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유후인 온천, 庄屋の館 노천탕과 킨린코까지 걸어본 하루
오이타현 벳푸에서 차로 산을 하나 넘으면 유후인(由布院)이다. 도착한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은 능선이 통째로 구름에 잠겨 있었고, 방음벽 너머 삼나무 숲이 젖어서 색이 진해져 있었다. 유후다케(由布岳)를 보러 왔는데 산 자체가 안 보이는 상황. 이날 사진 대부분이 회색인 이유다.
벳푸 · 유후인
오이타현 벳푸에서 차로 산을 하나 넘으면 유후인(由布院)이다. 도착한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은 능선이 통째로 구름에 잠겨 있었고, 방음벽 너머 삼나무 숲이 젖어서 색이 진해져 있었다. 유후다케(由布岳)를 보러 왔는데 산 자체가 안 보이는 상황. 이날 사진 대부분이 회색인 이유다.

유후인역 앞, 비 오는 날의 첫인상
검은 목조에 아치 지붕을 얹은 유후인역(ゆふいん駅)은 역이라기보다 작은 미술관처럼 생겼다. 처마 밑에 노란 등이 줄지어 켜져 있고, 앞마당에는 특급 유후인노모리 열차와 유후다케를 그린 낮은 가림판이 놓여 있다. 로터리에 택시 두어 대가 시동을 켠 채 서 있었다. 비 오는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이 역 앞은 날 좋은 주말이면 렌터카와 관광버스로 꽉 막힌다. 짐이 있으면 역에서 바로 택시를 잡는 게 낫다. 유노쓰보 거리 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캐리어 바퀴가 돌바닥에 계속 걸린다.

庄屋の館(쇼야노야카타) — 언덕 위 숙소
이날 묵은 곳은 유후인 온천 庄屋の館. 큰길에서 돌계단을 열댓 개 올라가야 현관이 나오는 구조다. 계단 왼쪽 벽에 '宿泊者受付(숙박객 접수·프런트)' 나무 안내판이 붙어 있고, 계단 끝 오른쪽에 기와를 얹은 작은 문패가 서 있다. 계단을 오르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건물 뒤로 하얀 수증기가 기둥처럼 솟고 있었다. 온천 시추 탑에서 나오는 김이다. 비 오는 날엔 이게 구름과 섞여서 어디까지가 김이고 어디부터가 안개인지 구분이 안 간다.

계단이 젖으면 꽤 미끄럽다. 난간이 한쪽에만 있어서 캐리어를 들고 오르는 사람은 두 번에 나눠 올리는 편이 안전하다. 앞서 올라가던 어르신도 한 손은 난간, 한 손은 짐가방이었다.

주차장은 계단 아래쪽 별도 공간에 있다. 큰 바위에 '宿泊者専用駐車場(숙박객 전용 주차장)'이라고 세로로 새겨둔 표석이 서 있어서 헤맬 일은 없다. 숙소 이름이 옆면에 적힌 회색 승합차가 세워져 있었는데, 역까지 픽업을 도는 차로 보였다. 운행 여부와 시간은 예약할 때 확인하는 게 확실하다.

방 쪽 통로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의외로 좋았다. 검은 기와지붕이 계단식으로 겹쳐 내려가고, 그 너머로 유후인 분지의 마을이 흐릿하게 깔린다. 비 그친 직후라 수국 잎에 물이 맺혀 있었고, 젖은 흙냄새와 유황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유황 냄새는 벳푸만큼 독하지 않다. 코를 찌르는 게 아니라 뜨거운 물 근처에 가면 은근히 느껴지는 정도.

위치로 보면 유후인 온천지구 한복판이다. 아래 지도의 좌표가 이날 사진을 찍은 지점이고, 킨린코와 유노쓰보 거리 상점가가 걸어서 닿는 거리에 있다.
노천탕은 비 오는 날이 제일이다
검은 판자 담벼락에 흰 글씨로 由布院温泉 庄屋の露天風呂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BIG OUTDOOR SPA 大露天風呂'와 화살표 안내판이 따로 서 있다. 담 오른쪽 문에는 '桃の木(ももの木)' 같은 대절탕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현관 옆 우산꽂이에 빨간 우산 하나가 꽂혀 있는 걸 보고 나도 우산을 두고 들어갔다.

유후인 와서 한 가지만 하라면 나는 노천탕을 고른다. 비 오는 날엔 더 그렇다. 물은 뜨겁고 머리 위로는 찬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그 온도 차 때문에 몸이 더 빨리 풀린다. 어깨까지 담그고 있으면 김이 얼굴 앞에서 계속 피어올라 시야가 뿌옇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안 난다. 나는 10분 담그고 나와 바위에 앉아 식히고, 다시 들어가는 걸 세 번쯤 반복했다. 한 번에 오래 있으면 어지럽다. 실제로 그날 저녁 탕 안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 벽에 기대 있는 사람을 봤다.
- 탕에 들어가기 전 몸을 씻는 건 기본. 수건을 물속에 담그지 않는다.
- 문신이 있으면 대욕장 이용이 제한되는 곳이 있다. 대절탕(가족탕)을 예약하는 쪽이 마음 편하다.
- 안경은 김에 완전히 가려져서 무용지물이 된다. 두고 들어가는 게 낫다.
- 당일 이용 가능 여부와 요금·시간은 숙소마다 다르니 현장 확인 권장.
일본 가정식 백반, 이게 진짜다
유후인에서 화려한 가이세키만 찾을 필요는 없다. 나는 오히려 이런 정식 한 상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붉은 테두리 칠기 쟁반에 무쇠 철판이 통째로 올라오는데, 잘게 썬 닭고기가 아직 기름을 튀기며 지글거린다. 그 위쪽엔 숙주와 양배추, 당근을 볶은 것과 삶은 감자가 곁들여 나온다. 철판 가장자리가 뜨거워서 팔을 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왼쪽 아래 칸에 갈색 소스와 레몬 한 조각이 따로 나온다. 레몬을 짜 넣고 고기를 찍으면 기름진 맛이 확 정리된다. 오른쪽 위 흰 접시는 히야얏코 냉두부인데, 위에 가쓰오부시와 쪽파가 얹혀 있다. 이 두부가 놀라울 정도로 진했다. 콩 냄새가 그대로 살아 있어서 간장 없이 그냥 먹어도 될 정도. 갈색 종지에는 무말랭이와 유부를 조린 반찬, 옆 종지에는 노란 단무지와 오이 절임이 담겨 나왔다. 흰쌀밥은 고봉으로, 미소시루는 미역이 들어간 것.
솔직히 말하면 닭고기는 뒤로 갈수록 조금 짰다. 밥 없이 고기만 계속 집어 먹으면 금세 물린다. 반찬을 번갈아 가며 먹어야 한 상이 끝까지 맛있다. 이런 정식집은 점심시간에 몰리고,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닫는 곳도 있다. 오후 2시 넘어 가면 헛걸음할 수 있다.
킨린코, 비가 오면 오히려 예쁘다
숙소에서 걸어 킨린코(金鱗湖)로 내려갔다. 유후인의 상징 같은 호수인데, 실제로 가보면 생각보다 작다. 한 바퀴 도는 데 천천히 걸어도 15분 남짓. 바닥에서 온천수가 솟아 수온이 높은 탓에 아침저녁 기온이 떨어지면 수면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그 장면을 보려면 이른 아침에 나와야 한다.

비가 오니 관광객이 확 줄어서 오히려 좋았다. 맑은 날 이 호숫가는 셀카봉과 우산 부딪히는 소리로 정신이 없다. 이날은 물이 거울처럼 잔잔했고, 반대편 능선의 삼나무 숲과 늘어진 버드나무가 그대로 비쳤다. 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드는 동심원 말고는 움직이는 게 없었다.

호수 한쪽 데크에서 우산을 받쳐 든 사람이 한참 서 있었다. 파란 우산에 하트 무늬가 찍혀 있었는데, 온통 초록과 회색인 풍경에서 그 파란색만 도드라졌다. 나도 그 자리에 서서 산에 걸린 구름이 옆으로 흘러가는 걸 몇 분 보고 있었다.

물가로 바짝 붙어 들여다보면 바닥이 다 보인다. 수심이 무릎 정도인 구간에는 잠긴 돌과 가라앉은 나뭇가지, 물미나리 같은 수초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 사이로 잉어가 느리게 지나간다. 몸통이 팔뚝만 한 놈들이 회색과 주황색으로 섞여 있었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가 붙어 있으니 눈으로만 봐야 한다.

どんぐりの森, 토토로 기념품은 여기서 챙긴다
유노쓰보 거리 초입에 지브리 굿즈를 파는 どんぐりの森(도토리노모리)가 있다. 기와지붕 아래 나무를 깎아 만든 커다란 간판이 걸려 있고, 지붕 처마 위에 손바닥만 한 하얀 토토로 인형이 하나 올라앉아 있다. 이걸 못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다. 가게 앞에 서서 간판을 찍을 때 처마 쪽을 한번 올려다보길.

입구 왼쪽 좌대에는 사람만 한 검은 토토로와 회색 토토로가 나란히 앉아 있고, 그 옆에 고양이버스 얼굴이 붙어 있다. '七里山行 稲荷前'이라고 적힌 옛날 버스 정류장 표지판을 소품으로 세워둔 것도 재미있다. 오른쪽 격자벽에는 토토로 가방과 포뇨 가방이 걸려 있고, 아래 대야에는 갈색 인형들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가게 오른쪽 매대에는 비누와 작은 세트 상품이 대바구니에 놓여 있다.

내부에는 매장 안에서 사진 촬영을 삼가달라는 안내문이 문 양옆에 일본어와 영어로 붙어 있다. 실제로 직원이 카메라를 든 손님에게 조용히 손짓하는 걸 봤다. 밖에서 찍고 안에서는 눈으로 고르면 된다. 기념품은 부피 작은 걸로 고르는 편이 좋다. 열쇠고리, 손수건, 작은 인형 정도면 캐리어에서 자리를 안 차지한다. 큰 인형은 예쁜데 들고 다니는 내내 후회한다. 나는 그걸 한번 겪어보고 배웠다.
비 오는 날이라 가게 앞 항아리 우산꽂이가 우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무 바닥이 젖어서 미끄러우니 입구 매트에서 신발을 한번 털고 들어가는 게 좋다.
다음에 오면 이렇게 하겠다
유후인은 걸어 다니는 동네다. 유후인역에서 킨린코까지 유노쓰보 거리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20~30분, 군것질하며 들르면 한 시간도 넘게 걸린다. 대부분 오후 5시 전후로 상점가 셔터가 내려가서, 저녁에 도착하면 볼 게 별로 없다. 반대로 아침 8시 전 킨린코는 거의 비어 있다.
비 예보를 보고 일정을 물릴 필요는 없다. 유후다케는 못 봤지만, 사람 없는 호수와 빗속 노천탕은 맑은 날엔 얻기 어려운 그림이다. 대신 방수 되는 신발은 챙겨라. 돌바닥과 계단이 계속 젖어 있어서 천 운동화로는 오후쯤 양말까지 다 젖는다. 나는 그날 저녁 방 히터 앞에 신발을 세워두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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