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루가만 상공 34.74N 138.42E, 도쿄행 비행기에서 후지산을 정면으로 본 날

도쿄로 들어가는 비행기에서 창밖을 계속 보고 있었다. 시즈오카 앞바다, 스루가만을 지날 무렵 왼쪽 아래로 해안선이 길게 휘어 들어왔고 그 너머 육지 안쪽에 후지산이 서 있었다. 사진의 GPS를 나중에 확인하니 북위 34.74, 동경 138.42. 후지산 정상까지 직선으로 70km쯤 되는 지점이다. 이 정도 거리면 산이 화…

도쿄

도쿄로 들어가는 비행기에서 창밖을 계속 보고 있었다. 시즈오카 앞바다, 스루가만을 지날 무렵 왼쪽 아래로 해안선이 길게 휘어 들어왔고 그 너머 육지 안쪽에 후지산이 서 있었다. 사진의 GPS를 나중에 확인하니 북위 34.74, 동경 138.42. 후지산 정상까지 직선으로 70km쯤 되는 지점이다. 이 정도 거리면 산이 화면에서 작아 보일 것 같지만, 주변에 3,776m에 견줄 만한 게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혼자 튀어 오른 것처럼 보인다.

날개 밑으로 들어온 삿갓구름

처음 알아봤을 때는 정상에 흰 구름이 모자처럼 얹혀 있었다. 일본에서 가사구모(笠雲), 우리말로 삿갓구름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산 정상에 걸린 구름이 바람에 밀려 흐르지 않고 한자리에 붙어 있는 모양인데, 현지에서는 예부터 날씨가 무너질 징조로 읽는다. 실제로 그날 도쿄에 내려서는 저녁부터 흐려졌다.

비행기 날개 아래로 보이는 후지산, 정상에 흰 삿갓구름이 얹혀 있고 아래로는 스루가만 해안선과 도시가 펼쳐진 항공 사진
날개 끝과 후지산이 한 프레임에 들어온 순간. 산 아래 회색 띠가 시즈오카 쪽 시가지다.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알았다. 내 자리가 날개보다 뒤였다면 저 장면은 통째로 날개에 가렸다. 창가만 잡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몇 열이냐가 그만큼 중요했다.

그래서 어느 쪽 창가에 앉아야 하나

후지산을 노리고 앉는 문제는 방향 하나로 정리된다. 후지산은 북위 35.36, 동경 138.73에 있다. 내가 찍은 지점은 그보다 남서쪽 바다 위였고, 비행기는 하네다·나리타가 있는 동북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행 방향 기준으로 산은 왼쪽 앞이었다.

다만 항로는 그날 바람과 활주로 운용에 따라 바뀐다. 북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날은 좌우가 뒤집히거나 아예 산이 안 보인다. 확률을 올리는 선택이지 보장은 아니라는 뜻이다. 계절도 크게 갈린다. 공기가 마른 11월부터 2월 사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습한 여름에는 구름 위로 정상만 겨우 뾰족하게 나오는 날이 흔하다.

구름바다 위로 솟은 후지산 설산 정상, 골짜기 능선까지 흰 눈으로 덮여 있는 항공 사진
눈이 능선 골짜기까지 내려온 날. 아래는 통째로 구름바다였고 산만 그 위로 나와 있었다.

이 사진은 앞의 것과 눈 덮인 범위가 확연히 다르다. 정상 부근만 하얀 날이 있고, 이렇게 사면의 주름을 따라 눈이 아래까지 흘러내린 날이 있다. 같은 항로를 여러 번 타면서 계절이 산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를 창문 하나로 배웠다.

해안선이 먼저 오고 산은 그다음이다

후지산만 보고 있으면 놓치는 게 있다. 산이 나타나기 몇 분 전부터 스루가만 해안선이 먼저 창을 채운다. 바다는 얕은 곳과 깊은 곳의 색이 뚜렷하게 갈리고, 강이 산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선이 도시를 가르며 그대로 보인다. 항구의 방파제까지 또렷했다.

비행기 날개 아래로 스루가만의 짙푸른 바다와 굽이치는 해안선, 강을 낀 시가지가 보이고 멀리 지평선에 후지산 정상이 작게 솟아 있는 항공 사진
날개 바로 아래 지평선을 잘 보면 후지산 정상이 작게 솟아 있다. 산은 이렇게 먼저 예고편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이 보이기 시작하면 카메라를 꺼낼 타이밍이다. 창에 얼굴을 붙이고 렌즈를 유리에 최대한 가깝게 대야 실내 반사가 안 찍힌다. 밝은 옷을 입고 있으면 유리에 그대로 비쳐서 산 위에 내 어깨가 겹친다. 이건 몇 번 망치고 나서야 몸에 익었다.

놓치지 않으려면 준비해둘 것

기내 조명이 밝은 낮 비행에서는 창 반사와의 싸움이 전부다. 그리고 시간이 정말 짧다. 순항 속도로 지나가기 때문에 산이 제대로 보이는 구간은 길어야 2~3분이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끝난다. 스루가만 상공에 접어들 시각을 좌석 화면의 비행 지도로 미리 확인해두면 놓칠 일이 줄어든다.

기체 날개 가장자리가 오른쪽 위에 걸린 창밖 풍경, 정상에 두툼한 삿갓구름을 쓴 후지산과 그 아래 흩어진 뭉게구름이 보이는 항공 사진
몇 분 뒤 다시 찍은 컷. 구름 모자가 더 두꺼워지면서 정상 능선을 덮어가고 있었다.

같은 산을 몇 분 간격으로 두 번 찍었는데 모양이 달랐다. 구름이 그새 정상을 더 먹어 들어가 있었다. 후지산 사진을 두고 어떤 날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거다. 좌석과 계절은 내가 고를 수 있고, 나머지 절반은 그날의 구름이 정한다. 왼쪽 창가, 날개 앞, 겨울.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이 세 가지뿐이었고 그날은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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