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멘텡 House of Tugu — 저녁을 먹고 나서 그 자리가 박물관이 됐다

자카르타에서 저녁 약속이 잡히면 보통은 몰 안의 식당으로 간다. 에어컨이 세고, 주차가 편하고, 실패가 없으니까. 그날은 멘텡 쪽 House of Tugu로 갔다. 여기는 밥만 먹고 나오면 절반도 못 본 셈이 되는 곳이다. 접시가 비워지고 나서야 진짜가 시작된다는 걸, 나는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 복도로 걸어…

자카르타 · House of Tugu

자카르타에서 저녁 약속이 잡히면 보통은 몰 안의 식당으로 간다. 에어컨이 세고, 주차가 편하고, 실패가 없으니까. 그날은 멘텡 쪽 House of Tugu로 갔다. 여기는 밥만 먹고 나오면 절반도 못 본 셈이 되는 곳이다. 접시가 비워지고 나서야 진짜가 시작된다는 걸, 나는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 복도로 걸어 들어가면서 알았다.

먼저 먹었다 — 흙그릇 오리와 얇게 썬 소고기

테이블에 처음 놓인 건 한입거리였다. 검은 화산석을 깔아둔 작은 볼 위에 얹힌, 튀긴 껍질에 다진 토마토와 고수를 올린 것. 손가락으로 집어 통째로 넣으니 바삭하고 시큼하고 끝에 살짝 매웠다. 인도네시아 삼발 특유의 마무리다. 두 입이면 사라지는데, 이걸 먹고 나면 물 대신 다른 걸 시키고 싶어진다.

검은 자갈이 깔린 그릇 위에 놓인 바삭한 껍질 위 다진 토마토 살사와 고수 잎을 올린 한입 애피타이저
검은 돌 위에 얹혀 나온 한입 애피타이저. 바삭하고 시큼하고 끝에 매웠다.

메인은 투박한 흙그릇째 나왔다. 뚜껑을 열면 김이 아니라 냄새가 먼저 올라온다. 밥 위에 통째로 올린 다리 하나, 그 위를 덮은 짙은 초록빛 도는 검은 소스. 자바식 향신료를 오래 볶아 만든 그 걸쭉한 덩어리다. 고기는 뼈에서 그냥 미끄러져 나왔고, 아래 깔린 밥에는 기름과 향신료가 스며서 반찬 없이도 계속 들어갔다. 다만 짜다. 물이나 밍밍한 음료를 옆에 두지 않으면 후반부에 힘들어진다. 나는 절반쯤 먹고 밥을 조금 남겼다.

투박한 흙그릇에 담긴 밥 위에 짙은 검은 향신료 소스를 덮은 고기 다리 요리
흙그릇째 나온 메인. 검은 향신료 소스가 밥까지 다 적셨다.

같이 간 사람이 시킨 접시는 완전히 달랐다. 우툴두툴하게 빚은 흰 도자기 위에, 미디엄으로 구운 소고기를 얇게 저며 쌓고 그 위에 튀긴 샬롯을 수북이 올린 것. 오이 슬라이스와 채 썬 당근, 데친 잎채소가 아래에 깔려 있었다. 한 점 얻어먹었는데 소스가 달큼했다. 흙그릇 요리가 무겁게 눌러오는 맛이라면 이쪽은 가볍게 빠지는 맛이다. 둘이 가면 이렇게 성격이 다른 걸로 하나씩 시키는 편이 낫다.

흰 도자기 접시에 얇게 썬 소고기와 튀긴 샬롯, 오이와 당근 채를 곁들인 요리
튀긴 샬롯을 수북이 올린 소고기 접시. 흙그릇 요리와 무게감이 정반대다.

식탁 자체가 전시장이다

먹는 내내 등 뒤가 신경 쓰였다. 긴 테이블에 앉아 고개만 돌리면 유리 진열장이다. 청록색 가면, 붉은 옷, 낡은 흑백 사진과 설명 카드가 액자째 세워져 있고, 천장에는 빨강·파랑·청록 유리알을 왕관처럼 엮은 샹들리에가 걸려 있다. 바닥은 초록 타일에 꽃무늬 시멘트 타일이 섞여 깔렸다. 식당 인테리어라기보다 수장고 한가운데 상을 차린 느낌이다.

유리알 샹들리에 아래 길게 세팅된 흰 식탁과 뒤편 유물 진열장, 나무 조각 칸막이가 있는 식당 내부
유리알 샹들리에와 조각 칸막이. 앉은 자리 뒤가 전부 진열장이다.

다른 홀은 분위기가 또 달랐다. 초록 테이블보에 분홍 플레이트를 깔고 토끼 인형을 올려둔 세팅이었는데, 그 뒤 벽에는 수카르노 초상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그 옆으로 'WAGE RUDOLF SOEPRATMAN 1903–1938' 액자, 발리 수호신상 한 쌍, 청화백자, 오래된 손편지까지. 식기 옆에 놓인 컵받침에도 TUGU 로고가 찍혀 있다. 사진 아래마다 영문 설명 카드가 붙어 있어서, 음식 기다리는 동안 하나씩 읽는 재미가 있다.

초록 테이블보에 분홍 접시가 세팅된 식탁 뒤로 수카르노 초상 사진과 발리 수호신상, 옛 흑백 사진들이 걸린 벽
수카르노 초상 아래 차려진 식탁. 소품마다 영문 설명 카드가 붙어 있다.

밥 먹고 나서 걸어 들어간 안쪽

계산을 미루고 안쪽으로 걸었다. 천장이 갑자기 몇 층 높이로 트이면서, 회색 콘크리트로 빚은 나무가 벽과 천장 전체를 덮고 있는 공간이 나온다. 잎 하나하나가 다 손으로 붙인 것이다. 그 사이로 파란 조명이 들어가면 잎이 파랗게, 초록 조명이 들어가면 초록으로 바뀐다. 한가운데에는 붉은 산호처럼 생긴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나무줄기 사이 움푹한 자리마다 붉게 물든 작은 상들이 박혀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로 만든 거대한 나무가 천장을 덮고 파란 조명이 든 홀, 가운데 붉은 산호 모양 샹들리에
벽과 천장을 통째로 덮은 콘크리트 나무. 조명 색이 바뀌면 잎 색도 바뀐다.
초록빛 조명이 든 콘크리트 나무 천장과 그 중앙에 매달린 붉은 산호 모양 샹들리에를 올려다본 모습
같은 홀, 초록으로 바뀐 순간. 목을 완전히 젖혀야 다 들어온다.

그 나무 아래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갑옷 무사상이 검을 짚고 서 있다. 발밑에 '刀 SWORD'라고 쓴 작은 액자, 옆에는 징과 알록달록한 등, 그리고 'BARABOEDOER — 1000 YEARS AGO'라고 적힌 옛 네덜란드령 시절 여행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보로부두르를 관광 상품으로 팔던 시절의 인쇄물이다. 무사상 뒤로 다른 손님이 지나가는 게 유리문에 비쳤다.

콘크리트 나무 아래 검을 짚고 선 커다란 갑옷 무사상과 옆에 걸린 BARABOEDOER 1000 YEARS AGO 옛 여행 포스터, 징
검을 짚은 갑옷상과 옛 보로부두르 여행 포스터.

어두워서 더 오래 보게 되는 것들

안쪽은 전반적으로 어둡다. 스팟 조명 하나로 유물 하나씩만 떨어뜨려 비추는 방식이라, 사진을 찍으려면 손을 벽이나 난간에 대고 버텨야 한다. 나는 이날 절반 정도를 흔들려 날렸다. 플래시는 켜지 않는 편이 낫다. 그림자 때문에 살아 있는 조각들이 플래시 한 방에 그냥 평평해진다.

중정 벽면에는 공물을 받쳐 든 여인 석상 셋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위에서 마른 덩굴이 늘어져 얼굴을 반쯤 가리고, 발치에는 실제 화분이 자라고 있다. 조명 하나가 왼쪽 상의 얼굴만 하얗게 비춰서, 셋의 표정이 다 다르게 보였다.

어두운 벽면에 나란히 붙어 공물 그릇을 받쳐 든 세 여인 석상, 위에서 마른 덩굴이 늘어져 있다
공물을 받쳐 든 여인상 셋. 덩굴이 그대로 얼굴을 스친다.

대나무 기둥과 짚 지붕을 얹은 구역도 있다. 낡은 놋쇠 등 세 개가 사슬에 매달려 주황빛을 뿌리고, 그 아래 석상 둘이 창을 들고 마주 서 있었다. 뒤쪽 벽에는 날개 달린 거대한 부조가 반쯤 식물에 가려 있다. 아래층 설명판에 'BOROBUDUR'라는 글씨가 보였다. 조도가 워낙 낮아서 눈이 적응하는 데 한참 걸린다.

대나무 기둥과 짚 지붕 아래 놋쇠 등이 매달리고 창을 든 석상 두 개가 마주 선 어두운 전시 공간, 아래에 BOROBUDUR 표지판
대나무 기둥 아래 창을 든 석상들. 표지판에 BOROBUDUR가 적혀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분위기가 다시 뒤집힌다. 흰 몰딩과 기둥이 있는 밝은 홀 정면에, 보로부두르 양식의 커다란 결가부좌 불상이 앉아 있다. 양옆에 붉은 발리식 파라솔을 세워두고, 오른쪽에는 금박 액자에 'BARABODO…'라고 쓴 옛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앞의 둥근 석재 테두리까지 포함해 하나의 제단처럼 꾸며놨다. 어두운 방들을 지나온 뒤라 눈이 시릴 정도로 환했다.

밝은 흰 기둥 홀에 붉은 파라솔 두 개를 양옆에 세우고 앉아 있는 커다란 보로부두르 양식 석불
붉은 파라솔을 세워둔 대형 석불. 어두운 구역을 지나오면 유난히 밝다.

가장 오래 서 있었던 건 유리장 안의 채색 목조 좌상이었다. 문틀 위 놋쇠판에 이렇게 적혀 있다. "THIS STATUE WAS A GIFT BY THE FAMILY OF OEI TIONG HAM TO A JAPANESE MILITARY OFFICER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ERA IN INDONESIA 1942–1945." 1942년부터 1945년, 일본 점령기에 오에이 티옹 함 가문이 일본군 장교에게 선물한 상이라는 뜻이다. 채색이 벗겨진 옷자락과 반쯤 든 손이 유리 너머로 흐릿하게 보였다. 이 집이 왜 스스로를 박물관이라 부르는지는 이 명패 한 장에서 대충 답이 나온다.

돌을 박은 문틀 안 유리장에 모신 채색 목조 좌상과 위쪽에 붙은 영문 놋쇠 설명판
일본 점령기(1942–1945)에 오에이 티옹 함 가문이 일본군 장교에게 준 상이라고 적혀 있다.

그 근처 유리장에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목조각이 하나 있었다. 굵은 기둥 두 개 사이에서 쇠사슬을 감고 무릎을 꿇은 남자상. 근육과 흘러내린 머리카락, 은빛 허리천까지 유럽 조각 양식이다. 옆에는 한자가 적힌 붉은 기둥 장식이 붙어 있어서, 두 계통이 한 유리장 안에 나란히 서 있는 셈이 됐다.

유리 진열장 안 두 기둥 사이에서 쇠사슬을 감고 무릎 꿇은 유럽풍 남자 목조각
기둥 사이에 사슬로 묶인 유럽풍 목조각. 옆에는 한자 기둥 장식이 붙어 있다.

붉은 조명이 도는 복도에는 등에 짐을 지고 걸어가는 자세의 사람 목조각이 세워져 있었다. 표정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애매하다. 발치에 작은 설명 액자가 놓여 있었는데, 조도가 낮아 읽지 못하고 지나쳤다. 안쪽으로는 파란 창살이 난 또 다른 방이 이어진다.

붉은 조명이 도는 복도에 등짐을 진 자세로 서 있는 사람 형상의 나무 조각상
등짐을 진 나무 인물상. 발치 설명 카드는 어두워서 못 읽었다.

마지막으로 본 건 검은 표범 조각이었다. 낮은 단 위에 앞발을 뻗고 엎드린 자세로,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배 앞에 작은 초 한 자루가 켜져 있었고, 뒤쪽 제단 양옆에도 초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왼쪽 벽에는 커피 관련 문구가 큼직하게 인쇄된 검은 패널이 걸려 있다. 초 세 개 말고는 광원이 거의 없는 자리라, 이 구역만 온도가 몇 도쯤 낮게 느껴졌다.

어두운 실내 낮은 단 위에 앞발을 뻗고 엎드린 검은 표범 조각상과 그 앞에 켜둔 작은 촛불
촛불 하나만 켜둔 검은 표범상. 이 구역이 가장 어둡고 서늘했다.

위치와 실전 팁

위치는 자카르타 중심부 멘텡 일대다. 좌표로는 남위 6.1347, 동경 106.8107. 이 동네는 대사관과 오래된 저택이 몰려 있어서 골목이 조용한 대신, 퇴근 시간대에는 큰길이 완전히 막힌다. 나는 저녁 약속에 늦을까 봐 그랩을 일찍 잡았는데도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걸렸다.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 이동한다면 시간을 넉넉히 잡거나, 근처까지 오젝(오토바이)으로 오는 편이 현실적이다.

가서 겪어본 뒤에 정리한 것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진첩을 넘겨보니, 음식 사진 세 장 뒤로 조각과 액자 사진이 열 장 넘게 붙어 있었다. 어느 쪽이 본편인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밥값에 관람료가 얹혀 있는 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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