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글로독 차이나타운, 호박 반죽으로 빚는 Gold Dragon Coffee의 고기찐빵

글로독(Glodok)은 자카르타 서부의 오래된 중국계 상권이다. 금은방과 약재상, 휴대폰 부품 가게가 뒤엉킨 골목을 지나 Pasar Glodok Barat 쪽으로 들어가면 길가에 하늘색 바탕에 빨간 글씨로 GOLD DRAGON COFFEE라고 쓴 간판이 걸려 있다. 오토바이가 인도까지 밀고 들어와 서 있고, 입구 앞 노란…

자카르타 · Glodok Chinatown Market - Gold Dragon Coffee

글로독(Glodok)은 자카르타 서부의 오래된 중국계 상권이다. 금은방과 약재상, 휴대폰 부품 가게가 뒤엉킨 골목을 지나 Pasar Glodok Barat 쪽으로 들어가면 길가에 하늘색 바탕에 빨간 글씨로 GOLD DRAGON COFFEE라고 쓴 간판이 걸려 있다. 오토바이가 인도까지 밀고 들어와 서 있고, 입구 앞 노란 빗금 주차선 위로 스쿠터 두 대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왔을 때는 여기가 카페인지 식당인지 구분이 안 갔다. 간판은 커피집인데 앞에 세운 칠판에는 Vietnam Drip, Americano, Kopi Susu Aren 같은 커피 메뉴가 적혀 있고, 오른쪽 배너에는 Ayam Goreng과 Choi Pan Singkawang이 그려져 있다.

해질 무렵 촬영한 Gold Dragon Coffee 외관. 하늘색 바탕에 빨간 글씨 간판, 빨간 등롱, 입구 앞에 세워진 스쿠터 두 대와 FAV MENU 칠판
칠판에 적힌 FAV MENU에 Vietnam Drip, Americano, Kopi Susu Aren이 손글씨로 적혀 있다.

안쪽이 생각보다 깊다

입구만 보면 좁아 보이는데 들어가면 홀이 길게 안쪽으로 뻗어 있다. 왼쪽이 계산대와 진열장, 오른쪽이 나무 테이블 열이고, 천장에는 실링팬이 세 대쯤 돌아간다. 에어컨은 없다. 8월 말 저녁 다섯 시 반, 팬 바람이 닿는 자리를 골라 앉았는데도 셔츠가 등에 붙었다. 바닥은 회색 대리석 타일이라 겉보기엔 말끔한데 냉장고와 물통이 통로에 그냥 나와 있고, 계산은 태블릿 POS로 받는다. 앞사람이 QR로 결제하는 걸 보고 나도 카드를 냈다.

가게 내부. 왼쪽 계산대에서 손님이 휴대폰으로 결제 중이고 오른쪽으로 나무 테이블이 길게 늘어서 있으며 천장에 실링팬이 달려 있다
홀이 안쪽으로 길다. 에어컨 없이 실링팬으로 버티는 구조.

안쪽 벽에는 금색 용이 새겨진 큰 접시와 함께 金龍 두 글자가 걸려 있고, 그 아래 나무 선반에 원두 통이 줄지어 있다. 통마다 라벨과 가격이 붙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Signature Blend Gold Dragon이 500g에 Rp55,000, Arabika Natural Organic과 Arabika Honey Organic이 각각 Rp50,000, Arabika Gayo가 Rp40,000, Robusta Natural Pagar Alam과 Robusta Mega Mendung이 Rp40,000, Pea Berry(Lanang)가 Rp60,000. 인도네시아 각 산지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게 이 집 성격을 말해준다. 원두를 사가려면 여기서 무게 달아 담아준다.

금색 용 장식 접시와 金龍 Gold Dragon Coffee 사인 아래 나무 선반에 놓인 원두 보관 유리병들. 병마다 산지 이름과 가격 라벨이 붙어 있다
Gayo, Pagar Alam, Mega Mendung, Bajawa Flores… 산지별 원두를 500g 단위로 판다.

계산대 옆에 호박이 쌓여 있는 이유

검은 대리석에 금색으로 로고를 박은 벽 앞, 계산대 위에 늙은 호박이 열 몇 덩이 쌓여 있다. 장식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이 집 찐빵 반죽에 호박이 들어간다. 그래서 빵 색이 그렇게 노랗다.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재료를 그냥 쌓아둔 것이고, 그게 이 가게에서 제일 정직한 광고였다.

검은 대리석 벽의 금색 커피잔 로고와 金龍 Gold Dragon Coffee 글자 앞, 계산대 위에 늙은 호박이 여러 덩이 쌓여 있는 모습
반죽에 쓰는 호박을 계산대 위에 그대로 쌓아뒀다.

주문은 계산대 옆 유리 진열장을 보고 하면 된다. 비닐 포장된 찐빵이 종류별로 칸을 나눠 놓여 있고 앞에 라벨이 꽂혀 있다. 내가 본 칸은 Kacang Merah(红豆 / RED BEAN)였고, 옆으로 색이 다른 것들이 더 있었다. 인도네시아어를 모르면 라벨의 영어 병기를 보면 된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것은 메뉴에 Babi로 표기되니 돼지를 피해야 하는 분은 이 단어만 기억하면 된다. 글로독은 중국계 상권이라 돼지고기를 쓰는 집이 흔하다.

유리 진열장 안에 비닐 포장된 노란 찐빵들이 종류별로 놓여 있고 앞에 Kacang Merah RED BEAN 이라고 적힌 라벨이 꽂혀 있다
라벨에 인도네시아어·중국어·영어가 함께 적혀 있어 고르기 쉽다.

가는 법

영수증에 찍힌 주소는 Jln. Pasar Glodok Barat No 58A, Glodok, Kota Jakarta Barat, DKI Jakarta 11120. Glodok 역(트랜스자카르타·MRT)에서 내려 Pancoran 쪽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면 되는데, 이 일대는 일방통행과 노점이 많아서 차로 진입하면 오히려 고생한다. Grab 오토바이를 타고 큰길에서 내린 뒤 걸어 들어가는 편이 빠르다. 저녁에는 골목이 어둡고 인도가 좁으니 가방은 앞으로 메는 게 좋다.

내 추천은 고기찐빵

여러 개 먹어봤지만 다시 온다면 무조건 고기찐빵부터 시킨다. 영수증에 Pumpkin Pao Babi로 찍히는 그것이다. 종이 상자에 하나씩 담아 주는데, 뚜껑을 열면 김이 확 올라오면서 호박 냄새가 먼저 온다. 겉면은 매끈하고 눌러보면 손가락 자국이 남을 만큼 부드럽다.

종이 상자를 열면 나오는 매끈한 노란색 호박 찐빵 한 개. 옆에 빨간 비닐봉지가 놓여 있다
갓 쪄서 나온 호박 찐빵. 상자 뚜껑 안쪽에 김이 서려 있다.

반으로 갈랐더니 속이 꽉 차 있었다. 다진 돼지고기에 하얗게 각진 무 조각 같은 것이 섞여 있고 기름이 배어 나온다. 간이 세지 않고 단맛이 은은하게 도는데, 그 단맛이 소스가 아니라 호박 반죽에서 오는 것 같았다. 고기는 퍽퍽하지 않고 씹으면 육즙이 살짝 배어 나온다. 한 입 먹고 바로 "이건 하나 더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하나 더 시켰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반으로 가른 노란 호박 찐빵의 단면. 안에 다진 돼지고기와 흰색 각진 재료가 기름과 함께 꽉 차 있다
고기찐빵 단면. 소가 얇게 깔린 게 아니라 두툼하게 들어 있다.

고기 말고 단 것도 하나 집었다. 꽃잎처럼 주름을 잡아 빚은 모양이라 진열장에서 눈에 띈다. 껍질을 벌리면 새까만 소가 나온다. 팥보다 훨씬 검고 입자가 곱게 갈려 있어서 고소한 쪽에 가까웠다. 달기는 한국 찐빵 팥소보다 덜하다. 고기 하나 먹고 이걸 이어서 먹으니 입가심이 됐다.

종이 상자 안에 담긴, 꽃잎처럼 주름을 잡아 빚은 노란 찐빵 한 개
주름을 잡아 빚은 모양. 손으로 하나씩 빚는 티가 난다.
꽃 모양 찐빵을 손으로 벌린 단면. 안에 새까맣고 곱게 간 소가 들어 있다
속은 새까맣고 곱게 갈린 소. 팥보다 고소한 맛이 강했다.

커피는 Kopi Susu Dingin

이름은 커피집이니 커피도 시켜야 한다. 나는 Kopi Susu Dingin(아이스 밀크커피)을 골랐고 우유는 Fresh Milk로 했다. 추가금은 없었다. 플라스틱 컵에 담아 검은 빨대를 꽂고 비닐봉지까지 씌워서 준다. 인도네시아 로컬 가게에서 흔한 포장 방식인데, 테이블에서 마실 거라고 해도 봉지는 그대로 나온다. 맛은 로부스타 특유의 묵직한 쓴맛이 앞에 오고 우유가 그 뒤를 받친다. 단맛이 강한 kopi susu를 기대했다면 조금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다. 기름진 고기찐빵과 같이 먹기에는 이 정도가 맞았다.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아이스 밀크커피. 투명 플라스틱 컵에 검은 빨대가 꽂혀 있고 컵 아래에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다
Kopi Susu Dingin. 비닐봉지째 나오는 게 이 동네 기본값이다.

커피 만드는 자리는 계산대 뒤쪽 스테인리스 바다. 가려놓지 않아서 그대로 보인다. 스테인리스 찜통 두 개가 불 위에 올라가 있고, 손잡이 긴 구리 주전자와 낡은 커피포트가 나란히 있다. Nestlé Carnation 연유 캔이 작업대 위에 그냥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아까 본 호박이 굴러다닌다. 카페라기보다 오래 장사해온 동네 부엌에 가깝다. 이런 게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찜통에서 빵이 바로 나오는 걸 눈으로 보는 쪽이 좋다.

스테인리스 조리대 뒤로 찜통 두 개가 불 위에 올려져 있고 구리 주전자, 커피포트, 연유 캔, 호박이 놓인 주방 모습.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서 있다
찜통과 구리 주전자가 나란히 있는 작업대. 오른쪽 아래 호박이 보인다.

얼마 나왔나

계산서에 찍힌 금액은 이렇다.

한화로 4천 원이 조금 넘는다. 자카르타 시내 체인 카페에서 아이스 라떼 한 잔 값이면 여기서는 커피에 찐빵까지 먹는다. 다만 글로독 골목의 로컬 노점 기준으로 보면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찐빵 하나에 Rp25,000이면 근처 나시 고렝 한 접시 값과 비슷하다. 호박 반죽에 소를 두툼하게 넣은 값이라고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Gold Dragon Coffee 영수증. Pumpkin Pao Babi Rp25,000, Kopi Susu Dingin Rp20,000, 합계 Rp45,000이 인쇄되어 있다
영수증에 주소와 전화번호가 그대로 찍혀 있어 다시 찾아가기 편하다.

가격과 영업시간은 바뀔 수 있으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내가 앉았던 시각은 오후 다섯 시 반이었고 그때는 자리가 넉넉했다. 다음에 오면 칠판에 적혀 있던 Vietnam Drip을 시켜서 고기찐빵 두 개랑 같이 앉아 있을 생각이다. 포장해 갈 거라면 갓 찐 걸 달라고 하고, 식으면 반죽이 눌리니 늦어도 30분 안에는 먹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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