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국립박물관(Museum Nasional Indonesia), 코끼리 박물관에서 반나절을 버틴 기록
메르데카 광장 서쪽, Jl. Medan Merdeka Barat에 흰 신고전 건물 하나가 낮게 깔려 있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현지 사람들은 앞마당의 청동 코끼리 때문에 지금도 Museum Gajah라고 부른다. 자카르타에 올 때마다 모나스만 찍고 지나갔는데, 이번엔 오후를 통째로 비웠다. 결과부터 말하면 두 시간으로…
자카르타 · Museum Nasional Indonesia
메르데카 광장 서쪽, Jl. Medan Merdeka Barat에 흰 신고전 건물 하나가 낮게 깔려 있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현지 사람들은 앞마당의 청동 코끼리 때문에 지금도 Museum Gajah라고 부른다. 자카르타에 올 때마다 모나스만 찍고 지나갔는데, 이번엔 오후를 통째로 비웠다. 결과부터 말하면 두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다.

도착한 게 늦은 오후였다. 앞마당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로 해가 유리 캐노피에 걸려 있었고, 뒤쪽에는 흰 기둥의 구관과 회색 신관이 어색하게 붙어 있다. 이 어색함이 이 박물관의 성격이다. 200년 넘은 컬렉션과 최근에 손본 전시 동선이 한 건물 안에 섞여 있다.
흰 기둥 회랑과 안뜰 — 여기서 체력 배분을 결정하라
표를 끊고 들어가면 먼저 만나는 게 사각 안뜰이다. 도리아식 흰 기둥이 사방을 두르고, 회랑 아래로 석상들이 죽 늘어서 있다. 잔디와 석판을 체크무늬로 깐 바닥 위에 히잡 쓴 커플이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삼각대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오후 네 시쯤이면 이 마당은 반쪽이 그늘이다. 그늘 쪽 회랑 벤치가 자카르타 도심에서 드물게 시원한 자리다.

신관 쪽으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유리 천창이 길게 뚫린 아트리움인데, 콘크리트 기둥과 흰 덕트가 그대로 노출돼 있어 미술관보다 공항 터미널에 가깝다. 바닥 회색 타일이 발소리를 크게 되받아친다. 여기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이 늘 몇 있다.

석상 홀 — 자바 힌두·불교 조각이 몰려 있는 구역
구관 큰 홀은 나무 바닥에 흰 기둥이 늘어선 긴 방이다. 벽을 따라 작은 석상들이 도열해 있고, 한가운데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상 하나가 서 있다. 받침에 해골이 나란히 다섯 개 조각돼 있어서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명판에는 Bhairawa Buddha, 유물번호 6470. 불교 존상이 해골 위에 서 있다는 조합이 낯설어서 한참 봤다.

같은 홀 안쪽에 앉아 있는 가네샤가 있다. 명판에 중부 자바 마글랑의 Candi Banon 출토, 9세기라고 적혀 있었다. 코가 왼쪽 손 쪽으로 늘어지고 네 팔이 벌어진 형태인데, 받침 아래에 간접조명을 넣어놔서 화산암 특유의 거친 표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옆에서 사람이 지나가야 크기가 실감난다. 앉은 상인데도 어른 키만 하다.

조명을 완전히 죽인 검은 방에도 석상이 몇 점 따로 놓여 있다. 마하칼라 상은 배 나온 몸에 몽둥이를 짚고 서 있는데, 명판에 힌두 사원 정문 왼쪽 감실에 놓이던 상이라고 설명돼 있었다. 사진 찍기는 최악이다. 손전등 조명 두 개로 정면만 때려서 얼굴에 그림자가 깊게 진다. 나는 세 번 다시 찍었고 그래도 눈두덩이 새까맣게 나왔다.

바로 옆에는 난디 석상이 웅크리고 있다. 시바의 탈것인 황소인데, 목에 늘어뜨린 방울 줄까지 돌로 파놨다. 검은 벽 곡면을 따라 놓여 있어서 뒤로 물러설 공간이 거의 없다. 전신을 담으려면 벽에 등을 붙이고 세로로 찍어야 한다.

동선 끝에 원형 방이 하나 있다. 벽에 Janji untuk Ibu Pertiwi(A Nation's Vow to Mother Earth)라는 글이 인도네시아어와 영어로 나란히 적혀 있고, 그 앞 흰 좌대에 석상 하나, 오른쪽에 붉고 흰 국기가 늘어져 있다. 벽 글은 1945년 헌법과 'Bhinneka Tunggal Ika'(다양성 속의 통일) 이야기다. 유물 사이를 두 시간 헤매다 이 방에 들어서면 톤이 갑자기 바뀐다. 조명이 어둡고 소리가 죽어서, 실제로 사람들이 여기서 말을 낮췄다.

가면, 문서, 램프 — 놓치기 쉬운 작은 것들
큰 석상에 눈이 팔리면 유리장 안쪽을 그냥 지나치게 된다. 발리 가면 두 점이 나란히 놓인 케이스가 그렇다. 왼쪽은 Topeng Gebogan, 불꽃 모양 관을 쓴 흰 얼굴이고, 오른쪽은 Topeng Bondres, 얼굴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잡히고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명판에 Bondres는 우스운 인물을 연기할 때 쓰는 가면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 얼굴을 한 케이스에 넣은 게 이 방에서 제일 재미있는 배치였다.

길게 뻗은 유리 진열대 하나는 통째로 두루마리 한 점을 위한 것이다. 누런 종이에 보라색 테두리 장식이 반복되고, 그 안에 빽빽한 필사 글씨가 들어차 있다. 끝에는 두루마리를 담던 노란 통이 함께 놓여 있다. 진열대 길이가 대충 성인 서너 명 누울 만큼이고, 두루마리는 그 중간까지 펼쳐져 있다. 유리에 조명이 그대로 반사돼서 정면에서 찍으면 하얗게 날아간다. 옆에서 비스듬히 찍어야 글씨가 잡힌다.

램프만 모아놓은 방도 있다. 'PENDAR'라는 제목이 붙은 기획 전시로, 목조 천장 아래 유리 상자 안에 유리 갓 달린 샹들리에가 걸려 있고 그 아래 낮은 좌대마다 놋쇠 오일램프가 하나씩 놓여 있다. 설명판 왼쪽은 Blencong: Cahaya Wayang di Layar Kelir(와양 스크린을 밝히는 빛), 오른쪽은 신화 속 동물 모양 걸이 램프 이야기다. 와양 그림자극에서 스크린을 밝히던 등잔이 실물로 여러 개 늘어서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조도가 아주 낮아서 눈이 적응하는 데 1분쯤 걸린다.

유물번호 25349가 찍힌 목조 인물상은 유리장 반사가 심해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릇 같은 걸 두 손으로 감싸 쥔 상인데, 유리에 박물관 안뜰과 흰 기둥, 지나가는 사람들이 겹쳐 비친다. 케이스 옆에 놓인 주황색 조화 잎이 화면 오른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빼고 찍을 방법이 없어서 그대로 뒀다.

황금빛 벽 앞의 목조 조상(祖像)들
구관 한쪽에 짚을 엮은 듯한 황금색 벽면을 세워두고 큰 목조상을 세워둔 구역이 있다. 검게 그을린 나무에 도끼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들이다. 하나는 아이를 가슴 앞에 안은 여성상. 챙 넓은 모자 같은 머리 장식을 하고 정면을 응시하는데, 아이의 얼굴 크기가 어른 몸에 비해 지나치게 커서 눈이 그쪽으로 끌린다.

맞은편에는 뾰족한 모자를 쓰고 지팡이 같은 걸 두 손으로 짚은 남성상이 서 있다. 콧수염과 벌린 입 때문에 표정이 묘하게 살아 있다. 그 뒤 열린 문 너머로 조각이 빽빽한 붉은 목재 기둥이 보이고, 파란 벽의 다음 방이 이어진다. 바닥에는 벨트 차단봉이 쳐져 있어 가까이는 못 간다.

깜깜한 방 두 곳 — 화석과 인류
선사 구역은 조명을 거의 끈 방이다. 벽 전체에 초원 그림을 투사해두고, 그 앞에 스테고돈으로 보이는 코끼리류 골격을 세워놨다. 엄니가 앞으로 길게 휘어 나와 있고, 옆에는 코뿔소류 골격과 뿔 달린 두개골 몇 점이 낮은 대 위에 흩어져 있다. 앞쪽 좌대에는 거북 등딱지 화석, 커다란 조개 화석, 둥근 돌 같은 표본이 놓여 있다. 아이들이 제일 오래 붙어 있던 곳이다.

그 옆 유리 케이스에 실물 크기 인류 복원 모형이 서 있다. 이마가 낮고 눈두덩이 앞으로 튀어나온 얼굴이 손을 턱에 댄 채 관람객 쪽을 보고 있다. 뒤쪽 케이스에는 Homo erectus 두개골과 이빨 화석 사진이 붙은 설명판이 있었다. 모형 표면 질감을 피부처럼 만들어놔서, 어두운 방에서 갑자기 마주치면 흠칫한다. 나는 실제로 한 발 물러섰다.

어두운 방의 그림 한 점
완전히 깜깜한 방 가운데 커다란 종이 그림 한 점만 조명을 받고 걸려 있었다. 야자수와 바위산 아래, 발리식 촛대문(candi bentar)과 사원 지붕이 있고, 그 앞 벌판에서 창과 크리스를 든 사람들과 소총을 든 군인들이 뒤엉켜 있다. 쓰러진 사람, 달려드는 여성, 깃발을 든 인물이 한 화면에 다 들어가 있다. 종이 윗부분에 갈색 얼룩이 번져 있는데, 보존 상태를 굳이 감추지 않고 그대로 걸어둔 게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방에 이 그림 하나뿐이라 다들 오래 서 있다.

가는 법과 실제로 도움 되는 것들
위치는 메르데카 광장 서편 도로변이다. MRT 자카르타 남북선을 타면 Monas역이나 Bundaran HI역에서 내려 걸어갈 만하고, TransJakarta 버스로도 광장 서쪽에 바로 선다. Grab이나 Gojek을 부르면 정문 앞 로터리까지 들어오는데, 퇴근 시간대 메단 메르데카 바랏은 거의 서 있다. 나는 3km 남짓 거리를 30분 넘게 앉아서 왔다. 오후 4시 이후에 이 도로로 진입하는 건 피하는 게 낫다.
실제로 겪어보고 정리한 것들:
- 구관 석상 홀은 창이 커서 밝지만, 램프 전시와 선사 전시는 상당히 어둡다. 밝은 방과 어두운 방을 번갈아 다니면 눈이 피로해진다. 어두운 구역끼리 묶어서 도는 편이 낫다.
- 플래시 금지 표시가 붙은 유물이 여럿이다. 명판 옆 아이콘을 확인하고 찍으면 된다. 손 대지 말라는 표시도 같이 붙어 있다.
- 명판 상당수에 QR 코드가 있어 스캔하면 더 긴 설명이 나온다. 인도네시아어와 영어 병기, 한국어는 없다.
- 바닥이 대부분 딱딱한 나무와 석재다. 슬리퍼보다 운동화를 권한다. 나는 슬리퍼로 갔다가 두 시간 만에 발바닥이 얼얼했다.
- 안뜰 회랑과 신관 아트리움 벤치가 쉬기 좋다. 물은 미리 챙겨 들어가는 게 편하다.
- 입장료와 운영 시간, 월요일 휴관 여부는 시기에 따라 바뀌니 방문 전 현장 또는 공식 채널 확인을 권한다. 내가 본 금액을 그대로 적기엔 변동이 잦다.
두 시간 반을 돌고 나왔는데 못 본 방이 남았다. 화산암 가네샤와 해골 받침 위의 상, 발리 가면 두 점, 램프 방의 낮은 불빛. 다시 온다면 램프 방과 선사 구역만 놓고 처음부터 천천히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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