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칸다에서 찾은 우동집, 키리무기야 진로쿠(切麦や 甚六)에서 텐카케 한 그릇

도쿄에 오면 라멘부터 찾던 버릇을 이번엔 접었다. 칸다 골목, 사무실 빌딩 1층에 흰 노렌 하나만 걸어둔 우동집 키리무기야 진로쿠(切麦や 甚六). 간판이라고 할 만한 게 벽에 붙은 작은 검은 명패 한 장뿐이라, 구글 지도가 "도착"이라고 알려줬는데도 두 번 지나쳤다. 오후 다섯 시 반, 저녁 영업이 막 시작된 시간에 들어…

도쿄 · 키리무기야 진로쿠

도쿄에 오면 라멘부터 찾던 버릇을 이번엔 접었다. 칸다 골목, 사무실 빌딩 1층에 흰 노렌 하나만 걸어둔 우동집 키리무기야 진로쿠(切麦や 甚六). 간판이라고 할 만한 게 벽에 붙은 작은 검은 명패 한 장뿐이라, 구글 지도가 "도착"이라고 알려줬는데도 두 번 지나쳤다. 오후 다섯 시 반, 저녁 영업이 막 시작된 시간에 들어갔다.

빌딩 1층에 흰 노렌이 걸린 진로쿠 입구, 노란 벽에 검은 액자 명패와 나무 벤치, 옆에는 붉은 에비스 맥주 입간판이 서 있다
노렌에 '甚六', 그 아래 작게 Jinroku. 왼쪽 우편함에 4F·5F·8F 표기가 보이는 평범한 사무실 빌딩 1층이다.

입구 왼편에 나무 벤치가 놓여 있다. 저녁 피크에는 여기가 대기줄이 된다는 뜻이다. 벽에 붙은 액자 여섯 개 중 다섯 개는 안쪽이 들여다보이는 작은 창인데, 저녁 조명이 들어오면 노란 벽이 은근히 따뜻해 보인다. 붉은 에비스 입간판이 없었으면 그냥 갤러리인 줄 알았을 것이다.

문 옆 유리 메뉴판부터 읽고 들어가라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 유리 액자에 붙은 일본어 메뉴판을 한 번 읽고 가는 게 낫다. 앉아서 고르면 시간이 걸린다. 찬 우동(冷たいうどん)과 따뜻한 우동(温かいうどん)이 세로쓰기로 갈려 있고, 가격은 600엔대부터 1,200엔까지다. 히야카케 우동 600엔, 자루우동 600엔, 니쿠붓카케 900엔, 텐푸라 우동 1,200엔. 튀김은 종류별로 150엔부터 따로 추가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가게 문 옆 유리 액자에 붙은 일본어 세로쓰기 메뉴판, 냉우동과 온우동 가격이 600엔부터 1200엔까지 적혀 있다
유리 반사 너머로 안쪽 손님이 비친다. 아래쪽에는 면·다시·간장에 대한 가게 설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메뉴판 아래쪽 작은 글씨가 오히려 재미있다. 밀가루에 소금물 농도를 계절마다 달리 맞춘다는 이야기, 다시는 홋카이도 다시마와 세토내해 이리코, 간장은 쇼도시마의 것, 미림은 아이치현 산을 쓴다는 이야기가 손글씨체로 적혀 있다. 영업시간도 여기 붙어 있는데 점심 11시 반부터 16시, 저녁 17시 반부터 23시(라스트오더 22시), 금·토는 더 늦게까지라고 되어 있었다. 다만 이런 건 바뀌기 쉬우니 가기 전 현장이나 최신 정보 확인을 권한다.

영어 메뉴가 따로 있다 — 그리고 카드가 안 된다

자리에 앉으니 영어 메뉴를 따로 내준다. HOT UDON, CHILLED UDON 두 장으로 나뉘어 있고 사진까지 붙어 있어서 일본어를 못 읽어도 고르는 데 문제가 없다. 따뜻한 쪽은 오야코카케(親かけ) 950엔, 텐카케(天かけ) 1,200엔, 카마타마(釜玉) 700엔, 카마아게(釜あげ) 600엔. 카마타마에 명란(멘타마)을 올리면 900엔.

HOT UDON이라고 적힌 영어 메뉴판, 오야코카케·텐카케·카마타마·카마아게 사진과 가격이 적혀 있고 오른쪽 위에 Most popular 별 표시가 있다
따뜻한 우동 메뉴. 텐카케 1,200엔이 'Most popular' 별을 달고 있다.

찬 우동 쪽 메뉴판 맨 아래 적힌 세 줄이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15분쯤 걸릴 수 있다는 것, 사케는 메뉴가 없으니 진열장에서 직접 골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카드가 안 되니 현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 도쿄 도심에서 카드 안 되는 집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계산할 때 알면 곤란해진다. 나는 지갑에 만 엔짜리 하나뿐이었는데 다행히 거스름돈은 잘 나왔다.

CHILLED UDON 영어 메뉴판, 텐자루·오야부·히야카케 사진과 가격, 맨 아래에 15분 소요·사케는 진열장에서 선택·카드 불가 안내가 적혀 있다
찬 우동은 텐자루 1,200엔, 오야부 950엔, 히야카케 600엔. 맨 아래 세 줄을 꼭 읽자.

텐카케 한 그릇 — 국물이 맑아서 놀랐다

텐카케를 시켰다. 나무 트레이에 우동 사발, 튀김 접시, 양념 종지, 나무 숟가락이 각자 자리를 잡고 나온다. 젓가락 봉투에도 가게 로고와 Jinroku가 찍혀 있다. 국물이 간사이식으로 맑을 줄 알았는데 색은 생각보다 진한 갈색이었고, 마셔보니 짜지 않다. 간장 색만 진하고 맛은 이리코 계열의 감칠맛이 앞에 온다. 첫 숟가락에서 나온 건 짠맛이 아니라 마른 생선 향이었다.

나무 트레이에 담긴 텐카케 우동 한 상, 갈색 국물 우동 사발과 새우·채소 튀김 접시, 생강과 유자껍질 종지, Jinroku 로고가 찍힌 젓가락 봉투
파와 가쓰오부시를 올린 우동, 옆 접시에 새우·호박·차조기 튀김. 왼쪽 종지에는 간 생강과 유자껍질 가루.

왼쪽 작은 종지에 간 생강과 노란 유자껍질 가루가 나뉘어 담겨 나온다. 처음부터 다 넣지 말고 반쯤 먹은 뒤에 생강을 풀어보길 권한다. 국물 인상이 확 바뀐다. 유자껍질은 아주 조금만.

면을 들어올리면 알게 되는 것

면을 젓가락으로 들어올렸을 때 이 집을 인정하게 됐다. 사누키식처럼 각이 딱 잡힌 굵은 면이 아니라, 단면이 살짝 눌린 넓적한 형태다. 국물 밖으로 꺼내도 축 늘어지지 않고 자기 형태를 유지한다. 씹으면 처음 한 번 저항이 왔다가 툭 끊긴다. 표면은 미끄럽고 안쪽은 단단하다. 목넘김이 좋다는 말을 이렇게 쓰는구나 싶었다.

젓가락으로 국물에서 들어올린 굵고 넓적한 우동 면, 뒤쪽 테이블에는 대나무 소쿠리에 담긴 찬 우동과 튀김 접시가 놓여 있다
면을 들어올린 순간. 뒤쪽은 일행이 시킨 텐자루, 대나무 소쿠리에 찬 면이 가지런히 담겨 나온다.

일행은 찬 우동인 텐자루를 시켰는데, 한 젓가락 얻어먹어 보니 찬 쪽이 면의 탄력을 더 정직하게 보여준다. 두 명이 가면 하나는 따뜻한 것, 하나는 찬 것으로 나누는 편이 낫다. 가게 인테리어는 밝은 나무 의자와 나무 테이블에 조명은 낮은 편, 옆 테이블 대화가 다 들릴 만큼 조용하다. 시끌벅적한 이자카야를 기대하고 가면 어리둥절할 수 있다.

튀김은 갓 튀겨 나온다

튀김 접시를 보면 이 집이 왜 15분이 걸린다고 미리 써놨는지 알 수 있다. 새우 튀김을 집어 들었을 때 반죽 옷이 얇고 하얗다. 튀김옷 안으로 새우 살의 붉은 줄이 그대로 비친다. 씹으면 바삭 소리가 크지 않고 사각거리는 정도인데, 대신 기름이 전혀 무겁지 않다. 접시 위 종이에 기름 자국이 거의 안 남았다.

젓가락으로 집어 든 얇은 튀김옷의 새우튀김, 접시에는 호박과 가지 튀김이 남아 있고 뒤쪽에 도자기 술병과 찻잔이 놓여 있다
튀김옷 사이로 새우 살이 비친다. 뒤편 파란 무늬 도쿠리와 찻잔, 물잔이 함께 놓인 상차림.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새우가 아니라 차조기(시소) 튀김이었다. 잎 한 장을 통째로, 그것도 한쪽 면에만 얇게 튀김옷을 입혀 튀겼다. 뒤집어 보면 초록 잎맥이 그대로 살아 있다. 입에 넣으면 튀김의 고소함보다 시소 특유의 알싸한 향이 먼저 온다. 우동 국물 한 모금 사이에 이걸 끼워 먹으면 입이 정리된다.

젓가락으로 든 차조기 잎 튀김, 톱니 모양 잎 가장자리와 초록 잎맥이 얇은 튀김옷 너머로 그대로 보인다
차조기 튀김. 뒤쪽 파란 무늬 종지에 담긴 잘게 썬 파는 우동에 추가로 넣으라고 나온 것이다.

가기 전에 챙길 것

칸다 일대는 저녁이면 퇴근한 회사원들이 몰려 어느 집이든 대기가 생긴다. 6시 전에 들어가거나, 저녁 8시 넘겨 한 번 빠진 뒤를 노리는 게 낫다. 나는 다음에 오면 카마아게 600엔에 튀김 두어 개만 추가해서 먹어볼 생각이다. 이 집 면이라면 국물 없이 그냥 삶은 채로 먹는 쪽이 더 정직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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