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이 혀를 내밀 때까지 — 푸꾸옥 빈펄 사파리에서 보낸 반나절
베트남 푸꾸옥 섬 북서쪽, 지금은 안장성에 속하는 이 섬의 빈펄 사파리는 공항에서 차로 한참 올라가야 나온다. 그랜드월드나 선셋타운 같은 남쪽 번화가에 묵고 있다면 이동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게 좋다. 아침 아홉 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매표소 앞 그늘이 벌써 꽉 차 있었다. 초가지붕을 얹은 게이트에 초록색 'VINPEAR…
안장 · 빈펄 사파리 푸꾸옥
베트남 푸꾸옥 섬 북서쪽, 지금은 안장성에 속하는 이 섬의 빈펄 사파리는 공항에서 차로 한참 올라가야 나온다. 그랜드월드나 선셋타운 같은 남쪽 번화가에 묵고 있다면 이동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게 좋다. 아침 아홉 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매표소 앞 그늘이 벌써 꽉 차 있었다. 초가지붕을 얹은 게이트에 초록색 'VINPEARL SAFARI' 사인이 붙어 있고, 그 옆으로 회색 코끼리 조형물과 분홍 플라밍고 조형물이 줄지어 서 있다. 아이 둘은 도착하자마자 코끼리 앞으로 달려가 사진부터 찍었다.
게이트를 지나 조금 걸으면 분홍색 'flamingo' 레터링 조형물이 나온다. 뒤로 인공폭포와 초가 정자가 보이고 바닥은 나무 그루터기 모양 디딤돌로 깔려 있다. 인생샷 포인트로 소문난 자리라 순번을 기다려야 했는데, 다행히 회전이 빠르다. 사진 찍고 나면 바로 왼쪽 길로 동물 구역이 시작된다.
오픈 사파리 —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것들
여기 핵심은 우리에 갇힌 동물을 보는 게 아니라, 차를 타고 방목 구역을 통과하는 쪽이다. 지붕만 있고 창이 없는 사파리 버스를 타면 붉은 흙길을 따라 20분 남짓 돈다. 처음 만난 건 얼룩말이었다. 마른 붉은 흙바닥에 고개를 박고 뭔가를 뜯고 있었는데, 갈기가 꼿꼿하게 서 있는 게 그림책에서 보던 것과 똑같아서 아이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뒤쪽 나무 그늘에는 사슴 몇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조금 더 들어가니 뿔이 어마어마하게 긴 소떼가 나무 그늘에 모여 있었다. 왓투시 소다. 뿔 하나가 사람 팔 길이를 훌쩍 넘는데, 스무 마리 남짓이 한 덩어리로 붙어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버스가 멈춰도 눈길 한 번 안 준다.
코뿔소는 마른 나뭇가지가 드리운 그늘막 기둥 옆에서 바닥을 훑고 있었다. 가죽 주름이 갑옷처럼 잡혀 있고 앞뿔이 뭉툭하다. 발밑에 초록색 사료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는 걸 보니 방금 배식이 지나간 모양이었다.
맹수 구역, 기대치를 좀 낮춰야 한다
사자와 호랑이 구역은 솔직히 말하면 아쉬웠다. 시간대 탓이 크다. 오전 열한 시쯤 지나갔는데 수사자는 야자수 아래 누워 눈을 반쯤 감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갈기는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성글고 얼굴엔 오래된 흉터가 몇 줄 나 있었다. 옆으로 암사자 앞발이 삐죽 나와 있었다.
바로 옆 암사자는 앞발에 얼굴을 파묻고 완전히 잠들어 있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는 모습이 커다란 고양이와 다를 게 없다. 버스가 지나가는 내내 귀 한 번 까딱하지 않았다.
호랑이도 마찬가지였다. 큰 바위 뒤에 몸 절반을 숨기고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뻗어 있었다. 처음엔 어디 있는지 못 찾다가 귀 한 쪽이 삐죽 나온 걸 보고 알았다. 낙엽 쌓인 바닥에 오렌지색 줄무늬가 반쯤 가려져 있어서, 야생에서 이 무늬가 왜 위장색인지 그제야 이해했다.
조금 더 진행하니 같은 호랑이가 몸을 돌려 옆으로 누웠다. 얼굴이 보이긴 했는데 여전히 자는 중이었다. 맹수를 활동적인 모습으로 보고 싶다면 개장 직후나 오후 늦은 시간을 노리는 편이 낫다. 정오 무렵의 푸꾸옥 더위에 깨어 있을 동물은 거의 없다.
반달가슴곰과 코끼리는 반대로 활발했다
맹수들이 뻗어 있던 것과 달리 반달가슴곰은 사람 쪽을 보며 앉아 있었다. 가슴에 선명한 크림색 V자가 있고, 뒷다리로 앉아 앞발을 모은 자세가 영락없이 뭔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이 구역은 유리 너머라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얼굴을 당겨 찍으니 주둥이 주변 털이 하얗게 셌고 입을 벌리자 분홍 잇몸이 보였다. 나이가 꽤 든 개체 같았다. 아이가 유리에 손을 대자 잠깐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코끼리 방사장은 붉은 흙바닥에 작은 물웅덩이가 하나 있는 구조다. 한 마리가 코를 길게 뻗어 관람 통로 쪽으로 내밀었다. 코 끝이 눈앞 1미터까지 왔는데 주름 하나하나가 다 보였고, 귀 뒤쪽에 나이 든 코끼리 특유의 주근깨 같은 분홍 반점이 번져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정면으로 걸어오는 장면도 찍었다. 뒤로 다른 한 마리가 물웅덩이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발소리가 거의 안 난다는 게 의외였다. 이 큰 몸이 마른 흙을 밟는데도 툭, 하는 둔한 소리 하나가 전부다.
기린 먹이주기 — 여기가 진짜다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건 기린 먹이주기 데크였다. 나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기린이 목을 내려주는 구조인데, 사람이 서 있는 높이에 기린 얼굴이 딱 온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두 겹으로 서 있었다.
먹이는 종이컵에 담긴 채소 조각으로, 별도 구매다. 가격은 시즌마다 달라지는 듯하니 현장 확인을 권한다. 컵을 들고 손을 올리면 기린이 목을 굽혀 다가온다.
혀가 문제다. 기린 혀는 짙은 보랏빛에 길이가 40cm 가까이 되는데, 먹이를 받기 전에 먼저 혀부터 쭉 내민다. 처음 본 아이가 깜짝 놀라 손을 뺐다.
한 번 성공하고 나면 겁이 사라진다. 아이들이 번갈아 손을 올리는 동안 기린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목을 내려줬다. 혀가 손바닥을 스칠 때 미끌거리면서 따뜻하다고, 아이가 그렇게 표현했다.
먹이가 다 떨어진 뒤에도 기린이 손 냄새를 맡으러 내려왔다. 아이가 빈손을 들어 올렸는데 콧등을 가까이 대고 한참 킁킁거렸다. 이 순간이 오늘 최고였다는 게 만장일치였다.
기린을 보며 먹는 점심
먹이주기 데크 근처에 기린 방사장을 마주 보는 식당이 있다. 초가지붕에 대나무 발을 내린 개방형 홀인데,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동안 창밖으로 기린이 그대로 서 있다. 냉방은 없고 천장 선풍기와 바람으로 버티는 구조라 점심때는 꽤 덥다. 테이블마다 다사니 생수병이 몇 병씩 올라와 있었던 이유가 있다. 창가 자리는 경쟁이 심하니 식사 시간을 조금 당기거나 늦추는 게 낫다.
아이들이 더 오래 머문 구역
정작 아이들이 가장 오래 붙어 있던 곳은 큰 동물이 아니라 작은 동물 방사장이었다. 어린 사슴 한 마리가 흙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손을 내밀면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다. 뒤쪽 우리 그늘에는 다 큰 개체들이 엎드려 쉬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 대여섯이 둥그렇게 모여 먹이컵을 들고 있었다. 사람이 몰리자 어린 개체 한 마리가 가운데로 들어와 한참을 돌아다녔다. 어른들도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양 방사장에는 며칠 안 돼 보이는 새끼가 있었다. 아직 털이 짧고 순백색이라 옆의 어미와 색이 확연히 달랐다. 어미가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사이 새끼가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실내 파충류관과 플라밍고 연못
햇볕에 지쳤을 때 들어가기 좋은 곳이 실내 파충류관이다. 인공 암벽으로 꾸며진 방에 연노란색 비단뱀이 통나무 받침대 위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몸통이 성인 팔뚝만 하고 비늘에 광택이 돌았다. 조명이 어두워서 사진이 잘 안 나오니 플래시 없이 난간에 팔을 붙이고 찍는 편이 낫다.
출구 쪽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면 플라밍고 연못이 나온다. 정문의 분홍 조형물과 짝을 맞춘 자리인데, 실제 플라밍고는 조형물보다 훨씬 옅은 연분홍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열댓 마리가 얕은 물에 서서 부리를 물에 담그고 있었다. 나무에 가려 전신을 담기가 어려워서, 연못 왼쪽 끝 쪽으로 몇 걸음 더 내려가면 시야가 트인다.
위치와 동선, 다시 간다면
사파리는 푸꾸옥 북서쪽 감자우 일대에 있다. 남쪽 즈엉동이나 안터이에서 출발하면 이동에만 편도로 한참 걸리니, 오전 일찍 출발해서 사파리를 보고 근처 빈원더스로 넘어가는 동선이 효율적이다. 섬 북쪽은 택시가 귀한 편이라 돌아올 차편을 미리 정해두는 게 안전하다. 그랩이 잡히지 않는 시간대가 있다.
다시 간다면 이렇게 하겠다.
- 개장 직후에 들어가 오픈 사파리 버스부터 탄다. 맹수가 그나마 움직인다.
- 기린 먹이주기는 점심 전후 사람이 몰리니, 버스 투어 직후 바로 간다.
- 모자와 물은 필수. 그늘이 있는 구역은 생각보다 적고 붉은 흙길이 열을 그대로 받는다.
- 샌들보다 발등을 덮는 신발. 흙먼지가 상당하다.
- 먹이 값과 입장료는 시즌에 따라 바뀌므로 현장 또는 공식 채널 확인.
동물원 경험 자체는 규모에 비해 촘촘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기린이 목을 내려 아이 손바닥에 혀를 대는 3초는 다른 데서 사기 힘든 장면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왔다면 그 데크에서 시간을 제일 많이 쓰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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