지옥(우미지옥)·귀산 지옥 같은 다른 지옥들이 도보권에 모여 있다. 나는 바다 지옥 쪽에서 걸어왔는데 오르막이 살짝 있을 뿐 길이 평탄하다. 주차장은 부지 앞에 있고, 관광버스가 들어오면 앞이 잠깐 막힌다.
온천 달걀과 라무네, 이건 그냥 지나치면 손해다
여기 온 사람들이 못만 보고 나가는 경우가 은근히 많은데, 매점 앞 벤치가 진짜 본편이다. 온천 증기로 찐 달걀을 팔고, 그 옆 냉장고에 구슬이 든 라무네가 차갑게 들어 있다. 달걀 껍질을 까면 흰자가 살짝 갈색을 띠는데 유황 냄새는 거의 안 나고 짭짤한 간이 배어 있다. 노른자가 퍽퍽하지 않고 촉촉했다. 뜨거운 달걀 한 입, 얼음처럼 차가운 라무네 한 모금. 김 쐬고 땀 흘린 직후라 이 조합이 과장 없이 그날 최고였다.

라무네 병뚜껑은 직원이 열어주기도 하지만 대개 알아서 눌러야 한다. 구슬이 병목에 걸려 있어서 처음 마실 때 사레들리기 쉽다. 나는 첫 모금에 옷에 흘렸다. 병은 반납하는 상자가 따로 있으니 들고 나가지 말 것.
매점 옆에는 '마시는 온천'이 있다. 대나무 울타리에 수도꼭지가 두 개 달려 있고 국자가 놓여 있는데, 한국어로 '한잔 마시고 10년 젊어지세요!'라고 큼직하게 써 붙였다. 표시는 80℃라 국자에 받아 조금 식힌 뒤에 마셨다. 맛은 미지근한 미네랄워터에 쇳내가 살짝 섞인 정도다. 맛있어서 마시는 물은 아니지만 경험 삼아 한 모금은 해볼 만하다.

바로 옆 '목·피부의 탕(のど·肌の湯)'도 놓치지 말자. 대나무 벽에 금속 파이프 네 개가 꽂혀 있고 거기서 100℃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코로 천천히 들이마시라는 안내가 한국어로도 붙어 있다. 얼굴을 너무 가까이 대면 뜨거우니 한 뼘쯤 떨어져서 쐬는 게 맞다. 안경 쓴 사람은 그 순간 아무것도 안 보인다.

같은 날 묶어서 다닌 곳
가마솥 지옥만 보고 돌아가기엔 시간이 남는다. 나는 버스로 조금 올라가 묘반 온천(明礬温泉)에 들렀다. 언덕에 짚으로 지붕을 얹은 낮은 오두막이 줄지어 있는데, 여기서 '유노하나'라는 온천 결정을 만든다. 안내 기둥에 중요무형민속문화재라고 새겨져 있다. 비가 와서 땅이 질척했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면 발밑이 하얗게 굳은 결정으로 덮여 있다.

묘반 매점에서 파는 '유케무리 사이다(湯けむりサイダー)'는 라벨에 저 짚 오두막이 그려져 있다. 병이 작아서 두 모금이면 없어지지만 탄산이 세고 뒷맛이 깔끔하다. 가마솥 지옥에서 마신 라무네와는 맛이 다르니 둘 다 마셔봐도 겹치지 않는다.

다음 날은 유후인으로 넘어갔다. 아침부터 비가 내려 산 중턱까지 구름이 내려앉았고, 유노쓰보 거리 입구 도로가 젖어 번들거렸다. 유료 주차장 안내판이 곳곳에 서 있는데 성수기 주말엔 여기서 한참 헤맨다. 벳푸의 김 나는 풍경과는 공기가 완전히 달랐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 수증기 때문에 렌즈에 김이 계속 낀다. 안경·카메라 닦을 마른 천을 챙기면 확실히 덜 짜증난다.
- 바닥이 젖어 있는 구간이 많다. 슬리퍼보다 밑창이 잡히는 신발이 낫다.
- 단체 버스가 몰리는 시간대엔 4정목 앞이 사람으로 막힌다. 아침 개장 직후가 가장 한산했다.
- 온천 달걀과 라무네는 매점 벤치에서 바로 먹는 구조라 자리 경쟁이 있다. 못 구경을 마치기 전에 미리 자리를 봐두면 편하다.
- 요금·영업시간은 변동이 있으니 매표소 게시판을 직접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돌아 나오면서 다시 입구 솥을 봤다. 아침에 볼 땐 그냥 조형물이었는데, 안에서 진흙이 끓고 증기가 100℃로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 나오니 저 솥이 왜 상징인지 알겠더라. 손끝에는 아직 달걀 껍질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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