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독 파초란 아치 아래에서 페탁 에남까지, 자카르타 차이나타운 저녁 세 시간
자카르타 코타 투아에서 남쪽으로 걸어 내려오면 도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회색 석조 패방이 나온다. "SELAMAT DATANG — KAWASAN GLODOK PANCORAN — CHINATOWN JAKARTA".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도착했더니 하늘이 주황에서 회보라로 바뀌는 중이었고, 아치 아래 인도에는 나시 우둑(Na…
자카르타 · Glodok Chinatown Market
자카르타 코타 투아에서 남쪽으로 걸어 내려오면 도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회색 석조 패방이 나온다. "SELAMAT DATANG — KAWASAN GLODOK PANCORAN — CHINATOWN JAKARTA".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도착했더니 하늘이 주황에서 회보라로 바뀌는 중이었고, 아치 아래 인도에는 나시 우둑(Nasi Uduk) 수레가 자리를 잡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안전모 쓴 노동자, 퇴근길 회사원, 사진 찍는 관광객이 같은 수레 앞에 서 있는 그림. 글로독은 이렇게 층이 섞이는 동네다.

여기 처음 오는 사람이 흔히 하는 실수가 낮에 오는 것이다. 자카르타 한낮은 습도가 사람을 짓눌러서, 지붕 없는 골목을 30분 걷고 나면 그날 일정이 끝난다. 오후 4시 반쯤 도착해 해질 때까지 골목을 훑고, 어두워지면 실내 푸드코트로 들어가는 순서가 몸이 편하다.
파사르 글로독 골목 — 과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큰길에서 한 블록만 안으로 들어가면 양철 지붕과 파란 천막이 얼기설기 이어진 재래시장 골목이 시작된다. 전구 하나씩 매단 노점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바닥은 물기가 남아 미끄럽다. 슬리퍼보다 밑창 있는 신발을 권한다.

노란 껍질 용과는 흔한 빨간 것보다 훨씬 달다. 상자 앞에 놓인 자주색 망고스틴 무더기는 껍질이 딱딱하게 마른 것보다 손가락으로 눌러 살짝 들어가는 걸 골라야 안이 멀쩡하다. 시장 상인들은 대체로 kg 단위로 부르는데, 가격표를 안 붙인 곳이 많다. 사기 전에 "berapa satu kilo?"라고 물어보고, 옆 가게 두어 곳 값을 들어본 뒤 정하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현금이 편하다. 큰 지폐를 내면 거스름돈이 없다며 시간이 걸리므로 2만·5만 루피아 지폐를 미리 쪼개두는 게 낫다.

이 골목은 과일만 파는 게 아니다. 스테인리스 냄비, 국자, 채반이 벽면 가득 걸린 구간이 따로 있고, 붉은 등롱이 낮게 늘어져 키 큰 사람은 머리를 스친다. 해가 지면 조명이 노점 전구뿐이라 사진이 어둡게 나온다. 이 시간대 골목 사진은 노출을 올려도 잘 안 살아서, 눈으로 보는 편이 낫다고 결론 냈다.
커피와 초이판 — 싱카왕 사람들이 가져온 맛
골목 어귀에 하늘색 바탕에 빨간 글씨로 'GOLD DRAGON COFFEE'라 쓴 간판이 걸려 있다. 안쪽 카운터에 金龍(금룡) 로고가 붙어 있고, 입구 칠판에 손글씨로 FAV MENU가 적혀 있다. Es Kopi, Vietnam Drip, Americano, V60 Long, V60 Honey, V60 Luwak, Kopi Susu Aren. 자카르타 커피 물가가 이 동네에서는 확실히 싸다. 옆에 세워둔 배너에는 Ayam Goreng(닭튀김)과 Choi Pan Singkawang이 그려져 있었다.

초이판은 서칼리만탄 싱카왕 화교의 음식인데 글로독에서 흔하다. 저녁 무렵 길가에 나온 'SUHU' 붉은 포장마차가 그 대표 격이다. 메뉴 사진판에 가격이 큼직하게 붙어 있어서 값 물어볼 필요가 없다. 초이판 고렝(튀긴 것) 3가지 맛 35K, 초이판 쿠쿠스(찐 것) 3가지 맛 33K, 체 훈 티아우 26K, 콜락 폰티아낙 22K. 루피아 K는 천 단위라 3만 5천 루피아, 우리 돈으로 삼천 원대다.

찐 초이판은 반투명 피 안에 무말랭이와 새우 부스러기가 들어 있고, 위에 튀긴 마늘을 잔뜩 뿌려준다. 마늘 향이 먼저 오고 씹으면 무 단맛이 난다. 튀긴 쪽은 바닥만 지져서 눌은 면이 고소한데, 두 개 먹으면 배가 찬다. 매대 아래 스티커에 ShopeeFood·GrabFood·GoFood 로고가 붙어 있는 걸 보고 웃었다. 포장마차도 배달을 한다.
마르타박 텔로르 수레 앞에서
화교 음식만 있는 동네는 아니다. 'MARTABAK TELOR'라 쓴 손수레 앞에 줄이 섰길래 따라 섰다. 아저씨가 철판 위에서 얇게 편 반죽에 계란과 다진 파를 넣고 접어서 지지는데, 뒤집개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쉬지 않고 움직인다. 계란 부치는 냄새와 기름 냄새가 골목 끝까지 간다.

같이 주는 절임 오이 국물이 관건이다. 기름진 걸 한 입 먹고 오이를 씹으면 입이 정리된다. 나는 처음 왔을 때 이걸 안 받고 그냥 먹다가 반쯤에서 물렸다. 받아서 부어 먹는 게 맞다. 뜨거울 때 아니면 맛이 확 떨어지니 사서 걸어가며 먹지 말고 그 자리에서 해치우는 게 낫다.
페탁 에남 — 시장 위에 얹힌 푸드코트
글로독의 낡은 시장 골목과 페탁 에남(Petak Enam)의 온도 차가 이 동네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다. 판토 글로독 옆 찬드라 빌딩 안에 들어선 이 푸드코트는 파란 네온 간판을 달고 있고, 입구에 서면 안쪽에서 등롱 수백 개가 매달린 통로가 보인다. 방문한 날은 붉은 현수막에 'DIRGAHAYU REPUBLIK INDONESIA 81'이라 적혀 있었다.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8월 17일) 전후였다.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이 높다. 철골 트러스에 대형 실링팬이 돌고, 전구 줄이 사선으로 걸려 있다. 에어컨은 없는데 팬이 워낙 커서 앉아 있으면 견딜 만하다. 2층 난간에는 純生(순생) 맥주 배너가 세로로 걸려 있고, 아래층에는 붉은 열매를 매단 인공 매화나무가 서 있다. 평일 저녁인데도 테이블은 거의 다 찼다. 가족 단위가 압도적으로 많고, 병맥주를 놓고 두세 시간 앉아 있는 아저씨들 테이블이 곳곳에 있다.

자리 잡는 요령이 하나 있다. 여기는 음식을 받은 뒤 자리를 찾는 구조라 혼잡한 시간에 접시를 들고 헤매기 십상이다. 일행이 있으면 한 명이 먼저 테이블을 잡고 나머지가 주문하러 흩어지는 게 낫다. 혼자면 가장자리 바 자리를 노리는 편이 빠르다.
접근은 어렵지 않다. 트란스자카르타 글로독(Glodok) 정류장에서 내리면 패방까지 도보 몇 분이고, MRT 코타 방면에서 걸어와도 된다. 다만 이 일대는 오토바이가 인도까지 올라오므로 걸을 때 뒤를 한 번씩 확인해야 한다. 저녁 퇴근 시간에 차로 진입하면 도로에 갇힌다. 나는 그랩 차량을 불렀다가 300m 가는 데 20분 걸린 적이 있어서, 그 뒤로는 큰길에서 내려 걸어 들어간다.
해 지고 나면 무대가 열린다
페탁 에남 중앙 광장에서 저녁에 공연이 있다. 계단식 관람석에 사람들이 앉고, 아래 무대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사이 관객 중 몇 분이 나와 춤을 춘다. 무용단이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이다. 주황색 상의에 흰 치마, 빨간 구두를 신은 분들이 박자에 맞춰 줄지어 스텝을 밟는데, 계단에 앉은 관객들은 휴대폰을 들고 찍거나 그냥 구경한다.

공연을 앉아서 보고 싶으면 오른쪽 테이블 구역을 노려야 하는데, 붉은 테이블 위에 'MEJA VIP RESERVED' 표지가 놓인 자리가 섞여 있다. 그냥 앉으면 직원이 와서 비켜달라고 한다. 계단에 앉는 건 자유다.
마지막 사진 한 장은 골목 어귀 풍경이다. 이 동네를 걷다 보면 결국 다시 이 좁은 통로로 돌아오게 된다.
다녀와서 정리한 것
- 오후 4시~4시 반 도착 → 시장 골목 → 해 지면 페탁 에남. 이 순서가 체력 소모가 제일 적다.
- 현금 필수. 시장 노점은 QRIS를 안 받는 곳이 아직 많다.
- 바닥이 젖어 있다. 밑창 있는 신발.
- 인도까지 오토바이가 다닌다. 사진 찍을 때 뒤를 살필 것.
- 영업시간은 층·점포마다 다르다. 입구 안내판을 한 번 읽고 들어가는 게 낫다.
글로독은 정돈된 관광지가 아니다. 시장 골목의 습기와 푸드코트의 등롱이 백 미터 안에 붙어 있고, 그 사이를 나시 우둑 수레와 마르타박 철판이 채운다. 저녁 세 시간이면 그 낙차를 다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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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 Harmonie Exchange - Ta 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