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Bakmi Gang Kelinci, 아침 8시 58분에 6만 2천 루피아 쓰고 온 기록

자카르타 중심가 Jl. Kelinci Raya. 파사르 바루(Pasar Baru) 뒤편 골목에 있는 이 국수집은 1957년부터 자리를 지켰다는 간판을 달고 있다. 인도네시아 화교식 국수, 그러니까 박미(bakmi)를 먹으러 가는 집인데 나는 이번에 아침으로 갔다. 오전 8시 조금 넘어 도착했더니 앞 골목에서 아저씨 둘이…

자카르타 · Bakmi Gang Kelinci

자카르타 중심가 Jl. Kelinci Raya. 파사르 바루(Pasar Baru) 뒤편 골목에 있는 이 국수집은 1957년부터 자리를 지켰다는 간판을 달고 있다. 인도네시아 화교식 국수, 그러니까 박미(bakmi)를 먹으러 가는 집인데 나는 이번에 아침으로 갔다. 오전 8시 조금 넘어 도착했더니 앞 골목에서 아저씨 둘이 호스로 인도를 물청소하는 중이었다. 8월이라 붉고 흰 인도네시아 국기 장식이 처마마다 걸려 있었고, 그 아래 오토바이 몇 대가 세워져 있었다.

아침 햇살 아래 'BAKMI GANG KELINCI' 간판과 붉고 흰 인도네시아 국기 장식이 걸린 외관, 앞에서 물청소 중인 사람들과 오토바이
아침 개점 직후. 오른쪽 배너에 'STUDENT DISK 20%'가 붙어 있는데, 학생 할인은 월~금 조건이 적혀 있었다.

실내는 관광지가 아니라 동네 식당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대했던 노포의 정취 같은 건 없다. 형광등 밝은 연두색 벽, 분홍색 플라스틱 등받이 의자, 흰 포마이카 테이블. 천장에는 조화 덩굴이 둘려 있고 벽걸이 TV가 두 대 걸려 있다. 자카르타의 오래된 식당들이 대개 이런 식으로 리뉴얼된다. 낡은 것을 지우고 청소하기 쉬운 재질로 바꾸는 쪽.

연두색 벽과 분홍 플라스틱 의자가 놓인 식당 내부, 왼쪽에 Teh Pucuk Harum 음료 냉장고와 계산대 앞에 선 직원들
계산대 옆 노란 안내문: 영수증(bon/struk)을 못 받으면 음식값을 안 받는다는 뜻. 오른쪽 벽에 콤보 메뉴 가격표가 붙어 있다.

홀은 생각보다 넓다. 안쪽으로 기둥 두 개를 지나 자리가 계속 이어지고, 아침인데도 아이 데려온 가족 단위 손님이 서너 테이블 있었다. 유모차를 테이블 옆에 세워두고 엄마가 아이한테 국수를 먹이는 풍경. 관광객은 내가 유일했던 것 같다. 벽에 붙은 HARGA PROMO 콤보표가 눈에 띄어 사진을 확대해 봤는데 Rp 56K부터 Rp 164K까지 가격대가 벌어져 있었다. 정확한 메뉴명은 멀어서 다 읽지 못했으니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넓은 홀에 분홍 의자와 흰 테이블이 늘어선 식당 내부, 안쪽에서 가족 손님들이 국수를 먹고 있고 벽에 HARGA PROMO 가격표와 NO SMOKING 표지가 보인다
아침 홀 풍경. 유리문에 'SENIN–JUMAT'(월~금) 문구가 거꾸로 비쳐 보인다.

국수 한 그릇 — 파짐(pangsit)이 통째로 덮여 나온다

주문한 건 표고버섯과 다진 닭고기가 올라간 박미. 주황색 멜라민 그릇에 나오는데, 면 위에 튀긴 만두피가 손바닥만 하게 한 장 통째로 덮여 있어서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뜨거운 기름에 부풀어 오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저걸 손으로 부숴서 면에 섞어 먹는 게 맞다. 눅눅해지기 전에 빨리 하는 게 낫고.

면은 가늘고 탄력 있는 계란면. 소스는 국물 없이 바닥에 깔려 있어서 바닥부터 위로 뒤집듯 비벼야 간이 고르게 붙는다. 위에 얹힌 튀긴 마늘 부스러기가 향의 절반을 담당한다. 표고는 간장에 조려 단맛이 도는 쪽이고, 청경채는 데친 정도. 솔직히 말하면 맛의 진폭이 큰 음식은 아니다. 자극이 강한 걸 기대하고 가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대신 아침에 부담 없이 한 그릇 비우기에는 이만한 게 없었다.

주황색 그릇에 담긴 박미 국수 위에 손바닥만 한 튀긴 만두피가 통째로 덮여 있고, 표고버섯·청경채·튀긴 마늘이 보이며 뒤로 완탕국과 튀김 접시가 놓여 있다
튀긴 만두피 한 장이 그릇을 덮고 나온다. 부숴서 면에 섞는 게 이 집 방식.

따라 나오는 국물, 그리고 이 집의 진짜 주인공

박미를 시키면 맑은 국물이 작은 공기에 따로 나온다. 안에는 회색빛 소고기 완자(bakso) 하나와 삶은 물만두 하나가 잠겨 있고, 잘게 썬 셀러리잎이 떠 있다. 기름이 동그랗게 뜬 정도를 보면 진하게 끓인 육수는 아니다. 맑고 짜지 않다. 국수를 몇 번 비비다가 이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면 입이 정리된다.

흰 공기에 담긴 맑은 국물 안에 회색 소고기 완자와 물만두가 들어 있고 셀러리잎이 떠 있으며, 옆에 붉은 삼발 종지와 당근 절임이 든 종지가 놓여 있다
박미에 딸려 나오는 국물. 완자 하나, 물만두 하나가 기본 구성이었다.

따로 시킨 건 튀긴 롤. 두부피(tahu kulit) 안에 다진 고기를 넣고 튀긴 것으로, 다섯 개가 흰 접시에 담겨 나왔다. 겉은 유리처럼 얇게 바스러지고 속은 촉촉하다. 옆의 붉은 소스에 찍어 먹는데, 이게 맵기보다는 새콤달콤한 칠리소스에 가깝다. 당근 채가 몇 가닥 들어 있는 걸 보면 절임 국물을 섞은 듯했다. 아침부터 튀김이 부담스러울 줄 알았는데 기름이 깨끗해서 그런지 다섯 개를 다 먹었다.

흰 접시에 담긴 다섯 개의 튀긴 두부피 롤과 옆에 놓인 당근이 든 붉은 소스 종지, 뒤로 스테인리스 쟁반 위 뚜껑 달린 양념통
두부피로 만 튀김 다섯 개. 겉이 유리처럼 부서진다.

테이블마다 스테인리스 쟁반에 뚜껑 달린 양념통 두 개가 놓여 있다. 열어 보면 하나는 초록 고추 절임, 하나는 주황빛 삼발이다. 초록 고추 쪽이 이 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다. 식초에 절여 매운맛이 둥글게 깎였고, 기름진 튀김이나 밍밍한 면에 두어 조각 얹으면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된다. 처음 온 사람들은 이 통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안 열어보면 손해다.

스테인리스 쟁반 위 두 개의 양념통, 왼쪽은 식초에 절인 초록 고추 슬라이스, 오른쪽은 숟가락이 꽂힌 주황빛 삼발 소스
테이블 양념통 두 개. 왼쪽 절인 고추가 진짜다.

위치와 계산 — 오전 9시 전에 6만 2천 루피아

주소는 Jl. Kelinci Raya No. 1, 자카르타 푸사트(중부 자카르타). 파사르 바루 쇼핑 거리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이고, 큰길에서 골목으로 한 번 꺾어 들어가야 해서 그랩(Grab)이나 고젝(Gojek)을 부르면 기사가 큰길에 세워주는 일이 잦다. 지도의 핀보다 골목 안쪽이라고 생각하고 간판을 찾는 게 빠르다.

계산은 QRIS로 했다. 영수증에 찍힌 시간은 29 AUG 08:58, 합계 Rp 62,000. 국수 한 그릇에 튀김 한 접시, 음료까지 포함한 금액이다. 한화로 대략 6천 원 남짓. 자카르타 몰 안의 프랜차이즈 국수집이 한 그릇에 그 정도를 받는 걸 생각하면 여기가 싼 편은 아니지만, 두 가지를 시키고 이 값이면 나쁘지 않다.

손에 든 BCA 카드 영수증에 'BAKMI GANG KELINCI-HO, JL KELINCI RAYA NO 1, JAKARTA PUSAT', 29 AUG 26 08:58, TOTAL Rp.62,000이 인쇄되어 있고 뒤로 양념통과 분홍 냅킨통이 보인다
QRIS 결제 영수증. 상호와 주소, 시간, 금액이 그대로 찍혀 나온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 몇 가지를 정리해둔다.

대단한 미식 경험을 하러 가는 집은 아니다. 다만 자카르타 사람들이 60년 넘게 아침으로 뭘 먹어왔는지 궁금하다면, 파사르 바루 구경 전에 여기서 한 그릇 비우고 시작하면 하루가 제법 그럴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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